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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 돋을새김]꽃들아, 미안하다
[김남희의 남미 걷기](2) 칠레 활화산 발치의 호숫가 마을 푸콘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외로운 영혼이 닿은 ‘짜릿한 지옥’ 활화산 빌라리카 등반은 푸콘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야외활동 No.1. 삶이 이렇게 평온하기만 해도 되는 걸까. 갈등도, 상처도, 흔들림도 없는 날들이 고요히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쳐서 독이 되곤 했던 외로움마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일상은 평화로웠다. 간이 안 된 국처럼 싱거운 인생이라니. 한 번뿐인 삶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 유일한 무기는 타인의 슬픔을 알아채던 예민한 감정선뿐이었는데, 나는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잡문에 불과한 여행기마저 써지지 않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외로움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음을. 외로움이 내가 가진 전 재산이었음을. 결국 이번 여행은 제 발로 뛰어든 ..
[주영하의 음식 100년](9) 배추김치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ㆍ“진수성찬도 김치 없으면 허전”… 켜켜이 감칠맛…그립다 ‘조선배추’ “김치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밥 다음에는 김치 없이 못 견디나니 만반진수가 있더라도 김치가 없으면 음식 모양이 못될 뿐 아니라 입에도 버릇이 되어 김치 못 먹고는 될 수 없나니 어찌 소중하다 아니 할까부냐.그런고로 봄과 여름과 가을은 일기가 춥지 아니한 고로 조금씩 담가 먹어도 무방하거니와 겨울은 불가불 한데 하여야 오륙삭을 먹나니 그런고로 진장(珍藏)이라 하는 말은 긴할 때 먹기로 보배로 감춘다는 말이라.” 이 글은 이용기가 1924년에 펴낸 근대조리서인 에 나온다.여기서 만반진수는 한자로 ‘滿盤珍羞’ 곧 상 위에 가득히 차린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가리킨다. 김치가 없으면 밥 먹을 맛이 나지 않는..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수원대 교수·철학 ㆍ완벽한 키스와 흰 보자기 사랑하며 사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거란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있지요? 그때 숨 막히는 연인에게서 돌아서십니까, 아니면 숨 막혀 죽어가며 죽어가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십니까? 숨 막히는 사람의 무게는 지옥의 무게입니다. 내가 본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사랑이 숨 막히는 열정이 된 자의 사랑의 얼굴입니다. 보십시오. 한번 보고 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저 그림,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입니다. 열정에 이끌린 연인들이 둘만의 공간에서 완벽한 키스를 나누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흰 보자기에 싸여 있습니다. 미친 듯이..
[이철수의 돋을새김]정암사 수마노탑
[김남희의 남미 걷기 ‘올라, 아미고스’](1)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키스와 사랑이 나를 부르는 ‘천국의 계단’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에서 내려다본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멀리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바다, 진분홍·샛노랑·연보라의 파스텔톤 지붕들이 정겹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 김남희씨 촬영 남북 길이 4270㎞. 사막에서 극지방까지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으나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아옌데 대통령. 악명 높은 피노체트의 장기 군사독재로 비극의 현대사를 겪어야 했던 나라. 그리고 작년 가을, 지하 700m 갱도에서 광부 33인이 쓴 휴먼드라마로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다시 새긴 나라. 내게는 파블로 네루다와 이사벨 아옌데,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과 비올레..
[주영하의 음식 100년](8) ‘사시사철’ 별미, 냉면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ㆍ1920년대 제빙기술 도입… 여름음식으로 ‘재 탄생’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36년 7월23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냉면’ 관련 기사의 첫 부분이다. 1930년대 중반, 서울의 냉면집들이 성업을 하고 있는 정황을 이 글은 생..
[열차여행](4) 정선5일장 정선 | 글·사진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보들보들 봄나물이 소쿠리 한가득 정선5일장에 신토불이 상인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들고 나왔다.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고을, 정선. 이곳에는 두 가지가 서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산’이다. 은 “정선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란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치는 하늘만큼이나 좁다”며 정선의 가파른 산세를 말했다. 다른 하나는 ‘장’이다. 두메산골의 장터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곳이다. 끝자리가 2·7인 날마다 열리는 정선5일장에는 고랭지 산나물과 채소가 감질나게 비어져 나온다. 서울에서 차를 몰고 간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제천, 영월을 지나야만 다다르는 산골 정선. 한나절로 부족한 이 여정을 자동차 대신 기차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