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최민영·이주영·김기범·임아영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ㆍ모래내시장 41년생 모임 ‘신사회’
“우리는 모래내시장에서 젊음을 다 보낸 거야.” 지난달 22일 오후 8시 모래내시장 안의 ‘신광갈비’. 신사회(辛巳會) 회원 13명이 월례모임을 시작했다. 신사회는 시장 내 41년생 뱀띠들이 만든 모임이다. 시장에서 알고 지낸 지 40년쯤 되는 ‘형제나 다를 바 없는 사이’들이다. 1991년 결성해 올해로 20년째가 됐다.
회원들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다. 송춘식씨는 “경기 좋을 때는 계 모임이 8개나 됐는데 다 깨졌고 신사회 하나는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고길웅씨는 시장이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렸다. “80년대 초에 전성기였어. 모래내시장이 재래시장 1위였지. 김장철 되면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고…. 손님들이 경기도 일원, 파주에서까지 왔어. 그때 돈 엄청 벌어서 집 장만했어.”
소근섭씨가 맞장구를 쳤다. “잠도 안 자고 시장에서 물건 가져오자마자 바로 장사했어. 새벽 3시에 일어나도 피곤한 줄 몰랐지.” 김창환씨도 “옛날에 포대에 넣어둔 돈을 세다가 졸려서 포대 잡고 자다가 다시 깨서 세고 그랬지”라며 웃었다. 70년대 시장 입구에서 연탄불을 팔았던 송춘식씨는 “하루 500장을 팔았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딸 다섯을 키웠지”라고 말했다.
상인들끼리 어울리는 멋도, 맛도 있었다. “시장 골목을 잘라서 이쪽은 코끼리팀, 저쪽은 황소팀으로 나누어서 윷놀이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15년 전만 해도 한복 입고 장구치고 북치고 지신밟기하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졌지. 그때는 노점도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가 없었어. 지금은 금방 다 셀 수 있어. 몇 개 되지 않으니.” 고길웅씨의 회상이다.
2003년에 가재울이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3구역과 4구역 철거가 본격화되면서 시장은 움츠러들었다. 현재까지 3·4구역에서 이주한 가구는 8500여 가구. 집을 떠나야 했던 회원들은 뉴타운과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파주의 전셋집으로 이사한 임범택씨는 “이제 나이가 일흔인데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다같이 망하고 있다. 전부 백수가 돼버렸다. 집도 멀어져서 경기도에서 오간다”고 말했다. 회원 중에는 결국 장사를 접고 아파트 경비일을 하거나 일용직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가재울뉴타운 4구역 조합은 법원 항소심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박모씨 등 6명이 재개발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무효확인’ 소송에서 1심과 같이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공사비와 총사업비가 통상적인 예상 범위를 초과했는데도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다. 사업은 더 미뤄졌고, 주로 4구역 가옥주인 회원들은 갈 곳조차 없어졌다.
김영조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뼈가 시리도록 장사를 했던 늙은이들이 조그만 집을 세 놓아 생활했는데 지금은 정부가 개발한다고 해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어. 경기도로 가고 시골로 가고 생활이 막막해졌어. 30평 살던 사람들이 다시 30평에 들어가려면 1억 얼마씩을 더 내라는데 늙은이들한테 1억원이 어디 있어? 갈 데가 없는 거야. 늙어서 새끼들한테 손 안 벌리고 세라도 받아 먹고 살려고 했는데….”
지난해 9월에는 한 회원이 세상을 떠났다. 경비일을 하다 과로로 숨졌다고 했다. 처음 신사회를 시작했을 때 회원이 22명이었는데 세상을 떠난 이가 벌써 7명째다. “큰일났어. 앞으로 20년 더 살아야 되는데 새끼들 돈 다 주고 정부에서 노후대책이 없으니 어떻게 살까. 전부 못 믿겠어. 정책을, 사람을, 세상을 못 믿겠어.”
송춘식씨의 장탄식이 이어졌다. “이렇게 한달에 한번 만나 회포를 푸는 게 낙이야. 외로워서 경기도에서 지하철 공짜로 타고 그냥 와서 낮부터 모래내에 있어. 죽도 못먹던 시절부터 일해서 박정희 정권 말년에 돈벌고, 전두환 때 집샀어. 그런데 지금은 다 팔아먹고 거지된 사람이 많아. 우리가 나라를 이끈 주역이었는데….”
예전 같으면 새벽 한두시까지 술 마시고 얘기하고 함께 있었다지만 지금은 경기도 고양, 파주 등지로 멀리 떠난 사람들이 있어서 빨리 자리를 파해야 한다는 회원들. 오후 10시, 신사회 2월 모임은 2시간 만에 끝났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우리는 모래내시장에서 젊음을 다 보낸 거야.” 지난달 22일 오후 8시 모래내시장 안의 ‘신광갈비’. 신사회(辛巳會) 회원 13명이 월례모임을 시작했다. 신사회는 시장 내 41년생 뱀띠들이 만든 모임이다. 시장에서 알고 지낸 지 40년쯤 되는 ‘형제나 다를 바 없는 사이’들이다. 1991년 결성해 올해로 20년째가 됐다.
모래내시장 뱀띠 동갑내기 모임인 ‘신사회’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시장내 한 음식점에 모여 추억을 되새기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회원들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다. 송춘식씨는 “경기 좋을 때는 계 모임이 8개나 됐는데 다 깨졌고 신사회 하나는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고길웅씨는 시장이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렸다. “80년대 초에 전성기였어. 모래내시장이 재래시장 1위였지. 김장철 되면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고…. 손님들이 경기도 일원, 파주에서까지 왔어. 그때 돈 엄청 벌어서 집 장만했어.”
소근섭씨가 맞장구를 쳤다. “잠도 안 자고 시장에서 물건 가져오자마자 바로 장사했어. 새벽 3시에 일어나도 피곤한 줄 몰랐지.” 김창환씨도 “옛날에 포대에 넣어둔 돈을 세다가 졸려서 포대 잡고 자다가 다시 깨서 세고 그랬지”라며 웃었다. 70년대 시장 입구에서 연탄불을 팔았던 송춘식씨는 “하루 500장을 팔았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딸 다섯을 키웠지”라고 말했다.
상인들끼리 어울리는 멋도, 맛도 있었다. “시장 골목을 잘라서 이쪽은 코끼리팀, 저쪽은 황소팀으로 나누어서 윷놀이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15년 전만 해도 한복 입고 장구치고 북치고 지신밟기하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졌지. 그때는 노점도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가 없었어. 지금은 금방 다 셀 수 있어. 몇 개 되지 않으니.” 고길웅씨의 회상이다.
2003년에 가재울이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3구역과 4구역 철거가 본격화되면서 시장은 움츠러들었다. 현재까지 3·4구역에서 이주한 가구는 8500여 가구. 집을 떠나야 했던 회원들은 뉴타운과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파주의 전셋집으로 이사한 임범택씨는 “이제 나이가 일흔인데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다같이 망하고 있다. 전부 백수가 돼버렸다. 집도 멀어져서 경기도에서 오간다”고 말했다. 회원 중에는 결국 장사를 접고 아파트 경비일을 하거나 일용직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가재울뉴타운 4구역 조합은 법원 항소심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박모씨 등 6명이 재개발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무효확인’ 소송에서 1심과 같이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공사비와 총사업비가 통상적인 예상 범위를 초과했는데도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다. 사업은 더 미뤄졌고, 주로 4구역 가옥주인 회원들은 갈 곳조차 없어졌다.
김영조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뼈가 시리도록 장사를 했던 늙은이들이 조그만 집을 세 놓아 생활했는데 지금은 정부가 개발한다고 해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어. 경기도로 가고 시골로 가고 생활이 막막해졌어. 30평 살던 사람들이 다시 30평에 들어가려면 1억 얼마씩을 더 내라는데 늙은이들한테 1억원이 어디 있어? 갈 데가 없는 거야. 늙어서 새끼들한테 손 안 벌리고 세라도 받아 먹고 살려고 했는데….”
지난해 9월에는 한 회원이 세상을 떠났다. 경비일을 하다 과로로 숨졌다고 했다. 처음 신사회를 시작했을 때 회원이 22명이었는데 세상을 떠난 이가 벌써 7명째다. “큰일났어. 앞으로 20년 더 살아야 되는데 새끼들 돈 다 주고 정부에서 노후대책이 없으니 어떻게 살까. 전부 못 믿겠어. 정책을, 사람을, 세상을 못 믿겠어.”
송춘식씨의 장탄식이 이어졌다. “이렇게 한달에 한번 만나 회포를 푸는 게 낙이야. 외로워서 경기도에서 지하철 공짜로 타고 그냥 와서 낮부터 모래내에 있어. 죽도 못먹던 시절부터 일해서 박정희 정권 말년에 돈벌고, 전두환 때 집샀어. 그런데 지금은 다 팔아먹고 거지된 사람이 많아. 우리가 나라를 이끈 주역이었는데….”
예전 같으면 새벽 한두시까지 술 마시고 얘기하고 함께 있었다지만 지금은 경기도 고양, 파주 등지로 멀리 떠난 사람들이 있어서 빨리 자리를 파해야 한다는 회원들. 오후 10시, 신사회 2월 모임은 2시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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