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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주거권 우선하는 일본의 개발문화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墨田區)의 한 마을에서는 지난해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쭉 뻗은 이면도로를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 길이 닦일 위치에 사는 한 가옥주가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며 보상금을 거부했다. 행정기관의 설득에도 가옥주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이 도로는 이 집을 우회했다. 마을의 개발에 있어서 주민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오늘날 한국의 도시개발이 거주민의 권리보다 ‘이익창출’을 우선시하는 반면, 일본은 주민들의 복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된 커뮤니티 형성운동, 즉 ‘마치즈쿠리’가 그 중심에 있다. 마치즈쿠리는 지역사회의 재생을 위해 주민이 중심이 돼서 행정기관, 전문가들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1970년대부터 활성화됐다.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재정착과 주택 증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마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현재 일본에는 마치즈쿠리를 위한 비영리단체(NPO)가 1500여개에 달하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갖추고 있다.
마치즈쿠리가 활성화된 도쿄 세타가야구(世田谷區)는 인구 86만명의 제법 큰 자치구다. 70년대 구청이 개발사업을 일방 추진하자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들어 반대한 것이 이 풀뿌리 운동의 시작이 됐다. 수년간 갈등을 겪던 양측은 주민들이 구청 측 제안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사업안을 구청에 전달함으로써 해결의 물꼬를 텄다. 주민과 행정기관이 협력하는 정비사업 방식이 그 요체였다. 75년 다이시도지역의 낡은 목조주택을 재정비하는 사업은 주민발의를 수용한 구청에 의해 실현됐고, 이후 작은 숲 조성, 공장굴뚝에 색칠하기 등 주민들의 제안이 하나 둘씩 당국에 의해 채택됐다. 82년 마치즈쿠리조례 제정과 마치즈쿠리협의회 구성이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마치즈쿠리를 초기부터 이끌어온 일본희망제작소 하야시 야스요시 이사장은 “시작 당시에는 집이나 도로 등 시설부문에 제한됐지만 이후 마을환경을 가꾸는 것으로 바뀌고, 지역의 복지와 지역경제의 활성화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행정기관의 활동을 ‘공공’이라고 칭했으나 이제는 마치즈쿠리를 통해 주민이 자치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공공’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타가야구에서는 개인주택의 정원이나 서고를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노부부 또는 독거노인의 개인주택에 청년 세입자가 함께 살면서 노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젊은이들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즈쿠리의 전통이 깊은 고베시(神戶市) 마노(眞野)지구의 경우 공해 반대운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70년대부터 주민자치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치즈쿠리협의회가 고베시에 계획안을 제출하고, 고베시가 이 내용을 반영한 지구계획을 만드는 과정이 확립됐다.
이 지역은 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진화활동에 나서 피해를 줄이고, 복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마치즈쿠리의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이 같은 문화로 일본에서는 주택재개발 사업 때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공무원들 역시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개발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주도의 개발에서조차 일부 주민이 찬성하면 나머지 주민의 토지나 주택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일본 재개발의 대표적 사례인 도쿄 미나토구(港區)의 롯폰기(六本木) 힐스나 오모테산도(表參道) 힐스 등 대규모 개발사업 역시 주민 동의하에 진행됐다.
또 지역의 도시계획을 마련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는 행정당국과 전문가와 함께 일반 시민도 참여한다. 일본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손꼽는 도쿄도 무사시노시(武藏野市)는 70년부터 시민들이 주도하는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녹색마을만들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시민들이 도시녹화에 관한 정책을 계획하면 행정기관이 이를 실행하는 구조다.
도시계획에 대한 회의나 공청회 시간도 주말이나 평일 저녁으로 정해 직장에 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회의에 참여하는 데 어렵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공청회 등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서는 추가설명회나 공보를 통해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세입자들의 주거권도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 즉 부동산임대법에 따라 임차인의 권리가 보호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제대로 된 재산상의 보상 없이 집에서 내쫓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세입자들도 지역의 주민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어 세입자를 포함한 주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재개발이 진행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墨田區)의 한 마을에서는 지난해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쭉 뻗은 이면도로를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 길이 닦일 위치에 사는 한 가옥주가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며 보상금을 거부했다. 행정기관의 설득에도 가옥주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이 도로는 이 집을 우회했다. 마을의 개발에 있어서 주민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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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를 가로지르는 가모가와(鴨川) 천변에 재개발된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근대에 지어진 전통 목조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교토 | 김기범 기자
오늘날 한국의 도시개발이 거주민의 권리보다 ‘이익창출’을 우선시하는 반면, 일본은 주민들의 복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된 커뮤니티 형성운동, 즉 ‘마치즈쿠리’가 그 중심에 있다. 마치즈쿠리는 지역사회의 재생을 위해 주민이 중심이 돼서 행정기관, 전문가들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1970년대부터 활성화됐다.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재정착과 주택 증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마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현재 일본에는 마치즈쿠리를 위한 비영리단체(NPO)가 1500여개에 달하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갖추고 있다.
마치즈쿠리가 활성화된 도쿄 세타가야구(世田谷區)는 인구 86만명의 제법 큰 자치구다. 70년대 구청이 개발사업을 일방 추진하자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들어 반대한 것이 이 풀뿌리 운동의 시작이 됐다. 수년간 갈등을 겪던 양측은 주민들이 구청 측 제안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사업안을 구청에 전달함으로써 해결의 물꼬를 텄다. 주민과 행정기관이 협력하는 정비사업 방식이 그 요체였다. 75년 다이시도지역의 낡은 목조주택을 재정비하는 사업은 주민발의를 수용한 구청에 의해 실현됐고, 이후 작은 숲 조성, 공장굴뚝에 색칠하기 등 주민들의 제안이 하나 둘씩 당국에 의해 채택됐다. 82년 마치즈쿠리조례 제정과 마치즈쿠리협의회 구성이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마치즈쿠리를 초기부터 이끌어온 일본희망제작소 하야시 야스요시 이사장은 “시작 당시에는 집이나 도로 등 시설부문에 제한됐지만 이후 마을환경을 가꾸는 것으로 바뀌고, 지역의 복지와 지역경제의 활성화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행정기관의 활동을 ‘공공’이라고 칭했으나 이제는 마치즈쿠리를 통해 주민이 자치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공공’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타가야구에서는 개인주택의 정원이나 서고를 지역사회에 공개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노부부 또는 독거노인의 개인주택에 청년 세입자가 함께 살면서 노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젊은이들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즈쿠리의 전통이 깊은 고베시(神戶市) 마노(眞野)지구의 경우 공해 반대운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70년대부터 주민자치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치즈쿠리협의회가 고베시에 계획안을 제출하고, 고베시가 이 내용을 반영한 지구계획을 만드는 과정이 확립됐다.
이 지역은 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진화활동에 나서 피해를 줄이고, 복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마치즈쿠리의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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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스미다구(墨田區)의 한 마을은 곧게 뻗은 이면도로를 계획했으나 한 주민이 이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 집을 우회하는 새 길을 조성했다. | 세종대 변창흠 교수 제공
이 같은 문화로 일본에서는 주택재개발 사업 때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공무원들 역시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개발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주도의 개발에서조차 일부 주민이 찬성하면 나머지 주민의 토지나 주택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일본 재개발의 대표적 사례인 도쿄 미나토구(港區)의 롯폰기(六本木) 힐스나 오모테산도(表參道) 힐스 등 대규모 개발사업 역시 주민 동의하에 진행됐다.
또 지역의 도시계획을 마련하는 도시계획위원회에는 행정당국과 전문가와 함께 일반 시민도 참여한다. 일본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손꼽는 도쿄도 무사시노시(武藏野市)는 70년부터 시민들이 주도하는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녹색마을만들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시민들이 도시녹화에 관한 정책을 계획하면 행정기관이 이를 실행하는 구조다.
도시계획에 대한 회의나 공청회 시간도 주말이나 평일 저녁으로 정해 직장에 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회의에 참여하는 데 어렵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공청회 등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서는 추가설명회나 공보를 통해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세입자들의 주거권도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 즉 부동산임대법에 따라 임차인의 권리가 보호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제대로 된 재산상의 보상 없이 집에서 내쫓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세입자들도 지역의 주민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어 세입자를 포함한 주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재개발이 진행된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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