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 선임기자
‘새들아/여긴 허공이 아냐/머리를 박지마라. 유리조심.’ 그렇게 써놓았더니 새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싹 없어졌단다. 전북 무주 적상산 아래, 폐교된 한 초등학교 분교에 사는 ‘아티스트’ 이익태(63)의 유쾌한 ‘구라’다.
이참에 바로잡자면 그가 진짜 ‘내비도’ 교주다. 얼마 전 공지영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지리산 행복학교’(책으로도 나왔다)에서 ‘최도사’라는 사람을 내비도 교주라고 소개했었다. 그런데 그 최도사에게 처음 내비도를 일러준 이가 바로 이익태라는 거다. 최도사 집에 걸린 ‘내비道(도)’는 이익태 글씨다. 분교 작업실 벽에도 그 글씨가 붙어 있다. 누가 교주면 어떻고 신도면 또 어떤가. 그냥 ‘내비두는’ 게 내비도라고 이익태가 말했다.
‘배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는’, 아주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아침이면 셋이서 느릿느릿 춤춘다. 몸과 마음을 합일시키는 일종의 의식이란다. 보헤미안의 춤, 그리스인 조르바의 춤을 합친 것 같은 묘한 춤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함께 술 마시고 깊게 취한다. 한 여자는 요즘 다른 곳에 가 있다. ‘내비두면’ 어느날 불쑥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분교 입구에 ‘Bean Powder Family’(콩가루 집안)라고 쓴 팻말이 있다.
아마 이익태처럼 다양한 장르에 손 댄, 이른바 ‘전방위 예술가’는 흔치 않을 거다. 한국과 미국에서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시나리오작가, 극작가, 퍼포먼스기획자, 연극·영화배우, 큐레이터, 화가, 사진가, 심지어는 음악잡지 기자 노릇까지 했으니까. 1970년대에는 ‘제4집단’이라는 전위그룹 멤버였다. 이때 만든 아방가르드 영화 <아침과 저녁 사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예산 독립영화로 기록된다. 1977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20년 사는 동안에도 광주의 비극을 주제로 한 마당굿 ‘곡(哭)1’, LA흑인폭동 1주년 퍼포먼스 ‘볼케노 아일랜드’ 같은 대형 이벤트 작업을 했다.
1990년대 말 귀국해서는 일산 외곽 비닐하우스에 ‘거지(去至)산방’이라는 화실을 냈다. 화실은 왕년의 술친구들이 모여들어 날마다 시끌벅적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게 그 무렵이다. 남북 분단을 주제로 한 ‘빙벽’ 퍼포먼스, 남원 춘향제 예술감독, 전주 한옥생활체험관 아트디렉터, 그리고 몇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그러던 이익태가 어느해 봄날 계룡산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일본 방랑시인들의 단시(短詩)인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번역)를 읽었다. 아이쿠! 고승의 죽비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이쿠에 ‘필이 꽂힌’ 이익태는 산으로 갔다. 이익태식 하이쿠로 작품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하이쿠의 ‘이익태 버전’을 ‘아이쿠’라고 명명했다. 구례 지리산, 보은 속리산, 전주 모악산 자락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3년 전 이곳, 적상산으로 옮겼다. 그 10년 동안 ‘밤새 개들이 독경하더니 해뜨자 사람들이 짖기 시작하네’, ‘하루살이 하루는 영원’, ‘밥이 웃는다’,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춤추는 먼지’, ‘푸른 하늘 새 한마리 퐁당’ 같은 아이쿠를 쏟아냈다.
순간의 붓놀림으로 먹그림을 그리고 아이쿠를 써넣은 것이 아이쿠 선시화(禪詩화)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채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를 단순한 선으로 그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절 올리는 할매’ 같은 유머는 참 따뜻하다. 어찌보면 이철수 판화 비슷한데, 그는 ‘한순간’에 쓰고 그린다. 사진, 회화에는 아이쿠를 제목으로 쓴다. 사진은 돌멩이, 물결, 나뭇잎, 찻잔, 거미줄 같은 소소한 일상과 자연을 향해 불쑥불쑥 셔터를 누른다. 그림 작업은 한지에 물감을 뿌리고, 그것을 물에 빠는 일을 여러차례 반복한다. 물감 칠한 종이를 마구 밟고, 접고, 다시 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의 사진과 그림에 사람 얼굴, 글씨, 기이한 생물체 같은 신비한 형상들이 나타난다는 거다. 요즘 어떤 영성과 교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바라보는 순간, 혹은 그리워하는 순간 재창조된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그가 서울 북촌 갤러리 나무(NaMu)에서 한 달째 열고 있는 ‘하늘은 비로 비운다네’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그런 추상작품과 사진들을 걸었다. 푸른색, 황토색 점묘의 빛무리 같은 신비한 아우라 속에 어떤 형상이 얼비치는 작품들이다. 한지로 만든 바윗돌이 바닥에 놓이고, 운석들은 둥둥 떠있다. 어쩌다 소개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는데, 전시회는 23일 끝난다.
그에게 “붓은 칼, 카메라는 총”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니까 단칼의 검객, 찰나의 ‘건맨’처럼 순간에 반응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붓 스스로 그리고, 카메라 스스로 찍는 경지! 그것이 바로 ‘아이쿠 예술’이며 ‘내비도 정신’이란다.
이익태의 호는 그냥 이 산, 저 산 할 때의 ‘저산’이다. 산 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으니, 거리를 두자는 뜻에서 지었단다.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사람을 억압하지 말고, 경쟁하지 말고, 제발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내비도 세상은 혼자이든, 함께이든 자유와 평화가 넘쳐난다는데, 나도 이참에 내비도에 입문할까.
이참에 바로잡자면 그가 진짜 ‘내비도’ 교주다. 얼마 전 공지영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지리산 행복학교’(책으로도 나왔다)에서 ‘최도사’라는 사람을 내비도 교주라고 소개했었다. 그런데 그 최도사에게 처음 내비도를 일러준 이가 바로 이익태라는 거다. 최도사 집에 걸린 ‘내비道(도)’는 이익태 글씨다. 분교 작업실 벽에도 그 글씨가 붙어 있다. 누가 교주면 어떻고 신도면 또 어떤가. 그냥 ‘내비두는’ 게 내비도라고 이익태가 말했다.
이익태는 분교에서 두 여자와 함께 산다. 한 여자는 소설가, 한 여자는 그냥 ‘예술 애호가’라고 했다. 세 사람 다 세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지쳐 떠돌다가 의기투합했단다. 이익태는 셋의 ‘동거’를 “이미 남녀관계를 훌쩍 뛰어넘어선, 말 그대로 ‘쿨’한 자유 평화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배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는’, 아주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아침이면 셋이서 느릿느릿 춤춘다. 몸과 마음을 합일시키는 일종의 의식이란다. 보헤미안의 춤, 그리스인 조르바의 춤을 합친 것 같은 묘한 춤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함께 술 마시고 깊게 취한다. 한 여자는 요즘 다른 곳에 가 있다. ‘내비두면’ 어느날 불쑥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분교 입구에 ‘Bean Powder Family’(콩가루 집안)라고 쓴 팻말이 있다.
아마 이익태처럼 다양한 장르에 손 댄, 이른바 ‘전방위 예술가’는 흔치 않을 거다. 한국과 미국에서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시나리오작가, 극작가, 퍼포먼스기획자, 연극·영화배우, 큐레이터, 화가, 사진가, 심지어는 음악잡지 기자 노릇까지 했으니까. 1970년대에는 ‘제4집단’이라는 전위그룹 멤버였다. 이때 만든 아방가르드 영화 <아침과 저녁 사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예산 독립영화로 기록된다. 1977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20년 사는 동안에도 광주의 비극을 주제로 한 마당굿 ‘곡(哭)1’, LA흑인폭동 1주년 퍼포먼스 ‘볼케노 아일랜드’ 같은 대형 이벤트 작업을 했다.
1990년대 말 귀국해서는 일산 외곽 비닐하우스에 ‘거지(去至)산방’이라는 화실을 냈다. 화실은 왕년의 술친구들이 모여들어 날마다 시끌벅적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게 그 무렵이다. 남북 분단을 주제로 한 ‘빙벽’ 퍼포먼스, 남원 춘향제 예술감독, 전주 한옥생활체험관 아트디렉터, 그리고 몇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그러던 이익태가 어느해 봄날 계룡산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일본 방랑시인들의 단시(短詩)인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번역)를 읽었다. 아이쿠! 고승의 죽비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이쿠에 ‘필이 꽂힌’ 이익태는 산으로 갔다. 이익태식 하이쿠로 작품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하이쿠의 ‘이익태 버전’을 ‘아이쿠’라고 명명했다. 구례 지리산, 보은 속리산, 전주 모악산 자락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3년 전 이곳, 적상산으로 옮겼다. 그 10년 동안 ‘밤새 개들이 독경하더니 해뜨자 사람들이 짖기 시작하네’, ‘하루살이 하루는 영원’, ‘밥이 웃는다’,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춤추는 먼지’, ‘푸른 하늘 새 한마리 퐁당’ 같은 아이쿠를 쏟아냈다.
순간의 붓놀림으로 먹그림을 그리고 아이쿠를 써넣은 것이 아이쿠 선시화(禪詩화)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채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를 단순한 선으로 그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절 올리는 할매’ 같은 유머는 참 따뜻하다. 어찌보면 이철수 판화 비슷한데, 그는 ‘한순간’에 쓰고 그린다. 사진, 회화에는 아이쿠를 제목으로 쓴다. 사진은 돌멩이, 물결, 나뭇잎, 찻잔, 거미줄 같은 소소한 일상과 자연을 향해 불쑥불쑥 셔터를 누른다. 그림 작업은 한지에 물감을 뿌리고, 그것을 물에 빠는 일을 여러차례 반복한다. 물감 칠한 종이를 마구 밟고, 접고, 다시 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의 사진과 그림에 사람 얼굴, 글씨, 기이한 생물체 같은 신비한 형상들이 나타난다는 거다. 요즘 어떤 영성과 교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바라보는 순간, 혹은 그리워하는 순간 재창조된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그가 서울 북촌 갤러리 나무(NaMu)에서 한 달째 열고 있는 ‘하늘은 비로 비운다네’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그런 추상작품과 사진들을 걸었다. 푸른색, 황토색 점묘의 빛무리 같은 신비한 아우라 속에 어떤 형상이 얼비치는 작품들이다. 한지로 만든 바윗돌이 바닥에 놓이고, 운석들은 둥둥 떠있다. 어쩌다 소개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는데, 전시회는 23일 끝난다.
그에게 “붓은 칼, 카메라는 총”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니까 단칼의 검객, 찰나의 ‘건맨’처럼 순간에 반응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붓 스스로 그리고, 카메라 스스로 찍는 경지! 그것이 바로 ‘아이쿠 예술’이며 ‘내비도 정신’이란다.
이익태의 호는 그냥 이 산, 저 산 할 때의 ‘저산’이다. 산 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으니, 거리를 두자는 뜻에서 지었단다.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사람을 억압하지 말고, 경쟁하지 말고, 제발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내비도 세상은 혼자이든, 함께이든 자유와 평화가 넘쳐난다는데, 나도 이참에 내비도에 입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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