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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1부)뿌리 없는 삶 - ①신 유랑시대

특별취재팀 | 최민영·이주영·김기범·임아영 기자, 김설아·황선호 인턴기자
월세·전세… 반지하·옥탑방 전전, 20년을 살아도 서울은 언제나 ‘타향’

뿌리가 없다. 세입자들은 떠밀린다. 소득보다 더 빨리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기간인 2년을 채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집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될 집, 보다 큰 집, 아니면 자식 교육에 필요한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5년이 채 안돼 이사를 하는 건 다반사다. 뿌리 없는 삶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풍토병이라 할 만하다. 자신이 속한 동네와 사회에 관심조차 없어진다. 무관심이 우리 사회의 주된 정서가 된다. 주거는 더 이상 ‘살아가는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문제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3명 중 1명이 세입자…월세 10명 중 6명이 2년이상 거주못해

“늘‘타향살이’하고 있는 것 같죠. 서울에 정착하려고 올라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이 내 땅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모상만씨(44·가명·택배업)는 스무살인 1986년 서울로 올라왔다. 24년 동안 8번이나 이사했다. ‘세입자’인 그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장안동, 신길동, 면목동, 답십리동 등지에서 전세와 월세를 번갈아 살았다. 현재 그의 세 가족이 사는 곳은 동대문구 답십리 1동의 42.9㎡(13평) 크기 옥탑방이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4.0%이자 수도권에 94% 이상이 몰려있다는 ‘옥탑 또는 지하’ 거주 63만8000가구(통계청, 2005년 기준) 중 한 가구인 셈이다.

갓 상경했던 24년 전 그는 착실하게 15년쯤 아껴쓰고 저축하면 집을 장만할 목돈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내 집’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았다. 늘 임대 보증금 상승폭이 월급을 앞질렀다. “집주인이 옆동네 재개발했다더라, 아파트가 들어섰다더라며 그쪽 집값이 올랐으니 우리도 월세를 올려야 한다는데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렇게 겁나더라고요.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연립주택 3~4동을 밀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으면 그 주변에 금세 여파가 오거든요.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나니까 인근 월세가 5%쯤 오르는 식이죠. 집주인들끼리 ‘옆동네는 그 평수면 얼마씩 받는다’며 집세 인상을 부추기기도 하죠.”

주먹구구식 전·월세 시세는 주변 시세에 따라 춤추기 일쑤다. 몇 ㎡에 얼마 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상한선은 아예 없다.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세입자의 권리도 서러웠다. 반지하가 폭우로 침수돼 누전됐을 때 ‘자연재해 때문인데 왜 나한테 집을 고쳐달라고 하느냐’는 집주인의 말에 울컥했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가 크다며 집주인에게 아이들이 타박당할 때는 속이 상했다. “건물주는 주인으로 돼 있지만 전세로 계약했으면 2년 동안은 나도 공동 공간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따지고 싶었다.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 집주인 앞에서 한사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입자의 설움이다.

개발 바람도 세입자들을 고달프게 한다. 그가 살던 답십리 1동 62.8㎡(19평)의 빌라 전셋집은 2008년 2차 뉴타운 계획에 포함되면서 갑작스레 비워야 했다. 원래 갖고 있던 보증금 4000만원에다 친척에게 3000만원을 빌려 7000만원짜리 집을 구해보려 발품을 팔았다. 면목동, 용답동, 장위동, 사근동 일대를 뒤졌다. 방이 없었다. 재개발 여파로 인근 지역의 전셋값까지 함께 뛰었다. 전에 살던 집과 같은 넓이의 집은 1억~1억2000만원이었다. 7000만~8000만원을 대출받기에는 이자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모씨 가족은 2008년 재개발지역이 아닌 답십리1동의 현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그는 “앞으로 또 집값이 오르고 보증금이 더 오른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웃인 이종섭씨(40·가명·무직)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2000년부터 보증금 7000만원짜리 전세에 살던 이씨의 네 가족은 전셋값이 오르면서 반지하방으로 밀려났다. 2008년부터 답십리 1동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 두칸이 있는 42.9㎡(13평) 집에서 산다. 지하 또는 반지하에 산다는 서울시 전체 330만9890가구 중 10.7%인 35만5427가구(통계청, 2005년기준) 중 한 가구에 해당한다.

집에 들어서면 습기로 축 처진 장롱 뒤 벽지에는 검은 곰팡이가 얼룩덜룩하다. 집안에서 해가 드는 날이 없어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한다. 환기도 잘 되지 않고 비오는 날이면 하수구 냄새가 흘러든다. 폭우라도 내리면 침수 걱정에 잠이 안온다. 정작 ‘지상’에 방을 얻을 여윳돈이 없다. 중식 요리사인 그는 요즘 일마저 쉬고 있다. “서민 사는 동네가 다 비슷하죠. 정규직이라고 하면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겠지만 비정규직이 어디 은행 문턱을 넘겠어요, 그렇다고 가진 집이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겠어요. 집이 없으면 평생 집 없이 사는 세상같아요. 전세 살다가 오르면 월세로 밀려나고, 땅 위에 살다가 반지하나 옥탑으로 떠밀려 가는 거예요.”

두 이웃은 서로의 처지를 자조하며 “‘반지하’ 이씨는 햇빛을 못봐 얼굴이 떴고, ‘옥탑방’ 모씨는 햇빛을 너무 받아 말라간다”며 웃었다.


집 가진 사람들도 투자·교육 때문에 5년에 한 번 이사

세입자들이 한 동네에서 안정적으로 주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5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총 1589만가구 중 전세는 333만가구, 월세는 305만가구에 달한다. 전체 가구의 40%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한 동네에서 오래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월세 사는 사람 10명 중 6명이 한 곳에서 2년 미만 거주한다.(통계청, 2008) 월소득이 179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일수록 ‘집세가 비싸서’,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집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국토연구원의 ‘200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자발적 이동 비율은 저소득층이 8.62%로 고소득층 3.46%의 2배가 넘는다. 월소득 179만~350만원인 중소득층도 7.12%가 자기 뜻과 상관없이 떠밀려 이사했다.

임대료는 성큼 성큼 오르는데 소득은 거북이 속도로 느는 게 주 원인이다.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수도권이 2006년 19.9%에서 2008년에는 22.3%로, 같은 기간 광역시는 18.5%에서 19.3%로 상승했다. “1억원짜리 빌라에 전세사는 데 집주인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2000만원을 올려달라는 데 목돈 구하기 힘들다”(서울 강북구 한모씨)거나 “출산을 앞둔지라 집주인이 8500만원짜리 전세보증금을 2000만원씩이나 갑자기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경기 구리시 이모씨)는 이웃들의 하소연을 어렵잖게 접한다.

임대 가격은 얼마나 올랐을까.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아파트 전세금은 전국적으로 76.6%, 그중 서울은 81.3%(강북 75.7, 강남 84.9) 올랐다. 서민이 많이 사는 연립주택의 경우도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 52.3%, 서울의 경우 55.6%가 올랐다. 평균 잡아서 10년 전 1억원짜리 아파트 전세가 올해에는 1억7000만~1억8000만원, 연립주택은 1억5000만원이 된 셈이다.

서민은 울상이다. 2006~2008년 두 해 사이만 해도 수도권 전셋값이 꿈틀거리면서 8.2%가 올랐다. 1999~2001년 사이에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모두 임대료 상승률이 해마다 두자릿수였던 적도 있다. 서울에서 ‘싼 전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닥터아파트’는 수도권 안의 1억원 이하 전세아파트가 3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0만237가구 줄어든 109만199가구라는 조사 결과를 최근에 내놨다.

세입자가 ‘주택 보유자’가 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하는 사람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고용불안이 심화된데다 물가 상승, 집값 상승이 겹치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연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봐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사는 1분위 저소득층이 주택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1분위 가격의 주택을 구입하려 할 경우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꼬박 소득을 모아도 무려 19.3년이 걸린다.(2009년 9월 기준) 3분위 중산층이 평균적 가격의 주택을 사는 데도 12.2년이 걸린다. 유엔은 3년에서 5년 정도 연수입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우리는 유엔 권고치의 3~4배를 웃돌고 있다.

전셋값을 잡겠다며 정부와 시장에서는 주택 공급량을 늘렸으나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전세 살던 세입자들이 허리띠를 졸라 집세를 더 내거나, 집을 줄이거나, 외곽으로 이사하거나, 월세로 내려앉거나, 반지하나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손낙구씨는 “2000~2005년에 셋방 사는 가구 비율이 43%에서 41.4%로 1.6% 줄어들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수는 615만에서 657만으로 42만가구가 더 늘어났다”면서 “같은 기간 주택이 175만가구가 늘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는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사갈텐데…” 공동체 관심 없는 이방인의 삶

“셋방 가구 중에서 전세 가구가 48만이 줄어든 반면, 월세 가구가 90만이나 늘어난 것”이라는 그의 진단은 주거비용 상승으로 겪는 서민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사실 세입자와 주택보유자를 불문하고 우리나라는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닌다.(한국도시연감, 2008) 전 인구 5명에 1명꼴, 한 해에 약 870만여명이 이삿짐을 싸고 푼다는 얘기다. 산술적으로 볼 때는 5년이 지나면 한 동네가 낯모르는 이방인으로 채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읍·면·동’의 경계를 넘는 비율인 17.8%라는 숫자는 일본(4.3%)의 네배에 달한다.

집 가진 사람들도 5년에 한번 꼴로 이사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재산 증식을 고려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경기 김포의 풍무동에 거주하는 주부 윤모씨(38)는 지난 10년간 4번 이사했다. 목돈을 만지는 데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1999년에 결혼하면서 오피스텔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는데, 집을 못사면 평생 전세를 전전할 것 같아서였죠.” 그는 이어 2001년 경기도 평택에 32평짜리 아파트를 7250만원에 매입했다. 2005년에는 이 집을 되팔아 2배 가까운 이윤을 남기고 서울로 이사했다.

아이 학교와 남편 통근거리도 감안했지만 “부동산으로 한번 큰 돈을 벌고 나니 서울에서 더 큰 이윤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구의동에 25평짜리 아파트를 대출 7000만원을 끼고 산 뒤 2008년에는 경전철 확정 발표가 난 김포 풍무동에 다시 대출을 끼고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1가구 2주택자’인 한모씨(49)도 “집만큼 좋은 투자대상이 없다”며 4년에 한번 꼴로 이사했다. 1996년 논현동의 30평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해 같은 아파트의 50평형, 그 다음에는 대치동의 50평대 아파트를 5억원의 은행대출을 받아 구입했다. 이자로 한 달에 몇백만원이 나가지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의든 타의든 잦은 이사는 ‘이방인’들을 낳는다. ‘재테크’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윤씨도 “한편으로는 잃은 것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새 동네에 이사갈 때마다 마트와 약국, 빵집을 찾는 사소한 일까지 적응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아이의 경우 유치원에서 ‘친구하자’는 또래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는 이사가기 싫다고 울기까지 해서 미술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어요.” 그는 한동네 살면서도 이웃과 유대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반상회에 가도 무관심해진다. ‘또 이사갈 텐데’라는 태도가 몸에 밴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답십리의 모씨는 “주거 안정이라는 게 (임대계약인) 2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후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향심이 생기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동네 정치를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속된 말로 ‘해쳐먹든지’, 국회에서 싸움질을 하든지 의미가 없다니까요. 내 표가 귀중한 표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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