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도시건축학자 테오도르 폴 김 박사(51·사진)의 ‘테오도르 폴 김의 도시·사회·시민 이야기’를 주 1회 문화면에 연재합니다. 김 박사는 프랑스 국립건축그랑제콜에서 건축·인문사회학·조형예술을 공부한 뒤 도시계획과 건설 프로젝트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시대의창)에서 권력·재벌만을 위한 한국 도시·건설의 실상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받았습니다. 김 박사는 연재를 통해 인문학·사회과학과 예술, 공공이익의 관점으로 도시·건설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건설공학이 아니라 인문과학의 토대 위에 들어서는 도시가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가. 문제의 핵심에는 도시가 있다. 한국의 도시는 맥락과 조화·질서가 없다. 전국은 아파트와 상가로 가득찬 부동산 투기의 왕국이 되었다. 도시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 요인들은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다. 국민 과반수가 내집 없는 시민들이다. 그들의 설움과 가난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요 20개국(G20) 회원, 경제대국이라는 외형적 성과만을 더 중시한다. 균등한 풍요로움보다는 불균등의 빈곤, 가난의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600년 역사의 서울 문화를 증명할 실체와 장소는 다 사라졌다. 조상들의 피땀이 서려 있고 영혼이 느껴졌던 피맛골, 북촌, 육조거리 같은 삶의 장소는 송두리째 증발됐다. 공사현장에서 많은 유적이 나오지만 그 유적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무슨 장소였는지 역사·지리학자들조차 무지하다. 그곳은 부동산 거품의 빌딩으로 꽉 채워진다.
공공성이 파괴됐다. 가장 큰 문제다. 도시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적 장소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권력과 재력가들이 독차지하는 영역이었기에, 도시는 시민 중심이라는 실존적 개념을 이해 못하고 있다. 주거공간은 시민의 개인 삶을, 도시는 시민의 공동생활을 보장하는 곳이다. 돈으로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이 주제가 되는 사회학적 원칙 대신 물질만능주의·자본주의의 모순과 행정부의 독선적 정책에 지배·조정되고 있다.
그 결과 콘크리트 집합체인 청계천, 광화문광장 등이 불쑥 생겨났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은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데도 ‘신도시 만세’를 외치며 전 국토를 마구 훼손한다. 지금의 신도시는 아파트·상가 같은 부동산 신상품으로 꽉 채워진, 거품경제·투기의 폭풍을 일으키고 금세 사라질 유령의 도시일 뿐이다. 정치공약의 산물인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광대한 국토를 불도저로 밀어 파괴하고 지금에 와서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다. 4대강 사업은 강을 살리기 위한 것인지, 자연생태 훼손인지, 부동산 투기사업인지 검증도 못한 채 막대한 예산통과만 주요 쟁점이 됐다. 또 시민공원 건설을 이유로 시민을 추운 겨울에 강제로 길거리로 내쫓거나, 학교에서 굶고 있는 가난한 어린이를 위한 무상급식을 포퓔리슴으로 단정하는 해괴망측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 중에서 한국 사회의 실태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극명한 예는 용산참사다. 용산참사는 행정기관이 시민 생존권과 공공의 안녕보장의 직무·의무를 유기하고 기업과 유착한 결과다. 개발사업의 경제 이익만 추구해 빚어진 비극이다. 몇몇 사람들은 보상금을 노리고 화염병을 던진 불법 과격투쟁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과 책임은 시민 중심의 사회개념을 망각한 행정부에 있다. ‘도시는 인간이 중심’이라고 명령하는 사회학·인류학·정치학과 법의 사유를 팽개쳤기에 시민의 생명마저 죽음으로 내쳐버린 것이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역세권 개발사업을 재벌집단이 빨리 추진할 수 있도록 지역 주인인 시민을 몰아내려 압력을 행사한 결과다. 시민 보호라는 민주주의 정신을 배반한 정부는 결국 전제주의 권력을 행사해 시민 중심의 사회 자체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정부가 해결해야 할 근본 쟁점을 기업들이 돈으로 해결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행정권한은 과대망상의 권력자·재벌·범죄자들의 횡포·폭력에서 생존권을 보호해달라고 시민들이 투표로 부여한 것인데, 왜 거꾸로 시민을 위협하는 데 사용하는가? 왜 한국 민주주의는 특권층과 기업 중심의 사회체제를 숭배할 뿐 약한 서민에게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인가? 시민 생존권을 무시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영토와 다름없다. 시장경제와 부동산의 수요 공급 논리만이 적용되는, 재력과 권력자들의 소유물이다.
정상 사회는 정치·문화·사회·과학·경제·예술·종교 분야가 시민 사생활의 ‘마이크로코즘(microcosm·소우주) 세계’와 공공생활의 ‘매크로코즘(macrocosm·대우주) 세계’가 보장되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은 재벌이 독점게임인 경제놀이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도시는 부자들의 재산축적과 욕망을 과시하는 곳이 됐고, 타인은 없고 오직 나만 존재하는 이기적 물질지상주의가 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형식과 외형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를 치료하기 위한 도시·사회학적 방법론을 제시하려고 한다. 1장 인문사회과학적 관점, 2장 예술철학과 인류학적 관점, 3장 사회학적 주요인 분석으로 전개될 것이다.
2009년, 우리는 금융위기 등 불안정한 사회 요인으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고통의 경험이 산지식이 되어 이런 일들을 되풀이하지 않고, 번영과 발전의 새해로 도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가. 문제의 핵심에는 도시가 있다. 한국의 도시는 맥락과 조화·질서가 없다. 전국은 아파트와 상가로 가득찬 부동산 투기의 왕국이 되었다. 도시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 요인들은 기능과 역할을 상실했다. 국민 과반수가 내집 없는 시민들이다. 그들의 설움과 가난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요 20개국(G20) 회원, 경제대국이라는 외형적 성과만을 더 중시한다. 균등한 풍요로움보다는 불균등의 빈곤, 가난의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600년 역사의 서울 문화를 증명할 실체와 장소는 다 사라졌다. 조상들의 피땀이 서려 있고 영혼이 느껴졌던 피맛골, 북촌, 육조거리 같은 삶의 장소는 송두리째 증발됐다. 공사현장에서 많은 유적이 나오지만 그 유적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무슨 장소였는지 역사·지리학자들조차 무지하다. 그곳은 부동산 거품의 빌딩으로 꽉 채워진다.
한국의 도시와 주거 공간은 ‘부동산 신상품’으로 들어차면서 개인의 삶과 공동생활을 보장하지 못한 채 사고파는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아현3지역 뉴타운 재개발 현장 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 결과 콘크리트 집합체인 청계천, 광화문광장 등이 불쑥 생겨났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은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데도 ‘신도시 만세’를 외치며 전 국토를 마구 훼손한다. 지금의 신도시는 아파트·상가 같은 부동산 신상품으로 꽉 채워진, 거품경제·투기의 폭풍을 일으키고 금세 사라질 유령의 도시일 뿐이다. 정치공약의 산물인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광대한 국토를 불도저로 밀어 파괴하고 지금에 와서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다. 4대강 사업은 강을 살리기 위한 것인지, 자연생태 훼손인지, 부동산 투기사업인지 검증도 못한 채 막대한 예산통과만 주요 쟁점이 됐다. 또 시민공원 건설을 이유로 시민을 추운 겨울에 강제로 길거리로 내쫓거나, 학교에서 굶고 있는 가난한 어린이를 위한 무상급식을 포퓔리슴으로 단정하는 해괴망측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 중에서 한국 사회의 실태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극명한 예는 용산참사다. 용산참사는 행정기관이 시민 생존권과 공공의 안녕보장의 직무·의무를 유기하고 기업과 유착한 결과다. 개발사업의 경제 이익만 추구해 빚어진 비극이다. 몇몇 사람들은 보상금을 노리고 화염병을 던진 불법 과격투쟁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과 책임은 시민 중심의 사회개념을 망각한 행정부에 있다. ‘도시는 인간이 중심’이라고 명령하는 사회학·인류학·정치학과 법의 사유를 팽개쳤기에 시민의 생명마저 죽음으로 내쳐버린 것이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역세권 개발사업을 재벌집단이 빨리 추진할 수 있도록 지역 주인인 시민을 몰아내려 압력을 행사한 결과다. 시민 보호라는 민주주의 정신을 배반한 정부는 결국 전제주의 권력을 행사해 시민 중심의 사회 자체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정부가 해결해야 할 근본 쟁점을 기업들이 돈으로 해결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행정권한은 과대망상의 권력자·재벌·범죄자들의 횡포·폭력에서 생존권을 보호해달라고 시민들이 투표로 부여한 것인데, 왜 거꾸로 시민을 위협하는 데 사용하는가? 왜 한국 민주주의는 특권층과 기업 중심의 사회체제를 숭배할 뿐 약한 서민에게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인가? 시민 생존권을 무시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영토와 다름없다. 시장경제와 부동산의 수요 공급 논리만이 적용되는, 재력과 권력자들의 소유물이다.
정상 사회는 정치·문화·사회·과학·경제·예술·종교 분야가 시민 사생활의 ‘마이크로코즘(microcosm·소우주) 세계’와 공공생활의 ‘매크로코즘(macrocosm·대우주) 세계’가 보장되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은 재벌이 독점게임인 경제놀이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도시는 부자들의 재산축적과 욕망을 과시하는 곳이 됐고, 타인은 없고 오직 나만 존재하는 이기적 물질지상주의가 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형식과 외형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를 치료하기 위한 도시·사회학적 방법론을 제시하려고 한다. 1장 인문사회과학적 관점, 2장 예술철학과 인류학적 관점, 3장 사회학적 주요인 분석으로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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