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평론가 김형수: 선생님의 시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읽은 기억이 없는데요. 소년기부터 무겁고 장중한 갑옷 같은 사회 틀, 또 제도 따위와 무수한 마찰음을 낳았던 정신, 그 놀라운 생명체의 태반을 지금은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지, 그것은 앞으로도 ‘미래의 고은’들을 낳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한 정신의 탄생과 부모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은: 부모란 세상의 모든 추상을 무력하게 만들지. 그래서 노장(老莊)한테는 부모의 의미가 없고 공맹(孔孟)한테나 그것이 자리잡고 있어. 플라톤 봐. 헤겔 봐. 그네들의 이데아나 관념에, 그 화려한 추상세계의 어디에 부모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 부모를 삼강오륜 따위의 틀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부모를 괜히 추상화하는 건지 몰라.
김형수: 그 많은 부모 섬김의 노래들을 자기연민의 발로로 보시는 건가요?
고은: 부모란 세상의 모든 추상을 무력하게 만들지. 그래서 노장(老莊)한테는 부모의 의미가 없고 공맹(孔孟)한테나 그것이 자리잡고 있어. 플라톤 봐. 헤겔 봐. 그네들의 이데아나 관념에, 그 화려한 추상세계의 어디에 부모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 부모를 삼강오륜 따위의 틀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부모를 괜히 추상화하는 건지 몰라.
김형수: 그 많은 부모 섬김의 노래들을 자기연민의 발로로 보시는 건가요?
고은: 글쎄, 부모란 처음부터 끝까지 단지 부모일 뿐이야. 나는 부모를 우리네 사람살이의 무슨 가치나 부여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부모의 그 당연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여기고 있네. 이 점에서 선사 인류의 그 비문화적인 친족으로서의 부모의 원형이 고대 인간의 윤리적 전형으로서의 부모보다 더 어미답고 아비다운 것으로 생각될 때가 있다네.
그림 | 임옥상 화백
김형수: 또다시 ‘존재의 원점’이라 하던 것이 떠오릅니다.
고은: 심하게 말하면 오늘날의 인간사회에서도 지식층의 그것보다 기층 생민(生民)의 그 장식적이지 않는 부모와 자녀관계의 삶이 훨씬 두드러져 보이더군.
김형수: 문명 이전의 ‘폐허’라 이르던….
고은: 뭐랄까, 실정법에 대한 자연법이랄까, 문명이란 자주 인간을 비인간화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를 문화나 문명의 범주 안에서 정의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 요컨대 부모를 어떤 목적의 시각으로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네. 부모를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일은 차라리 부모의 진면목을 가로막는 비현실성과 맞닿아 있는지 몰라.
김형수: 선생님은 일찍부터 ‘홀로’ 걸으셨습니다. 어린 영혼이 ‘세계 내 존재’로 변해가던 그 불안정한 시기를 부모 곁, 제도 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만의 그림자와 동행하신 겁니다.
고은: 하지만 나는 나 이전으로부터 완전한 절연일 수 없지. 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도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를 현재화시키기를 마다하지 않네. 현재처럼 구체적인 것이 어디 있겠나. 현재란 과거라는 힘과 미래라는 힘 사이의 가장 힘없는 시간의 한 점이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현재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 자체이므로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겠지.
김형수: 우리 시대의 정신은 사실 ‘현재’에 집착해 있습니다. 너무나 넓고 방대한 ‘현재’의 지평선은 과거를 잘라버린 듯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너머의 아버지 향수는 없습니까?
고은: 이상한 것은 내 생의 후기에야 나는 오히려 아버지와의 만남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네. 정작 아버지의 생전에는 내 탈고향의 삶에서 아버지가 없었는데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아버지가 살아있는 강한 체험 속에서 나의 삶이 갱신되는 느낌이라네. 이런 일은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 하여라’라는 근세 시조의 경고나 어제오늘 절절한 정서로 남아있는 ‘불효자는 웁니다’로 공감되는 부모에의 회한과는 다른 것이네.
김형수: 자아인식의 새로운 차원을 보는 듯합니다. 완성형이 아니라 끝없는 진행형으로 끌고 가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시는지.
고은: 부재가 그 부재에 의해서 실재하고 있는 자에게 자신의 실재를 더욱 실재화하는지 몰라. 나는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걷는 것으로 느낄 때가 있네. 언젠가는 안성의 우리 동네 입구의 육교를 걸어가는데 내가 아버지가 되어 저만치 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 적이 있어. 요컨대 아버지의 혼백이 내 생명체에 들씌워져서 내가 아버지의 삶을 산다는 그 느낌이란 그동안 유예되었던 아주 오래된 생득성(生得性)의 오지처럼 여겨진다네.
김형수: 선생님의 어떤 수사(修辭)들은 종종 소설 한 권 분량의 개념을 안겨다 줍니다. ‘생득성의 오지’라는 표현도 제게 강한 영감을 주네요.
고은: 어떤 때는 내 흥(興)이라는 것도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기 십상이라네. 아버지는 천부적인 신명의 사람이었지. 아침에 동쪽 할미산에서 해가 뜨면 “자, 우리도 떠오르자”라고 말했어. 달이 뜨면 “우리도 두둥실 떠오르자”라고 말했어.
김형수: 한국어 영토에 고은 식 어문구조라 할 만한 영역이 있는데요. ‘자, 우리 8·15이자!’ 같은 어법, 그 저작권자는 아버지셨네요? 참 훌륭한 표절입니다.
고은: 보름달이 뜬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네. 대체로 농가의 마당은 오래 다져진 찰흙마당이어서 걸레로 닦아놓은 것처럼 거기에 밥알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을 주워 먹어도 될 만큼 정결했지. 달밤에 그런 마당에 아버지가 뛰쳐나가 난데없이 훨훨 춤을 추었어. 어머니는 좀 어색한 느낌으로 부엌문 쪽에서 몰래 보았고 어린 나는 퇴창의 작은 문틈으로 보았어. 아버지는 한 30분쯤 혼자 달밤의 춤을 추고는 달을 한참이나 바라본 뒤 흡족한 감회로 방에 들어와 누웠지. 나도 그런 아버지 옆의 요 위에 스며들어가 누워서 아버지의 그 신명 뒤에 닿아 있었지.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김형수: 아름다워요. 달빛 어스름, 퇴창 문틈의 눈동자가 그 밤의 찰흙마당에 갇히지 않고 얼마나 멀리 떠나왔습니까?
고은: 흥이란 한자가 재미있어. 술이 가득 찬 잔을 땅에 붓는 형상이라네. 그러니까 땅의 지신이나 또 땅에 묻힌 조상의 영체(靈體)에 술을 바쳐서 그 술에 취한 상태를 뜻하고 있지.
김형수: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술집’이라 하신 적이 있어요. 하하.
고은: 요즘이야 술과 건강을 대비시켜 반사회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으나 술이란 본디 매우 정신적이고 제의적인 것이었네. 조상 영혼에 바치는 제주이기도 하고 남녀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서 가시버시로 된 혼인 첫날밤 장차 부부생활을 시작하는 그 숭엄하고 난만한 처음의 합환주이기도 하지 않은가. 아니 혁명가의 맹세주나 이별주, 송별주는 또 얼마나 절절한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조약이나 협정 따위를 맺은 화친의 뜻으로 두 나라 원수가 축배를 드는 것도 맹물이나 생강차 모과차 따위가 아니지 않은가. 고대 인도의 고도로 높은 경지에서 마시는 소마주나 고대 그리스신화 속의 신들의 회의에서 회의를 진행하면서 마시는 넥타르도 다 술 아닌가.
김형수: 몽골 중세 설화에도 술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장수가 술은 입에 들어갈 때는 파리만 하고 입에서 나올 때는 사자만하며 지혜를 더럽히고 동지와 싸우게 한다고 하니, 다른 장수가 배부를 때까지 마시면 고생이나 초원처럼 넓은 마음으로 마시거나 철새들처럼 모여서 나누면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데요.
고은: 저 선사시대의 종교적인 승화상태란 일종의 취흥이나 환각의 그것이었지. 말하자면 이런 감정의 고양상태로서의 신적인 심신의 상태가 바로 흥의 세계이고 신명의 세계이겠지. 알타이 샤머니즘이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그 샤먼의 세계야말로 일상성 통속성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한 신적인 상태 아닌가. 무(巫)란 하늘과 땅의 매개를 말하고 있는데 이 샤먼의 요소야말로 원천적으로 흥의 세계이겠지.
김형수: 저도 샤먼에게 들었어요. “바이칼 호수를 떠난 백조의 울음소리가 내 잔에 떨어지네. 하늘을 날던 매의 눈빛도, 광야를 나는 늑대의 용기도, 사내의 심장을 덥히는 여인의 마음도 모두 물방울 속에 들어 있지.”
고은: 어쩌면 샤먼은 인간세계의 보편적인 잠재력인지 몰라. 시인이란 샤먼과의 근친이지. 아니 시인의 기본 요소야말로 샤먼이라고 말하고 싶어. 이 점에서 나는 모더니즘으로서의 주지주의 시를 시의 주류로 표방하기를 주저한다네. 그것은 반동이겠어. 그러니까 그 주지주의라는 것도 그 표현의 인위성 배후에는 샤먼이 이면화(裏面化)되고 있는 건지 몰라. T S 엘리엇의 현대성이 고대 인도의 범신론적 주술성과 영영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사실은 언젠가 밝혀질지 몰라.
김형수: 엘리엇에게서도 샤먼을 보시는군요. 우리의 민속지도가 북방으로 뻗어나가는 것도 순록 이야기, 곰 토템과 샤먼 이야기가 모두 시베리아 쪽에서 온 탓인데….
고은: 어디 시베리아뿐인가. 중국의 문자 세계야말로 주술의 세계이고 아마존의 원시문화도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다른 것이 아니겠지. 한반도 샤먼의 세계를 바이칼의 그것으로 제한함으로써 하나의 특수성을 발생시키고 있지만 이것의 기원은 우주적이거나 지구상의 보편성에 있지.
김형수: 언젠가 ‘부활’을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들면서 기독교적 착상에, 불교적 세계관을 펼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샤먼적 주술의 세계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은: 내 속내하고 맞아떨어지네 그려. 아버지는 내가 10세 이전 잦은 병약 체질로 한밤중에 헛것을 보면 그 헛것을 쫓아내는 행위를 실감나게 했고, 또 새해 들어 묵은해의 재액을 쫓고, 질병의 악귀를 내보내는 대잡이 굿을 직접 할 때도 있어서 나는 아버지가 신 내린 것이 아닌가 하고 무서워하기도 했어. 아버지가 잡은 대의 가지가 섬세하게 떨릴 때 내 몸도 부들부들 떨었지. 언젠가 일본 아이누족 무당한테서도 아버지의 떨림을 본 것 같아.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어머니와 나에게만 이런 행위를 보였을 뿐이었어.
김형수: 언어에 주술적 근육이 살아있는 선생님의 시어들이 집안에서 자란 거였군요.
고은: 아버지는 ‘이야기책’을 음독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소문나 있었지. 근대의 종이문명 후기는 음독으로부터 묵독으로 바뀐 시기이지만 소리를 내어 문자를 읽는 일의 서사 활동은 고대 이래 아주 긴 문화표현의 역할을 도맡아 왔지. 수메르의 길가메시도, 인도의 라마야나도, 훨씬 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도 다 낭송 서사였어. 우리도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후기 그 종각 들머리인 지금의 종각 언저리나 어디나 이야기꾼이 나와서 하루 내내 그 서사세계를 펼쳐왔지.
김형수: 그러니까 유창한 언어, 구어체적 역동성의 영향을 어린 나이에 이미 받으셨던 겁니다.
고은: 안중근의 글씨에 “하루에 글 읽지 않으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이 있지. 그것은 글을 큰 소리를 내어 읽어야만 입안의 혀가 잘 움직여서 거기에 탱자가시 따위가 나지 않는다는 음독 권장이지. 만약 우리가 책을 읽듯이 그저 눈으로만 읽는 일이라면 이 경고는 혓바닥에 가시가 돋는 것이 아니라 눈에 다래끼가 날 것이라는 표현의 경고로 바뀌었겠지.
김형수: 혀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그런 뜻인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주로 어떤 글을 읽으셨습니까?
고은: 아버지가 ‘유충렬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따위의 이야기책을 호롱불의 그 흐릿한 밝기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번뜩이며 유창하게 읽어 내려갈 때 동네 남녀들이 우리 집 뒷방을 빼곡하게 채우고 감동 속에 잠겨 있는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네.
김형수: 그럼 촌락공동체의 문학현장에서 자라신 것 아닙니까? 문학교육을 모르고서 어떻게 ‘폐결핵’ 같은 시를 썼는지 늘 궁금했는데, 민중적 미의식의 모태로서의 옛 이야기가 세포 속에 들어 있었네요.
고은: 나는 이전 아버지에 의해서 직계존속으로서보다 신명의 동질성으로 신임받았지. 할아버지는 고향 일대에서 소문난 술꾼이었지만 술 깨고 나면 아주 조용한 내면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때 전에도 말했지만 어린 나에게 조선은 일본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었어. 또 녹두장군 또는 아기장수 얘기와 남해 진인의 출현 따위를 독백처럼 들려주었어. 훨씬 뒤에는 만주의 독립군이 함경도 땅을 다 차지하고 일본군을 쫓아냈다는 것도 말해주었지. 따라서 내 최초의 상상공간이 만주였어. 그러므로 할아버지는 세상을 알려주고 아버지는 신명을 내려준 것이지.
김형수: 그래도 궁금한 것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바깥세상으로 무한대의 확장을 해갈 수 있게 충동한 자극이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고은: 삼촌 중 특히 막내삼촌 맹식은 비유의 천재였어. 삼촌의 말은 입에서 나오자마자 꽃이 되고 파도가 되고 나비나 새가 되었어. 나는 비유론 따위나 은유 의식 훨씬 앞서서 그것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만나서 내 상상은 일상의 사실과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할 지경이었지.
김형수: 하여튼 대단합니다.
고은: 나는 그 막내삼촌의 권유로 담배를 처음으로 피워보았어. 이것 먹어봐라. 삥 도는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하는 삼촌의 말대로 종이에 만 담배를 한번 피워보고는 다시 입에 댈 수 없었어. 이런 삼촌과 함께 외삼촌을 통해서 나는 세계의 한 부분을 터득하기 시작했지. 삼촌이 일본 아오모리로 떠난 것 말고 외삼촌은 만주에 오래 가 있었어. 동남아시아의 자바에도 한동안 머물렀지. 1930년대 후반의 시기라면 당시의 조선인에게 그런 지역에까지 발을 디디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네.
김형수: 그 외삼촌은 어떤 일을 하시던 분입니까?
고은: 외삼촌은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비조직적인 사회주의에 감염된 식민지 청년이었어. 책이 많은 사람이었지. 내가 일찍이 이탈리아 문인 단눈치오와 화가 반 고흐를 알게 된 것도 외삼촌의 서가에서였어. 외삼촌은 만성 위장병을 지니고 있었고 자주 기침을 하면서도 손에서 책 놓아 본 적이 없었어.
김형수: 사방이 단일문화의 벽으로 막히지 않고 여러 문화가 활짝 열려 있었군요?
고은: 그런 외삼촌이 1년에 한 번쯤 누님 집에 왔지. 우리 집이지. 외가에 견주면 우리 집은 초라한 촌가여서 나는 외삼촌한테 부끄러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외삼촌이 돌아갈 때는 반드시 나를 자신의 자전거에 태우고 가서 며칠이고 나를 외가에 머물게 했지.
김형수: 와아.
고은: 4㎞의 신작로를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은 나에게 축제의 절정감을 누리게 했어.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이었고, 지상의 일이 아니라 천상의 일이기도 했지. 그 당시 자전거는 두 마을에 한 대꼴이었어. 순사나 타고 다녔어.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내 발이 바큇살에 닿아서 발을 다치기도 했지. 외삼촌은 옥도정기 액을 발라주면서 세계를 가르쳐 주었어. 아세아와 구라파 그리고 동반구, 서반구 따위를 내가 초등학교 이전, 서당 학도 이전에 알게 된 것은 그 때문이지. 외삼촌은 나에게 세계 그 자체였어.
김형수: 한 생명체의 앞에, 뒤에, 주변에 있는 것들이 감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집단과 사회를 위한 에너지, 영감, 창조성을 부여하는지….
고은: 외삼촌은 키가 크고 눈도 큰 미남이었어. 머리에 지코도 발랐어. 중국 배우 양조위를 빼다 박게 닮은 용모였어. 외할머니의 눈이 커서 어머니도 이모도 외삼촌도 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컸지. 나는 이런 외가의 눈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을 닮았어. 나라는 단일존재가 불가피하게 양쪽의 시간들이 만난 부합의 소산이므로 나는 양쪽의 오랜 시간들의 중층들의 구슬픈 합산(合算)이기도 한 것이지. 생의 밀교(密敎)이고 존재의 청사(靑史)이지.
김형수: 과연 존재 하나하나가 다 생의 밀교인가 봅니다. 전문화된 분야들의 동굴에서 이루어진 근대의 삶이 한계로 지적되는 지금, 그리고 다시 광활한 시대로 변하는 이 마당에 필요한 미래적 인간형이 제도 교육의 바깥에서 준비되었던 걸 오늘 확인한 느낌입니다.
고은: 심하게 말하면 오늘날의 인간사회에서도 지식층의 그것보다 기층 생민(生民)의 그 장식적이지 않는 부모와 자녀관계의 삶이 훨씬 두드러져 보이더군.
김형수: 문명 이전의 ‘폐허’라 이르던….
고은: 뭐랄까, 실정법에 대한 자연법이랄까, 문명이란 자주 인간을 비인간화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를 문화나 문명의 범주 안에서 정의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 요컨대 부모를 어떤 목적의 시각으로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네. 부모를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일은 차라리 부모의 진면목을 가로막는 비현실성과 맞닿아 있는지 몰라.
김형수: 선생님은 일찍부터 ‘홀로’ 걸으셨습니다. 어린 영혼이 ‘세계 내 존재’로 변해가던 그 불안정한 시기를 부모 곁, 제도 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만의 그림자와 동행하신 겁니다.
고은: 하지만 나는 나 이전으로부터 완전한 절연일 수 없지. 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도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를 현재화시키기를 마다하지 않네. 현재처럼 구체적인 것이 어디 있겠나. 현재란 과거라는 힘과 미래라는 힘 사이의 가장 힘없는 시간의 한 점이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현재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 자체이므로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겠지.
김형수: 우리 시대의 정신은 사실 ‘현재’에 집착해 있습니다. 너무나 넓고 방대한 ‘현재’의 지평선은 과거를 잘라버린 듯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너머의 아버지 향수는 없습니까?
고은: 이상한 것은 내 생의 후기에야 나는 오히려 아버지와의 만남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네. 정작 아버지의 생전에는 내 탈고향의 삶에서 아버지가 없었는데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아버지가 살아있는 강한 체험 속에서 나의 삶이 갱신되는 느낌이라네. 이런 일은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 하여라’라는 근세 시조의 경고나 어제오늘 절절한 정서로 남아있는 ‘불효자는 웁니다’로 공감되는 부모에의 회한과는 다른 것이네.
김형수: 자아인식의 새로운 차원을 보는 듯합니다. 완성형이 아니라 끝없는 진행형으로 끌고 가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시는지.
고은: 부재가 그 부재에 의해서 실재하고 있는 자에게 자신의 실재를 더욱 실재화하는지 몰라. 나는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걷는 것으로 느낄 때가 있네. 언젠가는 안성의 우리 동네 입구의 육교를 걸어가는데 내가 아버지가 되어 저만치 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 적이 있어. 요컨대 아버지의 혼백이 내 생명체에 들씌워져서 내가 아버지의 삶을 산다는 그 느낌이란 그동안 유예되었던 아주 오래된 생득성(生得性)의 오지처럼 여겨진다네.
김형수: 선생님의 어떤 수사(修辭)들은 종종 소설 한 권 분량의 개념을 안겨다 줍니다. ‘생득성의 오지’라는 표현도 제게 강한 영감을 주네요.
고은: 어떤 때는 내 흥(興)이라는 것도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기 십상이라네. 아버지는 천부적인 신명의 사람이었지. 아침에 동쪽 할미산에서 해가 뜨면 “자, 우리도 떠오르자”라고 말했어. 달이 뜨면 “우리도 두둥실 떠오르자”라고 말했어.
김형수: 한국어 영토에 고은 식 어문구조라 할 만한 영역이 있는데요. ‘자, 우리 8·15이자!’ 같은 어법, 그 저작권자는 아버지셨네요? 참 훌륭한 표절입니다.
고은: 보름달이 뜬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네. 대체로 농가의 마당은 오래 다져진 찰흙마당이어서 걸레로 닦아놓은 것처럼 거기에 밥알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을 주워 먹어도 될 만큼 정결했지. 달밤에 그런 마당에 아버지가 뛰쳐나가 난데없이 훨훨 춤을 추었어. 어머니는 좀 어색한 느낌으로 부엌문 쪽에서 몰래 보았고 어린 나는 퇴창의 작은 문틈으로 보았어. 아버지는 한 30분쯤 혼자 달밤의 춤을 추고는 달을 한참이나 바라본 뒤 흡족한 감회로 방에 들어와 누웠지. 나도 그런 아버지 옆의 요 위에 스며들어가 누워서 아버지의 그 신명 뒤에 닿아 있었지.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김형수: 아름다워요. 달빛 어스름, 퇴창 문틈의 눈동자가 그 밤의 찰흙마당에 갇히지 않고 얼마나 멀리 떠나왔습니까?
고은: 흥이란 한자가 재미있어. 술이 가득 찬 잔을 땅에 붓는 형상이라네. 그러니까 땅의 지신이나 또 땅에 묻힌 조상의 영체(靈體)에 술을 바쳐서 그 술에 취한 상태를 뜻하고 있지.
김형수: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술집’이라 하신 적이 있어요. 하하.
고은: 요즘이야 술과 건강을 대비시켜 반사회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으나 술이란 본디 매우 정신적이고 제의적인 것이었네. 조상 영혼에 바치는 제주이기도 하고 남녀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서 가시버시로 된 혼인 첫날밤 장차 부부생활을 시작하는 그 숭엄하고 난만한 처음의 합환주이기도 하지 않은가. 아니 혁명가의 맹세주나 이별주, 송별주는 또 얼마나 절절한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조약이나 협정 따위를 맺은 화친의 뜻으로 두 나라 원수가 축배를 드는 것도 맹물이나 생강차 모과차 따위가 아니지 않은가. 고대 인도의 고도로 높은 경지에서 마시는 소마주나 고대 그리스신화 속의 신들의 회의에서 회의를 진행하면서 마시는 넥타르도 다 술 아닌가.
김형수: 몽골 중세 설화에도 술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장수가 술은 입에 들어갈 때는 파리만 하고 입에서 나올 때는 사자만하며 지혜를 더럽히고 동지와 싸우게 한다고 하니, 다른 장수가 배부를 때까지 마시면 고생이나 초원처럼 넓은 마음으로 마시거나 철새들처럼 모여서 나누면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데요.
고은: 저 선사시대의 종교적인 승화상태란 일종의 취흥이나 환각의 그것이었지. 말하자면 이런 감정의 고양상태로서의 신적인 심신의 상태가 바로 흥의 세계이고 신명의 세계이겠지. 알타이 샤머니즘이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그 샤먼의 세계야말로 일상성 통속성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한 신적인 상태 아닌가. 무(巫)란 하늘과 땅의 매개를 말하고 있는데 이 샤먼의 요소야말로 원천적으로 흥의 세계이겠지.
김형수: 저도 샤먼에게 들었어요. “바이칼 호수를 떠난 백조의 울음소리가 내 잔에 떨어지네. 하늘을 날던 매의 눈빛도, 광야를 나는 늑대의 용기도, 사내의 심장을 덥히는 여인의 마음도 모두 물방울 속에 들어 있지.”
고은: 어쩌면 샤먼은 인간세계의 보편적인 잠재력인지 몰라. 시인이란 샤먼과의 근친이지. 아니 시인의 기본 요소야말로 샤먼이라고 말하고 싶어. 이 점에서 나는 모더니즘으로서의 주지주의 시를 시의 주류로 표방하기를 주저한다네. 그것은 반동이겠어. 그러니까 그 주지주의라는 것도 그 표현의 인위성 배후에는 샤먼이 이면화(裏面化)되고 있는 건지 몰라. T S 엘리엇의 현대성이 고대 인도의 범신론적 주술성과 영영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사실은 언젠가 밝혀질지 몰라.
김형수: 엘리엇에게서도 샤먼을 보시는군요. 우리의 민속지도가 북방으로 뻗어나가는 것도 순록 이야기, 곰 토템과 샤먼 이야기가 모두 시베리아 쪽에서 온 탓인데….
고은: 어디 시베리아뿐인가. 중국의 문자 세계야말로 주술의 세계이고 아마존의 원시문화도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다른 것이 아니겠지. 한반도 샤먼의 세계를 바이칼의 그것으로 제한함으로써 하나의 특수성을 발생시키고 있지만 이것의 기원은 우주적이거나 지구상의 보편성에 있지.
김형수: 언젠가 ‘부활’을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들면서 기독교적 착상에, 불교적 세계관을 펼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샤먼적 주술의 세계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은: 내 속내하고 맞아떨어지네 그려. 아버지는 내가 10세 이전 잦은 병약 체질로 한밤중에 헛것을 보면 그 헛것을 쫓아내는 행위를 실감나게 했고, 또 새해 들어 묵은해의 재액을 쫓고, 질병의 악귀를 내보내는 대잡이 굿을 직접 할 때도 있어서 나는 아버지가 신 내린 것이 아닌가 하고 무서워하기도 했어. 아버지가 잡은 대의 가지가 섬세하게 떨릴 때 내 몸도 부들부들 떨었지. 언젠가 일본 아이누족 무당한테서도 아버지의 떨림을 본 것 같아.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어머니와 나에게만 이런 행위를 보였을 뿐이었어.
김형수: 언어에 주술적 근육이 살아있는 선생님의 시어들이 집안에서 자란 거였군요.
고은: 아버지는 ‘이야기책’을 음독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소문나 있었지. 근대의 종이문명 후기는 음독으로부터 묵독으로 바뀐 시기이지만 소리를 내어 문자를 읽는 일의 서사 활동은 고대 이래 아주 긴 문화표현의 역할을 도맡아 왔지. 수메르의 길가메시도, 인도의 라마야나도, 훨씬 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도 다 낭송 서사였어. 우리도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후기 그 종각 들머리인 지금의 종각 언저리나 어디나 이야기꾼이 나와서 하루 내내 그 서사세계를 펼쳐왔지.
김형수: 그러니까 유창한 언어, 구어체적 역동성의 영향을 어린 나이에 이미 받으셨던 겁니다.
고은: 안중근의 글씨에 “하루에 글 읽지 않으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이 있지. 그것은 글을 큰 소리를 내어 읽어야만 입안의 혀가 잘 움직여서 거기에 탱자가시 따위가 나지 않는다는 음독 권장이지. 만약 우리가 책을 읽듯이 그저 눈으로만 읽는 일이라면 이 경고는 혓바닥에 가시가 돋는 것이 아니라 눈에 다래끼가 날 것이라는 표현의 경고로 바뀌었겠지.
김형수: 혀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그런 뜻인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주로 어떤 글을 읽으셨습니까?
고은: 아버지가 ‘유충렬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따위의 이야기책을 호롱불의 그 흐릿한 밝기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번뜩이며 유창하게 읽어 내려갈 때 동네 남녀들이 우리 집 뒷방을 빼곡하게 채우고 감동 속에 잠겨 있는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네.
김형수: 그럼 촌락공동체의 문학현장에서 자라신 것 아닙니까? 문학교육을 모르고서 어떻게 ‘폐결핵’ 같은 시를 썼는지 늘 궁금했는데, 민중적 미의식의 모태로서의 옛 이야기가 세포 속에 들어 있었네요.
고은: 나는 이전 아버지에 의해서 직계존속으로서보다 신명의 동질성으로 신임받았지. 할아버지는 고향 일대에서 소문난 술꾼이었지만 술 깨고 나면 아주 조용한 내면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때 전에도 말했지만 어린 나에게 조선은 일본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었어. 또 녹두장군 또는 아기장수 얘기와 남해 진인의 출현 따위를 독백처럼 들려주었어. 훨씬 뒤에는 만주의 독립군이 함경도 땅을 다 차지하고 일본군을 쫓아냈다는 것도 말해주었지. 따라서 내 최초의 상상공간이 만주였어. 그러므로 할아버지는 세상을 알려주고 아버지는 신명을 내려준 것이지.
김형수: 그래도 궁금한 것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바깥세상으로 무한대의 확장을 해갈 수 있게 충동한 자극이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고은: 삼촌 중 특히 막내삼촌 맹식은 비유의 천재였어. 삼촌의 말은 입에서 나오자마자 꽃이 되고 파도가 되고 나비나 새가 되었어. 나는 비유론 따위나 은유 의식 훨씬 앞서서 그것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만나서 내 상상은 일상의 사실과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할 지경이었지.
김형수: 하여튼 대단합니다.
고은: 나는 그 막내삼촌의 권유로 담배를 처음으로 피워보았어. 이것 먹어봐라. 삥 도는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하는 삼촌의 말대로 종이에 만 담배를 한번 피워보고는 다시 입에 댈 수 없었어. 이런 삼촌과 함께 외삼촌을 통해서 나는 세계의 한 부분을 터득하기 시작했지. 삼촌이 일본 아오모리로 떠난 것 말고 외삼촌은 만주에 오래 가 있었어. 동남아시아의 자바에도 한동안 머물렀지. 1930년대 후반의 시기라면 당시의 조선인에게 그런 지역에까지 발을 디디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네.
김형수: 그 외삼촌은 어떤 일을 하시던 분입니까?
고은: 외삼촌은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비조직적인 사회주의에 감염된 식민지 청년이었어. 책이 많은 사람이었지. 내가 일찍이 이탈리아 문인 단눈치오와 화가 반 고흐를 알게 된 것도 외삼촌의 서가에서였어. 외삼촌은 만성 위장병을 지니고 있었고 자주 기침을 하면서도 손에서 책 놓아 본 적이 없었어.
김형수: 사방이 단일문화의 벽으로 막히지 않고 여러 문화가 활짝 열려 있었군요?
고은: 그런 외삼촌이 1년에 한 번쯤 누님 집에 왔지. 우리 집이지. 외가에 견주면 우리 집은 초라한 촌가여서 나는 외삼촌한테 부끄러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외삼촌이 돌아갈 때는 반드시 나를 자신의 자전거에 태우고 가서 며칠이고 나를 외가에 머물게 했지.
김형수: 와아.
고은: 4㎞의 신작로를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은 나에게 축제의 절정감을 누리게 했어.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이었고, 지상의 일이 아니라 천상의 일이기도 했지. 그 당시 자전거는 두 마을에 한 대꼴이었어. 순사나 타고 다녔어.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내 발이 바큇살에 닿아서 발을 다치기도 했지. 외삼촌은 옥도정기 액을 발라주면서 세계를 가르쳐 주었어. 아세아와 구라파 그리고 동반구, 서반구 따위를 내가 초등학교 이전, 서당 학도 이전에 알게 된 것은 그 때문이지. 외삼촌은 나에게 세계 그 자체였어.
김형수: 한 생명체의 앞에, 뒤에, 주변에 있는 것들이 감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집단과 사회를 위한 에너지, 영감, 창조성을 부여하는지….
고은: 외삼촌은 키가 크고 눈도 큰 미남이었어. 머리에 지코도 발랐어. 중국 배우 양조위를 빼다 박게 닮은 용모였어. 외할머니의 눈이 커서 어머니도 이모도 외삼촌도 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컸지. 나는 이런 외가의 눈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을 닮았어. 나라는 단일존재가 불가피하게 양쪽의 시간들이 만난 부합의 소산이므로 나는 양쪽의 오랜 시간들의 중층들의 구슬픈 합산(合算)이기도 한 것이지. 생의 밀교(密敎)이고 존재의 청사(靑史)이지.
김형수: 과연 존재 하나하나가 다 생의 밀교인가 봅니다. 전문화된 분야들의 동굴에서 이루어진 근대의 삶이 한계로 지적되는 지금, 그리고 다시 광활한 시대로 변하는 이 마당에 필요한 미래적 인간형이 제도 교육의 바깥에서 준비되었던 걸 오늘 확인한 느낌입니다.
폐결핵
1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 하이드라지드 병甁 속에
가라앉은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이 윷처럼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긴 숨이 창 너머로 삭아가버린다.
오늘, 긴 하루의 오후에도
늑골에서 두근거리는 신神이
어딘지 모를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거울에 담겨진 기도와
소름들이 다 말라버린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
한 겨를의 실크빛 연애에도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을
누님이 그렇게 보고 있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이다.
누님이 치마 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 얼굴의 땀을 닦아내린다.
2
형수는 형의 이야기를 해준다.
형수의 묵은 젖을 빨며
고향의 병풍 아래에 파묻힌다.
그네보다 먼저 아는 형의 반생애,
나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고 눈을 감는다.
항상 기旗 아래 있는 영웅이 떠오르며
그 영웅이 잠드는 미인이 떠오르며
형수에게 넓은 농지에 대하여 모르는 척한다.
내가 꿈꾸는 것을 누가 이을까.
쓸쓸하게 고개에 녹아가는
눈허리의 명암을 씻고 그네는 나를 본다.
작은 카나리아 핏방울을 혀에 구을리며
자고 싶도록 밤이 간다.
내가 자는 것만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형의 생전을 잊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끝이 또 하나 지나는가.
형수는 밤의 부엌 램프를
기침소리에 맡기고 간다.
1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 하이드라지드 병甁 속에
가라앉은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이 윷처럼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긴 숨이 창 너머로 삭아가버린다.
오늘, 긴 하루의 오후에도
늑골에서 두근거리는 신神이
어딘지 모를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거울에 담겨진 기도와
소름들이 다 말라버린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
한 겨를의 실크빛 연애에도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을
누님이 그렇게 보고 있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이다.
누님이 치마 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 얼굴의 땀을 닦아내린다.
2
형수는 형의 이야기를 해준다.
형수의 묵은 젖을 빨며
고향의 병풍 아래에 파묻힌다.
그네보다 먼저 아는 형의 반생애,
나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고 눈을 감는다.
항상 기旗 아래 있는 영웅이 떠오르며
그 영웅이 잠드는 미인이 떠오르며
형수에게 넓은 농지에 대하여 모르는 척한다.
내가 꿈꾸는 것을 누가 이을까.
쓸쓸하게 고개에 녹아가는
눈허리의 명암을 씻고 그네는 나를 본다.
작은 카나리아 핏방울을 혀에 구을리며
자고 싶도록 밤이 간다.
내가 자는 것만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형의 생전을 잊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끝이 또 하나 지나는가.
형수는 밤의 부엌 램프를
기침소리에 맡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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