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1) 처음으로 국가자격증 따기

공지영 | 소설가경향신문
ㆍ“금을 좀 밟았습니다” 버시인 고백에 경찰은 “괜찮아요”

난데없이 버시인에게 스쿠터가 한 대 생겼다. 언제부턴가 지리산에 이주해 억대를 호가하는 집을 짓고 두문불출하던 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결국 지리산 자락 정착에 실패하고 떠나면서 버시인에게 기증을 한 것이었다.

한 시간가량 그에게서 스쿠터 타는 법을 배운 버시인은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특히 낙시인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오토바이 비슷한 것을 타지 못하게 했다. 고아르피엠은 지금도 빨간 헬멧에 커다란 스포츠 안경을 끼고 스쿠터로 섬진강변을 “간지나게” 달리고 싶어하지만 낙시인의 반대에 한번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살살 그것을 타다가 어느 날 내비도 교주 최도사에게 갔다.

버시인(사진 왼쪽)에게 스쿠터가 생겼다. 최도사(오른쪽)도 덩달아 스쿠터를 마련했다. 원동기 면허시험을 보러 가서는 곡절 끝에 국가자격증을 손에 쥔 두 사람. 당당히 ‘라이더’로 거듭난 둘은 헬멧에 선글라스를 끼고 섬진강변을 누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툇마루에 앉아 솟대를 깎고 있던 최도사는 작은 원동기 소리가 들리기에 우체부인가 하고 내다보았는데 얼굴은 거의 백짓장처럼 희게 변하고 입은 입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굳게 다물고 자전거도 아니고 오토바이도 아닌 기구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올라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는 버들치였다. 최도사가 천천히 대문 앞으로 나가자 버시인이 스쿠터를 멈추고 최도사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 타고 오긴 왔는데 내릴 수가 없으니 도와주게.”

휑하니 뚫린 스쿠터에서 내릴 수가 없다니 이해가 가지 않은 그가 물었다. “내릴 수가 없다니 엉덩이가 붙어버리기라도 했어?” 그러자 버시인은 거의 울상이 되며 말했다. “글쎄, 날 좀 내려줘.”

최도사가 어이가 없어 그를 내리려 하니 그는 기마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지난날 원양어선을 타 봤고 자칭 살인과 도둑질 빼고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는 최도사도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이 이렇게 굳은 것을 처음 보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마른 버시인을 번쩍 들어올려 스쿠터에서 꺼냈다. 버시인은 팔은 앞으로 굳고 다리는 구부정하게 굳어서 아무데도 앉을 수가 없었다. 한 한 시간쯤 팔다리를 주무르고 마사지를 하고 나자 버시인은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안 해본 일 없는 최도사는 30분 남짓의 운행에 지쳐 거의 탈진 상태가 된 버시인을 방에 재우고 스쿠터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안 그래도 지난 겨울 주차 일이 없을 때 강원도 펜션의 친구에게 가서 석달 동안 집을 봐주고 받은 돈을 어디에 쓸까 궁리하고 있던 그였다.

며칠 후 최도사도 헬멧을 쓰고 스포츠용 선글라스를 쓴 채로 버시인네 집에 도착했다. 버시인을 놀라게 해 주려고 멀리서 시동을 끄고 그의 집으로 다가가자 마당에서 승강이 하는 소리가 울타리 밖으로 빠져 나왔다. 여복이 많은 것인지, 여난이 많은 것인지 또 여자가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자도 버시인에게 냉정히 쫓겨가는 중인 모양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가라 하시면 가겠사옵니다. ‘그래도 제가 정성껏 차려온 것이니 물리지 마시고 한끼라도 맛있게 드셔요. 버시인께서 맛있게만 드셔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사옵니다.”

여자는 분홍 보자기를 펼쳤다. 뚜껑을 다 덮은 한끼의 가정식이 나타났다. 대체 버시인은 무슨 부적을 지녔기에 여자들이 저렇게 꼬이는지, 그것도 날개를 갓 뗀 천사들만 꼬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서려 하자 버시인이 말했다.

“앞으로는 오지 마셔횻! 하지만 오늘은 이왕 왔으니 차라도 한잔 하고 가셔횻!”

말의 내용은 야멸차지만 뉘앙스는 한없이 부드러워서 여자들이 혹시나 하고 다시 오게 하는 힘. 대체 사내자식이 마셔횻, 가셔횻이 뭐란 말인가.

그녀가 돌아가고 나자 마을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던 최도사가 드드드드 소리도 당당히 버시인네 집앞으로 들어섰다.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버시인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그리고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자네 면허 있나?”

“면허? 하하하 버시인 이것은 50㏄밖에 안되는 거라 면허가 필요 없어.”

“아니야, 법이 바뀌었대. 무조건 원동기 달린 것은 다 면허가 있어야 해. 그래서 나 하는 수 없이 시험보기로 했어.”

버시인이 손에 들고 있는 원동기 면허시험 예상 문제집을 펼쳤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명색이 자동차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질서를 잡아주는 주차요원인 그가, 더구나 도사인 그가 무면허 운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주말 시험을 보러 군청으로 갔다.

응시자는 모두 네 명. 경찰은 버시인과 최도사가 딱 붙어서 (왜냐하면 최도사는 버시인만 믿고 왔으니까) 들어서는 것을 보자 버시인을 맨 앞에 앉히고 아주머니 한 사람과 청년 한 사람을 그 사이에 앉힌 후 최도사를 맨 뒤에 떼어놓았다. 시험지가 나누어지자 최도사는 옆자리의 청년을 힐끗 보았는데 그는 최도사의 기미를 눈치챘는지 거의 은행 현금 자동지급기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자세로 두 팔과 얼굴 등을 사용해 절대 최도사가 보지 못하도록 시험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이 꼴인 거야. 저런 인간들 때문에 4대강이 마구 파헤쳐지고 천안함이 가라앉고 김길태 같은 놈들이 나타나는 거야. 저런 인간들 때문에 월드컵 16강에 들자마자 떨어지고 난데없이 문어가 스페인의 우승을 맞히는 거야. 그리고 난데없이 펠레가 여태껏 저주만 일삼다가 슬쩍 문어를 커닝해서 우승자를 맞히는 거야. 문어가 어디 펠레 못보게 점괘를 가리더냐고. 그러니 좀 좋아, 문어도 맞히고 펠레도 맞히고.”

최도사가 청년을 째려보며 중얼중얼하는 동안 경찰이 다가왔다. “떠드시면 안 됩니다.”

최도사는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흰 것은 글씨고 검은 것은 도화지였다. 청년은 얼른 답을 쓰고 시험지를 제출하고는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도 나갔다. 버시인은 꼼짝도 안한 채 시험문제에 열중하고 있었다. 최도사 옆으로 다시 경찰이 다가왔다. 최도사는 그래도 체면을 차리려고 답안지에 아무 번호나 쓰기 시작했다. 처음 문제에 2라고 썼다. 왠지 그럴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난데없이 얼굴 앞으로 어떤 손가락이 쑥 들어섰다. 경찰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은 좌우로 흔들렸다. 틀렸다는 뜻이었다. 최도사가 3이라고 쓰자 손가락이 아래 위로 까딱거렸다. 맞았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최도사가 중얼거렸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그 어려운 아이엠에프 세계 불황 이런 거 극복하고 일어선 거야. 이러니 우리가 식민지에서 원조 국가로 발전한 거야. 이러니 축구 16강에 들게 된 거야. 내가 태어난 이래 최근 천지개벽을 한 곳을 두 개 꼽으라면 첫째가 고속도로 화장실이요, 둘째가 경찰이야, 흐흐.”

그들은 시험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어디서 시험을 보나 싶어 궁금해하고 있는데 경찰이 차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운동장에 쓱쓱 금을 그었다. 그러고는 그 금을 밟지 말고 스쿠터를 타보라는 것이었다. 최도사가 먼저 지원을 했다. 그는 금을 하나도 밟지 않고 통과했다.

버시인은 또다시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의 차례가 되자 버시인은 스쿠터를 몰았다. 경찰이 통과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버시인은 무슨 생각에선지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고해성사라도 하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 못 보신 모양인데 마지막에 제가 금을 좀 밟았습니다.”

“괜찮아요.”

경찰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버시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못 믿으시겠으면 이리 와 보세요. 제가 금을 밟은 자국이 여기 이렇게…있잖아요.”

버시인이 심각하게 말하자 경찰은 삽으로 버시인이 약간 흩트린 10센티미터의 금을 다시 그었다.

“버시인님이시죠? 시인이 어떻게 운전을 그리 잘하겠어요? 참 방금 무전 왔는데 버시인님 필기가 만점이랍니다. 우리 군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네요. 온 경찰이 감탄하고 있어요. 참으로 여러 가지가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일주일 후에 경찰서로 와서 면허증 찾아가십시오.”

“우리 다 합격한 겁니까?” 듣고 있던 최도사가 물었다.

경찰은 최도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교통법규 공부를 꼭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요.”

최도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이 두 사람 다 합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버시인과 최도사는 힘차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국가로부터 “조우떼기” 하나라도 받아본 일이, 아니 자격증을 받아본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소식을 온 마을에 알리려 몰래 숨겨둔 스쿠터에 올라탔다. “아직 면허 없어서 안 됩니다.” 경찰의 소리는 그들의 낡은 스쿠터 모터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