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행복학교 (35) 썸네일형 리스트형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7) 소망이 두려움보다 커지는 그날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입력 : 2010-08-24-21:14:39ㅣ수정 : 2010-08-24 21:20:35 ㆍ“스님들 안주는 식물성으로 준비하나” “고기 채 썰어 드려” 마흔이 되던 해 어느 날 아침 대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강병규는 출근길의 밀리는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곧 마흔이었다. 비교적 평탄한 인생이었다고 그는 스스로 자부해 왔었다. 친구들은 이 회사 저 회사로 이직을 하고 혹은 벌써 퇴직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 줄곧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회사는 그의 성실성과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이제 마흔이니 뭐 기어이 승진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앞으로 15년 정도는 무난히 근무할 수 있었다. 그 사..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6) ‘소풍’ 가실래요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어머니처럼 누구라도 품어요” 수경 스님의 소식은 없고 이 더위에 어떻게 계시는지 모두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큰 사건이 하도 많이 터져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쫓겨나고 갇히고 마치 풍랑 위를 떠도는 배를 탄 것처럼 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갔는데, 이제 사람들은 오늘 터지는 새로운 경악으로 어제의 충격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수경 스님 잘 계실까 물으면 아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다가 이번 일에 대면 그건 일도 아니지, 할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 갔던 나는 낙장불입 시인을 졸라 실상사에 가서 수경 스님 계시던 거처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희한하게도 해우소에 앉으면 천왕봉이 눈 앞에 곧바로 올려다보이는 실상사.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5) 낙시인과 장모의 ‘살가운 여름’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낙서방 턱수염 깎으면 안된다고? 그럼 뽑아” 장모 말에… 지리산 사람들의 여름은 바쁘다. 서울에서 케이크 하나 보내지 않던 친구들이 여름휴가를 계획하다가 결국 택하는 곳이 만만한 지리산 친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친구를 찾아본다고 하지만 숙박비를 절약하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곳에 정착한 “자발적 가난 희망자”들이 집을 크게 지을 리 없으니, 안방과 마루 건넌방까지 이 식구 저 식구들의 차지가 되면 정작 주인은 마당에 텐트를 치거나 이웃집에 가서 잔다. 하지만 이웃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거기도 손님으로 가득차 있다. 게다가 텃밭에 가꾸어 놓은 상추며 고추, 가지, 호박 등도 그들이 돌아가면 메뚜기 지나간 자리처럼 휑해진다. 삼겹살 몇 근 들고 온다고 하지만 김치,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4) 그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ㆍ“버시인에 안겨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녀의 말에 시인은 그만… 이 여름은 섬진강가도 덥다. 그러나 속 깊은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송송 맺히는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고 아르피엠과 낙장불입 시인이 나간 빈집에서 지화자·얼씨구 두 마리의 개와 집을 보며 정자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이럴 때는 뭐 꼭 글을 써야 하나, 꼭 연재를 해야 하나, 우리 애들이 꼭 공부를 잘해야 하나, 내가 꼭 살을 빼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른하고 완벽한 만족감. 아마 천국이란 이런 것일 것만 같다. 화사한 원추리꽃 너머로 지리산이 보인다. 7~8월에 만개하는 원추리는 지리산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내가 스름스름 막 잠에 빠져들고 있는데 들들들들 소리가 들렸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3) 기타리스트의 가이드 알바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농활은 아는데 산활은 뭐죠” “살아있는 체험을 하는 곳이죠” 시험을 보고 난 후에 잘 봤느냐고 물으면 대개 “응”이라고 대답하는 쪽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일 확률이 높다. “아니요, 망쳤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는 아주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고 말이다. 농사일도 마찬가지여서 기타리스트는 여름이 되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유기농법이 뭔가. 벼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라다가 나중에 벼가 익으면 되는 것이다. 벼를 뭐 꼭 베어서 말리라는 법이 있나, 서서 말리면 더 자연스럽지 않나 말이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는 이들은 그에게는 딱 질색이었다. 귀농한 기타리스트(왼쪽에서 두번째)가 버들치 시인 등과 함께 만든 ‘동네밴드’에서 열창하고 있다. 도시의 삶이 버거웠듯 산 속 삶도 쉽지 않..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2) 그 여자네 반짝이는 옷가게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저런 빤짝이 옷을 누가 입을까 궁금했는데 내 마누라라니 헐!!” 1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고 계시는지. 가만, 그땐 나도 엄청 청춘이었다. 것도 모르고 그때부터 겉늙은이 행세를 하며 온갖 포즈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약간 억울하기도 하다. 그때 발표한 소설을 보면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원래 청춘의 특징이라는 게 자기가 청춘인 줄 모르는 것에 있기도 하니 하는 수 없기는 하다. 1995년, 그때 지난번 최도사가 중얼거린 대로 우리나라 고속도로 화장실이 이렇게 럭셔리했고 경찰들이 지금처럼 친절하셨던가? 무엇보다 그때는 20세기 결국 지난 세기가 아닌가 말이다. ‘빤짝이’는 여자들의 숨겨진..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1) 처음으로 국가자격증 따기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금을 좀 밟았습니다” 버시인 고백에 경찰은 “괜찮아요” 난데없이 버시인에게 스쿠터가 한 대 생겼다. 언제부턴가 지리산에 이주해 억대를 호가하는 집을 짓고 두문불출하던 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결국 지리산 자락 정착에 실패하고 떠나면서 버시인에게 기증을 한 것이었다. 한 시간가량 그에게서 스쿠터 타는 법을 배운 버시인은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특히 낙시인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오토바이 비슷한 것을 타지 못하게 했다. 고아르피엠은 지금도 빨간 헬멧에 커다란 스포츠 안경을 끼고 스쿠터로 섬진강변을 “간지나게” 달리고 싶어하지만 낙시인의 반대에 한번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살살 그것을 타다가 어느 날 내비도 교주 최도사에게 갔다. 버시인(사진 왼쪽)에게 스쿠터가 생..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0)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삼보일배도 모자라서 결국 스님을 사라지게 하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는 17세 때 출가를 했다. 속세의 일을 캐내어서 무엇하겠는가마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이 아마도 사춘기의 명민한 소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훗날 전국을 도보 순례할 때 환갑이 다 된 그는 공주산성 근처에서 중학교 소풍 때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교복을 입은 그의 머리를 만지며 “너 큰스님 되겠구나” 했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수덕사에 출가한 그는 덕숭 문중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응담이라는 스승 밑에 상좌가 되는데 응담 스님은 40년 동안 상좌라고는 오직 수경 한 사람만을 두었다. 수경 스님(가운데)은 거리의 선승이다. 몸을 던져 걷고 온 마음을 다해 또 걷는다. 2008~2009년 ‘..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