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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보이지 않는 도시들 - 마추픽추(페루)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어린 시절 내게는 커다란 별명이 없었습니다. 성이 ‘오’라서 오징어 정도로 불렸지요. 한편 친구들 중에는 제법 멋진 별명을 지닌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당사자는 그 별명을 싫어했을지 몰라도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별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어쩐지 만인의 관심을 받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도시들에도 별명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도시가 별명을 갖고 있을 겁니다. 보통 시 정부 차원에서 홍보 목적으로 별명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별명을 스스로 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설사 그런다 해도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줄 리 만무합니다. 도시의 경우 역시 스스로 정하는 별명은 어쩐지 어색합니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들어도 알 만한 도시의 별명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낭만의 도시(파리)나 쌍둥이도시(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빅 애플(뉴욕) 등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별명을 가진 곳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곳은 페루의 마추픽추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그곳의 별명은 ‘잃어버린 도시’지요. 물론 지금은 잉카문명의 유적지로 도시의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의 조합이 주는 아득한 느낌이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이상, 멋진 별명을 가진 도시에서 살고 싶은 한 시민의 푸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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