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실체는 이성과 합리를 원칙으로 간주하는 객관주의와 언어학으로 평가·판단한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주관성과 객관성으로 양분화되어 있다. 객관성은 대상의 실체를 합리적 논리로 밝혀내는 방법으로 인간의 통속적 감각, 감정을 중요시하는 주관성과 정반대다. 객관성에서 자연은 생태계 구조와 지구 미래를 거론하지만, 주관성에는 인간의 욕망으로 실상이 가려진 가상현실만 존재한다. 순수예술에서 주관성은 자유로운 무한한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을 의미하지만 시민의 삶을 만드는 도시와 건축이 욕망과 상상력에서 만들어진다면 인간 생명은 위협받는다.
언어학은 다양한 주제와 성격을 가진 도시 곳곳의 정체를 밝혀낸다. 장소의 형태·개념·역할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한다. 언어는 말의 음성기호와 개념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결합된 것으로 인류학을 발전시키는 매체다.
도시사회학에서 언어는 장소의 특성, 스타일, 이야기, 제작 과정, 잠재적 가치를 내포한 개념의 언어, 랑가쥬(Langage)다. 랑가쥬는 주어진 장소에 부합된 의미를 부여하여 장소에 함축된 자연감각·예술성·실용성을 증명한다. 도시는 단순하게 ‘웅장하다’ ‘멋있다’ 등의 말로 묘사되는 장소가 아니다. 장소·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삶이 함축되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위대한 인물, 찬란한 유적에는 역사적 배경, 상황, 이야기가 있듯이 도시는 그 장소만의 유일한 신비로움이 랑가쥬로 표현되어야 한다. 도시는 역사를 거치면서 ‘장소’와 ‘민족’이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로 존재해왔다. 수많은 유럽인의 성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지역 이름으로 되어 있다. 김해 김씨가 김해를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혈통의 근원지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생각 없이 사용되는 ‘기쁨공원, 만남의 광장, 통일로, 혁신도시’ 등의 명칭들은 장소의 실재적 의미가 함축된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골목·거리·마당·광장은 지역만의 특성과 의미의 랑가쥬가 부여되어야 진정한 도시가 된다. 어느 장소 이름이 어느 시대의 위인·전통·신화에서 유래되었다면, 그 사실을 증명하는 랑가쥬의 장소로 만들어져야 하며, 그런 장소가 많을수록 전 세계에서 찾는 신비의 도시가 된다.
한국 도시는 기호·명칭만 있을 뿐 랑가쥬가 없다. 도시 전체가 역사적·지리적 근거보다는 엉뚱한 글자·기업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 문화적 가치보다 기업 위주의 정치·사회체제임을 말해준다. 인간 삶의 장소가 관리기능을 목적으로 몇 동, 몇 호의 숫자, 익명과 기호로 정의된다면 가문과 부모 없이 태어난 사생아와 같다. 그런 건물들은 짧은 수명을 살다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심사숙고한 이름을 부여할 때 그 장소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성이 부여되어 자손 대대로 신비의 삶을 제공한다. 신비의 언어로 함축된 도시는 시대와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질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낯선 도시로 이사 오면 새로운 환경에 불안을 느낀다. 그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낯선 도시의 새로운 환경을 개척한다. 지역에 감춰진 전설, 건축양식, 특별한 것을 많이 알수록 나만의 동네가 되어간다. 또 새롭고 신비한 사건들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이내믹한 삶을 만들어간다. 도시는 신비의 장소다. 신비의 장소가 많을수록 낯선 곳은 고향, 고국이 되어 자손 대대로 삶의 활력과 애정이 변치 않는다. 도시의 신비는 혁신도시 건설의 정치행위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적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객관적 논리의 변증법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도시를 구성하는 골목, 거리, 건물, 공원, 광장은 물론 거리의 가로등, 벤치, 쓰레기통조차도 신비감이 나타나야 한다.
파리 튈르리 궁전 광장은 삶의 휴식, 평화, 자유, 문화라는 랑가쥬가 함축되어 있다. 튈르리는 ‘기와 굽는 가마솥’이란 뜻으로 13세기 이곳은 기와 공장이었다. 이후 프랑스 왕들의 화려한 궁전이었지만 ‘기와 굽는 곳’ 이름을 그대로 쓴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광장으로서의 개념·역할도 없거니와 왜 생겨났는지 기원, 이유, 목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기와 굽는 가마솥’의 뜻을 가진 파리 튈르리 궁전 광장.
도시사회학에서 언어는 장소의 특성, 스타일, 이야기, 제작 과정, 잠재적 가치를 내포한 개념의 언어, 랑가쥬(Langage)다. 랑가쥬는 주어진 장소에 부합된 의미를 부여하여 장소에 함축된 자연감각·예술성·실용성을 증명한다. 도시는 단순하게 ‘웅장하다’ ‘멋있다’ 등의 말로 묘사되는 장소가 아니다. 장소·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삶이 함축되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위대한 인물, 찬란한 유적에는 역사적 배경, 상황, 이야기가 있듯이 도시는 그 장소만의 유일한 신비로움이 랑가쥬로 표현되어야 한다. 도시는 역사를 거치면서 ‘장소’와 ‘민족’이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로 존재해왔다. 수많은 유럽인의 성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지역 이름으로 되어 있다. 김해 김씨가 김해를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혈통의 근원지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생각 없이 사용되는 ‘기쁨공원, 만남의 광장, 통일로, 혁신도시’ 등의 명칭들은 장소의 실재적 의미가 함축된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골목·거리·마당·광장은 지역만의 특성과 의미의 랑가쥬가 부여되어야 진정한 도시가 된다. 어느 장소 이름이 어느 시대의 위인·전통·신화에서 유래되었다면, 그 사실을 증명하는 랑가쥬의 장소로 만들어져야 하며, 그런 장소가 많을수록 전 세계에서 찾는 신비의 도시가 된다.
한국 도시는 기호·명칭만 있을 뿐 랑가쥬가 없다. 도시 전체가 역사적·지리적 근거보다는 엉뚱한 글자·기업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 문화적 가치보다 기업 위주의 정치·사회체제임을 말해준다. 인간 삶의 장소가 관리기능을 목적으로 몇 동, 몇 호의 숫자, 익명과 기호로 정의된다면 가문과 부모 없이 태어난 사생아와 같다. 그런 건물들은 짧은 수명을 살다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심사숙고한 이름을 부여할 때 그 장소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성이 부여되어 자손 대대로 신비의 삶을 제공한다. 신비의 언어로 함축된 도시는 시대와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질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낯선 도시로 이사 오면 새로운 환경에 불안을 느낀다. 그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낯선 도시의 새로운 환경을 개척한다. 지역에 감춰진 전설, 건축양식, 특별한 것을 많이 알수록 나만의 동네가 되어간다. 또 새롭고 신비한 사건들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이내믹한 삶을 만들어간다. 도시는 신비의 장소다. 신비의 장소가 많을수록 낯선 곳은 고향, 고국이 되어 자손 대대로 삶의 활력과 애정이 변치 않는다. 도시의 신비는 혁신도시 건설의 정치행위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적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객관적 논리의 변증법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도시를 구성하는 골목, 거리, 건물, 공원, 광장은 물론 거리의 가로등, 벤치, 쓰레기통조차도 신비감이 나타나야 한다.
파리 튈르리 궁전 광장은 삶의 휴식, 평화, 자유, 문화라는 랑가쥬가 함축되어 있다. 튈르리는 ‘기와 굽는 가마솥’이란 뜻으로 13세기 이곳은 기와 공장이었다. 이후 프랑스 왕들의 화려한 궁전이었지만 ‘기와 굽는 곳’ 이름을 그대로 쓴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광장으로서의 개념·역할도 없거니와 왜 생겨났는지 기원, 이유, 목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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