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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8) 낙장불입 시인 이사하다

공지영 | 소설가경향신문

ㆍ술 먹기 좋은 정자, 발 아래 섬진강, 100만원 집세가 문제야?

낙장 시인은 문수골에 살았다. 그의 집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한 이킬로미터 정도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 외딴 곳에 있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던 그는 우체부가 힘들까봐 마을에서 자신의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낡은 의자를 하나 세워두었다. 그리고 역시 못쓰게 된 헬멧을 벗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만일 헬멧이 똑바로 놓여 있으면 그가 그 헬멧을 똑바로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중이니 등기가 왔다 하더라도 힘겹게 올라오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가 집에 있는 날에는 헬멧을 뉘여 놓았다. 그건 그가 집에서 이렇게 헬멧을 뉘여 놓고 쉬고 있다는 표시였다. 나중에 그것도 미안해진 그는 아예 우편함을 하나 만들어 세워놓고 그 안에 인감도장까지 매달아 놓았다. 올라오기 힘이 들 테니 얼마든지 필요하면 도장을 찍어가라는 것이었다. “인감까지?” 내가 물으면, 그는 웃으며 대꾸했다. “내 등 쳐봐야 나올 게 뭐가 있겠어?” 결국 소유와 자유는 철저하게 반비례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깨닫곤 했다.

낙장불입 시인의 새 집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이 눈부시다. 시인과 친구들은 강가에서 찬 맥주를 마시며 벚꽃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 이원규 시인 촬영


그의 집은 늘 열려 있었다. 누구든 그의 집에 와서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집 문 앞에는 ‘피아 산방 사용설명서’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보일러 트는 법, 세탁기 돌리는 법 등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버들치 시인 집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주로 홀로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그의 집에는 주로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그들은 대개는 낙장 시인 집에 묵어가면서 사과나 감이나 그도 아니면 마른 건어물 등을 한 박스씩 놓고 가곤 했는데, 가끔은 그의 집에서 남이 가져다 놓은 것들을 도로 가지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낙시인은 그것 역시 인생의 낙장불입 법칙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러니까 정권이 바뀌고 얼마 후였다. 그가 수경 스님, 도법 스님과 한반도 대운하 반대 삼보일배에서 돌아온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5년 동안 그에게 연세(年貰) 50만원에 집을 빌려주고 거의 다른 일에는 참견하지 않았던 주인이었다. “미안하지만 아들이 공직에 있어서 그러니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후진 일이! 싶었지만 주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나도 어이가 없었다. 연세 50만원을 내고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가는 시인에게조차 이런 일을 하는 정권에 희망이 있을까 싶었다. 지리산에 낙향한 이래 쭉 밝아지던 그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그 뒤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내 고아르피엠(RPM) 여사와 만두 일인분 찐빵 일인분 이렇게 도시락을 사가지고 섬진강가를 거니는데 건너편의 어떤 집이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왠지 그 집과 인연이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마을로 건너가 이장에게 혹시 세 나온 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었다. 그는 이장에게 연락처를 건네고 돌아왔다. 그런데 육개월 후 연락이 왔다. 그 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들들이 그 집을 세놓으려 하는데 들어오겠느냐는 것이었다.

언젠가 버들치 시인이 점쟁이에게 갔더니 아이고 이렇게 큰분이 왜 이리 오셨느냐고 절을 했다더니, 낙장 시인이 거기 간다면 점쟁이가 자기가 앉던 방석을 바로 내줄 것 같다고 우리는 농담을 했다.

대신 이 집은 전망이 너무 좋아 -마당에 서면 섬진강이 한눈에 보인다. 게다가 술 먹기 좋은 정자까지 있다! -연세가 비싸다고 했다. 연세가 100만원이나 된다고 고아르피엠 여사가 한숨을 쉬는 걸, 나와 내 친구들이 정자에서 섬진강 바라보며 술을 마실 욕심으로 밀어붙였다. 친구들이 추렴해서 새 냉장고를 사주기로 한 것이다. 고아르피엠 여사는 금방 화색이 돌며, “하기는 냉장고가 부실해서 그동안 맥주가 차지 않았는데” 하며 그녀 역시 우리와 함께 술 욕심에 충천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웃었다.

낙시인의 얼굴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낙시인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소식이 천수만에서 온 것이었다.

동물보호협회는 밀렵으로 상처 입은 동물들을 안락사를 시키는 대신 원하는 이들에게 분양하기도 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매를 분양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나. 그는 그 새들의 이름을 천, 수 이렇게 지어놓고 이사할 집 마당에 제일 먼저 새집을 지었다. 인간의 총에 날개를 다쳐 이제 날지 못하는 새들이지만 그는 어깨 위에 새를 한 마리씩 올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볼 거라는 것이다. “어떠냐? 그래도 좀, 나는 것 비슷하지?”

“새 먹이느라 하루에 못해도 천원은 넘게 들어갈 텐데 괜찮겠어?” 내가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낙시인은 두 마리 맹금류를 먹이느라 벌레도 잡으러 다니고 개구리도 잡으러 다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없는 날에는 닭고기를 사다가 먹여야 했다.

“양계장에 가면 병아리 부화할 때 수놈은 감별해서 버리는데, 그걸 먹이면 돈이 좀 덜 들 수도 있는데. 사냥 본능도 충족시키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고아르피엠 여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도 허허 웃고 말았는데 낙시인같이 착한 사람이 죽어갈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천연덕스럽게 죽일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역시 소유는 무서운 거다. 그런데 천하고 수가 온 이후로 낙시인 부부는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뜨면 낙시인이 두 마리 새에게 가고, 작지만 고료라도 받는 날은 닭고기를 사다가 새에게 먹였다. 한마디로 자나깨나 새 생각만 하는 것이었다.

“나도 닭고기 먹고 싶다.” 고아르피엠 여사가 투덜거리면 낙시인이 대답했다. “그래? 당신은 닭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낙장불입 시인 부부가 키우는 개 ‘지화자’(왼쪽)와 ‘얼씨구’.

“처음에는 섬진강에서 날마다 은어라도 잡아줄 것 같더니 시집온 그해 은어 먹어보고 한 번도 못 먹었어.” “그래? 당신은 물고기를 무서워하는줄 알았는데.”

그리고 낙시인은 우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새한테는 한 달만 정성 들이면 평생 내 말 잘 들어. 그런데 마누라는 일년 내내 잘해줘봤자 버릇만 나빠지지.”

그러면 독신인 나는 질투하던 마음이 좀 풀어져서 흐뭇하게 그들을 놀리곤 했다. “바람만 불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별자리가 다 아르피엠 이름으로 바뀐다더니 그 여자가 이 여자 맞아?”

이사 며칠 전 고아르피엠 여사가 자기편을 두 마리 만들었다. 개 두 마리를 얻어온 것이었다. 한 마리는 차우차우 종이고 한 마리는 리트리버 종이었다. 고아르피엠 여사가 시인의 아내답게 좋은 이름을 골라 지으려고 궁리하는데 그만 낙시인이 그 개들의 이름을 지화자와 얼씨구라고 지어버렸다. 얼씨구는 아직 손바닥만한 조그만 녀석이라 괜찮았는데 문제는 지화자였다. 사람의 기척만 들리면 좋아 날뛰기 시작하는데 내가 몇 번 당해보니 꼭 곰이 나를 껴안는다고 퍽퍽 치는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차우차우는 사색하는 개로 유명해서 잘못하면 우울증이라도 걸린 듯 보인다던데,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고아르피엠 여사는 “글쎄 엄마도 그러지 않고 아빠도 그러지 않는데, 지화자의 이모 성격이 그래서 그런다네” 했다. 혈통 좋은 개는 역시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모의 성격까지!

이사날이 왔다. 각지에서 몰려온 친구들이 이삿짐을 날랐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데 온 동네 주민들이 다 나와 있었다. 꼭 올림픽에서 메달이라도 따서 귀향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 이장이 마을방송을 통해 오늘 젊은 댁들이 이사 온다는 말을 한 탓이었다. 겨우 짐을 부리고 자장면을 시켜 밥을 먹고 나자 예상대로 고아르피엠 여사가 아르피엠을 높이며 걸레를 찾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걸레는 찾아지지 않고 아무래도 걸레는 영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깔끔하고 정갈한 버들치 시인 집으로 피난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을 본 지화자는 하루 종일 뛰고 있었다. 배웅 나온 고아르피엠 여사가 말했다.

“아유 쟤가 왜 저래? 혹시라도, 사람들이 날 닮아서 저런 개가 집에 들어왔다고 할까봐 어떤 때는 겁이 난다니까.”

그러자 버들치 시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대꾸했다. “혹시라도 그럴까봐, 라니? 벌써 다들 그러고 있어.”

그날 밤 결국 걸레를 찾지 못한 고아르피엠 여사와 낙시인은 우리를 따라 버들치 시인 집에 와서 잤다. “집 정리되면 와!” 아르피엠 여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글쎄, 그날이 올까? 어찌 되었건 냉장고에 맥주가 있으면, 그리고 그것이 차면 그걸로 좋은 일이다.

“벚꽃 피기 시작.”

어제 낙시인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 주말은 그 집에 가야겠다. 찬 맥주를 마시며 정자에서 섬진강을 보면서 꽃들이 피어나는 소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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