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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도시·사회·시민 이야기](6) 심장이 없는 도시는 미래도 없다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kim@orange.fr

ㆍ도시 근원지에 대한 보존 없이 한국은 도시 팽창에만 급급
신도시·혁신·과학도시 건설보다 도시와 연속된 지방 발전 필요

도시는 고대도시 폴리스(Polis), 시티바스(Citivas), 시테(Cite)에서 출발하여 중세도시, 산업도시 그리고 현재의 메트로폴리탄으로 발전했다. 유럽의 고대도시는 지역마다 고유의 법·풍습·정치·사회가 형성된 독립체로 도시 둘레를 돌로 쌓은 성곽, 정치 포럼, 성당, 광장이 주 요소다. 서양 역사와 문화의 발상지인 시테의 지리·사회·민속환경은 오늘날 역사와 문화를 잉태, 탄생한 도시의 근원지로 영어의 시티와 개념이 다르다. 17세기 이후 건설된 미국·캐나다와 같은 신생국가에는 시테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은 조선시대에 4대문과 성으로 둘러싸인 시테였다. 유럽 고대 로마도시와 같은 맥락의 완벽한 도시였지만 오늘날 그 도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상의 지혜로 완성된 보물을 정치권력에 미쳐버린 무지막지한 후세들이 땅 장사꾼에게 팔아먹은 것이다.

인구 약 220만명의 파리 도심은 1200만명의 5개 외곽 도시를 총괄하는 구심점이자 심장이다. 이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도시의 생명력은 같은 맥락의 축을 따라 외곽 전체로 퍼져 하나의 도시를 이룬다.

시테는 도시의 모태이자 생명의 중심인 심장이다. 그 심장에는 도시 본질을 암시하는 건축, 시민사회, 도시사회학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건축가들에게 도시는 맥락·조화·경계의 개념이 준수되는 장소로 제멋대로 잘난 척하는 여러 개체들의 집합장소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유기체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조각난 징표를 서로 맞추어 한 핏줄의 가족인지 판단했던 것처럼, 도시는 지역 조각들이 모여 한 형체로 맞춰지는 장소였다. 그리고 도시마다 고유의 색상·스타일·유행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와 같은 ‘인터벌 공간’이 요구되었다. 시민들에게 도시는 공공생활의 품위·도덕의 사교 장소,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기쁨과 원동력을 선사하는 축제와 파티의 무대였다. 또 조상들의 유산·자산이 공공자산으로 후손에게 상속될 수 있도록, 개인과 기업이 독차지하지 못하게 국가가 지켜줘야 했다. 도시사회학 분야의 학자들은 도시를 그 모양, 사회관행, 공동체로 정의한다. 도시는 도시를 구성하는 부피와 면적의 영역이 자연환경과 교통·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조건이 충족되어야 도시로서의 모양이 형성된다. 행정관리·구획·재건설보다는 인구, 시민의 일생생활, 사회분야가 도시형성의 더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관행은 시민들의 사회활동·관습으로 도시 모양과 사회 체제에 따라 다르다. 도시의 사회관행을 보면 그 도시가 어떤 유형의 사회인지, 인간관계와 공공의식은 어떤지 판단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공중도덕과 예의가 없는 사회라면 그 도시에 무질서와 이기주의만 존재함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공동체는 시민의 공공활동으로 그 도시의 존재 여부를 판단한다. 시민공동체의 활동, 존재 여부는 도시의 가치, 사회발전을 결정하는 주 요인으로 도시형태·사회관행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구 수 천명의 옛 도시가 보존되어 1000여 만 명의 메트로폴리탄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칙은 무엇이며, 점점 더 커져가는 현재 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인문학자들은 도시의 변화를 언급할 때 보편타당성, 포괄적 공통성의 원칙을 강조한다. 보편타당성이란 한계가 분명한 기존 도시의 영토·구조 안에서 인구·자연·사회적 요소들이 합리적으로 어울려야 하는 원칙이다. 즉 도시가 팽창되는 원인은 지방이 대도시만큼의 보편타당성이 무시된 지역차별의 결과이므로 신도시 건설보다 지방을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혁명으로 급격하게 팽창한 근세의 대도시는 일자리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몰려드는 인구의 주택부족 해결에만 급급했기에 도시 근원지를 마구 변형하여 건설을 추진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런데 21세기인 아직까지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도시 근원지를 파괴하고 가도 가도 도시의 끝이 보이지 않는 건설을 강행하는 심각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이 현상은 유럽의 주요 역사적 도시들이 도시 근원지를 엄격히 보존하고 도시외곽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과 근본이 다르다. 도시의 올바른 성장은 도시 근원지가 구심점이 되어 도시 중심의 맥락이 외곽으로 연속되어야 한다. 도시의 심장은 없고 신도시·혁신·과학 등의 극단적 용어만을 고집한다면 그 도시는 곧 죽음의 도시가 된다. 서울의 심장인 강북을 원래대로 복원하지 않고 강남처럼 부동산 집합체로 만든다면, 심장과 영혼이 없이 수십여년마다 피폐해져 새것으로 갈아치워야 하는 인조인간의 도시일 뿐이다. 전국의 각 도시가 짚신을 신고 소달구지 타고 다녀도 어울리는 옛날 옛적의 도시 중심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의 심오하고 신비로운 도시의 미래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