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봄 햇살·그윽한 향… 그래, 욕망할 것들 너무 많다
지리산 동네를 통틀어 길이 막히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면 그건 바로 버들치 시인의 집일 것이다. 원룸 형태인 그의 집에 먼저 온 손님이 있으면 다음에 온 사람은 그 집 마당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먼저 온 손님이 가기를 기다릴 때가 많았다. 서울 연립주택가도 아니고 좁은 골목에서 겨우 차를 빼주고 다음 사람을 위해 다시 그 집 마당에 다시 차를 넣고 이토록 복잡한 주차를 해야 하는 곳이 지리산 자락에 그의 집 말고 또 있을까. 기다리다가 지친 화가 친구는 “은행에서 쓰는 번호표 발행기를 이 집에 선물해야 되는 거 아니야? 참 조용히 그림 그리러 이 동네 와볼까 했더니 일산 우리 집에서 전화 꺼놓고 있는 게 제일 조용하겠구나” 할 정도였다. 가끔은 서울에서 못 보던 먼 문인을 마주치기도 했고 또 더러는 서울의 은근한 소문거리를 여기서 듣기도 했다.
헛간 장작더미에 산새가 알 낳았다고 장작에 손도 못 댄 채 그 겨울 냉방으로 산 시인“잘생긴 버들치 시인님의 씨를 받고 싶어 왔습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생명을 잉태하고 싶은 여성들이 그런 시인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그의 정갈하고 맛난 음식 탓도 있었다. 꽃 모양으로 당근을 깎고 갓으로 붉게 물들인 그의 동치미를 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니까 말이다. 친구 하나는 자기의 이상형을 안젤리나 졸리와 버들치 시인을 섞은 여자라고 꼽았다. 버들치 시인이 왜 들어가냐고 물으니 졸리는 버들치 시인처럼 한국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집에 사람이 몰리는 더 큰 이유는 그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너무 많다는 데 있었다. 여자들의 구두가 댓돌에 놓여 있는 때 혹시나 노총각 시인의 연애를 방해라도 할까 조심스러워 기다리던 내가 “누구야?” 물으면 버들치 형은 “몰라. 팬이래” 하고 말았다. 아마도 버들치 시인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한적한 자기 집 놔두고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가야 할 것 같다.
한 번은 그의 집에 도착하니 한 여자가 걸레를 들고 시인의 방안을 쓸고 닦고 있었다. 솔직히 이 집을 드나드는 여성들 중에서 그렇게 조신하게 청소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으므로 -남성들 중에는 가끔 있다- 나는 버들치 시인이 새 각시라도 얻었나 궁금했는데 외출했던 버들치 시인이 들어서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손에 걸레를 든 채 큰절이라도 세 번 올릴 듯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소녀는 서울서 온 아무개라고 하옵니다. 버들치 시인께서 이 산골에서 독거하신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아침에 첫차를 타고 찾아왔사옵니다. 행여 수발을 들 소녀가 필요하면 지체치 말고 이 몸을 거두어 주옵소서”라는 투였다. 그러자 그는 이제 이런 일은 정말 지겹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갑시다. 서울 가는 막차가 30분 뒤에 떠날 거니까.” 여자는 울상인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첫차로 내려와 버들치 시인 집을 청소만 하고 막차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그녀의 처지가 딱했지만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를 대놓고 따라다니던 과부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도 여자였기에 그녀는 슬쩍 말을 돌렸다.
“저기…버 시인님 아이 좋아하시죠?” 그 과부에게 여러 번 프러포즈를 ‘당한’ 버들치 시인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챘기에 대꾸했다. “아이요? 아니요, 아이들 싫어해요. 끔찍합니다.”
여자는 할 말이 없었다. 버들치 시인이 지나가는 마을 아이들만 보아도 머리를 쓰다듬고 작은 풀빵이라도 꼭 사준다는 것을 다 조사한 후였기 때문이다. “그럼 <초원의 빛>에 나오는 내털리 우드 같은 여자를 좋아하신다는 건 사실이죠?”
버들치 시인은 어떻게 대답할까 궁리하다가 내털리 우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거기에 한참 떨어지는 용모를 가진 그녀가 이제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지 싶어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과부가 대답했다. “저는 내털리 우드가 되어 워런 비티처럼 잘생긴 버들치 시인님의 씨를 받고 싶습니다.”버들치 시인은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혹시 자기가 “시”를 받고 싶다는 소리를 너무 오버해서 받아들였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무례를 후회도 다 하기 전 그는 저 길 아래로 그 과부의 차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놀란 그는 호미를 내팽개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장기전이 될 것 같은 예감에 거름으로 쓰는 오줌통도 얼른 챙겼다. 문을 잠그고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차에서 내린 과부는 뜻밖에도 넓은 챙 모자에 원피스를 입은, 한마디로 <초원의 빛>의 내털리 우드 패션이었다. 시인이 평소에 귀여워하는 그녀의 다섯살 난 아들도 함께였다.버들치 시인이 사는 소박한 집.
“아이, 버 시인님 거기 계신 거 다 알아요. 어서 문 여세요.”
그녀는 콧소리를 내어 이렇게 말한 후 챙 넓은 모자에 손을 대고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짧고 굵어서 그렇지 언뜻 보면 내털리 우드 비슷하긴 했다. 문 틈으로 내다보며 시인은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과부는 네가 보고 있는 줄 다 안다는 듯 한 번 더 포즈를 취한 후 자신의 작은 승용차 안에서 스카이 콩콩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그녀 역시 장기전을 대비해 온 것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더운 방안에서 오줌통을 끼고 진땀을 흘리며 아이가 스카이 콩콩을 타고 마당을 뛰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시인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피할 수 없으면 맞서라.”
우리들은 그의 이야기에 배를 잡고 웃곤 했지만 정말이지 그는 정결이라도 맹세한 수도승 같았다. 우리들끼리 하는 농담이지만 저승에 가서 혹여 이성과의 잠자리 횟수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그는 횟수의 희소성 면에서 웬만한 수도승들보다 아랫자리를 차지할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는 우리들의 추궁에 못 이겨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네 번 반이라고 했다. 네 번이면 네 번이고 다섯 번이면 다섯 번이지 그 반이 무엇이냐 물어도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난 아직도 그 반이 너무 궁금하다) 어쨌든 한때 그의 별명은 네 번 반이었다.
도시의 잘나간다는 직장을 다니다가 어느날,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너무도 쉬운 깨달음”을 얻고 산골로 들어왔다는 버들치 시인. 그는 봄이면 나물을 뜯어 말리고 손바닥만한 밭에 자신의 오줌을 거름으로 주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직접 농사지은 푸성귀 하나에 김치 하나 놓고 밥을 먹으며 이 싱싱하고 맛난 것을 혼자 먹는 것이 죄스러워 한줌도 안되는 소출을 손수 접은 어여쁜 종이 봉투에 담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혹여 독신인 자기가 죽기라도 하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 통장에 관 값 200만원을 넣어두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거기서 넘치는 돈은 시민단체에 기부하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헛간 장작더미 위에 산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고, 겨우내 그 장작에 손을 못 댄 채 그 겨울을 꼬박 냉방으로 지낸 사람. 어쩌면 생명으로 충천한 이 지리산과 섬진강 가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싶은 여성들이 그런 시인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몰랐다.
아침 햇살에 희게 빛나는 매화가 눈부셔서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버들치 시인이 툇마루에 나와 앉아 담배를 물었다.
“적적할 텐데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우지?” 내가 묻자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희고 단아한 매화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는 예의 그 느린 어투로 대답했다.
“정………주기 무서워………안 키워.”
매화처럼 희고 섬세한 그의 실루엣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매화나무 아래 돗자리를 폈고 손수 덖은 차를 끓였다. 친구들은 차는 간이 싱겁다며 어제 남은 소주를 내왔다. 아직 덜 핀 매화 봉오리를 잔에 넣자 순식간에 매화가 그 속에서 피어났다. 우리들 입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흰 매화 꽃무리 위로 봄 햇살은 노릇하게 익어가고 멀리 푸른 섬진강이 젖빛 백사장을 어루만지며 꿈틀꿈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의 욕망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좋은 학벌, 많은 돈, 넓은 집. 우리는 이제 다양하게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매화꽃 피어난, 찻잔인지 술잔인지를 입술에 대었다. 술과 꽃의 향기가 버무려진, 이루 말할 수 없이 그윽한 향의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처지를 잊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술잔을 입에서 떼는 내 친구들의 얼굴도 그랬다. 그렇지 않다면 한 수다 하는 그들이 그렇게 조용했을 리가 없으니까.
<공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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