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치공약 아닌 역사·문화 뒷받침된 도시 재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종시의 모델이라는 드레스덴은 황무지에 건설한 신도시가 아니다. 18세기 유럽 북부의 역사·문화 중심지였다. 과학·산업 분야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사·문화·교육 등 인간 삶을 중시하는 도시사회적 요인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정권의 정치 공약인 세종시를 독일 작센 주의 수도 드레스덴을 모델삼아 50만명 규모의 과학·기업·교육도시로 최종 확정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예상 고용치가 약 25만명, 사업비는 약 23조원이라고 한다. 드레스덴의 규모와 성격 중 첨단과학 도시로의 입지 조건과 성공이 모델로 결정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드레스덴은 세종시처럼 정치 공약으로 황무지에 건설한 신도시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돼 1990년 완전 복원했는데, 드레스덴은 1000여년 전 작은 농어촌에서 기원했다. 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의 고전도시로 유럽 북부의 피렌체로 여겨진 역사·문화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과학·산업 분야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역사·사회·교육 같은 요인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시에는 아무것도 없다. 역사·지리·민속적 특성은 커녕 다른 지역과 똑같은 건물들뿐이다. 인간 삶이 중심 되는 도시사회학적 조건이 부재한 도시일 뿐이다. 세종시는 드레스덴보다 69년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설립된 첨단과학단지 소피아안티폴리스에 더 가깝다.
이 과학단지는 약 6400㏊ 규모로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전자·통신·항공·의료 등 수백 가지 분야의 1400개 연구소와 대학, 1300개의 기업, 3만명의 상시 고용인이 모인 유럽의 실리콘밸리다. 경제·과학 분야의 특수 목적 도시인 이 단지는 5가지 개념이 핵심이다. (1)세계 최첨단 기업유치를 위한 연구개발 조건 (2)과학지식을 서로 공유하는 협력 관계 (3)최첨단 과학 교육 (4)삶의 질 향상을 위한 레저·오락·문화시설 (5)지중해의 문화·역사 도시와의 연계를 통한 도시생활의 다이내믹이다.
두 도시의 개념이 다른데, 도시는 어떤 기준과 관점으로 인식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도시는 인구·지역 특성에 따라 동네·마을·소도시·메트로폴리스로 구분하지만 본질은 휴머니즘의 집합체다. 즉 도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이기에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들이 서로 공유·동의되어야 정상적인 사회 여건이 조성된다. 예를 들면 지리학자는 도시를 거대한 땅의 영토로 보지만 정치가들은 선거공략의 터전으로 본다. 경제인들은 도시를 현물거래, 이익창출 시장으로 본다. 과학자들은 도시를 복잡한 공식으로 단번에 측정해 수치 결과만을 강조하며, 물질적 몸체를 잘 만들면 사회는 저절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건설업자와 정치가들은 도시를 그들만의 상징적 의미가 함축된 존재로 간주해 그 상징을 건설로 남기길 원한다. 언론인들은 도시를 불황·범죄·폭동 등 사건과 문제의 장소로 평가한다. 그래서 때론 사건 본질보다 부정과 정의의 묘사가 더 중요하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도 서사적 명분을 찾아 장황히 설명한다. 인문과학자들은 도시는 사회적 경험과 원인으로 존재·발전한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도시의 모든 분야는 공유되고,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인구집중, 지역불균등의 발생은 개인·사회공동체의 삶이 아니라 경제시스템으로 도시를 이해한 결과다. 도시는, 개발은 물론 변경·수정도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스며들게 하는 것처럼 오랜 기간의 경험과 심사숙고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지나간 바다의 흔적과 물결을 보고 배의 기능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건설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추측한 모든 분야와 연계된 시나리오가 제시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의 시나리오가 없는 정치공약의 세종시는 중단되어야 한다. 특정 분야의 관점으로 해석·강행한다면 세종시는 투기돌풍만 일으켜 국가를 황폐하게 만들고 금세 죽어버리는 시한부 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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