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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도시·사회·시민 이야기](8) 정치권력 위해 ‘암흑도시’ 만들 것인가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ㆍ세종시 수정안은 건물집합소… 국토황폐·국가재정 파탄 초래

신도시는 왜 건설하는 것인가, 왜 기존 도시는 수십년간 방치하면서 수많은 신도시를 건설해 국토를 온통 부동산 상품전시장으로 만들고 있는가? 오늘날 선진문명사회에서 신도시 건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리적·역사적 근거도 없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진리에 역행하는 명백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거대한 사회공동체로 그 기능과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일 정치적·경제적 필요로 도시를 만든다면 사회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지구상에는 두 종류의 도시가 존재한다. 하나는 1998년 프로야스가 제작한 SF 영화 <다크시티>의 암흑의 도시처럼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른 도시다. 이 도시는 끊임없는 건설로 온통 파헤쳐져 늘 시끄럽고 불안과 혼란의 일들이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이 무질서의 자체가 비정상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변질되지 않고 늘 같은 도시로 안정과 평화로 조용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다이내믹한 삶이 벌어진다. 다이내믹한 삶이란 돈을 벌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경제성장·국내총생산(GDP)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자유롭고 균등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계획안(조감도)은 도시가 아닌 건물집합소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은 이런 도시의 건설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암흑의 도시는 그 자체가 모순이므로 아무리 그 형태와 기능이 비뚤어져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곳의 사람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유관념에서 멀어져 이기주의에 전염되어 과대망상·허세·욕구도착증 등의 고질병을 앓는다. 그리고 도시의 주 요인과 개념은 기업유치·분양의 부동산 거래 행위로 변질되어 국토 파괴의 심각한 비상사태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과거 신도시는 왜, 무엇을 근거로 건설되었는가? 신도시는 기원전부터 고대·중세·근세에 걸쳐 건설되었지만, 17세기 이후 식민지 시대에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과 캐나다의 맨해튼·뉴올리언스·몬트리올 등을 일컫는다. 또 남미에서는 금·은·보화의 재물을 찾아 온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고대 잉카문명의 도시를 약탈하여 멸망시키고 새로운 도시들을 마구 세웠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국무장관 마셜의 유럽복원계획(ERP)에 의해 1947년부터 4년간 유럽 대부분의 도시를 복원하였고, 영국은 웨스트 밀랜드·머지사이드·리버풀·맨체스터의 도시들을 재개발했다. 그런데 유럽의 재개발·신도시는 한국처럼 광대한 자연을 불도저로 확 밀어버리고 건물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연을 허허벌판으로 만들고 벼락치기 건설로 엄청난 이익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무지막지한 건설을 유럽에서 유래된 신도시의 유행인 것처럼 속이고 공기업·지자체가 합법적인 자연파괴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왜 유럽은 특별한 건축양식도 아닌 19세기 시골의 하찮은 건물까지 굳이 똑같이 복원하였는가? 왜 한국처럼 주상복합·고층아파트, 번쩍거리는 수백층을 지어 떼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도시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 심각한 주택 부족으로 파리 외곽 싸구려 빈민가 ‘비동빌(bidonville)’을 허물고 신도시를 개발했지만 결국 수백년의 과거가 현재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깨끗하고 밝은 현대식 도시를 만들면 언젠간 도시와 시민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수백명의 한국 관료들이 신도시 모델로 방문했던 파리 근교의 신도시들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성숙하지 못하고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다. 도시는 역사적 가치에서 성숙해야 하는데, 늙으면 헐고 교체해 잠시 반짝거리다 죽는 별똥별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 마구 건설되는 한국 신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적·문화적·인류학적으로 심각한 미래가 보인다. 도시는 건물과 자연의 배치가 아니라 인류의 운명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장소이다. 고층아파트·상가·빌딩의 부동산 신상품으로 처음에는 각광 받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 비참해지는 암흑의 도시가 된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가들은 암흑 도시를 놓고 원안 고수·수정 관철을 외치며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들에게 신도시는 기술주의의 레고 쌓기, 자유주의의 도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이 달린 도시를 정치권력 쟁취를 위한 대용물로 착각하고 있는 한 한국은 엄청난 국고 낭비·재산 유실로 국토 황폐와 국가재정의 파산을 겪게 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계획안은 다른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아닌 건물집합소다. 수도권 과밀해소·균형발전은 이런 도시 건설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국토를 재벌기업에 헐값으로 넘겨 원형지 개발을 하는 것이나 터무니없는 행정수도를 운운하는 것 모두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고 차별을 조성하며 땅값만 치솟게 만드는 결과는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