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ㆍ시민이 중심돼야 도시·사회 발전
고대 도시는 13세기까지 귀족·성직자·시민의 계급체제로 균등한 사회공동체를 존속시켰다. 그러나 중세도시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농경사회의 절대군주도시에서 상업·교역사회의 고전도시로의 변화다. 도시에는 다양한 직업과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하게 한 부르주아라는 신흥부자들이 출현했다. 부르주아는 귀족신분이나 지식층이 아닌 평민이 장사로 벼락부자가 되어 귀족처럼 행세한 사람들로 오늘날 재벌과 같다. 부르주아의 출현은 빈부·계급차별의 사회체제를 만들어 산업도시로의 변화를 재촉했다. 그 당시 상업·무역으로 재산을 긁어모은 부르주아들은 ‘뚱보’, 일반 시민들은 ‘잔챙이’,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에 의해 굶주림과 병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비참한 사람들은 ‘레미제라블’로 불렸다.
18세기 철학자 루소(Rousseau)는 ‘인간불평등의 근거에 대한 강연’에서 이러한 차별사회에 대해 “사회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성장으로 도시는 화려한 고전시대로 발전했지만 빈부격차는 더러운 위생환경, 굶주림, 무책임, 물질지상주의의 사회를 조성했다. 도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회보다 죽어야 할 운명이 더 많았다. 루소는 사회에서 시민과의 ‘사회계약’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함을 역설했다. 즉 “국가는 시민들을 유복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 한다. 타락하거나 변질되지 않은 원칙의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민의 삶을 지키는 법과 원칙은 고수되어야 한다. 필요에 의해 법과 정책을 바꾸거나, 교묘하게 원칙을 속여 빠져나가거나, 법과 공권력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권력이나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정의의 실현이다”라고 말한다. 바로 ‘시민이 중심’이라는 원칙이 정치철학의 기본이며 생명인 것이다.
정부는 세계디자인수도 행사목적이 도시의 사회·문화·경제 발전과 삶의 질 향상, 또 조화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행사는 사회평등과 인간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학은커녕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억원의 인공섬과 수천억원의 청사건립은 권력남용의 오만과 위세다. 뉴타운·재개발로 시민들을 거리로 내쫓아 현대판 레미제라블을 만들면서 철학을 운운한다. 국토해양부·환경부·국토관리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가 만든 환경영향 평가서를 발표했는데 기준치 이하의 퇴적오염도 결과가 거짓이라 한다. 정부는 신문사와 KBS, YTN, MBC 등 임원들을 권력에 충성을 맹세하는 인물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모든 언론을 장악했다고 한다. 또 엄청난 금액의 기업주식을 불법매각·세금포탈·배임행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법자 재벌회장을 동계올림픽 유치 명목으로 4개월 만에 단독 사면했는데, 오히려 IOC 윤리위원회가 올림픽정신을 더럽혔다며 5년의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필요에 의해 원칙을 거부한 한국의 정치놀이가 국제사회에서 상식 이하로 들통 난 것이다.
정치철학을 수법으로, 전지전능한 권력으로 착각·악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항변과 이론의 여지없이 강행하는 독단의 단언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의 이성적 본질이다. 철학은 아부·추종세력이 단합한 결과가 아니라 정반대 사람들의 동의가 반드시 요구되는 정·반·합의 최후 결과다. 그래서 철학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실이며 개인이 아닌 세계와 인류만을 위해 존재한다. 한국의 정치는 철학이 망각되어 있다. 공공의 삶의 가치를 위한 원칙보다 권력쟁취를 위해 우익·좌익, 보수·진보의 편을 갈라 극단적인 분열사회를 조장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공공의 도시를 현대판 부르주아 재벌들의 독식장소로 제공하였다. 정경유착의 정치는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였기에 사회·경제·정치·문화·교육·자연생태 분야의 동시발전보다 신체불구자의 도시가 되었다. 도시발전을 핑계로 저지르는 권력자의 모든 거짓과 악용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의 정치만이 도시와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고대 도시는 13세기까지 귀족·성직자·시민의 계급체제로 균등한 사회공동체를 존속시켰다. 그러나 중세도시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농경사회의 절대군주도시에서 상업·교역사회의 고전도시로의 변화다. 도시에는 다양한 직업과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하게 한 부르주아라는 신흥부자들이 출현했다. 부르주아는 귀족신분이나 지식층이 아닌 평민이 장사로 벼락부자가 되어 귀족처럼 행세한 사람들로 오늘날 재벌과 같다. 부르주아의 출현은 빈부·계급차별의 사회체제를 만들어 산업도시로의 변화를 재촉했다. 그 당시 상업·무역으로 재산을 긁어모은 부르주아들은 ‘뚱보’, 일반 시민들은 ‘잔챙이’,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에 의해 굶주림과 병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비참한 사람들은 ‘레미제라블’로 불렸다.
중세도시는 고딕, 바로크 문화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장소가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광장이다. 고전주의 시대적 문화를 창출하려는 의지의 철학이 없었다면 이곳은 한국의 못생긴 초고층 빌딩 같은 건물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도시 탄생은 재벌들의 돈놀이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으로 가능하다.
18세기 철학자 루소(Rousseau)는 ‘인간불평등의 근거에 대한 강연’에서 이러한 차별사회에 대해 “사회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성장으로 도시는 화려한 고전시대로 발전했지만 빈부격차는 더러운 위생환경, 굶주림, 무책임, 물질지상주의의 사회를 조성했다. 도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회보다 죽어야 할 운명이 더 많았다. 루소는 사회에서 시민과의 ‘사회계약’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함을 역설했다. 즉 “국가는 시민들을 유복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 한다. 타락하거나 변질되지 않은 원칙의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민의 삶을 지키는 법과 원칙은 고수되어야 한다. 필요에 의해 법과 정책을 바꾸거나, 교묘하게 원칙을 속여 빠져나가거나, 법과 공권력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권력이나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정의의 실현이다”라고 말한다. 바로 ‘시민이 중심’이라는 원칙이 정치철학의 기본이며 생명인 것이다.
정부는 세계디자인수도 행사목적이 도시의 사회·문화·경제 발전과 삶의 질 향상, 또 조화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행사는 사회평등과 인간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학은커녕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억원의 인공섬과 수천억원의 청사건립은 권력남용의 오만과 위세다. 뉴타운·재개발로 시민들을 거리로 내쫓아 현대판 레미제라블을 만들면서 철학을 운운한다. 국토해양부·환경부·국토관리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가 만든 환경영향 평가서를 발표했는데 기준치 이하의 퇴적오염도 결과가 거짓이라 한다. 정부는 신문사와 KBS, YTN, MBC 등 임원들을 권력에 충성을 맹세하는 인물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모든 언론을 장악했다고 한다. 또 엄청난 금액의 기업주식을 불법매각·세금포탈·배임행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법자 재벌회장을 동계올림픽 유치 명목으로 4개월 만에 단독 사면했는데, 오히려 IOC 윤리위원회가 올림픽정신을 더럽혔다며 5년의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필요에 의해 원칙을 거부한 한국의 정치놀이가 국제사회에서 상식 이하로 들통 난 것이다.
정치철학을 수법으로, 전지전능한 권력으로 착각·악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항변과 이론의 여지없이 강행하는 독단의 단언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의 이성적 본질이다. 철학은 아부·추종세력이 단합한 결과가 아니라 정반대 사람들의 동의가 반드시 요구되는 정·반·합의 최후 결과다. 그래서 철학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실이며 개인이 아닌 세계와 인류만을 위해 존재한다. 한국의 정치는 철학이 망각되어 있다. 공공의 삶의 가치를 위한 원칙보다 권력쟁취를 위해 우익·좌익, 보수·진보의 편을 갈라 극단적인 분열사회를 조장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공공의 도시를 현대판 부르주아 재벌들의 독식장소로 제공하였다. 정경유착의 정치는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였기에 사회·경제·정치·문화·교육·자연생태 분야의 동시발전보다 신체불구자의 도시가 되었다. 도시발전을 핑계로 저지르는 권력자의 모든 거짓과 악용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의 정치만이 도시와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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