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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김석종/고영재

[고영재의 천관산 편지]하늘의 섭리

고영재|언론인 yjkoh2@hanmail.net

하늘은 언제나 말없이 가르친다. 사람은 모름지기 순리를 따르라고. 삼척동자인들 어찌 이를 모르랴. 그러나 순리를 짓밟는 게 또한 인간의 삶이다. 그래도 자연은 너그럽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에게 간간이 매서운 채찍을 내릴 따름이다.

10월26일,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소리 없는 혁명이었다. 하늘의 뜻이 인간의 옹졸한 다툼에 회초리를 내린 것이다. 거짓 정치에 무서운 철퇴가 떨어졌다. 그 기세 앞에서 기득권세력의 몸부림은 무위로 돌아갔다. 권력을 쥐락펴락하던 정당의 권능은 마비됐다. 언론은 졸아든 자신의 영향력 앞에서 세상의 무서운 변화를 실감했다.

내일의 정치 기상도가 뚜렷하게 그려진다. 정치적 선택의 기준과 문화, 패러다임이 전면 재편될 조짐이다. 권력 게임의 규칙 역시 당연히 바뀔 터. 이른바 ‘대권 놀음’도 아주 딴판으로 전개될 것이다. 차기 정권을 이끌게 될 미지의 인물 윤곽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짓과 권력욕’은 치명적인 결격사유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공학이 위력을 떨치지 못한 전례 없는 선거’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바람’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망각의 병’을 기대하기에는 하늘의 분노가 너무나 폭발적이다.이 혁명의 교훈을 누가, 어떻게 실천해 옮길 것인가. 정치권도 화들짝 놀란 것은 분명하다. 안팎으로 자성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아직 잔꾀가 춤춘다. 한나라당은 ‘MB 정신’을 과단성 있게 깨야 하는 책무를 떠안았다. MB 정권의 거짓과 불의, 그리고 독단을 고발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

자연의 가르침은 ‘순리’ 기득권은 자연의 순리 앞에 무력하다 말과 논리는 순리 앞에 하찮다. 일러스트 | 김상민

무서운 파도를 잠재우겠다고 경찰 앞세워 <나는 꼼수다>를 수사할 때인가. 꼼수로 어찌 ‘들불’을 잡겠는가. ‘제발 거짓의 정치 시대는 이제 마감하라’는 시민의 열망을 몇 자루 가래로 막아보려는 권력의 안간힘이 눈물겹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 얄팍한 속셈이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습도 안쓰럽다. ‘졌지만, 지지 않았다.’ ‘이번 승부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갈렸다. 그 강화 방안을 찾아라.’ 봉창 뜯는 소리에 소도 웃을 판이다.

야권도 무릎 꿇고 시민의 소리에 귀기울일 때다. ‘대한민국 정치판을 송두리째 바꾸자. 우리는 오로지 MB 정권의 불의에 분노한 것만은 아니다. 야권 역시 정치 풍토를 어지럽힌 공범자 아닌가. 정치판을, 정치문화를 송두리째 물갈이하라.’

정치판 새판짜기의 핵심 화두는 속죄와 통합이다. 속죄의 의례는 엄정할 수밖에 없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시늉만의 개혁으로는 등 돌린 시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보통 시민의 수준에 미달하는 도덕성, 도토리 키 재기 권력게임의 원시성, 국가권력의 사적 농단에 시민들은 신물이 난다. 이번 혁명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통합’이다. ‘하나가 되어 수구 정권과 사이비 언론, 거대 자본이 손잡고 구축한 막강한 기득권 복합체와 맞서라.’ 태생의 배경과 이념적 차이, 현실적 세력의 대소 등 통합을 가로막는 장벽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는 없다. 덩치가 큰 집단은 ‘기득권’을, 이념적 선명성이 두드러진 정파는 ‘이념’을 통 크게 양보하면 서로 이기는 대통합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크게 양보할수록 큰 것을 얻는 게 세상 이치다. 머리 숫자의 열세에 따른 불공정 게임의 위험성도, 이념적 퇴색의 위험성도 세상의 변화를 감안하면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보인다. 정당 내부의 권력게임에도 시민의 건강한 목소리와 힘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는 커졌다. 이념적 좌표를 설정하는 과정에도 정치적 콘텐츠의 소비자인 시민의 요구와 취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되었다.

야권의 대통합은 한국 정당정치 사상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이념적 색깔이 불분명한 한국 정당의 원시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선명한 색깔’ 모두 선뜻 내놓기 어려운 ‘떡’이긴 하다. 그럼에도 대통합은 매력적이다. 정파를 막론하고 승산 높은 도전인 터다. 정치권의 속 좁은 다툼에 시민들의 피로감은 크다. 그들에게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서울시장 박원순은 이번 혁명의 장래를 가름할 최대 변수다. 그가 통합의 구심점이 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통합의 핵심 지렛대 역할이 그에게 주어진 것만은 명확하다. 그 역할은 실로 지난한 일이다. 외줄 타는 어름사니의 기예가 필요할 법하다. ‘박원순 시장’이라는 작품을 창출하는 데 참여한 집단의 다양성은 그를 내내 괴롭힐 것이다. 갖가지 간섭과 투정이 그를 압박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나무 위에 올려놓고 나무를 뒤흔드는 책동도 충분히 예견된다.

그러나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이 있다. 자연의 가르침은 언제나 간결 명쾌하다. ‘시민이 원하는 것’이 답이다. 시민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인 터다. 스스로 공언한 대로 정녕 정치적 욕심이 없다면 겁낼 일이 무엇인가. 정치적 집단의 힘과 저항은 시민의 힘,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것임을 하늘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입증해 주지 않았는가. ‘초심을 잃지 않는 의연함’은 박원순의 정치적 자산이자 한국정치 재편의 촉매제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의 가르침은 ‘순리’다. 기득권은 자연의 순리 앞에 무력하다. 말과 논리는 순리 앞에 하찮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옹졸한 셈법으로 재단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은 아직 하늘의 소리를 가벼이 여기는 듯하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속셈도 엿보인다. 주판알 튕기며 내년의 전략을 도모하는 기미가 뚜렷하다. 정치판에서 사라진 염치, 불완전한 인간의 속죄를 돕기 위해 하늘이 베푼 마지막 선물이다.

정치인들이여,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알량한 떡 조각에 연연하지 말라. 언제까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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