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수경이라고, 대학 때 잠깐 만난 여자인가 ?
ㆍ“생명이란 말로 수경스님 전화땐 팍 죽고 싶어…
ㆍ평화라는 말로“도법스님 전화땐 막 싸우고 싶어… 하하”
한 이년 정신분석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내가 사람으로 인해 병들고 상처 입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되돌려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만 치유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꼭 사람이 아니라 해도 생명을 기르고 사랑하는 일이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둑에 골몰하거나 개를 기르거나 축구 혹은 나무 키우기에 미쳐버린 사람에게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함께하는 생명이 있으면 그건 좋은 일이다. 중독이라는 말은 인간이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 집착하는 일을 일컫는 것, 그것이 게임이든 약물이든 술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고 있던 낙장불입 시인에게도 그런 치유의 시기가 다가온다. 밥집 할머니의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특이한 모습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로의 남자 한 사람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낙장불입 시인 아니십니까?”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초로의 남자는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쓰신 책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잔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산골에서 그를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그가 쓴 책으로 인해 인생을 바꾼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재빨리 그간 발간한 시집의 제목들이 지나갔다. 그간 돈 안 되고 명예도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이토록 뿌듯한 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시인 체면에 쑥스럽게 그 시집이 뭐였죠, 라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동스러운 술자리가 한 시간쯤 이어졌을 무렵 초로의 남자는 그곳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냈다.
“자네 인사드리게. 낙장불입이라는 분이셔. <육담>이라는 명작의 저자이시지.” 요즘 아이들 말로 ‘뭥미’적 사태였다. <육담>이라면… 그건 그가 기자 시절 팔도를 돌며 채집한 전래 음담패설 연재를 묶은 책이었다. 아마 부제가 ‘팔도음란서생들의 남녀상열지사’였을 것이다. 눈앞에서 그를 존경의 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초로의 신사는 그 책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으나 그 후로도 여러 번 그 훌륭한 책, <육담>의 저자 아니신가, 하며 그를 반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셔야 했다. 어쨌든 그는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긴 한 것이다.
그 무렵 수경이라는 사람이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그에게 전달되었다. 실상사 근처 선방에 있다는 정보도 함께였다. 수경이라니, 대학 때 잠깐 만났던 여자인 것 같기도 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굳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가 연락을 반겼을 리는 없었다. 얼마 후 그는 서울 조계사에 들렀다가 수경이라는 사람이 지금 그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여쁜 여자를 생각하며 방문을 열자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의 스님이 앉아 있었다. 스님은 말없이 잔을 두 개 꺼내 놓고 품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무언가를 꺼내 찻잔에 탔다. 당연히 차라고 생각한 그는 스님이 내미는 잔을 들어 마셨다. 입 안에 흙탕물이 가득 번졌다. 삼키지 못하고 기침을 하는 그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수경 스님이 말했다.
“지리산에 의탁해 사는 사람이 지리산 흙 맛도 모르나? 도법이라는 실상사 주지가 나를 꼬드겨 선방에서 나온 지 두어 달 되었네. 지리산을 살려야겠네. 함께해주게.” 수경 스님은 그 자리에서 실상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일부터 일꾼 하나가 이사 갈 테니 방 하나 치워놓게.”
다음날 그는 오토바이에 그의 전 재산을 담은 박스를 하나 싣고 실상사 뒷방으로 이사 간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시작된 일이 지리산 살리기 도보 순례, 낙동강 살리기 도보 순례, 지리산 살리기 생명 운동, 새만금 살리기 삼보 일배, 생명 평화 전국 순례, 생명 평화 오체투지 순례 등 이만 오천리를 걷는 십년에 걸친 장정으로 이어질지 몰랐을 것이다. 하기는 아마 수경 스님인들 그걸 미리 아셨을까. 그리고 이것이 십년째인 올해 끝나기는 할까. 이럴 때는 우리가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힘들지 않아? 순례에서 돌아온 그에게 내가 바보같이 물으면 그는 대꾸하곤 했다. “생명 평화 이제 말만 들어도 지겨워. 생명이라는 말로 수경 스님이 전화하시면 팍 죽고 싶어. 평화 집회라고 도법 스님 전화하시면 마누라랑 막 싸우고 싶다니까…하하.”
그는 정말로 힘들다는 듯 농담을 했지만 다음날 또 수경 스님이나 문규현 신부님의 오체투지 행렬에 깃발을 들고 서 있다. 나도 가끔 그 행렬의 곁에 가보면 낙 시인은 스님의 상한 무릎과 문 신부님의 부어터진 발을 만져드리다가 가슴이 아파서 밥도 못 먹고 눈물을 흘리며 걷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잘 먹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던 일관성의 평화를 잃고 괴롭다. 어쩌면 생명에도 약간 지장이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낙 시인이 이렇게 나의 평화를 깨는 일에 앞장서는 데는 새로 만난 그의 각시도 큰 몫을 했다. 외로운 남녀가 서로 눈 맞아 사랑을 시작하는 일이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걸 10세 이상인 사람은 알 것이다. 역시 시인에게 다시 사랑은 오고 사랑이 오자 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행여/ 이승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마른 갈잎이 흔들리면/ 그 잎으로 그대의 이름을 썼다” 소설가의 연인이 되면 코 후비는 버릇이나 실수한 이야기가 공개될 확률이 높은데 시인의 연인이 되면 이런 대접을 받는다.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다니…. 이 시의 뒷부분은 한 술을 더 뜬다. “별자리들이 그대의 이름으로 바꾸어 앉는 밤…복숭아 뼈에 새겨진 그 이름” 시만 읽으면 좋은데 시인과 그 부인을 알고 읽으면 슬그머니 부럽고 얄밉다.
그의 각시가 된 고아르피엠(高RPM) 여사는 그저 문학을 좋아하는 아줌마였다. 대학원 선생을 따라 실상사에 다니러 왔다가 낙 시인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나중에 낙 시인이 실상사를 나와 섬진강 가에 거처를 마련하자 그곳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날 마침 낙 시인의 집에는 서울서 내려온 동료 문인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고아르피엠 여사는 낙 시인을 불러 서울서 손수 마련해온 것을 건넸다. 고운 이부자리였다. 언젠가 낙 시인의 거처에 낡아빠진 담요 몇 장만 뒹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지리산에 다니러 오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멀리서 창문으로 이를 바라보던 소설가가 한마디했다.
“저 여자 누구야? 요새 지리산에서는 여자들이 연장을 손수 지고 다니냐?” 그로부터 낙 시인의 각시가 된 고아르피엠 여사는 이불 때문에 톡톡히 곤욕을 치른다. “결국 그 이불 덮고 같이 살자는 말이었지?” 사람들은 세세연년 버전을 바꾸어 두 사람을 놀려대고 낙 시인은 그냥 웃기만 하는데 낙 시인보다 대범한 고 여사는 이상하게도 펄쩍 뛴다. 우리의 추측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순간이다.
낙 시인은 그런 고 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순례를 떠났다. 운동의 운자도 모르던 고 여사는 이제 지리산 일대의 유명인이다. 얼마 전 이야기 끝에 물어보니 높은 아르피엠답게 직함이 7개란다. 다 생명 평화 뭐 이런 골치 아픈 일일 것 같아 내 일신의 소소한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이런 운동에 앞장서는 스님들과 신부님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결 각박해졌다. 한 번은 스님과 신부님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서울 모처에서 누가 찾아왔다. “고매하신 분들 두루두루 몸조심하십쇼. 여자문제며 이런 거 저희가 다 조사 들어갔습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한 신부님이 격노하셨다.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여자문제가 어쩌고 어째?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치자. 너희 놈들은 마누라하고 날마다 하면서 평생 한두 번 한 걸 걸고넘어진다고? 이 치사하고 나쁜 놈들!!”
그러자 거짓을 참지 못하는 낙 시인이 신부님 곁에 가서 말했다. “신부님, 아무리 그래도 틀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결혼했다고 날마다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웃음보를 터뜨리는데 스님과 신부님들은 진지하게 낙 시인에게 물었다. “정말?”
ㆍ“생명이란 말로 수경스님 전화땐 팍 죽고 싶어…
ㆍ평화라는 말로“도법스님 전화땐 막 싸우고 싶어… 하하”
한 이년 정신분석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내가 사람으로 인해 병들고 상처 입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되돌려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만 치유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꼭 사람이 아니라 해도 생명을 기르고 사랑하는 일이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둑에 골몰하거나 개를 기르거나 축구 혹은 나무 키우기에 미쳐버린 사람에게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함께하는 생명이 있으면 그건 좋은 일이다. 중독이라는 말은 인간이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 집착하는 일을 일컫는 것, 그것이 게임이든 약물이든 술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던 낙장불입 시인은 지리산에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시인(오른쪽)이 2008년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도보 순례단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 걷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제공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고 있던 낙장불입 시인에게도 그런 치유의 시기가 다가온다. 밥집 할머니의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특이한 모습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로의 남자 한 사람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낙장불입 시인 아니십니까?”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초로의 남자는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쓰신 책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잔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산골에서 그를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그가 쓴 책으로 인해 인생을 바꾼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재빨리 그간 발간한 시집의 제목들이 지나갔다. 그간 돈 안 되고 명예도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이토록 뿌듯한 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시인 체면에 쑥스럽게 그 시집이 뭐였죠, 라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동스러운 술자리가 한 시간쯤 이어졌을 무렵 초로의 남자는 그곳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냈다.
“자네 인사드리게. 낙장불입이라는 분이셔. <육담>이라는 명작의 저자이시지.” 요즘 아이들 말로 ‘뭥미’적 사태였다. <육담>이라면… 그건 그가 기자 시절 팔도를 돌며 채집한 전래 음담패설 연재를 묶은 책이었다. 아마 부제가 ‘팔도음란서생들의 남녀상열지사’였을 것이다. 눈앞에서 그를 존경의 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초로의 신사는 그 책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으나 그 후로도 여러 번 그 훌륭한 책, <육담>의 저자 아니신가, 하며 그를 반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셔야 했다. 어쨌든 그는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긴 한 것이다.
그 무렵 수경이라는 사람이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그에게 전달되었다. 실상사 근처 선방에 있다는 정보도 함께였다. 수경이라니, 대학 때 잠깐 만났던 여자인 것 같기도 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굳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가 연락을 반겼을 리는 없었다. 얼마 후 그는 서울 조계사에 들렀다가 수경이라는 사람이 지금 그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여쁜 여자를 생각하며 방문을 열자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의 스님이 앉아 있었다. 스님은 말없이 잔을 두 개 꺼내 놓고 품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무언가를 꺼내 찻잔에 탔다. 당연히 차라고 생각한 그는 스님이 내미는 잔을 들어 마셨다. 입 안에 흙탕물이 가득 번졌다. 삼키지 못하고 기침을 하는 그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수경 스님이 말했다.
“지리산에 의탁해 사는 사람이 지리산 흙 맛도 모르나? 도법이라는 실상사 주지가 나를 꼬드겨 선방에서 나온 지 두어 달 되었네. 지리산을 살려야겠네. 함께해주게.” 수경 스님은 그 자리에서 실상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일부터 일꾼 하나가 이사 갈 테니 방 하나 치워놓게.”
다음날 그는 오토바이에 그의 전 재산을 담은 박스를 하나 싣고 실상사 뒷방으로 이사 간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시작된 일이 지리산 살리기 도보 순례, 낙동강 살리기 도보 순례, 지리산 살리기 생명 운동, 새만금 살리기 삼보 일배, 생명 평화 전국 순례, 생명 평화 오체투지 순례 등 이만 오천리를 걷는 십년에 걸친 장정으로 이어질지 몰랐을 것이다. 하기는 아마 수경 스님인들 그걸 미리 아셨을까. 그리고 이것이 십년째인 올해 끝나기는 할까. 이럴 때는 우리가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힘들지 않아? 순례에서 돌아온 그에게 내가 바보같이 물으면 그는 대꾸하곤 했다. “생명 평화 이제 말만 들어도 지겨워. 생명이라는 말로 수경 스님이 전화하시면 팍 죽고 싶어. 평화 집회라고 도법 스님 전화하시면 마누라랑 막 싸우고 싶다니까…하하.”
그는 정말로 힘들다는 듯 농담을 했지만 다음날 또 수경 스님이나 문규현 신부님의 오체투지 행렬에 깃발을 들고 서 있다. 나도 가끔 그 행렬의 곁에 가보면 낙 시인은 스님의 상한 무릎과 문 신부님의 부어터진 발을 만져드리다가 가슴이 아파서 밥도 못 먹고 눈물을 흘리며 걷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잘 먹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던 일관성의 평화를 잃고 괴롭다. 어쩌면 생명에도 약간 지장이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선 낙장불입 시인(오른쪽). 뒤로 도법·수경 스님과 버들치 시인도 보인다.
낙 시인이 이렇게 나의 평화를 깨는 일에 앞장서는 데는 새로 만난 그의 각시도 큰 몫을 했다. 외로운 남녀가 서로 눈 맞아 사랑을 시작하는 일이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걸 10세 이상인 사람은 알 것이다. 역시 시인에게 다시 사랑은 오고 사랑이 오자 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행여/ 이승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마른 갈잎이 흔들리면/ 그 잎으로 그대의 이름을 썼다” 소설가의 연인이 되면 코 후비는 버릇이나 실수한 이야기가 공개될 확률이 높은데 시인의 연인이 되면 이런 대접을 받는다.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다니…. 이 시의 뒷부분은 한 술을 더 뜬다. “별자리들이 그대의 이름으로 바꾸어 앉는 밤…복숭아 뼈에 새겨진 그 이름” 시만 읽으면 좋은데 시인과 그 부인을 알고 읽으면 슬그머니 부럽고 얄밉다.
그의 각시가 된 고아르피엠(高RPM) 여사는 그저 문학을 좋아하는 아줌마였다. 대학원 선생을 따라 실상사에 다니러 왔다가 낙 시인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나중에 낙 시인이 실상사를 나와 섬진강 가에 거처를 마련하자 그곳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날 마침 낙 시인의 집에는 서울서 내려온 동료 문인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고아르피엠 여사는 낙 시인을 불러 서울서 손수 마련해온 것을 건넸다. 고운 이부자리였다. 언젠가 낙 시인의 거처에 낡아빠진 담요 몇 장만 뒹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지리산에 다니러 오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멀리서 창문으로 이를 바라보던 소설가가 한마디했다.
“저 여자 누구야? 요새 지리산에서는 여자들이 연장을 손수 지고 다니냐?” 그로부터 낙 시인의 각시가 된 고아르피엠 여사는 이불 때문에 톡톡히 곤욕을 치른다. “결국 그 이불 덮고 같이 살자는 말이었지?” 사람들은 세세연년 버전을 바꾸어 두 사람을 놀려대고 낙 시인은 그냥 웃기만 하는데 낙 시인보다 대범한 고 여사는 이상하게도 펄쩍 뛴다. 우리의 추측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순간이다.
낙 시인은 그런 고 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순례를 떠났다. 운동의 운자도 모르던 고 여사는 이제 지리산 일대의 유명인이다. 얼마 전 이야기 끝에 물어보니 높은 아르피엠답게 직함이 7개란다. 다 생명 평화 뭐 이런 골치 아픈 일일 것 같아 내 일신의 소소한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이런 운동에 앞장서는 스님들과 신부님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결 각박해졌다. 한 번은 스님과 신부님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서울 모처에서 누가 찾아왔다. “고매하신 분들 두루두루 몸조심하십쇼. 여자문제며 이런 거 저희가 다 조사 들어갔습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한 신부님이 격노하셨다.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여자문제가 어쩌고 어째?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치자. 너희 놈들은 마누라하고 날마다 하면서 평생 한두 번 한 걸 걸고넘어진다고? 이 치사하고 나쁜 놈들!!”
그러자 거짓을 참지 못하는 낙 시인이 신부님 곁에 가서 말했다. “신부님, 아무리 그래도 틀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결혼했다고 날마다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웃음보를 터뜨리는데 스님과 신부님들은 진지하게 낙 시인에게 물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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