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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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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4) 모로의 ‘환영’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ㆍ보고 있나요, 당신을 위한 이 춤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꿀만 먹고 사는 거친 남자, 그가 저 환상 속의 그대, 세례요한입니다. 가진 것도 없지만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 그는 거칠 것 없는 야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를 죽인 헤롯왕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권력자였다면, 그에게 죽은 요한은 광야의 바람을 호흡하는 당당한 사내였습니다. 그런 사내를 죽게 한 여인이 저기 저 춤추는 팜므파탈, 살로메입니다. 모로가 공을 들인 살로메를 보십시오. 춤을 추고 있는 그녀는 옷을 입은 걸까요? 보석을 걸친 걸까요? 저렇게 세련되고 섹시하게 꾸민 걸 보면 그녀 스스로도 도발을 즐기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녀는 누구에게 팜므파탈인가요? 원래 그녀의 춤은 헤롯왕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녀와 그녀의 어..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3)이 시대의 오르페우스, 임재범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ㆍ귀스타브 모로의 ‘오르페우스’ 유디트의 손에 들려있었던 남자의 목은 참담하기만 했는데, 이름 모를 저 여인이 안고 있는 남자의 목은 침묵 속에서 고요하지요?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거 같습니다. 몸의 일부처럼 늘 지니고 다니며 연주했던 리라 속에 안치되어 있는 저 남자, 그 유명한 오르페우스입니다. 이상하지요? 나는 왜 ‘너를 위해’를 부르고, ‘여러분’을 부르는 임재범씨를 이 시대의 오르페우스라 느끼고 있는 걸까요? 오르페우스가 누군가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비탄에 잠겨 비탄의 노래만 부르다 마침내 슬픔 자체가 된 남자 아닙니까? 유리디케 없는 세상엔 슬픔밖에 없다는 듯 그는 슬픔의 노래 속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눈치 채셨습니까? ‘너를 위해..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2) 티치아노의 ‘유디트’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유디트, 팜므파탈적 에너지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은 행복한 것일까요, 불행한 것일까요? 죽기 전 그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저토록 아름답고 슬기로운 여인이 다시 있을까, 하고. 그렇습니다.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그토록 매혹당한 여인이 저 여인 유디트고, 그녀의 손이 들고 있는 얼굴이 조금 전까지 그녀를 찬탄했던 바로 그 남자 홀로페르네스입니다. 오스스, 소름이 돋지요? 사랑을 나눈 남자의 목을 베어 들고 있는 침착한 여인의 모습 때문에 돋는 소름의 정체는 두려움일까요, 혐오감일까요, 아니면 공감일까요? 치명적 매력으로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므파탈의 계보가 있습니다. 이브, 데릴라, 메데이아, 살로메 같은 여인들이지요. 유디트는 그 팜므파탈의 계보에..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네 운명을 사랑하라! 저기 저, 잠든 여인 뒤로 멀리 배 한 척이 떠나는 게 보이지요? 저렇게 고요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평화로운 순간에도 배가 떠나듯 사랑이 가고 행운이 갑니다. 그러나 또 발치에 앉아 여인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의 표범들처럼 사랑이 오고 행운이 걸어들어 올 것입니다. 강제할 수도 없고 길들일 수도 없는 디오니소스의 표범이 스스로 찾아온 것을 보면 저 여인이 운명적 인물인 모양이지요? 그렇습니다. 잠들어 있는 젊은 여인은 아리아드네고, 떠나가는 배는 그녀가 사랑한 영웅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잠든 틈을 타 도망가는 거고, 그녀는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버림받은 여인이라 하기엔 자태부터도..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0)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ㆍ복수하는 마녀의 신화적 원형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부터 사랑은 짐이 되고 체증이 되니까요. 필요를 채워주고 사랑을 요구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가겠다고 하면 반드시 사랑의 빚을 청산하라고 비수를 들이댈 테니까요. 그러나 또 그 위험한 사랑을 모르고 복수의 드라마가 난무하는 인간사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복수하는 마녀의 신화적 원형, 메데이아를 아십니까? 내 남자의 여자를 죽이고, 마침내 자신의 두 아들까지 직접 살해하는 그 여자 메데이아! 어린 아들을 죽이려 하는 저 그림은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입니다. 메데이아는 워터하우스도 그렸고, 모로도 그렸고, 샌디스도 그렸지만 제가 좋아하는 그림은 바로 저 그림입니다. 저 그림에는 사랑에 ..
[그림으로 읽는 철학](19)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무상의 표상, 백골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왜 악한 사람들이 잘살죠? 잘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주변에서 보면 악착같이 돈만 아는 집요한 사람들이 잘사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사람이 돈도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겠니? 그건 잘사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기를 쓰고 이악스럽게 사는 거잖아. 각박해지기 위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다쳐야 해. 그게 좋니? 문화철학 시간에 한 학생과의 대화입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악착같이 살지 않으면 악착 같은 세상 견디기 힘들 거라는 마음에 힘이 붙을 때는 어떡할까요? 그런 마음이 찾아들 때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저 그림을 처음 보면 촛불이 가르는 명암 때문에 왼손..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수원대 교수·철학 ㆍ완벽한 키스와 흰 보자기 사랑하며 사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거란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있지요? 그때 숨 막히는 연인에게서 돌아서십니까, 아니면 숨 막혀 죽어가며 죽어가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십니까? 숨 막히는 사람의 무게는 지옥의 무게입니다. 내가 본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사랑이 숨 막히는 열정이 된 자의 사랑의 얼굴입니다. 보십시오. 한번 보고 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저 그림,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입니다. 열정에 이끌린 연인들이 둘만의 공간에서 완벽한 키스를 나누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흰 보자기에 싸여 있습니다. 미친 듯이..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소망합니다. 그대 내 사랑이 되기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지요? 저 그림의 남과 여,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정말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정열적인 키스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그런데 왜 여자만 알몸일까요? 아, 그러고 보니 알겠습니다. 저 남자가 저 여자를 만든 거네요! 저 남자, 피그말리온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로 유명한 그 남자! 그 마음, 아세요?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는 마음, 사랑할 사람도 없는데, 봄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 피그말리온이 그랬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세상의 여자를 권력으로 취할 수 있는 왕! 그런데 권력으로 쉽게 다가가다 보면 마음으로 다가서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계급장 떼고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