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여자들은 참 이상해, 혼자 산다고 버시인만 챙겨”
버들치 시인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왔다.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기에서 녹음만 흘러나왔다. “바람과 풀과 나무와 물과 햇빛과 모든 것이 푸르러졌습니다. 그 푸르름 속에 있습니다. 저라고 어찌 견뎌내겠습니까. 이미 저도 푸르러졌습니다. 연락사항 남겨놓으세요. 그럼 안녕.”
버들치 시인의 이 자동응답기 녹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 낭송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그가 쓴 이 자동응답 문구들이 철철이 화제가 된 적도 많았다. 이런 건 어떤가. “덥기는 덥지요? 고추밭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안 따고 놔두었더니 그만 뚝뚝 떨어져 버렸네요. 집에 있는 꼬추들은 잘 간직하고 있겠지요. 이 더위에 꼬추가 축축 늘어져 떨어지지 않도록 잘 붙들어 매주시기 바랍니다. 전 지금 개울가에 있습니다. 뭐하냐고요? 빨래하지요.” 한번은 그의 집에서 내가 전화를 받자 누군가 다짜고짜 말하기도 했다. “에이 전화를 받아부네. 끊고 다시 걸팅께 받지 마쇼 잉. 이 응답이 하도 유명하다고 해서 내가 들으러 걸었거구마이.”
아무튼 왜 아픈가 궁금해 낙장불입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얼마 전 버시인이 출타를 한 중에 랄랄라가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버시인이 그만 앓아누웠다고 했다. 랄랄라는 정 주기 무서워서 강아지도 안 키우는 버들치 시인이 하는 수 없이(?) 키우는 닭의 이름이었다. 그를 위문하러 남녘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에게 랄랄라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다 짐작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버들치들이 죽었을 때의 일을 내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버시인은 집 앞 개울에 버들치를 키웠다. 먹다 남은 밥 알갱이나 쌀뜨물을 부어주면 몰려들어 그걸 먹었다.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도 버시인이 나타나 손 딱딱이를 치면 모여들었다. 여름날 그가 아무도 없는 개울에서 벗고 멱을 감으면 그의 몸에 몰려들어 입으로 톡톡 인사를 건네던 그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집을 비워두었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보니 집 앞 개울에 건장한 남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가끔 집 앞 개울에 버들치나 다슬기를 잡으러 오는 아낙네들을 보면 “차라리 내가 돈을 드릴 테니 시장에 가서 사 드셔요! 그건 제가 키우는 겁니다” 하고 전에 없이 큰소리로 역정을 내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전기충격기가 들려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벌써 버들치 몇 마리가 기절한 채로 둥둥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버시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건장한 남자 셋은 태연하게, 기절한 버들치를 양동이에 주워 담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가 날마다 밥풀을 주고 키운 버들치들이 다 고추장 양념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시도를 하기로 했다. 얻어맞아도 좋고 짓밟힌대도 좋으니 버들치들을 살리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생전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가냘픈 버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기회를 보아서 온몸으로 그 버들치를 담은 양동이를 들이받아 엎질러서 그들을 다시 개울물로 돌려보내는 길뿐이었던 것이다.
버시인은 가빠오는 호흡을 고르고 맘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얍! 일초도 안되어 버시인은 남자들의 완강한 제지에 의해 개울 옆으로 나뒹굴며 이마를 깨고 말았다. “에잇 재수 없어, 당신이 버들치 애비라도 돼?” 남자 셋이 산을 내려가버릴 때까지 버시인은 거기 엎어져 있었다.
저녁 무렵 약속에 나타나지 않는 그를 이상히 여겨 우리가 올라가니 저무는 집 툇마루에서 이마에 피가 엉겨 붙은 채 그가 망연히 앉아 있었다. 놀라는 우리에게 그가 힘없이 말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사람을 경계하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애들을 너무 경계심 없게 키운 거야….” 그보다 먼저 내 눈에 눈물이 고여왔다. “그게 왜 형 잘못이야!” 그가 너무 처연해 보여서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그는 대꾸도 않고 저녁도 거르고 먹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그에게 독한 술을 샀다. 그는 전라도 말로 “모지락스럽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경주의 환한 달밤에 자신의 방에서 아내와 다른 이의 가라리가 합해서 넷인 걸 본 처용도 그보다 처연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랄랄라였다. 누가 가져온 암탉만 두 마리를 키우던 버시인은 암탉 한 마리를 산짐승에게 잃고 말았다. 그는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해” 한 마리 남은 랄라라에게 조금씩 나는 연습도 시켰다. 그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 “랄랄라!” 부르면 어느새 지붕에서 푸드드득 날아 내렸다. 그가 얼른 부엌에 들어가 쌀 한 줌을 마당에 뿌려주면 랄랄라는 콕, 쌀 한 점 찍어먹고 버시인 바라보고 콕, 쌀 한 점 찍고 버시인을 바라보곤 했다. 버시인이 뒷간에 가서 앉아 볼일을 보고 있으면 랄랄라는 나무로 엮은 휑한 화장실 문 틈으로 빤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그가 텃밭에 가면 텃밭으로 따라오고 그가 뒤꼍으로 가면 뒤꼍으로 따라왔다. 그가 출타라도 할라치면 랄랄라는 동네 어귀까지 따라왔다. “에잇 녀석 어서 들어가!” 혼자 빈 집에 있을 랄랄라를 생각하며 안쓰러운 그가 발을 구르면 랄랄라는 푸드득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그를 따라오곤 했다.
“저게 무슨 닭이야, 강아지지.” 우리는 그렇게 그를 놀리곤 했다. 그가 혼자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지붕 위에서 랄랄라가 내려앉았다. 적요한 한여름의 마당. 햇살만 희게 부서지는데 그와 랄랄라의 눈이 마주치면 랄랄라는 희한하게도 한쪽 날개로는 뒷짐을 지고 한쪽 날개를 머리 높이 올리고는 빙그르르 맴을 돌았다. 놀란 그가 다시 바라보자 이번에는 반대쪽 날개를 뒷짐 지고 다른 날개를 올려 빙그르르 맴을 돌았다. 영락없이 구애하는 자세였다. 우리에게 랄랄라의 그 몸짓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가끔 그에게서 사랑에 빠진 암탉의 얼굴을 보았다. 버들치 이야기를 할 때는 언뜻 버들치의 얼굴도 보았다.
언젠가 섬진강에서 은어 천렵을 할 때 “나 먹을 거 몇 마리냐?” 물은 그가 비닐봉지를 가져와 자신의 몫인 두 마리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연못으로 가져가던 것을 기억해보니 그때 그의 얼굴에 얼핏 은어스러움이 어렸던 것도 같았다. 본질적으로 생명에 순응하며 사는 모든 것은 결국 한 종족이었나.
그런데 이제 그는 많이 늙어보였다. 랄랄라 이야기를 그에게 더 꺼내는 건 어리석을 것 같아 나는 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죽이라도 끓여주려고 해서였다. 그런데 냄비마다 죽이 담겨 있었다. 전복죽, 잣죽, 땅콩죽. “무슨 죽을 이렇게 많이 끓였어?” 내가 묻자 그는 “끓이긴, 그러지 말라는데도 자꾸 가져오네, 참” 하곤 담배를 물었다.
그때 그의 마당 밖으로 차 한 대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낯선 여자가 내렸다. 문을 열던 여자는 우리 일행이 있는 것을 보더니 “버시인님 아프시다고 해서 좀 끓였어예. 흑임자 죽임더” 하며 냄비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행여 우리에게 폐라도 될까 휑하니 떠나버렸다. 따끈한 흑임자죽 냄비를 들고 벙글거리는 나를 보고 버시인이 말했다. “괘씸한 것들, 그렇게 죽 끓여오지 말라니까. 참” 하며 빙그레 웃었다. 버시인은 뽀시락 뽀시락 일어나 마당에서 머위를 따고 쑥부쟁이를 캐서 된장과 매실즙에 각각 무쳐 우리에게 내놓았다. 식성 좋은 우리는 죽을 네 가지나 골고루 잘 먹고 나서 기어이 한마디씩 했다.
“여기에 닭죽 한 그릇만 더하면 금상첨화인데.” 버들치 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그의 얼굴에 서러움이나 노여움은 많이 가셔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김에 더 나갔다. 거의 채식만 하는 그를 놀릴 때마다 쓰던 말이었다. “형님은 우리 보고 그 이쁜 것들을 어떻게 잡아먹냐 하지만 그럼 그 이쁜 풀은 어떻게 뜯어먹어요?” “맞아, 우리도 채식을 하고 있긴 해요. 풀만 먹는 소를 먹거든요.” “저는 형님의 채식을 본받으려고 돼지고기도 잘게 채 썰어 먹어요.” 우리가 하도 재롱을 떨자 버들치 시인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는데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버시인이 손사래를 쳤다.
“안돼, 절대 가져오지 마. 여기 죽 남아돌아, 절대 가져오지 말라니까.”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밖에서 다시 자동차가 멎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다른 여성이 냄비와 찬합을 들고 차에서 내리며 “버시인님 계세요, 제가 죽을 좀 쑤어 왔는데요” 했다. 버시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낙장불입 시인의 아내 고 아르피엠 여사가 낙시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버시인님 뒷집으로 이사를 할 걸 그랬나봐. 그러면 밥을 안 해도 될 텐데.” 우리가 킥킥 웃자 고 아르피엠 여사는 덧붙였다. “여자들이 참 이상해. 혼자 산다고 버들치 시인만 챙겨주고, 나 있다고 우리 낙장불입 시인은 안 챙겨줘.” 그러고는 약간 처량한 척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버시인님 우리 내일 집들이날인데 죽 남은 거 좀 가져가도 돼요?”
추신: 후에 누가 다시 버들치를 가져다주자 버들치 시인은 연못을 파고 경계심을 길러준다고 동자개(산 메기, 혹은 빠가사리)를 함께 넣었다. 그 버들치들은 아직 잘 있다(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경계심이 충만해진 버들치들이 낯선 사람들에겐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버들치 시인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왔다.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기에서 녹음만 흘러나왔다. “바람과 풀과 나무와 물과 햇빛과 모든 것이 푸르러졌습니다. 그 푸르름 속에 있습니다. 저라고 어찌 견뎌내겠습니까. 이미 저도 푸르러졌습니다. 연락사항 남겨놓으세요. 그럼 안녕.”
버들치 시인은 이제 마당에 연못을 파고 버들치를 기른다. 집 앞 개울에 키우던 버들치가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죽은 뒤의 일이다. 시인은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에 약하다. 이원규 시인 촬영
아무튼 왜 아픈가 궁금해 낙장불입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얼마 전 버시인이 출타를 한 중에 랄랄라가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버시인이 그만 앓아누웠다고 했다. 랄랄라는 정 주기 무서워서 강아지도 안 키우는 버들치 시인이 하는 수 없이(?) 키우는 닭의 이름이었다. 그를 위문하러 남녘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에게 랄랄라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다 짐작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버들치들이 죽었을 때의 일을 내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버시인은 집 앞 개울에 버들치를 키웠다. 먹다 남은 밥 알갱이나 쌀뜨물을 부어주면 몰려들어 그걸 먹었다.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도 버시인이 나타나 손 딱딱이를 치면 모여들었다. 여름날 그가 아무도 없는 개울에서 벗고 멱을 감으면 그의 몸에 몰려들어 입으로 톡톡 인사를 건네던 그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집을 비워두었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보니 집 앞 개울에 건장한 남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가끔 집 앞 개울에 버들치나 다슬기를 잡으러 오는 아낙네들을 보면 “차라리 내가 돈을 드릴 테니 시장에 가서 사 드셔요! 그건 제가 키우는 겁니다” 하고 전에 없이 큰소리로 역정을 내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전기충격기가 들려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벌써 버들치 몇 마리가 기절한 채로 둥둥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버시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건장한 남자 셋은 태연하게, 기절한 버들치를 양동이에 주워 담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가 날마다 밥풀을 주고 키운 버들치들이 다 고추장 양념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시도를 하기로 했다. 얻어맞아도 좋고 짓밟힌대도 좋으니 버들치들을 살리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생전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가냘픈 버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기회를 보아서 온몸으로 그 버들치를 담은 양동이를 들이받아 엎질러서 그들을 다시 개울물로 돌려보내는 길뿐이었던 것이다.
버시인은 가빠오는 호흡을 고르고 맘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얍! 일초도 안되어 버시인은 남자들의 완강한 제지에 의해 개울 옆으로 나뒹굴며 이마를 깨고 말았다. “에잇 재수 없어, 당신이 버들치 애비라도 돼?” 남자 셋이 산을 내려가버릴 때까지 버시인은 거기 엎어져 있었다.
저녁 무렵 약속에 나타나지 않는 그를 이상히 여겨 우리가 올라가니 저무는 집 툇마루에서 이마에 피가 엉겨 붙은 채 그가 망연히 앉아 있었다. 놀라는 우리에게 그가 힘없이 말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사람을 경계하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애들을 너무 경계심 없게 키운 거야….” 그보다 먼저 내 눈에 눈물이 고여왔다. “그게 왜 형 잘못이야!” 그가 너무 처연해 보여서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그는 대꾸도 않고 저녁도 거르고 먹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그에게 독한 술을 샀다. 그는 전라도 말로 “모지락스럽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경주의 환한 달밤에 자신의 방에서 아내와 다른 이의 가라리가 합해서 넷인 걸 본 처용도 그보다 처연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버들치 시인의 아침 반찬. 그의 밥상은 소박하다.
“저게 무슨 닭이야, 강아지지.” 우리는 그렇게 그를 놀리곤 했다. 그가 혼자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지붕 위에서 랄랄라가 내려앉았다. 적요한 한여름의 마당. 햇살만 희게 부서지는데 그와 랄랄라의 눈이 마주치면 랄랄라는 희한하게도 한쪽 날개로는 뒷짐을 지고 한쪽 날개를 머리 높이 올리고는 빙그르르 맴을 돌았다. 놀란 그가 다시 바라보자 이번에는 반대쪽 날개를 뒷짐 지고 다른 날개를 올려 빙그르르 맴을 돌았다. 영락없이 구애하는 자세였다. 우리에게 랄랄라의 그 몸짓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가끔 그에게서 사랑에 빠진 암탉의 얼굴을 보았다. 버들치 이야기를 할 때는 언뜻 버들치의 얼굴도 보았다.
언젠가 섬진강에서 은어 천렵을 할 때 “나 먹을 거 몇 마리냐?” 물은 그가 비닐봉지를 가져와 자신의 몫인 두 마리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연못으로 가져가던 것을 기억해보니 그때 그의 얼굴에 얼핏 은어스러움이 어렸던 것도 같았다. 본질적으로 생명에 순응하며 사는 모든 것은 결국 한 종족이었나.
그런데 이제 그는 많이 늙어보였다. 랄랄라 이야기를 그에게 더 꺼내는 건 어리석을 것 같아 나는 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죽이라도 끓여주려고 해서였다. 그런데 냄비마다 죽이 담겨 있었다. 전복죽, 잣죽, 땅콩죽. “무슨 죽을 이렇게 많이 끓였어?” 내가 묻자 그는 “끓이긴, 그러지 말라는데도 자꾸 가져오네, 참” 하곤 담배를 물었다.
그때 그의 마당 밖으로 차 한 대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낯선 여자가 내렸다. 문을 열던 여자는 우리 일행이 있는 것을 보더니 “버시인님 아프시다고 해서 좀 끓였어예. 흑임자 죽임더” 하며 냄비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행여 우리에게 폐라도 될까 휑하니 떠나버렸다. 따끈한 흑임자죽 냄비를 들고 벙글거리는 나를 보고 버시인이 말했다. “괘씸한 것들, 그렇게 죽 끓여오지 말라니까. 참” 하며 빙그레 웃었다. 버시인은 뽀시락 뽀시락 일어나 마당에서 머위를 따고 쑥부쟁이를 캐서 된장과 매실즙에 각각 무쳐 우리에게 내놓았다. 식성 좋은 우리는 죽을 네 가지나 골고루 잘 먹고 나서 기어이 한마디씩 했다.
“여기에 닭죽 한 그릇만 더하면 금상첨화인데.” 버들치 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그의 얼굴에 서러움이나 노여움은 많이 가셔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김에 더 나갔다. 거의 채식만 하는 그를 놀릴 때마다 쓰던 말이었다. “형님은 우리 보고 그 이쁜 것들을 어떻게 잡아먹냐 하지만 그럼 그 이쁜 풀은 어떻게 뜯어먹어요?” “맞아, 우리도 채식을 하고 있긴 해요. 풀만 먹는 소를 먹거든요.” “저는 형님의 채식을 본받으려고 돼지고기도 잘게 채 썰어 먹어요.” 우리가 하도 재롱을 떨자 버들치 시인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는데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버시인이 손사래를 쳤다.
“안돼, 절대 가져오지 마. 여기 죽 남아돌아, 절대 가져오지 말라니까.”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밖에서 다시 자동차가 멎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다른 여성이 냄비와 찬합을 들고 차에서 내리며 “버시인님 계세요, 제가 죽을 좀 쑤어 왔는데요” 했다. 버시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낙장불입 시인의 아내 고 아르피엠 여사가 낙시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버시인님 뒷집으로 이사를 할 걸 그랬나봐. 그러면 밥을 안 해도 될 텐데.” 우리가 킥킥 웃자 고 아르피엠 여사는 덧붙였다. “여자들이 참 이상해. 혼자 산다고 버들치 시인만 챙겨주고, 나 있다고 우리 낙장불입 시인은 안 챙겨줘.” 그러고는 약간 처량한 척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버시인님 우리 내일 집들이날인데 죽 남은 거 좀 가져가도 돼요?”
추신: 후에 누가 다시 버들치를 가져다주자 버들치 시인은 연못을 파고 경계심을 길러준다고 동자개(산 메기, 혹은 빠가사리)를 함께 넣었다. 그 버들치들은 아직 잘 있다(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경계심이 충만해진 버들치들이 낯선 사람들에겐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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