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그간 선생님의 어린 시절 안에서 시간, 주체, 자의식, 대지 등 꽤 많은 이야기가 확장되어 나왔습니다.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고은 = 저 오래전의 인류 난혼(亂婚)시대와 모계사회는 어쩌면 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겹치는 동시 진행인지 모르겠어. 아비 모르는 새끼를 길러내는 일은 전적으로 어미의 몫이어서 그런 사실로부터 인류의 영원한 근원성인 모성이 이루어졌을 것이 틀림없어. 그 이래의 부권이라든가 가부장제 사회라는 것은 전쟁이라든가 힘을 발휘하는 노동이나 통치로서의 폭력이 생존의 필수품이 되면서 모계의 위상이 박탈당한 것이겠지. 남존여비는 이 점에서 힘의 산물이지.
김형수 = 가끔 문단 선배님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는 합니다. 어떤 분의 아버지가 그러셨대요.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보랴”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컷에 대한 영상이 완성되었어요. 제 사유가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대숲에서 빠져나와 드넓은 벌판에 선 듯한 느낌이 든 겁니다.
고은 = 저 오래전의 인류 난혼(亂婚)시대와 모계사회는 어쩌면 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겹치는 동시 진행인지 모르겠어. 아비 모르는 새끼를 길러내는 일은 전적으로 어미의 몫이어서 그런 사실로부터 인류의 영원한 근원성인 모성이 이루어졌을 것이 틀림없어. 그 이래의 부권이라든가 가부장제 사회라는 것은 전쟁이라든가 힘을 발휘하는 노동이나 통치로서의 폭력이 생존의 필수품이 되면서 모계의 위상이 박탈당한 것이겠지. 남존여비는 이 점에서 힘의 산물이지.
김형수 = 가끔 문단 선배님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는 합니다. 어떤 분의 아버지가 그러셨대요.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보랴”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컷에 대한 영상이 완성되었어요. 제 사유가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대숲에서 빠져나와 드넓은 벌판에 선 듯한 느낌이 든 겁니다.
그림 | 임옥상 화백
고은 = 아비라는 것은 어미의 출산과 양육이라는 인류 존속의 위업에 견준다면 씨만 뿌리고 다니는 무책임의 허깨비 노릇이므로 내몰려도 무리는 아니겠어.
김형수 = 그 점입니다. 어미의 무지막지한 사랑 때문에 생겨나는 모성 의존적 태도, 그것을 혹시 ‘구원을 갈망하는 자세’라고 봐도 될까요?
고은 = ‘구원(久遠)의 모성’ 운운이라는 합의된 오랜 구원은 사실상 구원(救援)의 모성이기도 하겠어. 이런 모성애의 종교적 심성이란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아. 동물들의 모성이 어느 경우는 인간의 모성보다 우월한 느낌도 들어. 왜냐하면 규범이나 윤리보다 본능으로서의 어미 사랑이 더 맹목적으로 단호한 점 때문이지.
김형수 = 조선 후기의 풍속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가는 순간 어미닭이 필사적으로 뒤쫓는, 김득신의 ‘파적도’ 말입니다. 모든 어미들은 목숨 보존의 본능을 단숨에 넘어서는 희생적 영원희구의 동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은 = 알을 낳은 새는 한동안 울지 않는다네. 아마도 그것은 우는 일조차 부질없을 만큼 실로 완벽한 자기실현을 마쳤기 때문이지. 탄생시키는 일만큼 완벽한 사건이 어디 있겠어. 시인에게 시가 나오면 다음의 시가 필요 없을 만큼 무심의 기쁨으로 넘치듯 말이네.
김형수 = 탁월한 비유입니다. 하나의 운율이 태어나는 황홀에 비하면 산문을 마감하는 ‘탈고’라는 말은 노동을 가리키는 말처럼 구차해 보이니까요.
고은 = 어머니라는 한자 모(母)는 여자가 두 개의 젖을 가진 것으로 형상화되었지. 사실 여성의 유방이란 성적인 장치 그 이상으로 양육의 절대 장치이지. 어쩌면 유방의 성감대는 아기 낳기 전보다 아기 낳은 뒤가 더 눈부신지 모르지.
김형수 = 허, 양육의 절대 장치라 표현하시네요. 생명의 경이로운 영역이라 생각됩니다.
고은 = 그런데 이런 어미에 의해서 태어나고 자란 새끼는 동물 쪽에서는 빠른 시기 안에 모자관계를 끝내버리지. 아니 그것들은 태어난 얼마 뒤에 바로 독립시키거나 하지.
김형수 = 그 같은 상상력이 ‘개밥 주면서’ 같은 시를 쓰게 하셨을까요? 이명박이 취임하고 노무현이 귀향하며 부시가 물러나는가 하면 푸틴이 실권 총리가 되는 격변기에도 0.5초의 기억으로 사는 짐승, 또 몇 달만 지나도 제 어미이고 새끼인 것을 잊어버리는 중생들의 풍경 묘사가 하도 실감 나서, 아, 시에도 스펙터클이란 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고은 = 서구사회에서 아이들이 십대 중반 직후 부모 슬하로부터 별개의 존재가 되는 일은 동물 쪽의 생존방식에 가까운 노릇이지. 그런데 동양 전통사회에서는 부모에게 자식은 거의 종신형에 가까운 평생관계가 되어 왔어. 특히 한국의 어머니란 이승의 눈을 감아야 아들딸과의 관계 완료가 되는 셈이야. 이런 사실의 또 다른 형태가 동양 사회에서 부모 내지 조상에의 제례적(祭禮的)인 숭배를 통해 공존관계를 이어가게 되는 것인지 몰라.
김형수 = 유목민에게 들어보니 말(馬)들도 그렇더라고요. 아무리 떨어져서 자라고 이산된 지 오래되어도 곧장 혈육을 알아보고 근친교배를 거부합니다.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는 사랑의 대상이기 앞서 생존, 즉 밥의 대상이야
고은 = 그 말의 기억력을 배우고 싶군.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성애의 대칭으로서, 그 어머니의 사랑에 끊임없이 감동하는 아들딸의 어머니에의 절대귀의는 그것이 추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나 종교적인 것으로서의 고상한 가치라는 이면에 무서운 생존에의 기억이 관련되어 있지. 그것은 매우 물질적이기도 해. 아니 경제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거기에서 드러난다네. 어머니 없이는 이 세계의 생명체가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젖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무서운 현실에 내던져진 새끼 아닌가.
김형수 = 아까 이야기를 더 하면, 김수영은 시적 진술에서 일체의 감상성을 배제했습니다. 선생님의 언어에도 한밤중을 쪼개는 번개처럼 미지를 가로지르는 고독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트로트의 ‘어리광’ 같은 게 머무를 자리가 없어요. 저는 그 ‘어리광’이 ‘모성에 대한 의존도’와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고은 = 무릇 생명체는 최우선적으로 입의 절대성으로부터 생명을 지속시킬 수 있어. 먹어야 사는 것이지.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네. “자존심은 굶주림, 목마름이나 추위보다 더 큰 비용을 요구한다”고 말일세. 또 성삼문도 비슷한 말을 토로했어. 이 말은 인간의 자기 존엄성이나 명예가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가를 강조하고 또 인간의 품위를 드높이는 데는 그럴싸하지만, 이 말은 굶주림의 체험이 미약한 데서 나온 말이기 십상이야. 나는 이런 고상한 어조보다 우리들이 흔히 지껄이는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는 진부한 말이 훨씬 절실한 표현인 줄 아네.
김형수 = 지상에는 가난 때문에 태도가 망가질까봐 긴장하면서 사는 목숨들이 많은데.
고은 = 내가 가혹한 말을 하겠네.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니 박애니 하는 수식어에서 태어난 것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런 의식의 바닥인 굶주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한 철부지 말의 이쪽은 기아와 절대빈곤에 빠져 있었어.
김형수 = 지금 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는 중이지요?
고은 =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의 대상이기에 앞서 밥의 대상이야. 어머니의 젖은 자식에게 생존의 제1조건이란 말이지. 그것 없으면 살 수 없어. 나는 한국전쟁 당시의 한 보도사진에서 기막힌 광경을 보았어. 폭격으로 사망한 엄마 시신의 나오지 않는 젖을 필사적으로 빨아대고 있는 젖먹이 아기 말이네. 어디 이뿐인가. 저 1980년 5월 광주 학살 당시 남편 퇴근길의 집 앞에 마중 나와 있던 임신한 새댁이 총 맞아 죽었는데 그 새댁 자궁 안에 들어있었던 태아 또한 얼마나 살아나려고 그 캄캄한 자궁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엄마 뒤따라 죽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네.
김형수 = 아아, 바람소리로도 다치지 않게, 잔가지 하나 실가지 하나까지 지키는 것이 모성애인데요. 그 부재는 얼마나 애처로운 비극을 낳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은 = 이렇듯이 어머니란 사랑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 밥의 형이상학이고 영혼 쪽이라기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 위에서 인간의 언어문화인 ‘사랑’이 태어난 것인지 몰라. 이런 엄마의 젖을 빨며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익힌 것이 우리네 언어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말은 국어라는 국가 개념의 인식 따위를 능가하는 모어 내지 모국어라는 그 근원적인 의미에 더 들어맞겠지.
김형수 = 굳이 구별하자면 그것이 생태 언어라는 말씀이지요?
고은 = 그렇지. 사실 우리말은 학교 이전에 이미 거의 익힌 것인데 그것의 문법적 구성이나 새로 생성하는 말과의 만남이 바로 언어의 후천성을 펼치는 것이지.
김형수 = 모국어라는 언술이 국가 언어로서의 한국어, 서울 중산층의 교양을 표본으로 하는 시민 언어로서의 표준어와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은 = 나 역시 자네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이런 어머니에의 기억을 반추한다네. 물론 내가 어머니 젖을 먹었던 일을 낱낱이 기억하기는 불가능한 노릇이지. 하지만 기억의 몇 조각이 기억의 역할을 다하는 경우 어머니의 젖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할 수 있네. 이 기억이란 치매의 극한에까지 따라붙을지도 모르지. 당연한 것은 어머니 젖으로 나는 생존함으로써 지금껏 그때의 생명을 여기까지 연장시키고 있으니까.
김형수 = 그 많은 시의 어머니라 생각하니 더 비장하게 들립니다.
고은 = 어머니의 젖가슴도 기억해. 하얀 살결에 시퍼런 정맥이 설켜 있었어. 그 젖을 먹고 난 뒤면 어머니는 아주 만족스러운 눈길로 어린 나를 굽어보았지. 뒷날 자비(慈悲)라는 말의 풀이로는 고대 인도의 범어에서 ‘자’는 ‘마이트리’라 하여 참된 우정을 뜻했으나 이와 달리 엄마가 아이에게 젖 먹이고 난 뒤의 그 풍요한 행복으로서의 사랑을 뜻하게 되지. 아이의 옹알이에 어미의 기쁨 말이네. 그렇게 본래의 의미는 우정이었는데 엄마의 애정으로 발전한 것이지. 비(悲)는 ‘카루나’인데 연민, 동정, 공감을 뜻하다가 결국 어머니가 자식의 생명을 제 목숨 걸고 지속시켜주는 사랑으로 되었어. 그러니까 아기가 젖 먹고 나서 흐뭇해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함께 흐뭇해하는 것이 ‘자’이고 그 아이가 아플 때는 자신이 아픈 것 이상으로 그 아픔을 벗어나게 하려는 갖은 정성을 다 바치는 것이 ‘비’이지. 그래서 ‘자’는 삶의 지속이고 ‘비’는 변혁 변화가 되지.
김형수 = 유목민 가요에서도 어머니는 거의 절대적 소재로서 님을 압도합니다.
고은 = 이런 모성애가 이상하게도 지식층의 여성보다 비(非)지식층의 여성에게 더 깊은 것을 자주 목격해. 저 식민지 시대 선구적인 여성이던 화가 나혜석이 제 아이를 저주한 사실은 특이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여성이란 그 진가는 모성성에서 발현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이 된다고 하지. 현대는 이런 엄연한 모성이 조금씩 해체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내보이고 있네. 당대의 한국 여성들이 결혼보다 독신으로 살기, 아이 낳기 꺼리기로 나아가는 이유는 모성애로서의 자비의 의미가 언제까지나 담보될지 모를 사랑의 위기를 반영하는 성불러.
김형수 = 자식의 결혼을 부모의 행사로 취급하는 우리 드라마 속의 어머니들도 어쩌면 ‘거대한 뿌리’ 위에서 태어난 거라 볼 수 있겠네요. 억지스러워서 싫었는데, 오늘은 그 흔적을 긍정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고은 = 나의 어머니는 이런 시대 이전의 어머니 사랑을 나에게 다했어. 하지만 어머니는 흙을 닮아서 어떤 사랑의 기교도 없었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주제가 있는데 그런 기술로서의 사랑과는 동떨어진 것이지. 그냥 방법도 뭣도 없는 사랑의 고체라 할까.
어머니의 몇 마디 말이 내 언어의 시작이었어 글은 아버지에게 배웠지
김형수 = 조용한 성품이셨습니까?
고은 = 어머니는 다른 모든 농촌의 아낙 그대로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그리고 어머니 노릇에 온몸이 부서지도록 다할 뿐만 아니라 논밭의 일꾼 노릇으로 해가 뜨고 별이 떴어. 이런 어머니의 지쳐버린 젖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시부모나 남편이 아닌 아들인 나와 있을 때가 되면 으레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어머니의 자장가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금자동아 은자동아…”라는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런데 어느 날 아침나절이었어. 나를 안고 모로 누워서 가만히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자장가가 아닌 유행가였어. “기차는 떠나간다. 보슬비를 헤치며 정든 땅 뒤에 두고 떠나는 임이여”라는 것인데 그 유현한 애조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떨린다네.
김형수 = 아! 수많은 영감의 날개가 말씀 곳곳에서 막 푸드덕거리는 것 같습니다.
고은 = 이를테면 이런 어머니의 노래나 몇 마디 말의 그 일상어가 내 언어의 시작이었어. 지난번에도 어머니의 친정살이 처녀 때 사내 아쉬 못 보고 계집 아쉬 보았다 해서 외할아버지한테 박대를 당했던 일을 말했는데, 글자도 못 배우게 해서 언문(한글) 배우려다가 단단히 혼난 뒤로 순 까막눈으로 시집왔지. 외할아버지는 딸이 글을 알면 친정에 자주 편지하게 되는 것을 그런 식으로 경계한 것이네.
김형수 = 글이란 참 불온한 것인가 봅니다. 문풍(文風)이 바뀌는 것 하나도 시대의 광명이 바뀌는 거사에 속한다고 하더니, 최근에 한글 창제를 다룬 드라마도 그 점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고은 = 그런데 아버지는 약간의 한자는 물론이고 언문책을 유창하게 읽는 것에 자극을 받아 아버지한테 언문을 배웠어. 이 사실은 내가 한자는 서당에서 배우고 언문은 머슴 대길이 아저씨한테 배운 것과는 다르지. 뒷날 함석헌옹의 아버지가 집안 여인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데 함석헌의 아내만이 도무지 글자 익히기에 꽉 막혀서 그 집안 여인들 가운데 하필이면 함옹의 마누라만 순 무식으로 산 사실을 듣고 웃은 일이 있지. 그것을 <만인보>의 한 인물로 쓴 적도 있지.
김형수 = 하하,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세대에게는 함석헌 선생의 영향이 참 크셨나 봐요. 저희 세대에게는 선생님이 미친 영향이 큰데, 그것을 뒷세대에게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서 나중에 구박받을 것 같습니다.
고은 = 어머니는 아버지한테는 절대 복종의 여성이었는데 그래서 심지어는 어린 자식인 내 반찬 따위보다 남편의 반찬을 으뜸으로 차려내는 것을 자주 보았어. 달걀찜이란 귀한 음식인데 이것을 할아버지하고 아버지한테만 드리고 나에게는 안 주었으니까. 나는 이런 어머니가 섭섭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어머니의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했어.
김형수 = 일상을 지속하신 거죠. 영원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지속적인 일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수컷은 삶을 일회적인 것으로 사용하고, 암컷은 영원한 것으로 알도록 신체 설계가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고은 = 나는 어머니의 아기자기한 세부(細部)로서의 사랑 없이 자라났어. 어머니는 투박하고 무덤덤했어. 자식 자랑도 거의 없었어. 물론 젖먹이 시절의 노래나 말 몇 마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의 대화도 지극히 필요한 말 몇 마디로밖에는 가능하지 않았어. 아마도 이런 모자관계 때문에 내 언어의 결핍이나 언어의 표현부족이 일찌감치 자리잡았는지 몰라.
김형수 = 이 자리가 아니면 꺼내지 않으실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에너지의 근원을 밝히는 회고담에 동참한 기쁨이 큽니다.
고은 = 뒷날에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아들인 나와 살기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기의 자유를 만끽했어. 마을의 또래나 나이 층하가 나는 젊은 아낙까지도 두루 어우러지며 그네들의 갈등이 있게 되면 그것을 중재, 조절하고 그녀들의 과오도 넉넉히 시정해주는 그 공동체적 우애가 친족의 우애보다 훨씬 다채로운 여성이었어. 저 씨족의 혈연사회가 수렵 채집에서 농경으로, 철기 문명의 농기구에 의한 생산력과 다른 사회와의 관계로서의 연대의식이 바로 공동체의 우애를 가능케 했지. 혈연과 사회는 맞짱 뜨는 것이네 그려.
김형수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혈연의 지배를 넘어야 중세라는 ‘사회’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커다란 유기체로서의 사회와 그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끈으로 묶이는지 나날이 실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형수 = 그 점입니다. 어미의 무지막지한 사랑 때문에 생겨나는 모성 의존적 태도, 그것을 혹시 ‘구원을 갈망하는 자세’라고 봐도 될까요?
고은 = ‘구원(久遠)의 모성’ 운운이라는 합의된 오랜 구원은 사실상 구원(救援)의 모성이기도 하겠어. 이런 모성애의 종교적 심성이란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아. 동물들의 모성이 어느 경우는 인간의 모성보다 우월한 느낌도 들어. 왜냐하면 규범이나 윤리보다 본능으로서의 어미 사랑이 더 맹목적으로 단호한 점 때문이지.
김형수 = 조선 후기의 풍속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가는 순간 어미닭이 필사적으로 뒤쫓는, 김득신의 ‘파적도’ 말입니다. 모든 어미들은 목숨 보존의 본능을 단숨에 넘어서는 희생적 영원희구의 동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은 = 알을 낳은 새는 한동안 울지 않는다네. 아마도 그것은 우는 일조차 부질없을 만큼 실로 완벽한 자기실현을 마쳤기 때문이지. 탄생시키는 일만큼 완벽한 사건이 어디 있겠어. 시인에게 시가 나오면 다음의 시가 필요 없을 만큼 무심의 기쁨으로 넘치듯 말이네.
김형수 = 탁월한 비유입니다. 하나의 운율이 태어나는 황홀에 비하면 산문을 마감하는 ‘탈고’라는 말은 노동을 가리키는 말처럼 구차해 보이니까요.
고은 = 어머니라는 한자 모(母)는 여자가 두 개의 젖을 가진 것으로 형상화되었지. 사실 여성의 유방이란 성적인 장치 그 이상으로 양육의 절대 장치이지. 어쩌면 유방의 성감대는 아기 낳기 전보다 아기 낳은 뒤가 더 눈부신지 모르지.
김형수 = 허, 양육의 절대 장치라 표현하시네요. 생명의 경이로운 영역이라 생각됩니다.
고은 = 그런데 이런 어미에 의해서 태어나고 자란 새끼는 동물 쪽에서는 빠른 시기 안에 모자관계를 끝내버리지. 아니 그것들은 태어난 얼마 뒤에 바로 독립시키거나 하지.
김형수 = 그 같은 상상력이 ‘개밥 주면서’ 같은 시를 쓰게 하셨을까요? 이명박이 취임하고 노무현이 귀향하며 부시가 물러나는가 하면 푸틴이 실권 총리가 되는 격변기에도 0.5초의 기억으로 사는 짐승, 또 몇 달만 지나도 제 어미이고 새끼인 것을 잊어버리는 중생들의 풍경 묘사가 하도 실감 나서, 아, 시에도 스펙터클이란 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고은 = 서구사회에서 아이들이 십대 중반 직후 부모 슬하로부터 별개의 존재가 되는 일은 동물 쪽의 생존방식에 가까운 노릇이지. 그런데 동양 전통사회에서는 부모에게 자식은 거의 종신형에 가까운 평생관계가 되어 왔어. 특히 한국의 어머니란 이승의 눈을 감아야 아들딸과의 관계 완료가 되는 셈이야. 이런 사실의 또 다른 형태가 동양 사회에서 부모 내지 조상에의 제례적(祭禮的)인 숭배를 통해 공존관계를 이어가게 되는 것인지 몰라.
김형수 = 유목민에게 들어보니 말(馬)들도 그렇더라고요. 아무리 떨어져서 자라고 이산된 지 오래되어도 곧장 혈육을 알아보고 근친교배를 거부합니다.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는 사랑의 대상이기 앞서 생존, 즉 밥의 대상이야
고은 = 그 말의 기억력을 배우고 싶군.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성애의 대칭으로서, 그 어머니의 사랑에 끊임없이 감동하는 아들딸의 어머니에의 절대귀의는 그것이 추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나 종교적인 것으로서의 고상한 가치라는 이면에 무서운 생존에의 기억이 관련되어 있지. 그것은 매우 물질적이기도 해. 아니 경제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거기에서 드러난다네. 어머니 없이는 이 세계의 생명체가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머니의 젖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무서운 현실에 내던져진 새끼 아닌가.
김형수 = 아까 이야기를 더 하면, 김수영은 시적 진술에서 일체의 감상성을 배제했습니다. 선생님의 언어에도 한밤중을 쪼개는 번개처럼 미지를 가로지르는 고독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트로트의 ‘어리광’ 같은 게 머무를 자리가 없어요. 저는 그 ‘어리광’이 ‘모성에 대한 의존도’와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고은 = 무릇 생명체는 최우선적으로 입의 절대성으로부터 생명을 지속시킬 수 있어. 먹어야 사는 것이지.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네. “자존심은 굶주림, 목마름이나 추위보다 더 큰 비용을 요구한다”고 말일세. 또 성삼문도 비슷한 말을 토로했어. 이 말은 인간의 자기 존엄성이나 명예가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가를 강조하고 또 인간의 품위를 드높이는 데는 그럴싸하지만, 이 말은 굶주림의 체험이 미약한 데서 나온 말이기 십상이야. 나는 이런 고상한 어조보다 우리들이 흔히 지껄이는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는 진부한 말이 훨씬 절실한 표현인 줄 아네.
김형수 = 지상에는 가난 때문에 태도가 망가질까봐 긴장하면서 사는 목숨들이 많은데.
고은 = 내가 가혹한 말을 하겠네.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니 박애니 하는 수식어에서 태어난 것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런 의식의 바닥인 굶주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한 철부지 말의 이쪽은 기아와 절대빈곤에 빠져 있었어.
김형수 = 지금 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는 중이지요?
고은 =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의 대상이기에 앞서 밥의 대상이야. 어머니의 젖은 자식에게 생존의 제1조건이란 말이지. 그것 없으면 살 수 없어. 나는 한국전쟁 당시의 한 보도사진에서 기막힌 광경을 보았어. 폭격으로 사망한 엄마 시신의 나오지 않는 젖을 필사적으로 빨아대고 있는 젖먹이 아기 말이네. 어디 이뿐인가. 저 1980년 5월 광주 학살 당시 남편 퇴근길의 집 앞에 마중 나와 있던 임신한 새댁이 총 맞아 죽었는데 그 새댁 자궁 안에 들어있었던 태아 또한 얼마나 살아나려고 그 캄캄한 자궁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엄마 뒤따라 죽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네.
김형수 = 아아, 바람소리로도 다치지 않게, 잔가지 하나 실가지 하나까지 지키는 것이 모성애인데요. 그 부재는 얼마나 애처로운 비극을 낳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은 = 이렇듯이 어머니란 사랑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 밥의 형이상학이고 영혼 쪽이라기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 위에서 인간의 언어문화인 ‘사랑’이 태어난 것인지 몰라. 이런 엄마의 젖을 빨며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익힌 것이 우리네 언어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말은 국어라는 국가 개념의 인식 따위를 능가하는 모어 내지 모국어라는 그 근원적인 의미에 더 들어맞겠지.
김형수 = 굳이 구별하자면 그것이 생태 언어라는 말씀이지요?
고은 = 그렇지. 사실 우리말은 학교 이전에 이미 거의 익힌 것인데 그것의 문법적 구성이나 새로 생성하는 말과의 만남이 바로 언어의 후천성을 펼치는 것이지.
김형수 = 모국어라는 언술이 국가 언어로서의 한국어, 서울 중산층의 교양을 표본으로 하는 시민 언어로서의 표준어와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은 = 나 역시 자네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이런 어머니에의 기억을 반추한다네. 물론 내가 어머니 젖을 먹었던 일을 낱낱이 기억하기는 불가능한 노릇이지. 하지만 기억의 몇 조각이 기억의 역할을 다하는 경우 어머니의 젖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할 수 있네. 이 기억이란 치매의 극한에까지 따라붙을지도 모르지. 당연한 것은 어머니 젖으로 나는 생존함으로써 지금껏 그때의 생명을 여기까지 연장시키고 있으니까.
김형수 = 그 많은 시의 어머니라 생각하니 더 비장하게 들립니다.
고은 = 어머니의 젖가슴도 기억해. 하얀 살결에 시퍼런 정맥이 설켜 있었어. 그 젖을 먹고 난 뒤면 어머니는 아주 만족스러운 눈길로 어린 나를 굽어보았지. 뒷날 자비(慈悲)라는 말의 풀이로는 고대 인도의 범어에서 ‘자’는 ‘마이트리’라 하여 참된 우정을 뜻했으나 이와 달리 엄마가 아이에게 젖 먹이고 난 뒤의 그 풍요한 행복으로서의 사랑을 뜻하게 되지. 아이의 옹알이에 어미의 기쁨 말이네. 그렇게 본래의 의미는 우정이었는데 엄마의 애정으로 발전한 것이지. 비(悲)는 ‘카루나’인데 연민, 동정, 공감을 뜻하다가 결국 어머니가 자식의 생명을 제 목숨 걸고 지속시켜주는 사랑으로 되었어. 그러니까 아기가 젖 먹고 나서 흐뭇해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함께 흐뭇해하는 것이 ‘자’이고 그 아이가 아플 때는 자신이 아픈 것 이상으로 그 아픔을 벗어나게 하려는 갖은 정성을 다 바치는 것이 ‘비’이지. 그래서 ‘자’는 삶의 지속이고 ‘비’는 변혁 변화가 되지.
김형수 = 유목민 가요에서도 어머니는 거의 절대적 소재로서 님을 압도합니다.
고은 = 이런 모성애가 이상하게도 지식층의 여성보다 비(非)지식층의 여성에게 더 깊은 것을 자주 목격해. 저 식민지 시대 선구적인 여성이던 화가 나혜석이 제 아이를 저주한 사실은 특이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여성이란 그 진가는 모성성에서 발현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이 된다고 하지. 현대는 이런 엄연한 모성이 조금씩 해체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내보이고 있네. 당대의 한국 여성들이 결혼보다 독신으로 살기, 아이 낳기 꺼리기로 나아가는 이유는 모성애로서의 자비의 의미가 언제까지나 담보될지 모를 사랑의 위기를 반영하는 성불러.
김형수 = 자식의 결혼을 부모의 행사로 취급하는 우리 드라마 속의 어머니들도 어쩌면 ‘거대한 뿌리’ 위에서 태어난 거라 볼 수 있겠네요. 억지스러워서 싫었는데, 오늘은 그 흔적을 긍정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고은 = 나의 어머니는 이런 시대 이전의 어머니 사랑을 나에게 다했어. 하지만 어머니는 흙을 닮아서 어떤 사랑의 기교도 없었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주제가 있는데 그런 기술로서의 사랑과는 동떨어진 것이지. 그냥 방법도 뭣도 없는 사랑의 고체라 할까.
어머니의 몇 마디 말이 내 언어의 시작이었어 글은 아버지에게 배웠지
김형수 = 조용한 성품이셨습니까?
고은 = 어머니는 다른 모든 농촌의 아낙 그대로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그리고 어머니 노릇에 온몸이 부서지도록 다할 뿐만 아니라 논밭의 일꾼 노릇으로 해가 뜨고 별이 떴어. 이런 어머니의 지쳐버린 젖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시부모나 남편이 아닌 아들인 나와 있을 때가 되면 으레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어머니의 자장가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금자동아 은자동아…”라는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런데 어느 날 아침나절이었어. 나를 안고 모로 누워서 가만히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자장가가 아닌 유행가였어. “기차는 떠나간다. 보슬비를 헤치며 정든 땅 뒤에 두고 떠나는 임이여”라는 것인데 그 유현한 애조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떨린다네.
김형수 = 아! 수많은 영감의 날개가 말씀 곳곳에서 막 푸드덕거리는 것 같습니다.
고은 = 이를테면 이런 어머니의 노래나 몇 마디 말의 그 일상어가 내 언어의 시작이었어. 지난번에도 어머니의 친정살이 처녀 때 사내 아쉬 못 보고 계집 아쉬 보았다 해서 외할아버지한테 박대를 당했던 일을 말했는데, 글자도 못 배우게 해서 언문(한글) 배우려다가 단단히 혼난 뒤로 순 까막눈으로 시집왔지. 외할아버지는 딸이 글을 알면 친정에 자주 편지하게 되는 것을 그런 식으로 경계한 것이네.
김형수 = 글이란 참 불온한 것인가 봅니다. 문풍(文風)이 바뀌는 것 하나도 시대의 광명이 바뀌는 거사에 속한다고 하더니, 최근에 한글 창제를 다룬 드라마도 그 점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고은 = 그런데 아버지는 약간의 한자는 물론이고 언문책을 유창하게 읽는 것에 자극을 받아 아버지한테 언문을 배웠어. 이 사실은 내가 한자는 서당에서 배우고 언문은 머슴 대길이 아저씨한테 배운 것과는 다르지. 뒷날 함석헌옹의 아버지가 집안 여인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데 함석헌의 아내만이 도무지 글자 익히기에 꽉 막혀서 그 집안 여인들 가운데 하필이면 함옹의 마누라만 순 무식으로 산 사실을 듣고 웃은 일이 있지. 그것을 <만인보>의 한 인물로 쓴 적도 있지.
김형수 = 하하,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세대에게는 함석헌 선생의 영향이 참 크셨나 봐요. 저희 세대에게는 선생님이 미친 영향이 큰데, 그것을 뒷세대에게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서 나중에 구박받을 것 같습니다.
고은 = 어머니는 아버지한테는 절대 복종의 여성이었는데 그래서 심지어는 어린 자식인 내 반찬 따위보다 남편의 반찬을 으뜸으로 차려내는 것을 자주 보았어. 달걀찜이란 귀한 음식인데 이것을 할아버지하고 아버지한테만 드리고 나에게는 안 주었으니까. 나는 이런 어머니가 섭섭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어머니의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했어.
김형수 = 일상을 지속하신 거죠. 영원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지속적인 일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수컷은 삶을 일회적인 것으로 사용하고, 암컷은 영원한 것으로 알도록 신체 설계가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고은 = 나는 어머니의 아기자기한 세부(細部)로서의 사랑 없이 자라났어. 어머니는 투박하고 무덤덤했어. 자식 자랑도 거의 없었어. 물론 젖먹이 시절의 노래나 말 몇 마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의 대화도 지극히 필요한 말 몇 마디로밖에는 가능하지 않았어. 아마도 이런 모자관계 때문에 내 언어의 결핍이나 언어의 표현부족이 일찌감치 자리잡았는지 몰라.
김형수 = 이 자리가 아니면 꺼내지 않으실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에너지의 근원을 밝히는 회고담에 동참한 기쁨이 큽니다.
고은 = 뒷날에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아들인 나와 살기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기의 자유를 만끽했어. 마을의 또래나 나이 층하가 나는 젊은 아낙까지도 두루 어우러지며 그네들의 갈등이 있게 되면 그것을 중재, 조절하고 그녀들의 과오도 넉넉히 시정해주는 그 공동체적 우애가 친족의 우애보다 훨씬 다채로운 여성이었어. 저 씨족의 혈연사회가 수렵 채집에서 농경으로, 철기 문명의 농기구에 의한 생산력과 다른 사회와의 관계로서의 연대의식이 바로 공동체의 우애를 가능케 했지. 혈연과 사회는 맞짱 뜨는 것이네 그려.
김형수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혈연의 지배를 넘어야 중세라는 ‘사회’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커다란 유기체로서의 사회와 그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끈으로 묶이는지 나날이 실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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