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서울 동대문의 ‘답십리 뉴타운 16구역’. 골목길이 동네 사이를 휘저으며 다세대주택들을 핏줄처럼 잇고 있다. 한때 가족들을 품었던 단독주택들도 올망졸망 들어서 있다. 지금은 유리창과 문짝이 깨지고 뜯겨나간 채 주택도, 골목길도 온기를 잃었다. 벽과 지붕의 뼈대만 남았다. 철거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시나브로 떠나 빚어진 살풍경이다.
“여기 헐리면 유명 건설회사가 고층 아파트를 올린답니다. 브랜드 중에 제일 비싸다는 그 아파트 말입니다. 세입자만도 1000가구가 넘던 동네인데 이제는 마흔 가구만 남았어요. 지난해 10월, 머뭇거리다간 보증금도 못 받을 수 있다는 풍문이 돌자 주민들이 피란 가듯 급하게 짐을 싸서 떠났죠.” 세입자 대표인 이영수씨의 전언이다.
이씨를 따라 유리 파편과 벽돌 부스러기가 밟히고, 담벼락에는 철거 구호가 난무하는 골목 모퉁이를 돌자 확 트인 언덕배기가 나왔다. 맞은 편 배봉산 자락에는 스무 동 남짓한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산을 둘러싸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아파트 군락은 서서히 죽어가는 이쪽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듯했다. 3월 현재, 이곳의 철거 작업은 ‘백지동의서로 설립된 조합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중단됐다. 헐다만 철거현장이어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답십리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신모 할아버지(79)처럼 영세 가옥주나 세입자들은 두 배 이상 뛴 주변의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규모를 줄이거나 경기 남양주 등지로 옮겨갔다. 신 할아버지는 “딸한테 2000만원을 빌려 남양주 빌라로 이사를 갔다”며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인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집을 가진 조합원들도 딱하긴 마찬가지죠. 분담금이 처음보다 평당 500만원까지 올랐대요. 그 정도 비용을 감당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재개발이 끝나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는 꺼지지 않았지만 청년의 말처럼 가옥주라 하더라도 정착률은 20% 안팎인 게 현실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 유목민’ 사회의 주 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려 한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차료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그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이씨를 따라 유리 파편과 벽돌 부스러기가 밟히고, 담벼락에는 철거 구호가 난무하는 골목 모퉁이를 돌자 확 트인 언덕배기가 나왔다. 맞은 편 배봉산 자락에는 스무 동 남짓한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산을 둘러싸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아파트 군락은 서서히 죽어가는 이쪽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듯했다. 3월 현재, 이곳의 철거 작업은 ‘백지동의서로 설립된 조합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중단됐다. 헐다만 철거현장이어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답십리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신모 할아버지(79)처럼 영세 가옥주나 세입자들은 두 배 이상 뛴 주변의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규모를 줄이거나 경기 남양주 등지로 옮겨갔다. 신 할아버지는 “딸한테 2000만원을 빌려 남양주 빌라로 이사를 갔다”며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인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집을 가진 조합원들도 딱하긴 마찬가지죠. 분담금이 처음보다 평당 500만원까지 올랐대요. 그 정도 비용을 감당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재개발이 끝나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는 꺼지지 않았지만 청년의 말처럼 가옥주라 하더라도 정착률은 20% 안팎인 게 현실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 유목민’ 사회의 주 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려 한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차료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그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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