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바르셀로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nifilwag@naver.com
길은 좁을수록 좋습니다.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말씀입니다.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인간미와 편안함은 차량으로 가득한 대로에서 얻지 못하는 감정이지요.

삶의 모습이 달라진 오늘날은 조금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 한 대도 오르기 힘든 골목길을 무작정 옹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장 ‘네가 가서 살아봐’ 하는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억들이 담긴 그 공간이 단순한 논리 개발로 쉽게 사라지는 모습은 분명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길의 소멸은 곧 기억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로마 나보나 광장 근처의 뒷골목들 역시 좁았습니다. 마차를 이용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길이기에 자동차가 지나기에는 적절치 못한 곳입니다. 바닥은 울퉁불퉁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최소한 그들의 기억을 버리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삶을 시간의 흔적에 맞춥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조할아버지, 할머니가 수줍게 연애하던 그 길에서 지금의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200년 전과 같은 장소에 그들의 빨래가 널리고 새로운 화분이 놓입니다. 골목길은 그 자체로 길과 함께 해왔던 기억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되어줍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