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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광고 속 아파트는 언제나 ‘궁전 같은 집’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탤런트 이영애가 햇살이 들어오는 스파에 앉아 붉은 꽃잎을 흩뿌린다. 공연장에서는 발레단의 공연을 감상한다. 쇼핑애비뉴에서 쇼핑을 마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화면 아래로 자이전용도시라는 자막이 흐른다.’

광고 속 아파트는 궁전이나 호텔 같은 집을 연상시킨다. 그곳에 등장하는 집주인은 모두가 행복하고 여유롭다. 집 때문에 대출이자에 허덕이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빡빡한 직장생활을 감내하는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위 TV광고에 등장하는 서교자이 아파트 가격은 가장 작은 163㎡(49평)형이 12억~15억원대다.

“광고 문구들을 보자. 자기네 40층 아파트가 들어오면 온 도시가 푸른 녹지로 변한다고 생떼를 쓰는 회사도 있다. 가우디가 지은 성당 이름과 똑같이 지어놓고 자기네 아파트가 가우디의 명품과 같다는 회사도 있다. (중략) 나는 우울할 때면 아파트 광고를 본다. 또 어떤 기상천외한 생떼가 등장할까 기대되기만 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서글프고 분노해야 할 삐뚤어진 현실이다. 좋게 말하면 코미디요, 나쁘게 말하면 사기다.”(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쓴 ‘건축, 우리의 자화상’ 중에서)

아파트 광고에는 톱스타들이 등장한다. 장동건·김태희 등이 아파트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며 중견건설사들도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톱스타들의 모델료는 연간 5억~10억원에 이른다. 고액의 모델료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2008년 경실련의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배우 송혜교는 “향후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1990년대 말부터는 브랜드 경쟁도 치열하다. 외환위기 후 주택경기가 침체되고 분양가 자율화로 완전경쟁 체제가 만들어지자 건설사들이 자사의 ‘상품’을 차별화하고 소비자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다.

‘하이페리온’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브랜드는 2000년대 들어 아파트에 본격 사용됐다. 2000년 첫 선을 보인 삼성 ‘래미안’을 비롯해 대림 ‘e편한세상’, 현대 ‘힐스테이트’, 남광 ‘하우스토리’, 우미 ‘린’, 토지주택공사 ‘휴먼시아’ 등 대형건설사뿐만 아니라 중견업체와 공기업까지도 브랜드를 붙였다.

아파트 브랜드는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2005년)에 따르면 아파트 브랜드에 따른 가격 차이가 3.3㎡(1평)당 최소 100만원(관악구)에서 최고 800만원(강남구)까지 벌어졌다. LG경제연구원(2004년)은 아파트를 구매하는 기준으로 교통(18.9%)과 투자가치(11.1%)를 제치고 브랜드(25.6%)가 가장 많이 꼽혔다는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아파트에 브랜드가 붙여지면서 분양가가 올라갔지만, 소비자들이 추후 브랜드 프리미엄을 기대하다보니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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