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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도시·사회·시민 이야기](10) 인간 영혼과 존재성 담아야 ‘성스러운 도시’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ㆍ정치·경제만으로 지배되면 지역 차별·사회 분쟁 야기

도시는 인간의 삶이 연출되는 무대로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삶이라는 연기는 시나리오를 준수하는 연출가인 정치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시나리오는 ‘더불어 살다’라는 주제로 사회·경제·정치·문화·인류·환경이라는 6개 분야의 소재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감동적인 예술의 연기가 창출된다. 만일 6개 분야가 균형의 원칙을 무시하고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도시에서 연출되는 삶은 정치·경제 두 분야의 권력에 지배되어 불균형의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 분야는 삶에 믿음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문화는 아름다움과 진리를 만들며, 인류와 환경은 자손 번영과 지구 보전의 역할을 한다. 경제와 정치만으로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은 나폴레옹 3세 시대의 바로크 양식을 표현한 1875년 작품으로 근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이 건물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은 건물의 화려한 외형과 내부도 중요하지만, 지역과 조화된 맥락에서 나타난다. 건물이 주위와 맥락을 이룰 때 건물들은 각각 지역의 샹들리에가 되어 도시 전체를 환하게 비춘다.


도시에서 경제·정치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피라미드 계급으로 차별화된 구조다. 즉 시민 모두의 사회공동체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 집단이 소유·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경제·정치의 두 세력은 늘 도시를 탐내고 지배해왔다. 그들은 항상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 성장을 내세우고 의회 정치·시장 경제를 부르짖으며 재력과 권력을 독점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력과 이익을 위해 정책 관련 제도와 조항들을 일방적으로 수정하거나, 낙하산 인사나 온갖 편법을 동원해 기업과 언론을 장악함으로써 다른 분야에서 일절 간섭하거나 저지할 수 없게 하였다. 과거 군부세력의 독재정치, 신흥개발도상국가에서 흔하게 있던 현상이다.

경제·정치의 두 세력이 도시의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 무대의 연극은 다양한 소재의 시나리오로 꾸며진 종합예술이 아니라 독재 찬양의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무대는 스타일과 특성을 중요하게 간주하기보다 거대한 3D 영상·음향 시설만을 강조하므로 도시라는 무대는 여러 분야의 소재보다 첨단 제품으로 설치되고, 신상품이 나오면 즉시 갈아치운다.

도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도시 스타일과 특성은 삶이 연출되는 무대에서 연기의 품격, 성스러움, 고귀함에서 나타난다. 도시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성스러운 신전에서 출발하여 중세 그리스도 시대의 로마네스크와 고딕, 근세의 고전·바로크 시대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의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함축된 장소였다.

도시에서 성스러운 장소란 무슨 의미이며, 왜 있어야 하는가? 도시의 삶은 장소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데 사생활로 차별화된 독자성과 자기 과시의 사교성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독자성이란 남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삶과 영혼에 관계된 고백·참회·명상의 내면 세계로 성전의 거룩한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전과 가톨릭 성당을 통해 발전했고, 동양에서는 도교·유교·불교의 사원에서 기원했다. 사교성은 개인의 명예와 성공을 자랑하는 자기과시로, 각 시대의 화려하고 엄숙한 건축양식의 도시를 탄생하게 했는데 건축물의 내부도 외형과 똑같이 최상의 성스러움을 표현하였다.

중세 그리스도 시대의 가톨릭 성전의 성스러움은 그 시대의 왕족·귀족들의 성과 집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도시의 거리, 마당, 광장, 그리고 평민들의 집까지 성스러운 장소로 변화시켜 오늘날의 유럽으로 보전됐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장소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성스러움이란 아름답게 보이는 외형만이 아닌 인간의 영혼과 존재성이 잠재되어야 한다. 즉 외형을 초월하여 본질을 추구하는 형이상학 개념으로 도시 전체가 일치하는 조화와 맥락에서 가능하다.

만일 어느 재벌이 양심 없는 건축가를 통해 도심에 세계 최고층의 건물, 금으로 번쩍거리거나 기둥 없이 하늘에 떠있는 건물을 세웠다면 그것은 성스러움이 아니라 욕망과 자기 과시만이 있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물체일 뿐이다. 이 물체들은 도시의 맥락을 단절시킴으로써 도시에 지역 차별과 사회 분쟁을 야기해 시민들이 서로 헐뜯고, 좌우로 편을 가르고, 격렬하게 치고받게 만드는 판도라 상자이므로 도시에서 거부·추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