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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0) 화전놀이

공지영 | 소설가경향신문

ㆍ“산이 증발하냐 강이 떠내려 가냐” 서울 것들이 잠을 깨우고 난리야”

화전놀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내가 서울서 가만히 있을 리 없는 것은 당연했다. 요즘 하도 지리산에 데려가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번호표도 뽑고 자동차 기름 값도 받고 하려고 별렀는데 평일에는 역시 갈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나는 화전놀이가 시작된다는 11시에 맞추어 버들치 시인 집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새벽 6시 반부터 집을 나섰다. 속은 쓰려 오는데 그래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지리산 갈 때마다 들르는 전주 왱이 콩나물국밥집도 못가고 열심히 갔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예정 시간을 보니 거의 11시15분쯤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버들치 시인이 받지를 않는다. 지리산행마다 운전을 해주는 강남좌파(아마도 프랑스의 고쉬 캐비어를 국산으로 바꾼 말이 아닐까, 아무튼 그 형은 강남 한복판에 산다. 같은 아파트에 22년째 살고 있긴 하지만. 캐비어는 고사하고 족발과 쥐포를 주로 먹는 이 형은 자기가 지리산행에 드는 돈도 내고 운전도 하는데 왜 등장하지 않느냐고 불만이 역력했다.) 형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부친 화전을 심사하는 버들치 시인(머리 흰 사람)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화전놀이든, 노래대회든, 그림대회든 심사는 모두 버들치 시인의 몫이다.


“아마도 준비들 하고 그러느라 전화를 못 받나 보다, 너무 걱정 마.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가만, 사람들이 많이 올 텐데 버시인 마당에 차를 댈 수 있을까?”

“맞아, 마당이 차로 꽉 찼을지도 모르니 마을 회관에 차를 대고 올라갈까?”

우리의 ‘서울스러운’ 걱정은 버들치 시인 집의 텅 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벌써 진달래를 따러 산으로 떠났을 리는 없고 방문을 여니 버시인이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오늘 화전놀이 때매 진달래 따러 산에 간다면서? 11시 아니었어?” 버시인은 졸려 죽겠다는 듯이 시계를 보더니 “그래? 11시라고도 하고 2시라고도 한 거 같은데 올 때 되면 오겠지” 하더니 도로 누워 버렸다.

“아니 11시 아니면 12시는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11시 아니면 2시야 이게 말이 돼?” 내가 분해 죽겠다는 듯이 화를 내자, 버시인은 뭐 이런 서울 것들이 잠을 깨고 난리야 하는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아니 11시 아니면 2시가 어때서? 그런다고 지리산이 증발하냐 섬진강이 떠내려 가냐? 다 기다리면 오는 법이야. 그렇게 살려면 서울서 열심히 돈 벌지 여기 뭐하러 와 있겠냐?”

자두꽃잎이 흩뿌려진 민들레 김치와 막걸리.

기다리면 물론 누군가가 오기야 하겠고 지리산도 거기 있고 섬진강도 유유히 흐르겠지만 내 속은 쓰리고 아팠다. 부엌으로 들어가 식은 밥에 물이라도 말아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은 버들치 시인과 어떤 스님의 일문일답이다. 엿들으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땡초: 저기 버시인 나 기억하겠소? 나 땡초요.

버시인: 아 스님, 예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땡초: 저기, 낼 저녁에 내가 미인들 서너 분을 모시고 가서 차라도 한잔 먹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버시인: (느긋하게) 스님 눈높이 안 믿어요. 미인 아니라도 좋으니 그냥 데리고 오세요.

땡초: (당황하며) 아, 내가 예전엔 눈이 좀 낮았지만 이젠 안 그래요.

버시인 : (더욱 느긋하게) 글쎄, 어쨌든 오세요. 내일 화전놀이 하는데 그리로 오셔도 좋구.

땡초: (버럭 화를 내며) 글쎄, 내가 예전의 그 눈높이가 아니라니까! 정 이렇게 나오면 나 안 갈거요!

버시인 :%&*@

물 말아 먹던 밥알을 뿜을 뻔하며 내가 깔깔거리며 웃자 버시인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역시 부릉부릉 아르피엠이 높은 차 소리가 울리고 고 아르피엠 여사가 등장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반색을 했다. 다음은 고 여사와 나의 일문일답이다.

고 여사: 아이고 은니, 일찍도 오셨네. 우리 집에 먼저 모셔서 차라도 드려야 하는데 내가 어제 우리 낙시인 친구들 불러서 집들이를 하느라고 허리가 아파서….”

나: (그렇게 호락하지 않다는 듯이) 그래? 메뉴는 뭘 차렸나?

고 여사: (그걸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야 하냐는 듯) 그게 저 뭐냐, 족발, 광어회, 보쌈, 순대 그리고 김밥….

나: (거 보란 듯이) 다 시켰구만.

고 여사: 김밥이 어찌나 힘이 들든지.

버들치 시인: (끼어들며) 또래 김밥집 아줌마가 힘들었지.

강남좌파: (너무 그러지 말라는 듯) 그래도 설거지하고 그러려면 힘들었겠지.

고 여사: (낙시인의 부인답게 거짓말은 못한다는 듯) 그건 옆집 아줌마가 도와준다고 다 하셨는데.

나 : 근데 뭐가 힘이 들어?

고 여사: 그냥 집들이 함서 노래도 부르고 나중에 노래방도 가고 그런 것이…. 아유 그나 저나 사람들은 왜 안 오나?

결국 두시가 되어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우리 다섯 명은 산으로 올라가 꽃을 따기 시작했다. 꽃잎을 따서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가 마르지 않게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찹쌀가루를 익반죽해서 하루를 숙성시키면 된다고 했다. 고 아르피엠 여사는 내게 다가와 투덜댔다. “은니, 이걸 왜 따서 씻고 냉장고에 넣고 이 힘을 들이냐 이 말이어요. 그냥 가지째 꺾어다가 화병에 꽂아 놓고 낼 화전 부치면서 하나씩 놓으면 좀 좋냐구요.” 귀도 밝은 버시인이 이 소리를 들었는지 “꽃빛깔이 붉은 것을 골라!”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다음날 섬진강변 공원에서 화전놀이 대회가 열렸다. 최영미 시인의 시에 “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지기는 참 쉽더군” 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꽃을 따는 사람은 적어도 화전 먹으려고 오는 사람은 참 많더군”하는 식이었다. 고여사가 내게 “은니, 여기 화전으로 배불리러 오는 인간들 있으니 잘 감시해야 해요” 하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까지 모두 동원된 화전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제 꽃 딴 사람은 빠집니다” 하고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는 막걸리 통 옆에 앉았다. 누군가 내게 김치를 내밀었다. 쌉싸래한 향이 풍기는 맛. 올 봄 집 앞에서 캔 민들레로 담근 김치라고 했다. 누군가 내게 다시 뜨끈한 것을 내밀었다. 섬진강 하구에서 잡은 재첩국의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 있었다. 저기 강 너머 벚꽃이 길을 따라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머리 위에서는 자두꽃잎이 희게 흩날렸다. 요즘 시작해 재미를 붙인 트위터로 이 사진을 보내기로 하고 나는 고 아르피엠 여사와 함께 자두꽃을 민들레 김치 위에 흩뿌려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연출하고 사진을 찍어 전송을 시작했다. 역시나 막걸리와 민들레 김치에는 반응들이 꽤 빨랐다. 아직 사무실에 있는 출출한 우리 친구들 염장을 지르는 내 센스를 기뻐하며, 고 아르피엠 여사와 나는 열심히 화전을 부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배를 했다. 맛있었다.

심사는 늘 버들치 시인이었다. 화전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열리는 노래대회도 그림대회도 그랬다.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거의 독재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버시인은 가끔은 자기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잊고 면사무소에서 ‘독거노인 실태조사’를 나왔다고 울먹이곤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버시인이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저기 아랫집들에 나이 많은 분들 있잖아요. 난 이제 겨우 50 넘었을 뿐이라구요.” 그러자 면사무소 직원이 대답했다고 했다. “저분들은 혼거노인들입니다.” 그날 버들치 시인이 새삼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나 심사에 임하는 그는 심각하고 근엄한 얼굴이었다. 일등 이등 삼등 사등(상이 네 개뿐인 것을 알고 다섯번째 사람부터는 참가하지 않았다)이 뽑혔다. 상품은 경주 법주 한 병, 크레파스 그리고 물총이었다. 화전으로 애피타이저를 삼고 이윽고 점심식사 시간.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펴기 시작했다. 고들빼기 김치. 유부초밥. 김밥과 갖은 나물. 우리의 도시락을 책임지기로 한 고 여사가 차에서 부산스레 뭐를 꺼내고 있다. 어제 남은 족발이나 김밥을 가져왔나 싶어 바라보니 젓가락을 내밀었다. “우리 도시락은?” 내가 묻자 고 여사는 방긋 웃으며 다른 사람들이 부지런히 펴놓고 있는 도시락 반찬들을 가리켰다.

“그런 거 부지런히 싸려면 서울서 살지 왜 여기 오겠어요. 은니 그래도 이 젓가락 좋은 거예요.”

꽃은 피어 민들레 김치 위로 날리고 뽀얗게 재첩국은 우러난다. 갓 쪄낸 인절미처럼 말캉한 강아지들이 아이들과 뛰노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봄날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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