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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8) 시골생활의 정취

공지영 | 소설가경향신문
ㆍ“닭을 어떻게 죽이는지 몰라서…제발 죽여만 주세요”

축구경기가 닭이랑 원래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동안 궂은 날씨로 불황에 시달리던 치킨집의 매상을 하루아침에 올려줌으로써 닭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 같다. 어떤 치킨집은 주문을 하면 번호표를 나누어주고서 다음날 배달을 했다고도 한다. 우리 막내는 자기가 그리스전 때 주문한 치킨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전을 하기 전에 닭을 직접 사서 삼계탕을 끓였다. 소주와 맥주도 고루 준비하고 국물 없이 시골스럽게 담근 열무김치와 마늘장아찌도 마련해서 축구 관람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이게 혹시 한국의 축구 관람 음식으로 자리잡는 것은 아닐지, 새로운 전통이 하나 더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장닭이 머리를 꼿꼿이 쳐든 채 위엄을 뽐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수컷들이여 날 보라는 듯이. 갇히지 않은 닭, 야생을 누리는 닭은 씩씩하다. 아름답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이렇게 닭을 고아 먹을 때면 꼭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 낙장불입 시인이 아직 피아산방이라는 산골에 살던 때였다. 그때 낙시인은 그 집 마당에서 닭을 키웠다. 나는 그렇게 놓아 키우는 닭을 처음 보았는데 그 집의 젊은 수탉을 보고 닭이라는 새가 얼마나 아름다운 조류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선명한 청동빛 꽁지의 탐스러움과 황톳빛의 꼿꼿한, 윤이 나는 목덜미, 제법 큰 키에 늠름한 자세. 낙시인이 마루에서 시를 쓰는 날이면 그 수탉은 창가로 뛰어올라 낙시인이 시를 쓰는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곤 했다. 그리고는 가끔 큰소리로 꼬끼오오오오호호호 소리를 쳤는데 시가 잘 씌어지지 않는 날이면 낙시인은 “저 쉐이가 지금 나를 놀리나?” 공연히 울컥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탉은 뒷짐을 지고 다니며 오종종하게 살이 오른 암탉들을 위협도 하고 감시도 하고 이리저리 몰기도 하다가 풀썩 암탉의 등 뒤에 올라타 교미를 하기도 했다. 지리산 깊은 산속에서 그것은 참으로 씩씩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문제는 우리 서울내기들이 어느 복날 그 집에 당도했다는 것이다. 그날 고 아르피엠 여사는 당연히 집에 없고 낙시인은 강연을 가야 했는데, 누군가 오늘이 복날이니 닭을 잡아 먹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뭐 거기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낙시인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저 닭들은 그저 달걀을 얻기 위해 키우는 것이니 닭을 먹으려거든 다른 곳에 가서 사먹자는 말을 했다. 요 앞 계곡에 가면 경치 좋고 시원한 곳에 돗자리 펴주고 3만5000원이면 씨암탉을 잘 고아 온갖 맛깔스러운 반찬을 곁들여 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무리 닭이지만 자기가 키운 것을 잡아먹기가 그리 쉬운가 싶어 나도 동의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도 모이기만 하면 꼭 십대의 반항아들같이 구는 내 남자친구들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온다는 게 뭐냐, 갓 잡아 쫄깃쫄깃한 닭을 가마솥에 고아 먹는 시골생활의 정취를 즐긴다는 게 아니냐, 사먹으려면 서울에 더 맛있는 집도 많다, 우리가 온다면 진작 닭을 잡아 놓았어야지 사실 그동안 서운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내놓는 것이었다. 낙시인은 어제 먹다 남은 삼겹살이 냉장고에 남아있고 지난번에 마구 잡아놓고 간 섬진강 빠가사리 새끼 및 각종 잡어들도 냉동실에 있는데 굳이 새로 살생을 해서 닭을 잡아먹을 이유가 뭐냐 반격을 했고 옥신각신은 한참 지속되었다. 그러나 목소리 작고 사람이 여린 낙시인은 우리 거센 서울내기들에게 언제나처럼 지고 말았다. 낙시인은 굳은 표정으로 “그러면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휑하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정든 닭을 어떻게 잡냐?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내가 매운탕 끓여줄 테니 그거 먹자, 아니면 삼겹살 남은 걸로 돼지불고기 무쳐줄게, 하고는 내가 아양까지 떨어가며 부탁했지만, 아니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아양까지 떨며 부탁하는 것을 보자 이 친구들은 소설 <파리대왕>에 나오는 소년들처럼 이미 사냥본능에 몸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다 잡아서 털까지 뽑아 요리해줄 테니, 지영이 너는 물이나 끓이고 마늘이나 푸지게 까놔… 다 이 오빠들이 알아서 해 줄테니 음?” 그들은 심지어 느끼한 목소리로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평소 운동은커녕 ‘3보 이상 승차’를 생활신조로 삼고 살던 내 친구들이 지리산에서 태어나 그곳의 정기를 받고 산을 오르내리던 닭을 잡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닭들이 쭉 뻗은 길로만 도망가는 게 아니니 수풀 속을 헤치고 나무 사이 비탈을 구르기도 하며 친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내가 솥에 넣은 물이 끓다 못해 다시 증발하고 그래서 몇 바가지를 더 넣고 다시 또 넣도록 닭은 잡히지 않았다. 그만두자는 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이건 먹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닷!” 하며 친구들은 티셔츠가 다 젖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하는 수 없이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거의 기운이 다 빠진 그 수탉을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 한 친구가 겨우 잡았다. 아마 사냥터에서 멧돼지를 큰놈으로 잡았어도 그보다 더한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닭 날개를 비틀어 잡고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칼 어딨냐? 닭 잡아야지.”

그러자 나머지 두 친구가 멀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닭을 잡긴 하는데 죽이지는 못해.”

“야, 잡는 게 죽이는 거야.”

“난 잡긴 하는데 죽이지는 못한다니까.”

그러자 세 친구가 동시에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넌 살림경력이 이십년이니 이거 요리할 수 있지?”

우리는 꽥꽥거리는 닭을 들고 잡는 것과 죽이는 것이 다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머리가 좋고 책 많이 읽어서 학식이 많은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닭을 쇼핑백 속에 넣고 입구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닭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게 제압한 다음 자동차를 타고 구례 장으로 갔다. 생닭을 잡아 파는 닭집을 찾아가 말을 꺼내려는데, 그날이 마침 복날인지라 닭을 사는 사람들이 점포마다 줄을 서 있었다. 그러니 그 집 닭도 아니고 남의 닭을 잡아달라고 하면 돌아올 말이 뻔했다. 이미 때는 점심을 훌쩍 넘겼고 우리는 눈치만 살피며 뙤약볕 내리쬐는 장터에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아, 이 근처에 양계장 있을 거 아니냐. 거기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닭을 잡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양계장이 어딘데?” “그게 뭐 어려워, 네이버에 물어봐.”

그리하여 우리는 서울에서 한참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월말이라 바빠서 안 된다는 그 친구에게, 앞으로 치킨과 맥주를 네가 질릴 때까지 사주겠다, 약속을 하면서 구례 장터 근처의 양계장을 찾아달라고 애걸했다. 잠시 후 그 친구가 주소를 문자로 보내오자 우리는 다시 30분을 달렸다. 양계장에 도착하자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우리를 아래 위로 쳐다보았다.

“저기요… 저기… 저희가 닭을 잡았는데…… 어떻게 죽이는지를 몰라서요.”

그러자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외면했다. “됐거든요. 내가 방금 400마리째 잡고 나니까 이제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오거든요.”

우리가 풀이 죽어 돌아서려는데 주인이 혼잣말처럼 툭 말을 뱉었다. “그러길래 장터에서 한 그릇씩 사먹고 말지…. 참 서울 것들이.”

그 말을 신호로 삼듯 한 친구가 주인에게 가서 두 손을 모으고 애원했다. “저기요… 죽여만 주세요. 네? 죽여만 주시면 저희가 어떻게 해볼게요. 제발 죽여만… 너무 배가 고파요.”

친구는 거의 흐느낄 기세였다. 주인은 우리가 우스웠는지 가여웠는지, 그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가래침을 한번 뱉고 일어나 느리게 우리의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씨암탉이 아니라 잘생긴 수탉이란 것을 보자 다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다시 나섰다. “괜찮아요. 그거 먹으랬어요. 그러니까 그냥 죽여만 주세요. 네… 그냥 죽여만.”

주인은 그 수탉을 가져가 친절하게 죽여서 털까지 다 뽑아 주었다. 남자친구들은 그 닭을 받아들고 입이 헤벌어져 여기 이 여자분이 그 유명한 작가 공지영이라는, 주인은 전혀 궁금해 하지도 않는 말을 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돌아와 다시 물을 끓여 닭을 고았다. 야생으로 자란 수탉은 잘 물러지지 않았다. 보통 백숙이 한 시간이면 살이 다 익는데 이 수탉은 거의 두 시간이 넘게 고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겨우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닭을 잡기 시작해서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총 다섯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 질긴 육질이라니………그때 내 휴대폰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낙시인이었다.

“그래 그 수탉 맛있냐? 내가 너희들 때문에 화가 나서, 강연 끝나고 사람들하고 계곡에 와서 3만5000원짜리 닭백숙 다 먹고 낮잠 자고 나서 입가심으로 수박 한 덩이 먹고 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질긴 고기를 씹고 또 씹었다. 그 후로는 아무도 시골생활의 정취를 말하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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