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지네에 물렸다고? 닭똥 하얀 거 있지, 그게 약이야!
최도사는 내비도의 교주이다. 그러나 교회도 성직자도 헌금도 없다. 그의 집 반 평 남짓한 툇마루 윗벽에 누군가 써준 이 교의 이름이 적힌 족자가 걸려 있을 뿐이다. 그는 다른 교의 교주들처럼 주말에만 일하고 평일에는 자신의 본당(本堂?)인 잠잠 산방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의 잠이란 그냥 우리말 잠이다. 잠을 자고 잠을 잔다는 뜻의 잠잠 산방이다.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 정자에 누웠다가 건넌방 툇마루로 옮겨 앉았다가 해질 무렵 평상에 앉으면 하루가 가고, 겨울에는 거꾸로 햇볕을 따라 마당에 앉았다가 툇마루로 갔다가 정자로 가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그가 말했다. 이쯤 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이 가리니 비켜달라”고 말했던 디오게네스가 울고 갈지도 모르겠다.
교주답게 그의 집에는 전국 각처에서 몰려온 진상품도 있다. 남해에서 왔다는 갈치속젓에 도자기 굽는 여자가 가져왔다는 생강꽃차, 여수에서 왔다는 갓김치, 강원도에서 온 옥수수 막걸리도 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갈 때 제과점에서 빵이나 과자 같은 걸 사가지고 가면 “먹을 것 천진데 또 뭘 사왔어?” 하면서 내게 속젓도 좀 퍼주고 생강꽃차도 한 병 내민다. 벼룩의 간을 베어먹는 것 같아 사양을 하고 싶지만 주고 싶은 그의 마음을 거절하기가 늘 어렵다. 아마도 내가 사가지고 간 것들도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분배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신은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연봉이 200만원이나 되어서 가끔 자장면도 사먹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대신 그는 곰팡이 핀 식빵도 먼지 털듯 바지에 툭툭 쳐서 먹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뱀도 지네도 모기도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못한다고 했다. 신통력을 부리는지 어쩌는지 “내비두면” 다 낫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무서워한 것이 있는데 그건 농약이었다. 농약 친 논 근처만 지나가도 밤새 앓는다는 것이었다. 고전적 뱀파이어에게 십자가가 치명적이듯이 그에게는 농약이 치명적이다. 한번은 낙장불입 시인이 한밤중에 지네에게 물려 발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의 아내 고 아르피엠(RPM) 여사가 놀라 혹시나 묘약이라도 있을까 하고 최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도사는 태연히 말했다.
“음, 그거 닭똥 하얀 거가 약이야. 그거 구해서 바르면 돼.”
“그걸 이 밤에 어디서 구해? 양계장이 여기서 먼데.”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멀어? 그럼 병원으로 가면 되겠네.”
이렇게 당연한 말을 듣는데도 사람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최도사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들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나 보다. 그래도 요즘은 전화가 있으니 이런 당연한 이야기도 한다. 그에게 아무 통신시설이 없던 시절,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한번은 낙장불입 시인이 그의 집에서 자는데 (낙장 시인의)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새벽부터 언놈이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낙장 시인이 대답했다. “응 알람이야.” 그러자 최도사가 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알람이? 이름도 괴상망측한 놈이 하는 짓도 꼭 저래요!”
이렇게 물정 모르는 최도사의 명성은 그러나 은근히 높은 모양인지 가끔 낯선 손님들이 그 집에 몰려오곤 했다. 그들이 앉은 평상에서 좀 떨어져 기다리는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정치인들인 모양이었다. “최근 정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도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지요. 이왕 오셨으니 차나 한 잔들 하시고 가십시오.”
나는 도사의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대답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바싹 그에게 달려들었다. “도사님께서 함부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때에 저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글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산중 한량입니다. 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그저 내비두십시오.”
앗, 내비도다! 싶어 나는 웃음을 참고 있는데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물었다. “이번 대선 주자 중에 누가 유력할 것 같다고 보십니까?”
그러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제사 좀 아는 문제가 나왔다는 듯이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어제 식당에서 밥을 먹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여론조사 결과로는 이명박씨가 제일 많은 표를 얻을 것 같다고 하던데요.”
그들은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깔깔거리며 웃는 내게 그가 웃지도 않고 말했다. “보수가 뭔 줄 아니? 잘못된 거 수리하는 게 보수야. 진보는 뭔 줄 아니?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야.” 이럴 때는 나도 살짝, 그가 진짜 도사가 아닐까 의심도 일었다.
그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신도들이 와서 상담을 한다. 도회지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도 있다. 아랫마을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서면 그는 반색을 하고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는다. 할머니는 며느리 흉도 보고 아들 야속한 것도 중얼거리고 서울 간 손자 공부 잘하는 것도 이야기하다가, 간밤에 치통을 앓아 한잠도 못 잤다면서도 또 엉뚱하게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고 한다. 최도사는 마당에 난 풀을 뽑으며 할머니의 앞뒤 안 맞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곤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아이구 젊은 사람 바뿐디 내가 그만 가야 허는디…” 하는 소리를 아홉 번 할 때까지 그는 싫은 기색 한번 안 한다. 할머니가 드디어 “최도사, 어쩌면 좋으까이” 물으면 그는 그제서야 대답했다. “할머니 그냥 내비두세요.”
“참 용해요. 사람 이야기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물으면 그는 씨익 웃으며 대꾸한다. “너무 귀를 기울여도 진이 빠지고 너무 건성이면 그쪽이 서운해. 그러니까 딱 그 중간을 지켜야 해.”
이럴 때 그가 정말 도사가 아닐까 싶어, 내가 다시 그를 떠보았다. “산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아? 혹시 귀신 같은 거 어떻게 생각해? 본 적 있어?”
“가끔은 말이야. 너무 심심할 때 귀신이라도 좀 와서 술이라도 한잔 건네면 좋겠다 싶어.”
“그럼, 무서울 때 없어?”
그러면 그가 대답했다. “귀신은 안 무서운데 가끔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 왔다갔다 하다가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치면 깜짝 놀라. 정말 귀신인 줄 안다니까!”
그런 최도사와 버들치 시인은 친구 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둘 다 교통수단이 없었고 자가용이 아니면 닿지 못하는 산골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둘은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는 사이였다. 한번은 시집을 낸 버들치 시인이 돈이 조금 생겼다고 최도사를 초대했다. 두 사람으로서는 다 너무도 귀한 일인 외식을 하러 간 것이다. 두 사람은 그 만남을 위해 하루에 서너 번밖에 없는 버스 시간을 헤아려 버스를 타고 그러고도 먼 길을 걸어 반갑게 만났다. 버들치 시인이 식당으로 최도사를 데리고 가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맛있는 거 먹어. 오늘 나 돈 많아.”
그러자 최도사는 한동안 메뉴판을 쏘아보았다. 시골 식당이 그렇듯 없는 게 없는 식당이었다. 육개장 5000원, 설렁탕 5000원, 짜장면 3500원, 냉면 4000원, 떡볶이 2000원, 사리 1000원………. 최도사는 한참을 망설이며 입맛을 다시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의기양양하게 주인에게 말했다. “난, 사리!”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는 버들치 시인이 주인보다 더 당황하며 그건 안 된다고 하자 최도사가 다시 말했다. “글쎄, 사리가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적어놨으면 팔아야지…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난 사리야! 그냥 내비도!”
<공지영 소설가>
ⓒ 경향신문 & 경향닷컴최도사는 내비도의 교주이다. 그러나 교회도 성직자도 헌금도 없다. 그의 집 반 평 남짓한 툇마루 윗벽에 누군가 써준 이 교의 이름이 적힌 족자가 걸려 있을 뿐이다. 그는 다른 교의 교주들처럼 주말에만 일하고 평일에는 자신의 본당(本堂?)인 잠잠 산방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의 잠이란 그냥 우리말 잠이다. 잠을 자고 잠을 잔다는 뜻의 잠잠 산방이다.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 정자에 누웠다가 건넌방 툇마루로 옮겨 앉았다가 해질 무렵 평상에 앉으면 하루가 가고, 겨울에는 거꾸로 햇볕을 따라 마당에 앉았다가 툇마루로 갔다가 정자로 가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그가 말했다. 이쯤 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이 가리니 비켜달라”고 말했던 디오게네스가 울고 갈지도 모르겠다.
최도사는 지리산의 디오게네스다. 디오게네스가 통 속의 현자(賢者)였다면, 그는 잠잠산방의 현자다. | 이원규 시인 촬영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무서워한 것이 있는데 그건 농약이었다. 농약 친 논 근처만 지나가도 밤새 앓는다는 것이었다. 고전적 뱀파이어에게 십자가가 치명적이듯이 그에게는 농약이 치명적이다. 한번은 낙장불입 시인이 한밤중에 지네에게 물려 발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의 아내 고 아르피엠(RPM) 여사가 놀라 혹시나 묘약이라도 있을까 하고 최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도사는 태연히 말했다.
“음, 그거 닭똥 하얀 거가 약이야. 그거 구해서 바르면 돼.”
“그걸 이 밤에 어디서 구해? 양계장이 여기서 먼데.”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멀어? 그럼 병원으로 가면 되겠네.”
최도사 집 툇마루 윗벽에는 ‘내비道(도)’라고 쓰인 족자가 걸려 있다.
이렇게 물정 모르는 최도사의 명성은 그러나 은근히 높은 모양인지 가끔 낯선 손님들이 그 집에 몰려오곤 했다. 그들이 앉은 평상에서 좀 떨어져 기다리는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정치인들인 모양이었다. “최근 정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도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지요. 이왕 오셨으니 차나 한 잔들 하시고 가십시오.”
나는 도사의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대답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바싹 그에게 달려들었다. “도사님께서 함부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때에 저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글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산중 한량입니다. 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그저 내비두십시오.”
앗, 내비도다! 싶어 나는 웃음을 참고 있는데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물었다. “이번 대선 주자 중에 누가 유력할 것 같다고 보십니까?”
그러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제사 좀 아는 문제가 나왔다는 듯이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어제 식당에서 밥을 먹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여론조사 결과로는 이명박씨가 제일 많은 표를 얻을 것 같다고 하던데요.”
그들은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깔깔거리며 웃는 내게 그가 웃지도 않고 말했다. “보수가 뭔 줄 아니? 잘못된 거 수리하는 게 보수야. 진보는 뭔 줄 아니?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야.” 이럴 때는 나도 살짝, 그가 진짜 도사가 아닐까 의심도 일었다.
그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신도들이 와서 상담을 한다. 도회지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도 있다. 아랫마을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서면 그는 반색을 하고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는다. 할머니는 며느리 흉도 보고 아들 야속한 것도 중얼거리고 서울 간 손자 공부 잘하는 것도 이야기하다가, 간밤에 치통을 앓아 한잠도 못 잤다면서도 또 엉뚱하게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고 한다. 최도사는 마당에 난 풀을 뽑으며 할머니의 앞뒤 안 맞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곤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아이구 젊은 사람 바뿐디 내가 그만 가야 허는디…” 하는 소리를 아홉 번 할 때까지 그는 싫은 기색 한번 안 한다. 할머니가 드디어 “최도사, 어쩌면 좋으까이” 물으면 그는 그제서야 대답했다. “할머니 그냥 내비두세요.”
“참 용해요. 사람 이야기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물으면 그는 씨익 웃으며 대꾸한다. “너무 귀를 기울여도 진이 빠지고 너무 건성이면 그쪽이 서운해. 그러니까 딱 그 중간을 지켜야 해.”
이럴 때 그가 정말 도사가 아닐까 싶어, 내가 다시 그를 떠보았다. “산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아? 혹시 귀신 같은 거 어떻게 생각해? 본 적 있어?”
“가끔은 말이야. 너무 심심할 때 귀신이라도 좀 와서 술이라도 한잔 건네면 좋겠다 싶어.”
“그럼, 무서울 때 없어?”
그러면 그가 대답했다. “귀신은 안 무서운데 가끔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 왔다갔다 하다가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치면 깜짝 놀라. 정말 귀신인 줄 안다니까!”
주차요원 최도사
그러자 최도사는 한동안 메뉴판을 쏘아보았다. 시골 식당이 그렇듯 없는 게 없는 식당이었다. 육개장 5000원, 설렁탕 5000원, 짜장면 3500원, 냉면 4000원, 떡볶이 2000원, 사리 1000원………. 최도사는 한참을 망설이며 입맛을 다시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의기양양하게 주인에게 말했다. “난, 사리!”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는 버들치 시인이 주인보다 더 당황하며 그건 안 된다고 하자 최도사가 다시 말했다. “글쎄, 사리가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적어놨으면 팔아야지…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난 사리야! 그냥 내비도!”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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