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서울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들 ‘김상곤 벨트’ 형성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뉴타운 개발과 경기교육감 선거결과

2000년대 중반 들어 서울 전역에서 진행된 동시다발적인 재개발로 밀려난 사람들의 상당수가 정착한 곳이 경기도다. 이들은 서울에서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생계를 위해 대도시 인근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야당 성향이 강한 저소득층과 무주택자들의 유입은 경기도의 경제적 계급분포와 정치지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4월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는 경기의 ‘변화’ 조짐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다.

‘MB식 교육정책 심판’을 내걸고 진보개혁 진영의 단일 주자로 나선 김상곤 후보는 당시 현역 교육감으로 보수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던 김진춘 후보를 제치고 경기의 첫 직선 교육감에 당선됐다. 고교 평준화와 학교급식 100% 직영화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정면으로 뒤집는 공약을 내세운 김상곤 후보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키려는 김진춘 후보 간 경쟁은 ‘보·혁 대결’ 양상을 띠며 박빙의 승부를 펼 것으로 점쳐졌다. 결과는 김상곤 후보의 여유있는 승리였다. 김상곤 후보는 42만2302표(40.8%)를, 김진춘 후보는 34만8057표(33.6%)를 얻었다.


김상곤 후보는 경기의 전체 44개 선거구 중 27곳에서 승리했다. 수원·성남·고양·과천·안양·부천·시흥·남양주·안산·의정부 등 서울과 인접한 대도시 지역에서 압승을 거둔 결과다. 사교육 열풍이 거센 안양 평촌, 고양 일산 등 신도시에서 이겼고 ‘경기의 강남’으로 불리는 성남 분당에서도 542표차로 신승했다.

안양2동에 사는 최모씨(29)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2008년부터 누가 공정택을 선택했느냐며 경기도 교육감은 잘 뽑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형들끼리 후보들 공약을 뽑아 비교해보기도 하고 김상곤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경기교육감 선거 결과에 대해 여러 해석이 뒤따르지만, 서울의 뉴타운 개발과 이로 인한 경기도 구성원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시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경기에서도 분당·일산·평촌은 화이트칼라층이 많이 거주하는데 이들이 토건 중심, 민주주의 후퇴 등으로 나타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노선에 반감을 갖고 가치투표를 한 것이 김상곤 후보가 신도시에서 득표를 많이 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지리교육학과 박배균 교수도 “서울 금천·관악구 등에 살던 사람들이 밀려나 경기도에 거주하고 이들의 비율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정치적 변화가 있다”며 “지난해 교육감 선거 결과를 두고 경기도의 진보화라 단정하긴 힘들지만 사람들의 지리적 분포가 변하면서 투표 행태로 표출된 결과라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은 뉴타운 열풍으로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2008년 총선에서도 비교적 들어맞는다. 당시 서울에선 전체 48개 선거구 중 진보개혁진영의 당선 비율이 16.7%에 그쳤지만 경기도에서는 33.3%로 서울보다 두 배 높았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들 역시 시흥·안산·남양주 등 서울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많은 곳이다.

실제 손낙구씨가 쓴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 따르면 경기 주민들은 전국에서 거주기간이 가장 짧고 이사를 가장 많이 다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기의 100가구 중 66가구는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온 지 5년이 안되며, 이 중 36가구는 2년이 안 된다. 서울이나 지방으로의 전·출입이 잦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 결과로 경기의 진보화를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12.3%)이 저조했고, 보수진영 후보가 분산됐으며 교육이라는 이슈 자체의 특수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김상곤 교육감 당선과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지사의 높은 지지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며 “경기의 계급적 지형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그것을 압도할 만한 다른 정치적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진보화 추세로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