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여행을 다니다보면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나쳐버리는 도시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 도시가 어떤 관광 유산도 없이 현대 사회의 기능적인 측면에만 치중해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서울 주변의 많은 위성도시도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서울 여행을 온 외국인 여행자가 구리나 하남, 성남이나 고양을 추억거리로 만들 확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도시에는 저마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에서의 삶과 경기도 부천시에서의 삶에 위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경험하는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도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다니며 혹 시간이 나면 이름모를 동네에 다녀오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심심한 산책이 되기 일쑵니다. 그렇지만 여행에서 꼭 특별한 것만 경험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냥 그 무딘 시간이 좋습니다. 한번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밖에서 여섯 시간 동안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앞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다소 차갑고 무척 썰렁했지요. 아마도 그곳에는 공항과 관련된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들 역시 내가 서울에서 느끼던 것과 같은 고통과 애환, 그리고 사랑 속에서 또 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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