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류철의 풍경엽서

(20)
류철의 풍경엽서_여든한번째 서해 어느 가을 바다로 나왔습니다 바람이 좀 매섭긴 해도 마음은 무척 행복합니다 아마도 이런 행복의 이유가 무엇 하나로 정의되는 건 아니겠지요 오는 길에 보았던 형형색색 단풍 바다로 뛰어 가던 아이의 웃음 소리 허기진 배로 먹은 어묵 이천 원어치 수평선 너머로 부서지는 햇살 멀리서부터 전송된 당신의 안부 그 하나, 하나 전부가 행복입니다그만 여기까지 짧게 쓰겠습니다 오늘만큼 주어진 해가 저물고 있네요 지금 당신이 받아 든 이 엽서에는 탄도항 너머 고운 햇살 저물겠지요 탄도항에서 _ 안산, 2011
류철의 풍경엽서_여든번째 허연 뼈마디살 드러내고 온몸으로 분신하던 가을 자작자작자작자작자작 활활 영혼을 태우는 소리 다시 겨울이면 돌아와 내내 흩뿌려 주리라고 온 산하에 은빛 유골 하얗게.. 수북히.. 자작나무 _ 2009, 인제
류철의 풍경엽서_이른아홉번째 여기까지라 생각 마십시오 돌아서면..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길의 끝_ 2010, 간월재
류철의 풍경엽서_이른여덟번째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단지 슬퍼서 가을이 왔습니다 주산지에 겨울이 찾아 오면 또 못내 기별 전하겠습니다 단지 슬퍼서 흰눈 내리노라고 주산지 _ 2008, 가을. 청송
풍경엽서_이른일곱번째 가을 아침 청량산을 오르거나 사무치는 부석사 경내를 걷거나 가지지 못한 욕심들이 차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들이 생각의 생각을 낳을 뿐입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가을 아침 청량산을 오르거나 사무치는 부석사 경내를 걷거나 청량산 _ 2010, 봉화 (류철 사진작가)
[풍경 엽서]물은 옥빛보다 더 옥빛같은 물색 류철 사진작가 입추 지나 처서를 향해 달리는 여름, 이끼 푸르고, 물은 옥빛보다 더 옥빛같은 물색입니다. 가끔, 풍경을 대할 때마다, 어느 약속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친 듯합니다. 바라만 보다가 눈물 글썽이며 되돌아서야 하는, 숨이 멎을 듯한 마주침. 깊은 산을 오르다 나는 또 당신과 마주쳤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눈물 글썽이지 않겠습니다. 저 맑고 투명한 계곡의 절창에 흐린 눈을 씻고, 얇은 귀를 씻겠습니다. 엄벙덤벙한 시간들 벗어놓고, 첨벙첨벙 뛰어들고 싶은, 여기는 여름 오후3시. 강원도 횡성 발기산에서 [ 풍경 엽서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
[풍경 엽서]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말 있습니다. 류철 사진작가폐갱도였던 이곳에 비가 내리고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랍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주며, 제 스스로 치유하고 정화하기를 20여년. 도롱뇽이 사는 일급수 못과 비경을 품고 되살아났습니다. 증오하고 원망하였다면 불가능한 일, 너그럽게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해 여름, 나를 용서하고 당신을 용서하며, 그렇게 나는 화절령을 내려왔습니다. 어제는, 도시의 탐욕과 교만을 꾸짖듯, 이빨을 드러낸 비가 천둥치며 내렸습니다. 이 비 그치면 또 쓰러진 것들 넘쳐날 것입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말 있습니다. 되살아남! 영월 화절령, 도롱이못에서 [ 풍경 엽서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
[풍경 엽서]당신의 여름에 귀기울이겠습니다 류철 사진작가어느새 칠월의 깊은 곳까지 왔습니다. 독 오르는 햇살 따갑긴 하여도 새털구름 나풀대는 벽공, 남루한 하루를 말리면 금세 뽀송뽀송해집니다. 아, 또 간간이 부는 바람은, 얼마나 반가운가요. 간절한 것들은 모두 바람이 된다는데…. 멀리서라도 기별을 주세요. 저 푸른 들녘 끝에 선, 내 마음은 언제나 수신대기. 그러나 희망을 훼방이라고 우겨대는 잡음엔 귀를 막겠습니다. 오로지 속삭이는 당신의 여름에 귀기울이겠습니다. 경상남도 합천 야로리에서 [ 풍경 엽서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