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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100년

[허시명의 우리술 이야기](17) ‘인심은 덤’ 통영 다찌집

허시명 술 평론가경향신문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통영 앞바다에서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것을 기념하여 충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통영시가 되었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해협을 끼고 있어서, 바닷가 산언덕에 층층이 올라붙은 집들이며, 물살을 가르며 오가는 배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항구다. 이 서정적인 풍경이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과 같은 걸출한 예술인들을 배출하였다.

통영 다찌집의 상차림. 술병이 얼음을 가득 채운 통에 담겨 나온다.

바닷가라 물산이 풍부하다. 소문난 음식으로 통영복국, 통영굴요리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어선 충무김밥이 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통영 다찌집이다. 마산 통술집, 전주 막걸리집과 같은 계통의 술문화를 갖춘 곳이다. 미륵도를 잇는 충무교를 지나 미수동의 한 횟집 거리에서 다찌집에 들어갔다. 다찌가 무슨 뜻입니까? 다찌집을 시작한 지 5년이 된 주인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다 있지”의 준말이라고 했다. 통영 앞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한 상 가득 다 나오기 때문에 다 있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하나의 견해’라고 덧붙였다.

다찌는 일본말의 느낌이 농후하다.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찌라는 일본어에서 다찌(達)는 여럿을 뜻하는 복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식이 많다는 의미로 쓰인 것일까? 싶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좀 더 설득력 있는 것은 일본의 다찌바(立場·서서 먹는 곳)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다. 일본어로 서서 먹는 것을 다찌구이라고 하고, 서서 먹는 초밥을 다찌노스시라고 부른다. 참치집에서 다찌는 주방장이 서 있는 곳 앞쪽의 손님이 앉는 곳을 지칭한다. 이로 보아, 다찌는 긴 탁자가 있는 스탠드바나 선 채 술을 마시는 선술집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문화가 술처럼 흘러다니면서, 새로운 용어도 만들어내고,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다찌집에서는 어떻게 술을 마시는 것일까. 우선 서서 마시지는 않는다. 통영에서는 다찌집이 실비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실비집은 안주를 마련한 실제 비용만을 받는 술집을 뜻한다. 실비집이나 선술집은 어려웠던 시절에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나 서민들이 찾던 저렴한 술집이다. 다찌집에서는 술만 시킬 수 있다. 다찌집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소주건 맥주건 한 병에 1만원 한다. 안주의 선택권은 손님에게 없다. 손님은 주인이 내주는 대로 안주를 먹어야 한다. 주인이 내놓는 안주는 그날 가까운 포구에서 산 싱싱한 해산물로 구성된다. 그러다보니 안주는 날마다 다를 수 있고, 계절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다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술 1~2병 시켜놓고 안주가 얼마나 나오는지, 안주만 즐기거나 안주가 적다 많다 이야기하는 손님들이 나타났다. 특히 소문만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주인과 손님 간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다찌집에 기본상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다. 3~4인 기준으로 5만원, 7만원, 10만원짜리가 생겼다. 5만원 상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5병의 술과 안주가 나오고, 10만원 상에는 10병의 술과 안주가 나온다. 그리고 추가로 술 1병을 시킬 때마다 안주 1가지가 따라 나온다. 오늘 무슨 안주가 나올까? 그날 주인아주머니의 기분이 좋으면 안주가 더 나올 수 있고, 몸이 아프고 힘들면 적게 나올 수도 있다. 손님은 이 모든 것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 주막의 주모와 손님의 관계가 다찌집에는 있다. 그래서 다찌집에는 불문율이 많다. 남은 술을 가져가서는 안된다. 기분이 좋아서 주인이 안주를 다른 날보다 더 내주면, 손님은 시킨 술값보다 값을 더 치르고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다찌집에 가서는 안된다. 술을 팔아야 매상이 오르기 때문에, 손님들이 맨송맨송 일어나면 다찌집이 망하고, 조금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면 흥한다. 다찌집은 옆 손님이 소란스럽더라도 이를 나무라서는 안된다. 통영 다찌집은 선창에서 일을 마치고 온 어부들의 뒤풀이 장소였기 때문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를 수 있고,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주인이 북장단을 칠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야 다찌집을 출입할 자격이 있다. 다찌집은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인심까지 파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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