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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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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3) 낙장불입-1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절망이 데려간 곳… 그를 기다리는 중생의 손길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지나 법왕리 신흥마을에 이르는 지리산 자락에는 드넓은 야생 차밭이 펼쳐져 있다. 전남 보성 차밭처럼 가지런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넉넉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원규 시인 촬영 1997년 12월을 기억하시는지. 그해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을 겪어야 했고 기업들은 잡초 뽑듯이 약한 이들을 솎아버렸고 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은 어제보다 못사는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알았으며 대한민국 대표 사형수였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민의 정부를 열었다. 일찍이 시인으로 화려하게 등단하고 서울의 큰 신문사 기자가 되어 출세한 촌놈의 대표선수로 뽑혔던 낙장불입 시인은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서울..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버들치 시인의 노래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봄 햇살·그윽한 향… 그래, 욕망할 것들 너무 많다 헛간 장작더미에 산새가 알 낳았다고 장작에 손도 못 댄 채 그 겨울 냉방으로 산 시인“잘생긴 버들치 시인님의 씨를 받고 싶어 왔습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생명을 잉태하고 싶은 여성들이 그런 시인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아직 덜 핀 매화 봉오리를 따서 찻잔에 넣으면 이렇게 활짝 피어난다. 지난 가을에 버들치 시인이 말린 곶감도 곁들였다. | 이원규 시인 촬영지리산 동네를 통틀어 길이 막히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면 그건 바로 버들치 시인의 집일 것이다. 원룸 형태인 그의 집에 먼저 온 손님이 있으면 다음에 온 사람은 그 집 마당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먼저 온 손님이 가기를 기다릴 때가 많았다. 서울 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 연재를 시작하며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소주잔 위로 매화꽃이 분분한데 딱, 거기 눌러살고 싶더란 말이지… 몇 년 전부터 나는 편집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방문했었다. 내 친구 두 사람-그들의 이름은 낙장불입과 버들치 시인이다-에게 그들의 삶을 써보라고 권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뭐 딱히 그러지 않겠다고도 그러겠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편집자들도 나와 함께 내려갈 때는 기세 좋게 기획안을 짜고 이것저것 자문하다가도 막상 지리산 피아산방이나 심원제 황토방에 앉아 술이 몇 잔 들어가기만 하면 자기네들이 여기 왜 왔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내가 데리고 간 어떤 기자는 한 번도 기타를 쳐 본 일이 없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밤새 기타를 튕기기도 했다. (괴로웠다!) 그리하여 정 그렇다면 그냥 내가 그걸 쓰겠다고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