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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도시·사회·시민 이야기](12)생명력 없는 ‘디자인 수도’는 ‘소모품 도시’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서울시는 디자인의 성과를 인정받았기에 2010년 세계 도시들과의 경쟁을 통해 세계디자인수도로 서울이 선정됐다고 한다. 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같은 디자인사업을 통해 서울디자인 발전에 대한 서울시의 확고한 의지·정책성·시정개발계획에 국제적인 인증·관심을 받으려 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는 인류 역사와 문화의 총체적 장소이지 상품이 아니다. 세계디자인수도협회라는 사립단체가 감히 다른 도시와 비교·심사해서 선정할 수 없으며, 도시에 국제적 인증을 부여해 평가한다는 것 자체도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다. 따라서 서울시의 이 행사는 업적과시·홍보를 위해 세계디자인수도협회라는 단체를 이용한 것밖에 그 이상의 의미도 가치도 없다.

도시의 정체성은 기괴한 건축물의 건설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준수하는 디자인으로 형성된다. 로마 바티칸 시는 세계인들에게 삶의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정체성은 바로 도시의 연속성과 맥락에서 나타난다.


도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같은 건물 수십 개를 만든다고 해서 세계디자인수도로 평가될 수 없으며 평가돼서도 안된다. 이런 건물들의 출현은 600년 서울 역사에 전혀 무지한 어느 외국인에게 국민의 혈세를 설계비로 지급하면서 영광의 감사패까지 수여하는 꼴불견의 결과만 자초할 뿐이다. 서울시가 동대문이라는 장소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인수도가 되고자 했다면, 외국인보다 한국의 역사·사회·민속학자들에게 동대문의 수백년에 걸친 역사적 흔적과 동기를 찾아 재건해야 했을 것이다. 도시가 무엇인지 기본개념조차 무지한 서울시는 하나의 맥락을 가진 서울이 아니라 괴상한 모양의 건물들을 이곳저곳에 세워 파면으로 파열된 도시로 변질시키고 있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도시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도시의 생명력은 시간을 초월해 수천 년이 지나도 같은 장소로 존재하는 불변성에서 탄생한다. 유럽의 성당·시청·광장 등의 장소들이 수세기가 지나도 계속 같은 모양의 공공장소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다. 도시의 생명력은 박물관에 가둬놓은 유물이나 바리케이드로 막아 놓은 유적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고궁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들이 수백 년 동안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살아가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 간혹 건설허가의 조건으로 건축물 존치기간을 50년으로 요구하는데, 이는 건축을 인간의 삶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생명력의 장소로 간주하는 것보다 시한부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기 때문이다. 건축은 내부구조와 겉을 싸고 있는 재료들이 낡아 안전에 위험한 시기까지만 존재하고 그 다음 재건축·재개발로 당연히 사라지는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도시는 문화와 역사의 흐름에 공존하는 유기체가 아니라 사용하다 낡으면 새것으로 갈아 치우는 소모품으로 채워져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건물에서의 삶이 황폐해져서 재개발한다는 것은 그 건물이 처음부터 인간의 삶을 위해 태어난 장소가 아니라 공급과 수요의 거래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의 생명력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바로 도시의 맥락을 형성하는 일치·조화의 개념에서 만들어진다. 조화는 한 장소에 색상·높이·재질이 같은 건물을 세웠거나 똑같은 건축양식·유행의 건물들을 모아놓았다고 형성되지 않는다. 다른 목적의 건물들과 그 지역의 도시·자연환경이 하나가 돼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지속해야 가능하다. 즉 도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인간의 감정과 본질이 동시에 존재하는 예술철학의 주관성과 객관성, 감각과 관념으로 정의돼야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추구된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데카르트, 칸트, 부르디외 등의 철학·인문사회학적 사유를 통해 도시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도시의 디자인은 도시 전체를 한 맥락으로 전제한 마스터플랜으로 추진해야 제멋대로 생긴 건물들은 스스로 퇴출돼 조화가 형성된다. 이런 원칙 없이 마구 건설되는 대형 고층빌딩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불상사의 잔해로 간주될 뿐이다.

600년 역사를 가진 서울로 복원하지 않고 불협화음의 건물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것은 도시 디자인의 기본개념조차 보지 못하는 눈 먼 인간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제멋대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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