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연못서 멱감던 장모 “시원허니 살 만하네, 이만하면 괜찮다”
낙장불입 시인의 집들이가 있던 날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두 명의 여자가 도착했다. ‘스발녀’ 혹은 ‘자발녀’의 임원인 그녀들은 마침 낙시인 집에 모이는 김에 정모(정기모임)를 개최하기로 통지를 해 둔 터였다. ‘스발녀’ ‘자발녀’란 ‘스스로 발등을 찍은 녀들의 모임’ 혹은 ‘자기 발등 자기가 찍은 녀들의 모임’의 약자이다. 처음에 이 ‘스발녀’ 모임은 꽤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지금은 회장과 부회장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었다. 통지를 받은 것이 틀림없건만 멤버는 모이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낙시인의 집 멀리 섬진강이 흐르는 것을 본 부회장여사는 강아지 얼씨구와 노는 아이를 마당에 내려두고 혼자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만난 조각가와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이어 그가 사는 움막에 숟가락 두 개 들고 들어가 살림을 시작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의 행방을 묻던 어머니가 물어물어 지리산 자락에 나타났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지리산 계곡으로 도망쳤다. 도망쳤다고 했지만 워낙 더운 날이어서 소에 멱을 감으러 간 것이었다. 그곳은 이곳 사람들만이 아는 외지고 멋진 자연 수영장이었다.
한편 그 시간 그녀의 어머니는 노트 크기만한 딸의 사진을 가지고 화개장터에 서 있었다. 딸의 행방을 알 만한 젊은이들을 찾는 것은 쉬웠다. 게으르게 생기고 놀기 좋아하게 생긴 젊은 것들은 눈에 확 띄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두건을 멋지게 쓰고 기타를 메고 지나가는 젊은 남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장대한 기골로 깡마른 젊은이를 내려다보며 위엄 있게 말했다. “얘는 내 딸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 아니면 내 딸을 찾을 때까지 나와 같이 지리산 구석구석 헤매 다니게 될 거다.”
기타를 멘 젊은이는 울상이 되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젊은이의 안내로 산속 좁은 길로 들어서 한참을 올라가는데 모퉁이를 돌자 선녀들이 목욕을 했을 것 같은 푸르고 깊은 소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불시에 습격을 받은 듯 수영을 하던 젊은이들이 숨을 멈추었다. 아싸, 어머니는 짧은 탄성을 지르더니 옷을 훌훌 벗고 속옷 바람으로 (뭐 어떻게 보면 비키니 차림이라고나 할까 쩝!) 뛰어들었다. 그리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어머니는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딸을 찾았다. 팔다리가 긴 게 게을러 빠지게 생긴 녀석 뒤에 딸이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조각가 등 뒤에 숨어 있는 딸을 향해 말했다.
“시원허니 살 만하네… 이만하면 괜찮다.”
그리고 그날 처음 물속에서 대면한 사위는 한나절을 내내 민망한 차림의 장모와 멱을 감다가 시원하게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부회장여사는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자발적 가난이라니 너무 멋졌다. 하지만 곧 돈이 다 떨어지고 각종 고지서들이 쌓이고 휴대폰이 발신 금지가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작품 구상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다시 조각도를 잡았다. 부회장여사가 반색을 하자 남편이 말했다. “낼부터 착신도 금지래 그럼 안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주문을 받아야 하니까.” 전화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대개는 기타리스트 집에 병아리 사왔다고 한잔, 버들치 시인 집에 차 덖는다고 가서 한잔하자는 전화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부회장여사는 그런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회장여사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회장여사의 사연을 보자. 회장여사는 서울의 여대 4학년생이었던 7년 전 어느날 친구가 찾아와 짝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데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친구가 사랑하는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천재화가라고 했다. 그녀는 친구 따라 낙장불입 시인의 집에 도착했다. 차마 누추한 자신의 집에 귀한 여자분들을 모실 수가 없다고 낙시인의 집으로 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낙시인은 바쁘다고 집에 없고 고아르피엠 여사는 당연히 집에 없었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셋이서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친구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벌컥벌컥 들이킨 술을 못 이기고 그만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외딴 집 밖으로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할 말도 없었고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회장여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구와 천재화가에게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녀는 낙시인이 돌아올 때까지 산책이라도 하겠다고 길을 나섰다. 그러자 화가는 비오는 날 밤이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있다며 따라나섰다. 인생이 늘 그렇듯 꼬이지 말 곳에서 일은 꼬이고 젊은 둘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창문은 열려 있었고 술에 취한 친구는 밤새 산중에서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모기떼의 습격을 당해 얼굴이 멍게처럼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이 나쁜 기집애! 문을 열어놓고 가려면 모기장이라도 치고 가야지!” 사랑에 울고 모기에 뜯긴 친구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회장여사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택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했다. 그리고 가난뱅이 화가에게 딸을 줄 수 없었던 부모와 사랑 사이에서 역시 사랑을 택하여 지리산 폐가, 화가가 살던 곳에서 살림을 차렸다. 회장여사의 부모 역시 물어물어 이들을 찾아온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사는 사람들(이하 섬지사)이 모였다. 화가가 사는 폐가로 도저히 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쌍계사 밑 제일 분위기가 좋은 찻집으로 부모님을 오시라고 하고 모두들 결혼식에나 갈 때 일 년에 한 번 입는 옷을 입고 그 카페로 모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사위 될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미심쩍다는 듯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화가의 집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바이크도 들어갈 수 없는 산꼭대기. 숨이 차게 그곳까지 올라온 부모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화가와 딸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화가가 말했다. “그래도 전망은 좋습니다.” 그 말을 신호로 장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고 아버지가 딸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렇게 끌려간 딸은 5개월 만에 다시 도망쳐 나와 꿈에도 그리던 남편의 품에 안겼다. 이들의 사랑을 딱하게 여긴 섬지사 사람들은 추렴을 해서 30만원을 걷었다. 그리고 날을 받아 섬진강 모래사장에 대나무 가지를 꽂은 상을 차리고 따로 돼지도 한 마리 잡았다. 버들치 시인의 축시가 있고 나서 주례사를 할 차례였다. 어제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데다가 난생 처음 주례를 선다고 아침부터 이 사람이 한잔 저 사람이 한잔 주는 술을 먹은 주례선생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래서 듣는 사람이 영원히 잊지 못할 간단하고 명료한 주례사를 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년눔들아!”
신혼여행은 섬진강 일주. 야생 꽃으로 장식된 나룻배가 강변에 도착했다. 회장여사 부부가 타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지리산 사진작가가 동승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행정적이고 공식적인 증언 및 나룻배 수거를 위해 이 동네 진보당 지구위원장이 동승했다. 그는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 입후보 및 낙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이 나룻배를 빌리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으로서 나중에 도로 나룻배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렇게 꽃 배는 섬진강을 흘러갔다
“결혼사진 참 좋았지! 이 양반이 서울서 이런 웨딩사진 찍으면 엄청 비싸게 받는다네.”
고아르피엠 여사가 말을 건네자 회장여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형님 제 발등 찍은 거 퉁퉁 부어올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스발녀’ 회장직을 몇 년째 내놓지 못하고 있는 회장여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들이 이래서 안돼요. 단결을 해야지요. 남편이 조금만 잘해주면 이 모임에 나오지도 않고…. 형님만 해도 그래요. 분홍색 이불 이고 지고 온 것이 결국 지 발등 지가 찍은 거라고 얼마나 한탄을 하셨어요. 그런데 형님마저 이 모임에 소원하시니….”
그러자 고아르피엠 여사가 정색을 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야글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이불을 이고 지고 와? 그건 어디까지나 구호품 차원이었고… 나로 말하자면 나는 싫다는 걸 낙시인이 하도 매달리니까… 말하자면 나는 모임을 만들려면 ‘남발녀’나 만들어야 해.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하는 수 없이 발등을 찍은 여자!… 들의 모임! 호호호홋!”
회장여사가 입을 삐죽였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우리가 진보는 진본가 보네.”
ⓒ 경향신문 & 경향닷컴낙장불입 시인의 집들이가 있던 날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두 명의 여자가 도착했다. ‘스발녀’ 혹은 ‘자발녀’의 임원인 그녀들은 마침 낙시인 집에 모이는 김에 정모(정기모임)를 개최하기로 통지를 해 둔 터였다. ‘스발녀’ ‘자발녀’란 ‘스스로 발등을 찍은 녀들의 모임’ 혹은 ‘자기 발등 자기가 찍은 녀들의 모임’의 약자이다. 처음에 이 ‘스발녀’ 모임은 꽤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지금은 회장과 부회장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었다. 통지를 받은 것이 틀림없건만 멤버는 모이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낙시인의 집 멀리 섬진강이 흐르는 것을 본 부회장여사는 강아지 얼씨구와 노는 아이를 마당에 내려두고 혼자 회상에 잠겼다.
‘스발녀’의 부회장여사가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사랑에 빠진 조각가와 도망친 지리산 계곡. 이 천연의 수영장에서 ‘장모와 사위’는 민망한 첫 대면을 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한편 그 시간 그녀의 어머니는 노트 크기만한 딸의 사진을 가지고 화개장터에 서 있었다. 딸의 행방을 알 만한 젊은이들을 찾는 것은 쉬웠다. 게으르게 생기고 놀기 좋아하게 생긴 젊은 것들은 눈에 확 띄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는 두건을 멋지게 쓰고 기타를 메고 지나가는 젊은 남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장대한 기골로 깡마른 젊은이를 내려다보며 위엄 있게 말했다. “얘는 내 딸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 아니면 내 딸을 찾을 때까지 나와 같이 지리산 구석구석 헤매 다니게 될 거다.”
기타를 멘 젊은이는 울상이 되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젊은이의 안내로 산속 좁은 길로 들어서 한참을 올라가는데 모퉁이를 돌자 선녀들이 목욕을 했을 것 같은 푸르고 깊은 소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불시에 습격을 받은 듯 수영을 하던 젊은이들이 숨을 멈추었다. 아싸, 어머니는 짧은 탄성을 지르더니 옷을 훌훌 벗고 속옷 바람으로 (뭐 어떻게 보면 비키니 차림이라고나 할까 쩝!) 뛰어들었다. 그리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어머니는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딸을 찾았다. 팔다리가 긴 게 게을러 빠지게 생긴 녀석 뒤에 딸이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조각가 등 뒤에 숨어 있는 딸을 향해 말했다.
“시원허니 살 만하네… 이만하면 괜찮다.”
그리고 그날 처음 물속에서 대면한 사위는 한나절을 내내 민망한 차림의 장모와 멱을 감다가 시원하게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부회장여사는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자발적 가난이라니 너무 멋졌다. 하지만 곧 돈이 다 떨어지고 각종 고지서들이 쌓이고 휴대폰이 발신 금지가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작품 구상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다시 조각도를 잡았다. 부회장여사가 반색을 하자 남편이 말했다. “낼부터 착신도 금지래 그럼 안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주문을 받아야 하니까.” 전화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대개는 기타리스트 집에 병아리 사왔다고 한잔, 버들치 시인 집에 차 덖는다고 가서 한잔하자는 전화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부회장여사는 그런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회장여사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발녀’들이 결의를 맺은 복사꽃밭 무릉도원.
회장여사의 사연을 보자. 회장여사는 서울의 여대 4학년생이었던 7년 전 어느날 친구가 찾아와 짝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데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친구가 사랑하는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천재화가라고 했다. 그녀는 친구 따라 낙장불입 시인의 집에 도착했다. 차마 누추한 자신의 집에 귀한 여자분들을 모실 수가 없다고 낙시인의 집으로 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낙시인은 바쁘다고 집에 없고 고아르피엠 여사는 당연히 집에 없었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셋이서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친구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벌컥벌컥 들이킨 술을 못 이기고 그만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외딴 집 밖으로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할 말도 없었고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회장여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구와 천재화가에게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녀는 낙시인이 돌아올 때까지 산책이라도 하겠다고 길을 나섰다. 그러자 화가는 비오는 날 밤이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있다며 따라나섰다. 인생이 늘 그렇듯 꼬이지 말 곳에서 일은 꼬이고 젊은 둘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창문은 열려 있었고 술에 취한 친구는 밤새 산중에서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모기떼의 습격을 당해 얼굴이 멍게처럼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이 나쁜 기집애! 문을 열어놓고 가려면 모기장이라도 치고 가야지!” 사랑에 울고 모기에 뜯긴 친구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회장여사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택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했다. 그리고 가난뱅이 화가에게 딸을 줄 수 없었던 부모와 사랑 사이에서 역시 사랑을 택하여 지리산 폐가, 화가가 살던 곳에서 살림을 차렸다. 회장여사의 부모 역시 물어물어 이들을 찾아온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사는 사람들(이하 섬지사)이 모였다. 화가가 사는 폐가로 도저히 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쌍계사 밑 제일 분위기가 좋은 찻집으로 부모님을 오시라고 하고 모두들 결혼식에나 갈 때 일 년에 한 번 입는 옷을 입고 그 카페로 모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사위 될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미심쩍다는 듯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화가의 집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바이크도 들어갈 수 없는 산꼭대기. 숨이 차게 그곳까지 올라온 부모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화가와 딸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화가가 말했다. “그래도 전망은 좋습니다.” 그 말을 신호로 장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고 아버지가 딸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렇게 끌려간 딸은 5개월 만에 다시 도망쳐 나와 꿈에도 그리던 남편의 품에 안겼다. 이들의 사랑을 딱하게 여긴 섬지사 사람들은 추렴을 해서 30만원을 걷었다. 그리고 날을 받아 섬진강 모래사장에 대나무 가지를 꽂은 상을 차리고 따로 돼지도 한 마리 잡았다. 버들치 시인의 축시가 있고 나서 주례사를 할 차례였다. 어제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데다가 난생 처음 주례를 선다고 아침부터 이 사람이 한잔 저 사람이 한잔 주는 술을 먹은 주례선생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래서 듣는 사람이 영원히 잊지 못할 간단하고 명료한 주례사를 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년눔들아!”
신혼여행은 섬진강 일주. 야생 꽃으로 장식된 나룻배가 강변에 도착했다. 회장여사 부부가 타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지리산 사진작가가 동승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행정적이고 공식적인 증언 및 나룻배 수거를 위해 이 동네 진보당 지구위원장이 동승했다. 그는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 입후보 및 낙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이 나룻배를 빌리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으로서 나중에 도로 나룻배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렇게 꽃 배는 섬진강을 흘러갔다
“결혼사진 참 좋았지! 이 양반이 서울서 이런 웨딩사진 찍으면 엄청 비싸게 받는다네.”
고아르피엠 여사가 말을 건네자 회장여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형님 제 발등 찍은 거 퉁퉁 부어올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스발녀’ 회장직을 몇 년째 내놓지 못하고 있는 회장여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들이 이래서 안돼요. 단결을 해야지요. 남편이 조금만 잘해주면 이 모임에 나오지도 않고…. 형님만 해도 그래요. 분홍색 이불 이고 지고 온 것이 결국 지 발등 지가 찍은 거라고 얼마나 한탄을 하셨어요. 그런데 형님마저 이 모임에 소원하시니….”
그러자 고아르피엠 여사가 정색을 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야글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이불을 이고 지고 와? 그건 어디까지나 구호품 차원이었고… 나로 말하자면 나는 싫다는 걸 낙시인이 하도 매달리니까… 말하자면 나는 모임을 만들려면 ‘남발녀’나 만들어야 해.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하는 수 없이 발등을 찍은 여자!… 들의 모임! 호호호홋!”
회장여사가 입을 삐죽였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우리가 진보는 진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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