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저런 빤짝이 옷을 누가 입을까 궁금했는데 내 마누라라니 헐!!”
1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고 계시는지. 가만, 그땐 나도 엄청 청춘이었다. 것도 모르고 그때부터 겉늙은이 행세를 하며 온갖 포즈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약간 억울하기도 하다. 그때 발표한 소설을 보면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원래 청춘의 특징이라는 게 자기가 청춘인 줄 모르는 것에 있기도 하니 하는 수 없기는 하다. 1995년, 그때 지난번 최도사가 중얼거린 대로 우리나라 고속도로 화장실이 이렇게 럭셔리했고 경찰들이 지금처럼 친절하셨던가? 무엇보다 그때는 20세기 결국 지난 세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 해 초봄 아직도 바람이 쌀쌀한 어느날 갓난 아이를 업은 여인과 한 사내가 섬진강변으로 흘러들어 온다. 사내는 파르라니 짧은 머리 위로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세 식구는 머리 둘 곳 하나 없어 무작정 섬진강변에 누런 천막을 쳤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깍두기 머리의 사내들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사내는 그들에게 고개를 젓고 섬진강변을 떠나지 않았다.
90년대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19번 국도는 주말마다 몰려나온 차들로 막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머니는 넘치는데 머리는 비어가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름다운 섬진강변에는 일요일 밤마다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누런 천막에서 나온 사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를 주웠다. 그리고 봄이 오자 쓰레기를 치운 빈터에 산에서 캐온 꽃과 나무를 심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꽃이 있는 곳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사내는 어느날 누군가 버리고 간 고물 트럭을 그 꽃들을 심은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사내는 지리산을 오르며 칡과 약초, 온갖 열매를 따왔다. 아내는 고물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주방 옆에 아이를 눕히고 간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여 커피와 칡즙을 팔았다. 의외로 수입이 짭짤했다. 조금씩 품목을 넓혔다. 삶은 계란과 소주 그리고 2000원짜리 잔치국수도 만들어 팔았다. 조금도 속임수가 없던 부부의 성실함 때문이었을까. 지리산은 그렇게 넉넉히 먹거리를 댔고 섬진강은 사람들을 불러주었다.
주변의 시기도 만만치 않았다.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군청과 경찰에 신고를 해댔고 여러 번 관청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는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이 섬진강변을 청소하고 꽃과 나무를 심었는지를 십여년 동안 보았기에 차마 그를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가 심은 등나무 줄기가 벌써 어른 팔뚝 만해지는 동안 섬진강변을 지킨 그였다. 그는 특별히 그곳에서 장사를 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어낸다.
조그맣지만 집도 얻고 밑으로 하나 더 태어난 아이도 잘 자라고 있던 날 어느 날 아내는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흔한 말로 “살 만하니까 이제” 였다. 병원에 가서 누워 있을 처지가 아니라며 아내는 죽는 날까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아이들 학비라도 저축하겠다고 했다. 눈보라 치거나 비바람 심한 날만이 아내의 공휴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집에 드러누워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앓았다. 그리고 다시 날이 개면 항암치료 때문에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시 국수를 삶고 커피를 끓였다.
사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무작정 산으로 갔다. 하늘이 있다면, 산신이 있다면, 아니 귀신이라는 게 있다면 자신을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그는 맘 속으로 절규했다. 그리고 모든 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듯 “잘못한 게 많았다, 참회한다”고 외쳤고 소박하고 경건한 사람이 그렇듯 “낫게만 해주시면 열심히 살겠다”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했다. 산은 그에게 오솔길을 터주었고 그는 좁은 길들을 따라 사람의 발자취가 거의 닿지 않은 곳으로 더 높이 더 깊이 들어섰다. 언젠가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는 온갖 약초와 버섯을 캐다가 저녁이면 풍로를 피워 그것을 손수 달였다. 그리고 그것을 아내에게 먹였다. 그가 줄 것은 지리산이 주는 그것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보다 담담했다. 다만 사내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그것. 사내는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옷가게를 차려달라고 했다. 설악산에 가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태워달라는 것도 아니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옷가게를. 하지만 병원에 갈 돈도 없는데 무슨 돈으로 옷가게를 차린단 말일까, 아내는 뜻밖에도 간이 트럭 옆에 조그만 천막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가 아내의 말대로 천막을 쳐주자 아내는 어느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커다란 보따리를 하나 들고 나타났는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반짝이는 구슬과 인조 보석과 금가루 은가루가 뿌려진 옷들이 들어 있었다. 맙소사 섬진강가에서 감히 입어보지도 못할, 아니 대처인 전주로 간다고 해도 무대 위가 아니면 입고 나갈 수도 없는 그런 반짝반짝한 옷들이 팔리기나 할 것인지. 아내는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행복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아내는 정성들여 그것을 천막 안에 걸었다. 가격표도 붙였다. 그리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아내는 돈을 모으면 서울로 갔고 반짝이는 옷들을 사왔다. 참 세상에 이런 일이. 잔치국수나 칡즙을 먹으러 차를 세운 여자들이 하나 둘 옷에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조금씩 팔려나갔다. “대체 그걸 어딜 입고 가려고 해?” 하고 누군가 물으면 중년의 여자들은 미소만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여자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종족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렇게 섬진강이 흘렀고 시간이 갔다. 지리산은 한결같이 약초와 버섯을 내주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약초를 달여 아내에게 먹인 어느날 버들가지처럼 마르던 아내가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니 결과는 “기적 같은 완치.”
어느날 은빛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낙장불입이라는 시인이 그곳에 들러 잔치국수를 청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두어 젓갈에 그것을 다 들이켰다. 아내는 손님 몰래 다시 물을 끓였고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낙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 달게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 번 지나가다가 그곳에 들러 커피를 한잔 마시고는 누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누런 봉투 속에는 그의 시집이 들어 있었다. 그날 밤 부부는 처음으로 시집이라는 것을 폈고 남편이 한 수 읽고 아내가 한 수 읽었다. 시집 앞에 휘갈겨진 친필 사인이 너무 황송해서 부부는 그것을 고이 싸서 두었다.
그리고 어느날 낙장불입 시인이 곱상하게 생긴 해사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손에 두꺼운 잡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가 쓴 시가 거기에 실렸다고 했다. 부부는 그 잡지를 받아들었다. 아내가 그것을 읽었다.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가게’ 버, 들, 치, 읽어 내려가다가 아내는 다 읽지 못하고 목이 메고 말았다. 그러자 버들치가 그것을 받아들어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버들치 시인은 원래 무대에 서는 것, 마이크 든 척하고 노래 부르는 것, 사회 보는 것, 그리고 시낭송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중 시낭송은 좀 좋아한다).
“선풍기도 난로도 아니 전등도 하나 없는/ 간판도 없는 두어 평 비닐하우스 무허가 옷가게/ 어려서나 더 젊어서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반짝이 옷,/ 너울너울 인형 같은 공주 옷을 파는 그 여자의 옷가게/ 그녀에게서 사온 옷을 안고 잠을 청하면/ 푸른 섬진강물이/ 은빛 모래톱 찰랑찰랑 간지르는 소리/ 동화 속 공주가 나타나는 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구례에서 하동사이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옷가게/ 그녀가 웃고 있다/ 서비스 커피도 한잔 준다”
경향신문에 사진을 실어서 연재료를 받은 낙장불입 시인은 어느날 고아르피엠과 함께 그 가게에 갔다. 고아르피엠은 이번에 거창에서 열리는 세계 1인극제 개막식 공연에 초대받은 동네밴드의 보컬이었다. 옷가게에 들어선 고 아르피엠은 탄성을 질렀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고 하다가 노란 날개 옷을 골랐다. 그리곤 낙시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이거 사줘! 그런데 이렇게 빤짝이에(반짝이가 아니다!) 집착하다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봐.” 낙시인은 중얼거렸다. “대체 저런 옷을 누가 입을까 궁금했는데 그게 내 마누라라니 헐!!”
ⓒ 경향신문 & 경향닷컴1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고 계시는지. 가만, 그땐 나도 엄청 청춘이었다. 것도 모르고 그때부터 겉늙은이 행세를 하며 온갖 포즈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약간 억울하기도 하다. 그때 발표한 소설을 보면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원래 청춘의 특징이라는 게 자기가 청춘인 줄 모르는 것에 있기도 하니 하는 수 없기는 하다. 1995년, 그때 지난번 최도사가 중얼거린 대로 우리나라 고속도로 화장실이 이렇게 럭셔리했고 경찰들이 지금처럼 친절하셨던가? 무엇보다 그때는 20세기 결국 지난 세기가 아닌가 말이다.
‘빤짝이’는 여자들의 숨겨진 꿈일까. 섬진강변 천막 옷가게에서 낙장불입 시인의 아내 ‘고아르피엠 여사’가 반짝거리는 옷을 몸에 대보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90년대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19번 국도는 주말마다 몰려나온 차들로 막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머니는 넘치는데 머리는 비어가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름다운 섬진강변에는 일요일 밤마다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누런 천막에서 나온 사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를 주웠다. 그리고 봄이 오자 쓰레기를 치운 빈터에 산에서 캐온 꽃과 나무를 심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꽃이 있는 곳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사내는 어느날 누군가 버리고 간 고물 트럭을 그 꽃들을 심은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사내는 지리산을 오르며 칡과 약초, 온갖 열매를 따왔다. 아내는 고물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주방 옆에 아이를 눕히고 간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여 커피와 칡즙을 팔았다. 의외로 수입이 짭짤했다. 조금씩 품목을 넓혔다. 삶은 계란과 소주 그리고 2000원짜리 잔치국수도 만들어 팔았다. 조금도 속임수가 없던 부부의 성실함 때문이었을까. 지리산은 그렇게 넉넉히 먹거리를 댔고 섬진강은 사람들을 불러주었다.
주변의 시기도 만만치 않았다.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군청과 경찰에 신고를 해댔고 여러 번 관청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는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이 섬진강변을 청소하고 꽃과 나무를 심었는지를 십여년 동안 보았기에 차마 그를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가 심은 등나무 줄기가 벌써 어른 팔뚝 만해지는 동안 섬진강변을 지킨 그였다. 그는 특별히 그곳에서 장사를 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어낸다.
조그맣지만 집도 얻고 밑으로 하나 더 태어난 아이도 잘 자라고 있던 날 어느 날 아내는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흔한 말로 “살 만하니까 이제” 였다. 병원에 가서 누워 있을 처지가 아니라며 아내는 죽는 날까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아이들 학비라도 저축하겠다고 했다. 눈보라 치거나 비바람 심한 날만이 아내의 공휴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집에 드러누워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앓았다. 그리고 다시 날이 개면 항암치료 때문에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시 국수를 삶고 커피를 끓였다.
사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무작정 산으로 갔다. 하늘이 있다면, 산신이 있다면, 아니 귀신이라는 게 있다면 자신을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그는 맘 속으로 절규했다. 그리고 모든 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듯 “잘못한 게 많았다, 참회한다”고 외쳤고 소박하고 경건한 사람이 그렇듯 “낫게만 해주시면 열심히 살겠다”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했다. 산은 그에게 오솔길을 터주었고 그는 좁은 길들을 따라 사람의 발자취가 거의 닿지 않은 곳으로 더 높이 더 깊이 들어섰다. 언젠가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는 온갖 약초와 버섯을 캐다가 저녁이면 풍로를 피워 그것을 손수 달였다. 그리고 그것을 아내에게 먹였다. 그가 줄 것은 지리산이 주는 그것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보다 담담했다. 다만 사내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그것. 사내는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옷가게를 차려달라고 했다. 설악산에 가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태워달라는 것도 아니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옷가게를. 하지만 병원에 갈 돈도 없는데 무슨 돈으로 옷가게를 차린단 말일까, 아내는 뜻밖에도 간이 트럭 옆에 조그만 천막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가 아내의 말대로 천막을 쳐주자 아내는 어느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커다란 보따리를 하나 들고 나타났는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반짝이는 구슬과 인조 보석과 금가루 은가루가 뿌려진 옷들이 들어 있었다. 맙소사 섬진강가에서 감히 입어보지도 못할, 아니 대처인 전주로 간다고 해도 무대 위가 아니면 입고 나갈 수도 없는 그런 반짝반짝한 옷들이 팔리기나 할 것인지. 아내는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행복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아내는 정성들여 그것을 천막 안에 걸었다. 가격표도 붙였다. 그리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꽁지 작가’가 국수 먹는 모습을 최도사 등이 바라보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그렇게 시간이 갔다. 아내는 돈을 모으면 서울로 갔고 반짝이는 옷들을 사왔다. 참 세상에 이런 일이. 잔치국수나 칡즙을 먹으러 차를 세운 여자들이 하나 둘 옷에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조금씩 팔려나갔다. “대체 그걸 어딜 입고 가려고 해?” 하고 누군가 물으면 중년의 여자들은 미소만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여자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종족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렇게 섬진강이 흘렀고 시간이 갔다. 지리산은 한결같이 약초와 버섯을 내주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약초를 달여 아내에게 먹인 어느날 버들가지처럼 마르던 아내가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니 결과는 “기적 같은 완치.”
어느날 은빛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낙장불입이라는 시인이 그곳에 들러 잔치국수를 청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두어 젓갈에 그것을 다 들이켰다. 아내는 손님 몰래 다시 물을 끓였고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낙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 달게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 번 지나가다가 그곳에 들러 커피를 한잔 마시고는 누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누런 봉투 속에는 그의 시집이 들어 있었다. 그날 밤 부부는 처음으로 시집이라는 것을 폈고 남편이 한 수 읽고 아내가 한 수 읽었다. 시집 앞에 휘갈겨진 친필 사인이 너무 황송해서 부부는 그것을 고이 싸서 두었다.
그리고 어느날 낙장불입 시인이 곱상하게 생긴 해사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손에 두꺼운 잡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가 쓴 시가 거기에 실렸다고 했다. 부부는 그 잡지를 받아들었다. 아내가 그것을 읽었다.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가게’ 버, 들, 치, 읽어 내려가다가 아내는 다 읽지 못하고 목이 메고 말았다. 그러자 버들치가 그것을 받아들어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버들치 시인은 원래 무대에 서는 것, 마이크 든 척하고 노래 부르는 것, 사회 보는 것, 그리고 시낭송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중 시낭송은 좀 좋아한다).
“선풍기도 난로도 아니 전등도 하나 없는/ 간판도 없는 두어 평 비닐하우스 무허가 옷가게/ 어려서나 더 젊어서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반짝이 옷,/ 너울너울 인형 같은 공주 옷을 파는 그 여자의 옷가게/ 그녀에게서 사온 옷을 안고 잠을 청하면/ 푸른 섬진강물이/ 은빛 모래톱 찰랑찰랑 간지르는 소리/ 동화 속 공주가 나타나는 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구례에서 하동사이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옷가게/ 그녀가 웃고 있다/ 서비스 커피도 한잔 준다”
경향신문에 사진을 실어서 연재료를 받은 낙장불입 시인은 어느날 고아르피엠과 함께 그 가게에 갔다. 고아르피엠은 이번에 거창에서 열리는 세계 1인극제 개막식 공연에 초대받은 동네밴드의 보컬이었다. 옷가게에 들어선 고 아르피엠은 탄성을 질렀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고 하다가 노란 날개 옷을 골랐다. 그리곤 낙시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이거 사줘! 그런데 이렇게 빤짝이에(반짝이가 아니다!) 집착하다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봐.” 낙시인은 중얼거렸다. “대체 저런 옷을 누가 입을까 궁금했는데 그게 내 마누라라니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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