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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올려다 보기(55)/소금꽃 열린 85호 크레인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5) 오대산 상원사 신영복 | 성공회대 석좌교수 ㆍ시대와의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 아닐까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文殊殿)’ 현판은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의 부탁으로 썼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정념 스님은 당시 상원사 주지로 계실 때였는데 상원사가 화재를 입고 나서 법당과 선원을 분리하여 지으면서 현판을 다시 달아야 했었다. 상원사 입구의 표석글씨도 그 때 함께 쓴 것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다.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지혜’의 의미를 현판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난감하였다. 달포 이상 장고했다고 기억된다. 생각 끝에 결국 세 글자를 이어서 쓰기로 했다. 분(分)과 석(析)이 아닌 원융(圓融)이 세계의 본 모습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짧..
[김석종의 만인보]목조각 43년… 시대 최고의 불모(佛母) 김석종 선임기자 허길량(58·그림)은 목(木)조각 장인(匠人)이다. 불상, 사찰 장식 등 이른바 ‘불교 장엄(莊嚴)’의 목공예 전통을 이었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지위를 박탈당한 첫번째 장인이다. 최근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일단 ‘누명’은 벗었는데, 아직 무형문화재 취소라는 ‘불명예 기록’은 바로잡지 못했다. 허길량은 이 사건으로 9년의 세월을 괴로움 속에 보냈다. 그의 작업장은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외곽에 있다. 그동안 여기서 망치와 끌, 조각도를 붙잡고 나무 깎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래도 분심과 원망이 솟을 때는 쉼없이 경전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공방마다 그가 고행하듯 깎아낸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飛天像), 사천왕상, 동자상, 목탱화 등 각양각색의 불상과 조각품들이..
[김석종의 만인보]정설을 뒤집는 ‘농부 사학자’ 김석종 선임기자 농부 박문기(63·캐리커처)는 전북 정읍시 입암면 진등마을에 산다. 국립공원 내장산에서 이어지는 삼신산 자락이다. 삼만평이나 되는 그의 광활한 들판은 지금 황금색 벼이삭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평생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토종 농사꾼’이다. 유기농이니, 무공해 친환경 농법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저 하늘과 땅의 절기와 순환에 맞춰 거름을 내고, 써레질을 하는 전래 농법, 전통 방식대로 씨 뿌리고 거뒀다. 그는 “사람과 뭇생명이 먹는 농산물에 농약 같은 독을 뿌리는 것은 천지만물에 죄짓는 짓”이라고 했다. 그의 농업은 ‘뿌리 깊은’ 민족의 첫 농사, 조선상고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등 상고사 관련 연구서와 역사소설을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6) 뭉크의 ‘절규’ 이주형 | 수원대 교수·철학 ㆍ차라리 울지 운명이라는 게 있지요? 우연하고 무심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서는 좋든 싫든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 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런 놈! 어쩔 수 없는 사태에 대해 무기력하기만 했던 젊은 날엔 그런 운명이란 놈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내가 절대로 좋아할 수 없었던 작품이 저 작품, 뭉크의 ‘절규’였습니다. 아마도 나는 그 절규의 느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한 것이겠지요.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귀를 막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자가 끔찍했습니다. ‘어휴, 저런 그림은 공짜로 줘도 내 공간엔 걸어놓을 수 없겠구나. 차라리 울지, 서럽게 울어버리지, 그랬더라면 희망의 불씨라도 보았을 텐데…..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네 배나무를 접 붙이거라! 이상하지요? 밀레의 저 그림은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머니를 연상시킵니다. 할머니는 치매였습니다. 종종 피난보따리를 쌌고, 또 종종 할머니보다 10년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불호가 명확해졌습니다. 싫은 사람은 아파트 문턱에서 쫓겨났고, 좋은 사람은 돌아가기 힘들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처럼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공격적이 된 할머니가 예전에 그 화초를 좋아하던 심성 고운 할머니로 돌아온 것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그 날 할머니의 시선이 머문 곳은 베란다에서 크고 있는 큰 화분이었습니다. 가지 꺾인 나무를 한참 바라보며 만져주던 할머니는 실패를 찾으시더니 조심스럽게 가지의 꺾인 부분을..
[김종철의 수하한화]FTA, 농사 안짓고 살 수 있다는 환상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벼들이 익어가는 논 가운데로 5대의 APC 전차대가 마구잡이로 진격하고 있었다. 베기를 기다리는 익은 벼들은 종횡으로 질주해 들어오는 무한궤도 전차에 유린되고 짓이겨졌다. 앞의 전차가 지나간 자리를 다음 전차가 통과하는 식의 배려도 없었다. 묘판도, 모심기가 막 끝난 논도 무시되었다. 스포츠카라도 된 듯이 전차들은 제멋대로 논에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메리카 병사들의 심중에는 아시아 농경민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인자가 결여돼 있었다.” 이것은 1967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베트남전쟁 르포기사 중의 한 대목이다. 당시 큰 주목을 받은 이 르포의 필자는 혼다 가쓰이치(本多勝一)라는 젊은 기자였다. 그는 이후 일본의 양심적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
[고은과의 대화](9) 회중시계 물려주던 스승 효봉 “시간에 얽매이지 마라”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어느 인터뷰에서 글 쓰는 시간을 ‘불침번’에 비유하신 기억이 납니다. 다들 잠들었을 때 깨어 있는 그런 단독자의 마음에 대해 듣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요. 고은=그동안 이 ‘천일야화’의 첫머리는 에움길로 굽이쳐왔네. 내가 태어난 이래의 시대나 자네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시대를 아울러 말한다 해도 그 동시대성 안의 풍경이란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별 도리 없는 합류로도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전통과 새로운 것들의 괴리도 여기저기 드러나는 것이었지. 김형수=저야 양 세기의 동시성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양서류가 웅덩이에서 느끼던 시간과 뭍에서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둘을 어떻게 하나의 감각에 통합할 것인가 하는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