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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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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6)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ㆍ예수의 힘 한 순간에 저렇게 무너질 수도 있네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이. 삶과 죽음이 예있습니다. 일본 대지진 현장, 화면만으로도 맥을 풀리네요. 아무쪼록 저들이 저 재앙 속에서도 기꺼이 살며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또 놀란 것은 그렇게 엄청난 지진으로 완전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망연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런 불행이 닥친 거라고 헛소리를 하는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소름끼쳤습니다. 그 소름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십자가형을 받았던 거냐고. 고통에 대한 감수성 없이 십자가 앞에 설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이번 주는 십자가 고통의 의미를 명상하는 고난주간입니다. 렘브란트는 예수의 십자가를 많이 그렸습니..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5)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꽃에 이끌린 소녀의 ‘노란 봄꿈’ 이 세상은 매일매일 변하는 주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투자자의 시선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저렇게 한 송이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녀의 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작디작은 꽃이 정말 아름답지요? 저 노란 꽃이 아름다운 건 아무래도 소녀의 시선 때문일 겁니다. 꽃에 홀린 소녀의 표정이 아니라면 저 작디작은 꽃이 저렇게 선명하게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꽃을 보는 소녀야말로 노란 꿈을 꾸고 있는 꽃입니다. 저 소녀가 말해주는 것 같지요? 뭔가 아름답고 생명 있는 것에 매료되는 미감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감각의 제국엔 나이도, 성별도, 국경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그림은 김춘수의 ‘꽃’을 연상시키는 그림 아닌가요? 내가 그의..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4) 밀레의 만종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소박한 시골 생활의 힘 저기,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저 한 번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는 넓은 평야에 서서,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저녁 종소리에 맞춰 홀린 듯이 손을 모아보는 일! 편안한 신발, 편안한 옷이면 좋겠습니다. 감자밭을 뒹굴어도 아깝지 않은! 일을 하고 손을 모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아는, 편안한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지요? 맨 얼굴이 부끄럽지 않고, 격식을 차리지 않은 옷을 누추하게 느끼지 않는 좋은 사람과! 아, 땀 흘려 일한 직후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는 행위에 좀 더 힘이 붙을 테니까요. 저기 저 밀레의 만종엔 소박한 시골생활의 힘이 있습니다. 우아하고 품위있게 살게 하지는 못하지만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3)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수원대 교수·철학 ㆍ허영이 낄 틈 없는 ‘온전한 밥상’ ‘감자 먹는 사람들’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저 그림이 무서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손이 싫었습니다. 울퉁불퉁 깡마른 농부의 손이. 얼마나 일을 하면 저렇게 될까, 얼마나 가난하면 저렇게 될까? 이상하게 그 그림이 생각난 것은 시끄럽고 소란한 인도의 바라나시에서였습니다. 나는 시바신 앞에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무서웠고, 신새벽 갠지스강에서 시신을 태우는 사람들이 무서웠습니다. 그 강물을 그대로 떠 마시는 사람들이 무서웠고, 1달러만 달라고 구걸하는 손들이 무서웠습니다. 그 도시, 바라나시에서 나는 불면증이었습니다. 무서워서 잠들지 못했던 거지요. 그 불면의 밤에 그 깡마른 손의 환영을 본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불면에..
[그림으로 읽는 철학](12) 고흐 ‘슬픔’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ㆍ슬픔이 슬픔에게, 고흐의 슬픔 슬픔이 아름답지요? 그림 속 여인의 슬픔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릴 수 없는 그림, 고흐의 ‘슬픔’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쁨이나 행복만 아름다운 게 아닌 모양입니다. 저 초라한 실루엣이 왜 이렇게 사무칠까요? 저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울컥, 했습니다. 생의 버거움을 고스란히 짊어진 그녀의 실루엣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없었던, 행복을 모르는 사람의 포즈 같았으니까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있는 저 여자, 울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지지해주는 이 없이 살아낸 그악한 세월이 버거워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 하는 저 여자는 고흐가 사랑한 여자 시엔(Sien)입니다. 도대체 의지를 내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 불행하기만 했던 청년 고흐가 사랑했던 여자..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1) 폴 고갱 ‘신의 아이’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불행한 ‘문제적 인간’들의 성모 폴 고갱 ‘신의 아이’, 테 타마리 노 아투아(Te Tamari No Atua), 캔버스에 유채, 92*128㎝, 1896년, 노이에 피나코테크, 뮌헨 대부분의 우리는 그럭저럭 사회에 적응하며 삽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내재화하면서 피상적으로 사는 거지요.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 소위 ‘문제적 인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지요? 잘 먹고 잘 살아도 늘 허기진 느낌, 누릴 거 다 누리고 살아도 홀가분하지 않은 느낌, 도시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죄수 같은 느낌, 그 느낌 속에서 숨 쉬는 직관의 불씨를 살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현자일 수도 있고, 예언자일 수도 있고, 예술가일 수도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인생..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0)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허물어진 것에서 나를 보다 “막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사의 찬미’에는 허물어진 것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돈도, 명예도, 님도 다 싫다’고 고백하는 지친 영혼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저 그림 ‘스핑크스의 질문자’를 보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그 ‘사의 찬미’였습니다. 사막은 거대하고 분위기는 황량하기만 한데, 지팡이까지 내려놓은 저 남자, 그야말로 적막강산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의 적막이 얼마나 무서울까요? 그런데 무섭다는 형용사는 저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치고 지쳐서 무서움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 것 같으니까요. 나는 제 몸 하나 가눌 힘 없어 스핑크스에 기대고 있는 저 남자에게 말을 붙여봅니다. 길어야 백 년인..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9) 루벤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사랑은 고통을 두려워 하지 않는 열정 고통은 견디면 되지만,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약도 없지요? 주로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뛰는 사람은 큰일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과 열정 때문에 심장이 뛰는 사람이 일을 내는 거지요. 루벤스의 프로메테우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요? ‘사랑한다면 고통까지!’ 사랑의 열정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득한 벼랑 끝에 누워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보십시오. 저기가 바로 코카서스 산 절벽입니다. 저 절벽에서 그는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돌아설 수도 없게 포박되어 있습니다. 거기 독수리 한 마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프로메테우스의 옆구리를 쪼아 간을 꺼내먹고 있네요. 독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한 치의 연민도, 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