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광장의 형상이 아닌,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있습니다. 모로코의 거대한 오아시스 도시인 마라케시의 제마-엘-프나 광장입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의 열기와 먼지가 가라앉게 되는 저녁 무렵의 광장은 장관을 이룹니다. 낮 시간 동안 광장을 점유했던 행상들은 사라지고 어디서 등장한지 모르는 엄청난 규모의 노점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양고기를 요리하기 위한 불을 지피는 연기가 대기에 가득찹니다. 술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한 모로코지만 이 광장에 술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포장마차촌과 비슷하지만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차 한 잔과 함께 먹고 즐기는 데 열중할 뿐입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노점상들의 흔적은 연기처럼 사라지지요. 수백년 동안 반복되었을 삶의 모습들. 이곳에서는 모두가 조연입니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모두가 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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