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평론가 김형수: 선생님의 미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저번에 실마리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도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던 소년 고은태의 영혼과 부딪쳐 서정적 파장을 일으킨 것들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은데요. 그때와 지금은 지상의 풍경이 많이 다르지요?
고은: 요즘의 십대 이하나 십대의 아이들 대부분은 안경잡이가 되어 있는데 이런 현상은 도시생활, 특히 아파트단지의 생활을 통해서 자라나는 데 그 까닭이 있을지 몰라. 바라보는 대상이 거리 양쪽의 건물이고 창밖의 아파트 건물이니 그 시야가 차단되고 말지. 그러므로 가시공간의 크기가 없어지므로 시력이 퇴화되기에 알맞지.
김형수: 그래서 생기는 현상일까요? 옛날에 실재하던 세계가 지금은 가상이 되어버린 예가 많습니다. 저는 현대 판타지에서 영적 움직임을 느끼는 게 아니라 마치 사라진 대지를 대체하려는 실용적 대용품 같은 느낌을 받아요.
고은: 요즘의 십대 이하나 십대의 아이들 대부분은 안경잡이가 되어 있는데 이런 현상은 도시생활, 특히 아파트단지의 생활을 통해서 자라나는 데 그 까닭이 있을지 몰라. 바라보는 대상이 거리 양쪽의 건물이고 창밖의 아파트 건물이니 그 시야가 차단되고 말지. 그러므로 가시공간의 크기가 없어지므로 시력이 퇴화되기에 알맞지.
김형수: 그래서 생기는 현상일까요? 옛날에 실재하던 세계가 지금은 가상이 되어버린 예가 많습니다. 저는 현대 판타지에서 영적 움직임을 느끼는 게 아니라 마치 사라진 대지를 대체하려는 실용적 대용품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림|임옥상 화백
고은: 맞아. 현대인의 근시(近視)는 현대의 ‘자연’인지 몰라. 현대의 시각 원리라 할 원근법조차 그 의미를 폐기하기에 이른 것이 이런 시야의 부재라 할 수 있겠네. 오늘에 돌이켜본다면 내 어린 시절은 거의 무제한의 시야에 내던져진 인간의 공간이 보장되어 있었지. 인간의 죽음을 두고 숨진다는 표현에 버금가는 것으로 눈감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드넓은 시야로부터 떠난다는 뜻도 될 것이네.
김형수: 역시 해석의 높이가 다릅니다. 중세에는 성곽 너머에서 도발해오는 타자의 장소로서의 먼 곳이 늘 꿈틀대고 있었지만 현대에는 피아가 엉켜 모두 건축물이 되었어요. 세상의 눈이 감겨가는 중이라고 할까. 그래서 문명도시가 ‘자연의 묘지’ 같아요.
고은: 고대인에게는 높은 건물의 도시도 공간 장애도 없어서 멀리 바라보는 삶이 있었고 근대인에게는 그런 삶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굳이 먼 곳까지 바라볼 필요가 없으므로 시력도 차츰 약해진 셈 아닌가. 이 점에서 인간의 눈보다 동물들의 눈이 훨씬 먼 곳의 아주 작은 동작까지 파악할 수 있는 무서운 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솔개나 매의 눈이 저 높은 공중에서 지상의 사냥감을 면밀하게 포착하는 것도 그 무서운 시력 때문이지. 인간의 눈도 선사시대에는 이런 동물의 시력과 남남이 아니었어.
김형수: 맞아요. 지금도 동물적 환경을 지키고 사는 초원 유목민의 시력은 대략 3.0에서 5.0에 이릅니다. 저는 그 놀라운 시력에서 얼마나 멀리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멀리 닿고 싶었을까, 얼마나 멀리 부르고 싶었을까 하는 그리움의 크기를 느껴요.
고은: 내 어린 시절의 축복은, 첫째 하늘이 컸고 땅의 이차원적 공간이 크다는 사실이었지. 저녁 낙조의 크기란 지금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해. 그러한 밤하늘의 그 무진장의 허공 속에 펼쳐진 별들이야말로 얼마나 장엄한 시야이겠는가 말이네.
김형수: 아아. 생명의 신령스러움에 대한 갈증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고은: 별빛을 반사시킬 아무런 장벽도 허용하지 않는 그 허공이므로 암흑의 무한 아닌가. 그런 암흑 속에서 필사적으로 빛을 쏘아대는 그 별들의 생애야말로 얼마나 비극적인가. 아마도 이런 사실을 너무나 일찍 깨달은 고대 천문학의 선야설(宣夜說)이 지상의 체계를 하늘에까지 적용한 당시의 혼천설(渾天說)에 의해 불온한 모험주의로 배척당했던 셈이지.
김형수: 대지의 크기를 감당해야 명마이고 허공의 깊이를 감당해야 훌륭한 별이고 세계의 넓이를 감당해야 위대한 정신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고은: 나는 별에 관한 한 무지무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네. 내가 승려가 된 뒤 어느 대처승 암자에서 읽게 된 괴테의 ‘시와 진실’ 제1장을 훑어보고 나서 더욱 그렇게 되었네. 물론 그것을 다 읽을 겨를은 없었지. 제1장을 읽고는 그만두어야 했으니까.
김형수: 어떤 내용이었는데요?
고은: “1749년 8월28일 정오 12시 종소리와 함께 나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성좌(星座)는 매우 좋았다. 태양은 처녀궁(處女宮) 좌표(座標)에 떠 있었고 그날의 좌오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성과 금성은 다정스럽게 태양을 쳐다보고 있었으며 수성도 반감적(反感的)이지 않았고 토성과 화성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때마침 만월이 된 도시에 유성시(遊星時)에 드러난 달만이 그 대일조(對日照)의 힘을 한층 더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이 나의 탄생을 방해했고 이 시각이 지나버리기 전에는 나의 탄생을 끝낼 수가 없었다. (…)”
김형수: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구절 같은데.
고은: 실로 한 인간의 탄생 묘사가 현란하지 않은가. 뒷날 점성술사가 말한 것인데 이런 진술은 더 장황해지더군. 말하자면 달의 방해로 인한 난산의 나머지 산파의 기술조차 부족해서 죽은 아이로 태어난 것을 강조하는데 그래도 그 산파나 집안 아낙들이 애쓴 보람으로 죽은 아이가 살아난 것이 바로 괴테 운명의 시작이었어.
김형수: 의례적 서술이 아니었네요
고은: 그래서 괴테의 할아버지는 그 당시 프랑크푸르트 명예시장이었는데 그의 힘으로 산파교육이 본격화되어서 많은 출산혜택이 있게 되었다니 괴테 덕택은 이미 태어나자마자 세상에 펼쳐진 셈이지. 한 인간의 탄생 자체가 마치 천신(天神) 천인(天人)의 그것인 양 하늘의 운행에 말미암은 사실이 이토록 고도(高度)의 전기문체로 표현된 것 자체가 제왕적이지 않은가.
김형수: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많은 기운에 연루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본디 그런 거미줄 같은 기운들이 세상을 직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고은: 이런 탄생서사 앞에서 다른 탄생들의 서사 부재는 차라리 무심한 바 없지 않네 그려. 물론 나의 출생 따위야 마을 가축이 새끼를 낳는 일이나 들짐승의 알 속에서 새끼가 나오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지. 나의 출생은 지상의 한 현상이고 괴테의 탄생은 우주로서의 사건이었지. 우연히도 나 역시 괴테하고 같은 사자좌에 태어나기는 했네. 사자좌에 태어난 사람에게 술고래가 많은데 괴테는 그런 술고래가 아닌 것도 이상한 노릇이지.
김형수: 괴테가 술고래가 아닌 것만 봐도 우주의 샤먼적 작용과 더 어울리는 신체를 가진 것은 선생님 쪽이 아니실지요.
고은: 나의 생년월일은 1933년 음력 6월10일 오전 10시(사시)로 되었는데 양력으로는 8월1일인가 보네. 하지만 나의 출생은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운행 따위와 아무런 상관도 없이 지상의 생명체에 한 생명체가 더해진 것밖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쁨이나 아버지의 어설픈 기쁨이 오랜 종족 본능이나 남자 선호의 누습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겠지.
김형수: 저녁 어스름을 나는 기러기떼의 행렬처럼 멀리서 보면 인간세상도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더 소중하다면 그 속에서 아비의 것과 자식의 것이 한 묶음이 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고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절대빈곤 속에서 태어난 내가 태어난 이래 최초로 우주와의 만남이 있게 되었지. 아마 내가 다섯 살 때쯤이었을 거야. 1938년쯤이지. 그 당시 농촌이란 막 벌어진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인한 조선반도 병참화(兵站化)의 현장이 되었지. 일본의 대륙 침략의 근본 목적은 조선 통치의 외곽 확보였어.
김형수: 조선 침략과 대륙 침략의 관계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까? 교과서에서 거꾸로 배웠는데.
고은: 총독 미나미(南次郞)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서사(誓詞)’를 마을이나 학교나 어디서나 하루의 일과로 외치게 했어.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제창해서 일본 본토와 조선반도가 한 몸뚱이라는 헛소리 아래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은 더욱 본격화되었지. 가령 임금노동자의 임금이 절반 차이가 나거나 아예 조선인 임금은 3분의 1인 경우도 적지 않았어. 일본 군부는 북진론으로 중·소를 겨냥하고 남진론으로 태평양과 동남아시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 실제로 이때부터 소련이나 미국까지도 적대국가로 규정하기 시작했지. 이런 중일전쟁 시기여서 군비확장에 따른 군수물자 동원에 광분하게 되었어. 바야흐로 지구의 동서가 파시즘으로 치달았지.
김형수: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의 오지로 밀리면 몸이고 정신이고 들판의 곡식이고 가릴 것 없이 다 벗어주고 살아야 했던 것 같아요.
고은: 1930년대 말의 식량위기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굶주림에서 헤어날 길 없게 만들었어. 국민총동원법이 공표되고 창씨개명으로 조선사람 모두가 성씨를 일본 성씨로 갈고 이름도 일본 이름이 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시켰어. 그러므로 나는 정신으로나 생존으로나 결코 온전할 수 없었지.
김형수: 한낱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침략자들이 달을 물어가고 해를 물어가 대낮조차 칠흑의 어둠에 묻힌 그런 곳에서 선생님의 노래가 태어나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고은: 군산항의 쌀 운송은 해마다 엄청난 양으로 늘어났어. 5000t 미만의 크고 작은 화물선들의 뱃고동 소리는 그 항구의 일상적인 풍물에서 빼놓을 수 없었지. 자주 안개가 낀 항구에서 정작 떠나거나 돌아오는 배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 배의 고동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에서 내지르는 목 쉰 짐승의 절규 같았어. 지독한 소작료로, 또 공출(供出)로 다 알겨 간 뒤 농민은 그저 빈 논의 허수아비로 자화상을 삼을 수밖에 없었지. 내 어린 시절의 춘궁기에는 마을의 몇 집을 제외하면 일일 삼식이 어림없었지. 봄날의 초근목피가 양식을 대신해주는 일이 예사였어.
김형수: ‘고은 정서’의 형성 경로를 보여주는 내외적 풍광 묘사가 참 절묘합니다. 그래서요?
고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어느 날 저녁 한 줌의 쌀도 보리쌀도 없을 할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빈 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때게 했어. 아무리 굶게 되어도 인간의 얼굴을 위하여 굶는다는 수치를 마을 사람한테 숨기기 위해서 밥 짓는 연기 시늉을 과시한 것이지. 그런 춘궁인데 10㎞나 15㎞ 떨어진 만경강 개펄에 나 있는 나문재 돋아난 것이라도 뜯어다 밀기울을 버무려 쪄낸 것을 먹게 되거나 우리가 지은 논농사의 쌀을 만주나 중국의 싸움터로 실어가는 대신 만주벌판의 옥수수가 실려 오는 동안 그것이 썩은 채 배급될 경우 그 썩은 옥수수 가루로 죽을 쑤어먹게 되었지. 어머니는 신새벽에 주린 배 그대로 바닷가에 가서 하루 내내 나문재 몇 줌을 뜯어 왔어. 아낙들이 와서 그것을 뜯으니 뜯을 데가 있을 리 없지. 그래서 날이 저물도록 그것을 찾아 다녔지.
김형수: 제가 자랄 때까지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누나가 저를 업고 삐비꽃 언덕을 헤집고 다녔는데, 가난한 들판 언덕에는 햇살이 쌓일 새가 없었어요. 해가 져서 산그늘이 내리면 그 서늘함이 마치 죽음이 내리는 것처럼 무서웠는데.
고은: 나는 고모의 등에 업혀서 그런 어머니를 밤중까지 기다렸어. 물론 뱃속에는 물밖에 들어간 것이 없었어. 그럴 때 처음으로 하늘의 별들을 보게 된 것이지. 말하자면 우주와의 첫 대면이지. 몇 백 광년 전에 죽은 별빛이 몇 백 광년 뒤의 지구에 도달함으로써 다섯 살의 내 눈에 그것이 비추어진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당시의 커다란 공간인 밤하늘의 별들이란 거의 다 주먹만 했어. 그 빛이 나에게는 먹으면 맛이 있고 배부를 수 있는 열매로 보인 것이지. 별에 대한 모독이야. 우주의 한 얼굴을 나는 내 입에 넣을 것으로 삼아버린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나에게 별의 최초는 그것이 별이 아니라 밥이었어.
김형수: 하하. 밤하늘에 별밥이 뿌려져 있었네요. 우주의 밭에서 밤새 돋아난 빛의 푸성귀라도 소출해야 끝양식을 얻을 수 있으니, 사실은 그 어린 눈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고은: 하기는 한국인 대부분의 삶의 절실성에서 쌀이란 하나의 절대였어. 예부터 ‘밥이 하늘(食以爲天)’이라는 지겨운 속담도 그런 뜻이지. 그래서 한말의 선교사 헐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만큼 쌀이나 밥 한 그릇이란 삶의 일차적 가치이기도 했다네. 내 시인 생활 10년 이상을 나는 별을 밥으로 보아야 했던 이런 첫 경험을 숨기고 있었네. 별을 꿈으로 노래하고 별을 영원(永遠)의 신호 같은 것으로 장식해야 할 서정 세계 저쪽에서 기껏해야 그것을 밥 한 그릇이나 배부를 수 있는 열매로 알고 고모한테 “저것 따 줘. 저것 따 줘” 하고 울었던 사실은 내 서정에서 한 굴욕이기도 했던 셈이지. 그때 나하고 똑같이 빈 배로 어머니 오기를 기다리던 고모가 “아가, 저건 먹는 것이 아니란다. 그냥 먼 곳에서 빛나는 것이란다” 하고 나를 달래던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없어질 줄 모르는 일이 되어 나는 그 기억을 몹시 싫어했지.
김형수: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한 루카치보다 우주를 훨씬 더 인간적으로 사용한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고은: 그래서 나는 내 몸 유전자 속에는 별이 들어 있다고 친구들에게 강변하거나 마치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카얌이 환갑 때에도 하늘의 별들에 사로잡힌 천문대의 시간에 잠긴 것처럼 유난히 천문학이나 동서양의 점성술에 기울어지거나 했는지 모르지. 실제로 지난 세기 60년대는 자주 밤하늘의 별들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감기 들기 십상이었어. 내가 삼각산 보현봉 밑에서 얼마동안 머물 때였는데 그때 보현봉 꼭대기의 바윗등을 대낮처럼 익숙하게 기어 올라가서 처음에는 서울 야경의 불빛 따위를 훑어보다가 그것들을 경멸한 나머지 별들의 여러 부위를 망연자실로 우러러보는 중독에 걸려 있었어. 고구려 벽화의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을 나중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그 이전부터 북두칠성하고 노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 내 꿈속에서도 그 일곱 별이 자주 빛났어. 참 한국인의 이름 중에는 칠성이가 많지.
김형수: 그래서 ‘저녁 숲길에서’에 나오는 미자르별이 그토록 싱싱하게 빛났던가 봅니다. 세계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신성하니까요.
고은: 이런 시기를 지나서 70년대에 이르러서 나는 어린 시절 별을 밥으로 만난 원체험이 결코 남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별이야말로 밥처럼 절실한 대상이고 밥이야말로 별처럼 내 영혼을 드높여 주는 신성한 물질임을 깨닫고 내 어린 시절의 사연을 슬슬 알리기 시작하게 되었어. 별과 밥, 꿈과 물질, 그리고 지상의 현실과 우주는 결코 동떨어지지 못한다는 일여(一如)의 세계. 그것 말이네.
김형수: 헉, 기가 막힌 반전입니다.
고은: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간이지. 우주라는 시간, 공간의 무한 속에 내 존재 티끌의 무대가 있지 않은가.
김형수: 이제 어린 나그네, 선재의 미학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어요. 다음주가 기다려집니다.
저녁 숲길에서
어느 날보다도 일찍 미자르별*이 뜨고 나는 겨우 일을 마쳤다.
우리 말이 방풍지대 너머로 달려가서
해산하는 듯한 메밀밭을 버려놓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끌고 밭 주인한테 사과하러 가야 한다.
그러나 한두 번 잘못하는 일은 아름다움 아니랴.
내가 가는 것은 뜻밖의 슬픔이라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랴.
밭 주인네 집은 밤나무숲 저쪽의 오지에 있다.
하얀 메밀밭은 저문 뒤에 더욱 역력하구나.
나는 뒤에 끄덕끄덕 따라오는 말더러 핀잔을 주지 않고
오직 숲길로 접어들자 몇 마디 중얼거렸을 뿐이다.
이제 다 왔다, 네가 좀더 겸손해지면
나도 너와 함께 겸손한 식구로 늙어가겠다, 라고.
우리가 밤나무숲으로 들어가자 누가 뒤에서 일어서는 듯하다.
자꾸 돌아다보아도 말 꼬리에 채이는 것은 벌써 오고 있는 어둠이다.
저녁 숲길은 밭 주인의 자취로 가득하고
나는 세 줄짜리 금琴을 탄주하는 주인에게 할 말을 생각해본다.
잘못했습니다, 우리 말은 히잉히잉 운 뒤 몹시 후회하였습니다, 라고.
그러나 화내지 않을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화낼 주인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략)
*북두칠성 중의 한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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