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에효, 지영이 때문에 또 시끄럽구나’ 겁먹은 남친들
그날 왜 우리가 버들치 시인의 아늑한 집과 낙장불입 시인의 좋은 집을 두고 그 모텔에 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낙시인 집에는 언제나 그렇듯 가족단위의 주말 꽃놀이 인파가 몰렸고 그래서 우리가 양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낙시인은 우리를 보러 모텔로 왔고 고아르피엠(RPM) 여사는 집에 있으면 손님들에게 밥이라도 해주어야 하니 “은니,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면서 모텔로 왔다. 선약이 있다며 이번에는 못 만나겠다는 버시인이 나타난 것은 더 의외였다. 서울에서 한 출판업자가 내려온다는 전화를 받고 집을 탈출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버시인이 계약금만 받아먹고 글을 안 주었나 싶지만 오히려 계약금을 들고 내려오고 있다는 소리에 혼비백산 우리에게로 피신을 한 것이었다. 돈 준다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누가 묻거든 이분을 소개하시면 되겠다.
버시인은 일전에 시골생활 이야기를 산문으로 낸 적이 있는데 누군가에게서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산문이나 써서 돈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하고 우리가 그를 위로했지만 그는 산문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참 어렵고도 딱한 일이었다. 시 한 편의 고료가 얼마인지 아시는지. 보통 3만원, 특급 대우를 하는 곳이 7만원이다. 그나마 시를 세 편 정도 실으면 9만원을 받는데 책이 나오고 난 뒤 담당 편집자가 전화를 해서 슬픈 목소리로 “선생님, 아시다시피 우리 잡지가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 2년 넣어드리면 안될까요?” 한다.
대체 단군 이래로 시문학지가 사정이 좋은 적이 있는가,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우리의 버시인, 낙시인이 “절대 안 됩니다” 할 사람은 아니니 가난한 그들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문학지가 배달된다. 그렇게 해서 1년에 많이 쓰는 경우 10편, 가장 원고 청탁을 많이 받으시는 신경림 선생 정도가 많아야 1년에 20편을 발표하니 시만 써가지고는 휴대폰 하나 간수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연탄에 관한 시로 유명한 시인이 어떤 대담에서 “누가 내게 한 달에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돈만 준다면 나는 밤을 새워 시를 쓸 거야, 정말 열심히 매일매일 시를 쓸 거야”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났다.
오랜만에 낯선 객실에서 둘러앉으니 좋았다. 창 아래로 섬진강도 흐르고 맥주와 소주도 잔뜩 준비되어 있고 낮에 어여쁜 꽃도 실컷 보았고, 친구들은 섬진강 물보다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9시 뉴스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고아르피엠 여사가 먼저 일어섰다. 피곤하니 여자들 용으로 얻어둔 옆방에 가서 쉬겠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일어나는 김에 나도 일어서려는데 열린 창 틈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히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내 마음으로 엄청난 갈등이 지나갔다. 남의 사생활에 꼭 간섭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모처럼 바쁜 주말을 쪼개어 이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의 달콤한 휴가를 깨는 것도 가책이 되었다. 하지만 갈등은 머리의 일이었고 내 입은 힘차게 악을 쓰고 있었다.
“야, 이 나쁜 놈아, 너 뭔데 여자 때려? 그만하지 않으면 신고할 거야!”
때리던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3층에 선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겁이 났지만 남자친구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싶어 돌아보는데 이 친구들은 나를 엄호해서 정의를 바로잡을 생각은 안하고 역시나, 에효, 지영이 때문에 이번 여행도 또 시끄럽구나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는 내 일행들의 미지근한 반응을 눈치챘는지 다시 여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112 버튼을 눌렀다. 그때 옆방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아르피엠 여사였다.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여자를 패, 패긴! 빨리 그만두지 않으면 신고한다.”
나도 소리쳤다. “신고했어 이 나쁜 놈아, 너 이제 혼날 거야.”
남자가 우리를 째려보았다. “이 아줌마들이 왜 반말이야? 엉?”
그러자 옆방에서 고아르피엠 여사의 대꾸가 들렸다. “그러니까 때리지 마시라고요. 때리지 마시란 말이에요.”
우리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와 고아르피엠 여사는 꾸준히 그의 폭력을 방해하며 훈계를 해댔다. 남자가 다시 창을 올려다보더니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아아! 귀 따가워…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이것들이 창문마다 하나씩 붙어서 방방이 지랄이네. 너희들 거기 있어 내가 간다!”
남자는 빠르게 휘익 모텔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가 고맙다. 간다! 하고 미리 경고를 했으니까 말이다. “큰일났어, 피해.” 내가 돌아보며 외치는데 남자친구들도 모두 귀를 막고 있었다. 내가 발을 동동 구르자 먼저 낙시인이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위해 옆방으로 뛰어갔다. 남자친구들은 문을 잠그고 숨을 죽인 채 겁먹은 얼굴들이었다. 차라리 내가 의연해져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들었다. 밖에서 남자가 맥주병을 깨고 난동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저 인간이 이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온다면 내 남자친구들은 아마도 “얘가 그랬어요” 하고 나를 가리킬 태세였다. 잠시 어느 방인지 우리를 찾지 못한 남자는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못 낸 화풀이라도 하듯이 여자를 더 패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가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줌마들이 번갈아 전화하고 난리네. 대한민국 경찰이 오빠다방 먼양인 줄 아나? 좀만 기다리시라고요.”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는지 몹시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아마 그렇게 여자를 패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 곳에서 쭉 편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경찰이 도착하자 그제서야 남자친구들은 창문에 나가서 소리를 질렀다.
“에잇 나쁜 놈, 세상에 때릴 게 없어서 여자를 때려?” “운 좋은 줄 알아라, 경찰이 일찍 왔으니까 망정이지 내가 내려가서 손 좀 봐 주려고 그랬다, 인마.”
경찰의 질문에 대꾸하던 남자가 빠르게 우리 창을 째려보았다. 소리를 치던 남자친구들이 입을 얼른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이 낮게 말했다.
“말야, 만일 경찰이 저 남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니까 훈계만 해서 보낸다거나 그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
버들치 시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러면 안 되지. 우리를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그러니까 경찰에 가게 해야지.” “어떻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버들치 시인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뚜벅뚜벅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우리는 모두 창문에 붙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었다. 버시인이 경찰을 불러 무언가 낮게 밀담을 나누었다. 버시인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경찰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버시인이 여기 군수와 잘 안다고 했고, 경찰서장과도 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버시인이 들어왔고 남자는 경찰차에 실려가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 오늘 밤에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지?” “군수하고 안다고 했어?” 우리가 물었다. 버시인은 잠시 큰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시인이라고 했지. 여기 사는 버들치 시인인데 지금 서울에서 작가 공지영씨가 기자들을 데리고 섬진강에 왔다고 했지.”
우리는 어리둥절 버시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일까. 나는 작가 맞고 내 친구들은 기자가 맞긴 했다.
“그랬더니 공지영? 버들치? 하더니, 잘 모르겠는데 혹시 그 명작 <육담>의 저자세요? 하잖아, 그래서 에잇 그건 아니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닌 게 아니라 여기 그 저자가 여기 있기는 한데… 그러니까 알았다고 걱정 말라고 하더라.”
글씨로 써놓으니 시간이 짧아 그렇지, 직접 들으면 천천히 받아쓰기를 해도 될 빠르기로 버시인이 말했다. 이곳 경찰이 그말을 끝까지 듣다니 참 무던도 했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들은 내가 그들을 본 이래로 가장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이곳 경찰서에서는 보통 아침 8시 반쯤 전날 연행된 사람들이 훈방된다는 정보를 들은 까닭이었다. 사람들이 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밤새 더 익어간 보리가 후드득 후드득 웃고 있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그날 왜 우리가 버들치 시인의 아늑한 집과 낙장불입 시인의 좋은 집을 두고 그 모텔에 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낙시인 집에는 언제나 그렇듯 가족단위의 주말 꽃놀이 인파가 몰렸고 그래서 우리가 양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낙시인은 우리를 보러 모텔로 왔고 고아르피엠(RPM) 여사는 집에 있으면 손님들에게 밥이라도 해주어야 하니 “은니,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면서 모텔로 왔다. 선약이 있다며 이번에는 못 만나겠다는 버시인이 나타난 것은 더 의외였다. 서울에서 한 출판업자가 내려온다는 전화를 받고 집을 탈출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버시인이 계약금만 받아먹고 글을 안 주었나 싶지만 오히려 계약금을 들고 내려오고 있다는 소리에 혼비백산 우리에게로 피신을 한 것이었다. 돈 준다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누가 묻거든 이분을 소개하시면 되겠다.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보리는 익어간다. 자연은 늘 그렇듯 순리를 따른다. | 이원규 시인 촬영
버시인은 일전에 시골생활 이야기를 산문으로 낸 적이 있는데 누군가에게서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산문이나 써서 돈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하고 우리가 그를 위로했지만 그는 산문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참 어렵고도 딱한 일이었다. 시 한 편의 고료가 얼마인지 아시는지. 보통 3만원, 특급 대우를 하는 곳이 7만원이다. 그나마 시를 세 편 정도 실으면 9만원을 받는데 책이 나오고 난 뒤 담당 편집자가 전화를 해서 슬픈 목소리로 “선생님, 아시다시피 우리 잡지가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 2년 넣어드리면 안될까요?” 한다.
대체 단군 이래로 시문학지가 사정이 좋은 적이 있는가,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우리의 버시인, 낙시인이 “절대 안 됩니다” 할 사람은 아니니 가난한 그들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문학지가 배달된다. 그렇게 해서 1년에 많이 쓰는 경우 10편, 가장 원고 청탁을 많이 받으시는 신경림 선생 정도가 많아야 1년에 20편을 발표하니 시만 써가지고는 휴대폰 하나 간수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연탄에 관한 시로 유명한 시인이 어떤 대담에서 “누가 내게 한 달에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돈만 준다면 나는 밤을 새워 시를 쓸 거야, 정말 열심히 매일매일 시를 쓸 거야”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났다.
오랜만에 낯선 객실에서 둘러앉으니 좋았다. 창 아래로 섬진강도 흐르고 맥주와 소주도 잔뜩 준비되어 있고 낮에 어여쁜 꽃도 실컷 보았고, 친구들은 섬진강 물보다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9시 뉴스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고아르피엠 여사가 먼저 일어섰다. 피곤하니 여자들 용으로 얻어둔 옆방에 가서 쉬겠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일어나는 김에 나도 일어서려는데 열린 창 틈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히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내 마음으로 엄청난 갈등이 지나갔다. 남의 사생활에 꼭 간섭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모처럼 바쁜 주말을 쪼개어 이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의 달콤한 휴가를 깨는 것도 가책이 되었다. 하지만 갈등은 머리의 일이었고 내 입은 힘차게 악을 쓰고 있었다.
“야, 이 나쁜 놈아, 너 뭔데 여자 때려? 그만하지 않으면 신고할 거야!”
때리던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3층에 선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겁이 났지만 남자친구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싶어 돌아보는데 이 친구들은 나를 엄호해서 정의를 바로잡을 생각은 안하고 역시나, 에효, 지영이 때문에 이번 여행도 또 시끄럽구나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는 내 일행들의 미지근한 반응을 눈치챘는지 다시 여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112 버튼을 눌렀다. 그때 옆방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아르피엠 여사였다.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여자를 패, 패긴! 빨리 그만두지 않으면 신고한다.”
나도 소리쳤다. “신고했어 이 나쁜 놈아, 너 이제 혼날 거야.”
남자가 우리를 째려보았다. “이 아줌마들이 왜 반말이야? 엉?”
그러자 옆방에서 고아르피엠 여사의 대꾸가 들렸다. “그러니까 때리지 마시라고요. 때리지 마시란 말이에요.”
우리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와 고아르피엠 여사는 꾸준히 그의 폭력을 방해하며 훈계를 해댔다. 남자가 다시 창을 올려다보더니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아아! 귀 따가워…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이것들이 창문마다 하나씩 붙어서 방방이 지랄이네. 너희들 거기 있어 내가 간다!”
섬진강변 ‘그 사건’의 현장. 맨 왼쪽 건물이 문제의 모텔이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는지 몹시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아마 그렇게 여자를 패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 곳에서 쭉 편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경찰이 도착하자 그제서야 남자친구들은 창문에 나가서 소리를 질렀다.
“에잇 나쁜 놈, 세상에 때릴 게 없어서 여자를 때려?” “운 좋은 줄 알아라, 경찰이 일찍 왔으니까 망정이지 내가 내려가서 손 좀 봐 주려고 그랬다, 인마.”
경찰의 질문에 대꾸하던 남자가 빠르게 우리 창을 째려보았다. 소리를 치던 남자친구들이 입을 얼른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이 낮게 말했다.
“말야, 만일 경찰이 저 남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니까 훈계만 해서 보낸다거나 그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
버들치 시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러면 안 되지. 우리를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그러니까 경찰에 가게 해야지.” “어떻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버들치 시인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뚜벅뚜벅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우리는 모두 창문에 붙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었다. 버시인이 경찰을 불러 무언가 낮게 밀담을 나누었다. 버시인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경찰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버시인이 여기 군수와 잘 안다고 했고, 경찰서장과도 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버시인이 들어왔고 남자는 경찰차에 실려가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 오늘 밤에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지?” “군수하고 안다고 했어?” 우리가 물었다. 버시인은 잠시 큰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시인이라고 했지. 여기 사는 버들치 시인인데 지금 서울에서 작가 공지영씨가 기자들을 데리고 섬진강에 왔다고 했지.”
우리는 어리둥절 버시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일까. 나는 작가 맞고 내 친구들은 기자가 맞긴 했다.
“그랬더니 공지영? 버들치? 하더니, 잘 모르겠는데 혹시 그 명작 <육담>의 저자세요? 하잖아, 그래서 에잇 그건 아니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닌 게 아니라 여기 그 저자가 여기 있기는 한데… 그러니까 알았다고 걱정 말라고 하더라.”
글씨로 써놓으니 시간이 짧아 그렇지, 직접 들으면 천천히 받아쓰기를 해도 될 빠르기로 버시인이 말했다. 이곳 경찰이 그말을 끝까지 듣다니 참 무던도 했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들은 내가 그들을 본 이래로 가장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이곳 경찰서에서는 보통 아침 8시 반쯤 전날 연행된 사람들이 훈방된다는 정보를 들은 까닭이었다. 사람들이 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밤새 더 익어간 보리가 후드득 후드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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