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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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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더없이 편안한 자세 사랑보다 명예가 중요한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도 겉치레의 옷을 벗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옷을 입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비난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모독하면서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는, 마음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발표되었을 당시(1863),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작품입니다. 프랑스 사회는 저 그림을 불편해하고 증오했습니다. 마네는 오명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왜 저 그림으로 파리가 발칵 뒤집혔는지 이해되지 않습니까? 신사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저 여인! 나는 생각합니다. 저 ‘풀밭 위의 식사’나 ‘올랭피아’ 같은 마네의 그..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빨래의 내공 노르웨이의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돈을 주고 여성을 사서 잠자리를 한 적은 있어도 정서적인 교류를 해본 여자 친구는 없었다지요? 엄청난 일을 저질러놓고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남자의 그 파괴적이고 뒤틀린 심성 뒤엔 여성혐오증이 있었습니다. 여자를 좋아하세요? 좋아하면 살피게 되고, 잘 지내게 되고, 보살피게 되지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행복해합니다. 책을 읽고 있든, 피아노를 치든, 춤을 추든, 목욕을 하든, 빨래를 하든 여자들이 하나같이 부드럽고 하나같이 빛납니다. 르누아르는 여자를 좋아한, 여자와 잘 지낸 남자 같습니다. 저 그림은 ‘빨래하는 여인들’(사진)인데, 이제 막 빨래를 하려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는 저 여인, 르누아르가 좋아한 여..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1) 모네의 수련 연못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우주가 깃든 한 송이 꽃, 수련 처음 연꽃을 보고 놀란 곳은 실상사에서였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시들어 꽃 피는 시기가 막 지났구나, 하며 아쉬워했는데, 다음날 아침 찬란히 피어나는 연꽃을 보았습니다. 연꽃이 햇살에 반응하며 살아나는 거였습니다. 소르르 소름이 돋았습니다. 꽃의 매혹! 그 무덥던 날, 얼마나 오랫동안 망연히 연못을 바라봤을까요. 폴짝거리며 연잎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구리는 물수제비를 만들고, 바람이 불면 물결이 생기는데, 눈부신 햇살은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맑고 투명하고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그 세상에 여왕처럼 도도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햇살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연못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꽃은 아름답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0) 고흐의 ‘해바라기’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해를 등진 해바라기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존재를 솔메이트(Soulmate)라고 하지요? 솔메이트는 나를 나 되게 하는 존재입니다. 해바라기의 솔메이트는 태양, 태양입니다. 박두진의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해바라기가 사랑한 해일 겁니다. ‘해바라기’라는 말, 참 예쁘지요? 해를 바라 해바라기, 아닙니까? 그 말은 영어의 선플라워(Sunflower)보다 훨씬 은유적입니다. 해바라기의 노란 잎은 해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환희의 흔적일 겁니다. 그 노란 음에 도달하기 위해 고흐는 그렇게 많은 해바라기를 그렸나봅니다. 저 해바라기(1887년, 캔버스에 유채, 43×6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는 노란 음으로의 여행의 첫발이랄 수 있는 해바라기입니다. 두 송이의 노란 해바라기가..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9)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위험한 사랑 “사내란 제 아내를 좋아하지 않고는 힘이 나지 않는 법이다.” 아사다 지로의 를 홀린 듯 읽었습니다. 는 달빛 아래 오솔길을 뚜벅뚜벅 걸을 줄 아는, 사무라이 세상의 끄트머리를 살았던 한 하급무사의 이야기입니다. 분노를 삭일 줄 알고, 단장(斷腸)의 심정을 알고, 나라와 맞바꾸어도 절대 죽게 해서는 안되는 목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죽을 자리를 찾아갈 줄 아는 사내의 이야기가 찡했습니다. 사내가 없습니다, 이 시대엔. 왜 사내가 없는 거지요? 내가 좋아하는 사내는 루벤스의 저 그림(‘삼손과 델릴라’, 1609~1610년경, 목판에 유채, 185×205㎝, 내셔널 갤러리, 런던) 속의 사내, 삼손입니다. 사내다운 사내였지요, 삼손은. 그는 싸울 줄 알고 사랑할 줄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8)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무드는 감정을 방해한다 의 작가 정인경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등에 지고 태어난다고.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서 자신이 풀어낸 이야기를 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정말 기적이지요? 살아온 날들의 기적 속에서 살아갈 날들의 기적을 믿으며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삶의 주인공이 아닐까요?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저 그림은 살아온 날들이 기적이었던 삶의 주인공, 바로 파르시팔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꽃밭의 기사’라고 되어 있는데,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친숙해질 그림입니다. 저 그림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곱씹게 만드는 이야기, 파르시팔 신화를 그린 것입니다. 사내랄 수 있는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6)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리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면서 고흐가 말했습니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해.” 아마 그때 그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고,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별들이 가까웠나 봅니다. 이번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눈여겨보게 된 그림 중에는 직접적으로 그 죽음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모네의 그림, ‘임종을 맞는 카미유’입니다. 꿈처럼 모호하고 환상처럼 아련하기만 한 저 그림은 제목처럼 임종의 순간을 그린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는 저 여인 카미유는 임종의 순간에 서른두살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리도 젊은 몸에 들이닥친 혹독한 세파..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ㆍ번뇌는 별빛이라 마음 안에 번민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또 번민이 있으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번민을 모르고는 인간이 될 수 없고, 번민에 사로잡혀서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거지요. 번민이 자유롭게 흘러 빛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지훈 시인의 ‘승무’처럼 세파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고백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진짜 번뇌는 별빛, 아닌가요?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거침없는 붓 터치로, 마음을 다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은 역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느낍니다. 고흐에게 그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