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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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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9) 나무를 심는 사람 공지영 | 소설가 ㆍ“낭구는 십년이 아니라 이십·삼십년을 내다보는 기라” 그는 그저 평범한 농부였다. 학교라고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배워야 한다는 어머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글을 겨우 깨쳤다. 아내와는 열아홉에 혼인을 해서 위로 딸 하나와 밑으로 아들 둘을 두었다. 쌍계사 앞의 기름진 논은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그는 농부로서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밭으로 나갔고 저녁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무학이었지만 염치가 있었고 종교는 없었지만 하늘이 무서운 줄을 깨닫고 있었으며 변방의 농부였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산을 가꿨다. 처음엔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젓가락만한 나무..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8) 시골생활의 정취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닭을 어떻게 죽이는지 몰라서…제발 죽여만 주세요” 축구경기가 닭이랑 원래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동안 궂은 날씨로 불황에 시달리던 치킨집의 매상을 하루아침에 올려줌으로써 닭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 같다. 어떤 치킨집은 주문을 하면 번호표를 나누어주고서 다음날 배달을 했다고도 한다. 우리 막내는 자기가 그리스전 때 주문한 치킨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전을 하기 전에 닭을 직접 사서 삼계탕을 끓였다. 소주와 맥주도 고루 준비하고 국물 없이 시골스럽게 담근 열무김치와 마늘장아찌도 마련해서 축구 관람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이게 혹시 한국의 축구 관람 음식으로 자리잡는 것은 아닐지, 새로운 전통이 하나 더 생겨날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7) 정은 늙을 줄도 몰라라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콧대 높은 여주인 눈은 ‘강남좌파’를 보더니 핑크빛으로 나는 사찰을 찾기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쌍계사는 내가 좋아하는 절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봄이면 벚꽃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여름이면 최치원이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岩)을 지나 흐르는 맑고 푸른 물줄기 하며, 가을의 고적함, 그리고 겨울이면 벽소령이 북풍을 막는 그 남향 계곡의 따스함까지. 그 쌍계사 입구에 수많은 음식점들이 있는데 오늘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집이 그중 하나이다(사실 이곳에 연재를 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바람에, 웃자고 좋자고 쓰는 글이 본의 아니게 괴로움으로 변하게 되어 내가 이 연재를 중단할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 식당도 눈 밝고 머리 좋은 사람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6) 다정도 병인 양 (2)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등불아, 이놈 저놈 찾아다니지 말고 큰놈 하나 낚아” 세상에 불행한 일이 가지가지로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애로를 겪는 사람들을 보면 저것도 참 불행이다 싶긴 하다. 나 같은 사람은 책 읽는 것 외에 거의 취미가 없으니 나하고 책만 있으면 그런대로 행복하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은 길하고 나하고만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바둑을 두려면 나 빼고 다른 사람 한 명, 골프를 하려면 최소한 3명이 더 동의해야 하고 이게 농구나 야구, 축구 등으로 가면 문제가 더 복잡해져서 수많은 사람이 시간과 장소를 맞추어야 한다. 내 친한 친구는 축구를 유일한 취미로 가지고 있는데 한 번 그 취미를 즐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모른다. 최소한 22명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만약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5) 다정도 병인 양 ①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그 등불이 그걸 밝히는 등불이었어” 처음 자동차를 샀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이드 미러에 작은 글씨로 써 있던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문구였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말을 기억하곤 했는데 생각할수록 많은 것을 함의한 말인 것 같았다. 독일에 체류하던 어느 봄날,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던 노란 유채의 벌판들을 달리다가 창문을 열면 들이치던 샛노란 향기에 숨이 멎을 듯 황홀했던 기억. 그러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러 아이들과 들어선 순간, 끈적한 진창에 푹푹 구두가 빠져버리곤 했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사물이 바로 그 유채들판이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산골마을은 또 어떤가. 아이들과 함께 조립하던 레고 속의 꿈 같던 마을이 마치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4)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사랑? 그거 열다섯 살 때 다 알았던 거 아냐” 봄날이었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봄날이야” 전화를 했더니 낙장불입 시인은 언제나처럼 흔쾌히 “그럼 내려와!” 하는 것이었다. 마침 철쭉을 보러 산행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급한 마감만 챙겨두고 나는 쏜살같이 지리산으로 갔다. 심해어족(深海魚族) 출신으로 걸어서 400m 고지 이상 올라가면 바로 고산병이 도지는 사람인 내가 울상을 지었더니 너그러운 낙장불입 시인이 말했다. 철쭉을 보러 지리산에 올랐지만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철쭉은 아직 피지 않았다. 다만 활짝 핀 철쭉꽃을 상상하며 새잎이 돋아난 산길을 걸었을 뿐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 “괜찮아. 형제봉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서 차로 올라갔다가 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3) 그날 밤, 그 모텔에선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에효, 지영이 때문에 또 시끄럽구나’ 겁먹은 남친들 그날 왜 우리가 버들치 시인의 아늑한 집과 낙장불입 시인의 좋은 집을 두고 그 모텔에 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낙시인 집에는 언제나 그렇듯 가족단위의 주말 꽃놀이 인파가 몰렸고 그래서 우리가 양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낙시인은 우리를 보러 모텔로 왔고 고아르피엠(RPM) 여사는 집에 있으면 손님들에게 밥이라도 해주어야 하니 “은니,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면서 모텔로 왔다. 선약이 있다며 이번에는 못 만나겠다는 버시인이 나타난 것은 더 의외였다. 서울에서 한 출판업자가 내려온다는 전화를 받고 집을 탈출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버시인이 계약금만 받아먹고 글을 안 주었나 싶지만 오히려 계약금을 들고 내려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2)‘스발녀’의 정모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연못서 멱감던 장모 “시원허니 살 만하네, 이만하면 괜찮다” 낙장불입 시인의 집들이가 있던 날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두 명의 여자가 도착했다. ‘스발녀’ 혹은 ‘자발녀’의 임원인 그녀들은 마침 낙시인 집에 모이는 김에 정모(정기모임)를 개최하기로 통지를 해 둔 터였다. ‘스발녀’ ‘자발녀’란 ‘스스로 발등을 찍은 녀들의 모임’ 혹은 ‘자기 발등 자기가 찍은 녀들의 모임’의 약자이다. 처음에 이 ‘스발녀’ 모임은 꽤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멤버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지금은 회장과 부회장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었다. 통지를 받은 것이 틀림없건만 멤버는 모이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낙시인의 집 멀리 섬진강이 흐르는 것을 본 부회장여사는 강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