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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문학·영화 속의 ‘집’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71년 ‘광주대단지’ ~ 2009년 ‘용산’ 달라진 건 없었다

‘집’은 현대 한국사회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1950년대 처음 아파트가 등장하고 70년대에 고급주거형태로 자리잡으면서 한국 주거의 사회상은 크게 바뀌었다. 주택공급과 주거환경개선 명목으로 진행된 개발의 이면에서 서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삶터를 잃어간 반면, 산업성장의 수혜를 입은 중산층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시대상은 문학과 영화에도 반영돼 있다.



마포아파트

1950년대 말~60년대 초 서울에 처음 등장한 아파트는 충격의 대상이었다. 조정래는 작품 「비탈진 음지」를 통해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사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얹혀서 살림을 하고…”라고 묘사했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고급 주거형태가 아니었다. 1958년 종암아파트를 시작으로 62년 마포아파트, 68년 여의도시범아파트 등이 도입됐지만 아파트는 전통문화를 잠식하는 서구의 이질적 문화이자 동경의 대상인 양가감정적 존재였다.

유현목 감독의 1961년작 ‘오발탄’과 신상옥 감독의 1963년작 ‘로맨스 그레이’에서 아파트는 술집 여급, 정부(情婦) 등 부유하고 탈도덕적인 이들의 밀회 장소로 그려졌다. 이 같은 인식은 74년 반포아파트 분양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와우아파트

70년에 시민아파트인 ‘와우아파트’가 날림공사로 붕괴되는 참변이 발생하자 정부가 중산층의 고급주거형태로 아파트 건축계획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70년대 말에는 ‘아파트-중산층’의 공식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가 문득 그 무렵에 막 나온 국산 승용차를 볼 때, 그리고 새로 지은 반듯한 아파트를 볼 때, 그래, 같이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어도 승호 오빠는 저런 차를 타고 저런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이순원, 「스물 셋 그리고 마흔 여섯」)

그 이면에는 쫓겨나는 서민의 삶이 있었다. 71년 정부의 이주계획에 의해 광주대단지로 강제이주된 도시빈민들이 경찰과 충돌하고 도시를 점거한 ‘광주대단지 사건’은 윤흥길의 소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그려진다. 경기도 광주대단지에 집을 마련하려던 이가 협잡으로 땅을 빼앗긴 철거민과 자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난생 처음 이십 평짜리 땅덩어리가 내 소유로 떨어진 겁니다.…그 이십 평이 너무도 대견해서…나 이상으로 불행한 어느 철거민의 소유였어야 할 그것이 협잡으로 나한테 굴러 떨어진 줄을 전혀 잊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광주대단지 사건

2008년 서울의 총선 판도를 흔들었던 뉴타운 공약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사람은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우리 동네 건물을 양성화시켜주겠다고 말했다.…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달라진 것은 없었다.”



80년대는 서울에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이 형성된 시기다. 신군부가 도시의 주택난 해결을 목표로 주택을 대량공급하기 시작했고, 과천·분당·일산·평촌 등의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이 일반화됐다.

철거되는 상계동 판자촌

이창동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없다」의 주인공인 소시민은 “이른바 상계동 신시가지라 이름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한쪽 끝”에 “15층이나 되는 고층 아파트 맨 아래층 귀퉁이”에 집을 얻는다. “집값이야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그의 집이 아내의 말마따나 진짜 우리 집이라는 사실”에 주인공은 안도한다. 세입자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88년 올림픽과 택지개발을 빙자해 서민, 빈민들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흔적은 지워져갔다.

“9월에 1분도 안 되는 성화 봉송을 위해, 1월부터 40세대 200여명이 떨어야 한다.” 올림픽 성화봉송로를 단장하려 상계동 판자촌이 철거되는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에 나오는 한마디다.




영화 ‘소름’

1990~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아파트 주거문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들이 등장한다. 도시에서 익명성을 보장하는 편리한 주거형태가 그만큼 인간의 소외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이기적인 주민들이 사는 획일적이고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벌써 두 사람째나 살기가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 소문이 퍼져 보십시오, 사람들은 궁전 아파트 사람들의 행복이 가짜일 거라고 의심할지도 모릅니다.…궁전 아파트 사람들이 이제껏 행복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줬기 때문이니까요.”(박완서, 「옥상의 민들레꽃」)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아파트 간에도 ‘계급’이 갈렸다. 특히 중산층 속의 저소득층 집단인 임대아파트 주민은 기피대상이었다. 김윤영은 「철가방 추격작전」에서 “강남의 음지로 불리는 수서의 임대아파트단지는…인근 주민들의 눈엣가시였다”고 묘사한다. “집값 떨어진다고 하는 정도는 불평 축에도 못끼었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은 놀지 말라며 문둥병자 취급하는 부모들 중에 박사며 교수며 의사가 있었다.”

재개발 전 미아리 한옥촌

재건축을 앞두고 있던 미금아파트에서 촬영한 윤종찬 감독의 영화 ‘소름’(2001)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는 더 이상 ‘집’이 아니라 폐허일 뿐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개봉한 ‘파주’(박찬옥 감독)는 서울의 투기자본이 벌이는 재개발로 인해 원주민의 삶이 파괴되는 현장을 그린다. 철거민들과 철거용역들이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은 지난해 1월의 ‘용산참사’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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