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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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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1) 기타리스트의 귀농일기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친구에 “피 뽑았다” 하니 “피 팔아 살 만큼 어렵냐” ㆍ추수를 놓쳐버린 귀농자 논에 벼들이 우두커니 서 있자 “배운 사람은 벼를 세워 말리네” ㆍ버시인 주선으로 기타밴드 결성 “산에서 기타로 밥먹게 될줄이야” ㆍ떠나는 사람에 이유를 물으니 “부지런한 사람보다 놀멘이 생존” 그 두 사람은 산에서 처음 만났다. 여자는 사려 깊고 조용한 편이었고 남자는 열정적이고 달변이었다. 대개 이런 두 남녀가 만나면 자석의 다른 극과 같이 끌리게 마련이어서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꾸렸다.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꿈이 있었는데 나이가 조금 들면 산에 가서 살자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게 어떤 산인지 그날이 언제인지 물론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려 깊고 조용한 여자는 안정을..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0) 화전놀이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산이 증발하냐 강이 떠내려 가냐” 서울 것들이 잠을 깨우고 난리야” 화전놀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내가 서울서 가만히 있을 리 없는 것은 당연했다. 요즘 하도 지리산에 데려가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번호표도 뽑고 자동차 기름 값도 받고 하려고 별렀는데 평일에는 역시 갈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나는 화전놀이가 시작된다는 11시에 맞추어 버들치 시인 집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새벽 6시 반부터 집을 나섰다. 속은 쓰려 오는데 그래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지리산 갈 때마다 들르는 전주 왱이 콩나물국밥집도 못가고 열심히 갔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예정 시간을 보니 거의 11시15분쯤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버들치 시인이 받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9) 버들치 병들다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여자들은 참 이상해, 혼자 산다고 버시인만 챙겨” 버들치 시인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왔다.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기에서 녹음만 흘러나왔다. “바람과 풀과 나무와 물과 햇빛과 모든 것이 푸르러졌습니다. 그 푸르름 속에 있습니다. 저라고 어찌 견뎌내겠습니까. 이미 저도 푸르러졌습니다. 연락사항 남겨놓으세요. 그럼 안녕.” 버들치 시인은 이제 마당에 연못을 파고 버들치를 기른다. 집 앞 개울에 키우던 버들치가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죽은 뒤의 일이다. 시인은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에 약하다. 이원규 시인 촬영버들치 시인의 이 자동응답기 녹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 낭송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그가 쓴 이 자동응답 문구들이 철철이 화제가 된 적도 많았다. 이런 건 어떤가. “덥기는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8) 낙장불입 시인 이사하다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술 먹기 좋은 정자, 발 아래 섬진강, 100만원 집세가 문제야? 낙장 시인은 문수골에 살았다. 그의 집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한 이킬로미터 정도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 외딴 곳에 있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던 그는 우체부가 힘들까봐 마을에서 자신의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낡은 의자를 하나 세워두었다. 그리고 역시 못쓰게 된 헬멧을 벗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만일 헬멧이 똑바로 놓여 있으면 그가 그 헬멧을 똑바로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중이니 등기가 왔다 하더라도 힘겹게 올라오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가 집에 있는 날에는 헬멧을 뉘여 놓았다. 그건 그가 집에서 이렇게 헬멧을 뉘여 놓고 쉬고 있다는 표시였다. 나중에 그것도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7) ‘내비도’를 아십니까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지네에 물렸다고? 닭똥 하얀 거 있지, 그게 약이야! 최도사는 내비도의 교주이다. 그러나 교회도 성직자도 헌금도 없다. 그의 집 반 평 남짓한 툇마루 윗벽에 누군가 써준 이 교의 이름이 적힌 족자가 걸려 있을 뿐이다. 그는 다른 교의 교주들처럼 주말에만 일하고 평일에는 자신의 본당(本堂?)인 잠잠 산방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의 잠이란 그냥 우리말 잠이다. 잠을 자고 잠을 잔다는 뜻의 잠잠 산방이다.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 정자에 누웠다가 건넌방 툇마루로 옮겨 앉았다가 해질 무렵 평상에 앉으면 하루가 가고, 겨울에는 거꾸로 햇볕을 따라 마당에 앉았다가 툇마루로 갔다가 정자로 가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그가 말했다. 이쯤 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이 가리..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6) 그곳에서 집을 마련하는 세 가지 방법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집세를 무슨 오만원씩이나, 보일러 놔 달라고 혀” 버들치 시인은 원래 전주 모악산에 살았다. 무당이 살다 버리고 간 곳이라는데 워낙 습하고 응달진 곳이라 장마철이면 벽에서 줄줄 물이 흘러내렸다. 그곳에서 자고 나면 늘 몸이 찌뿌드드하고 개운치 않았다. 그래도 버들치 시인은 공짜로 사는 게 어디냐며 봄이면 꽃도 심고 텃밭도 살뜰히 가꾸며 가을이면 붉은 아기 단풍잎을 창호지에 장식해 뽀얗게 문을 발라 겨울을 준비했다. 어느 해 여름 소설가 한 명과 방송국 PD 한 명이 찾아왔다. 이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실컷 책이나 읽으며 휴가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버들치 시인은 서울로 갔다. 산골 집에서 무공해의 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잘 해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5)40년 山사람 함태식 옹 공지영|소설가ㅣ경향신문 ㆍ귀를 막고 하산한 지리산 호랑이 지리산에 대한 글을 연재한다는 소문이 솔솔 퍼지자 친구들이 지리산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주로 정상에서 찍은 것인데 겨울 것이든 여름 것이든 감탄스러웠다. 어떻게 산봉우리들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을까. 멋있다, 하니까 친구들은 살살 나를 꼬드긴다. 이제 산에 올라 네 눈으로 직접 보라고. 나로 말하자면 산이라면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로 다 끝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난 그렇게 살지 않았다” 하면 친구들은 아이고 그래 술이나 따라라, 한다. 산에 대해 내가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시려나? 하지만 일전에 어떤 모임에서 새해 소망을 이야기하는, 아주 건전하고 다소 민망한 순서가 있었는데 서울대 조국 교수는 올해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4) 낙장불입-2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수경이라고, 대학 때 잠깐 만난 여자인가 ? ㆍ“생명이란 말로 수경스님 전화땐 팍 죽고 싶어… ㆍ평화라는 말로“도법스님 전화땐 막 싸우고 싶어… 하하” 한 이년 정신분석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내가 사람으로 인해 병들고 상처 입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되돌려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만 치유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꼭 사람이 아니라 해도 생명을 기르고 사랑하는 일이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둑에 골몰하거나 개를 기르거나 축구 혹은 나무 키우기에 미쳐버린 사람에게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함께하는 생명이 있으면 그건 좋은 일이다. 중독이라는 말은 인간이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