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남미걷기 (22) 썸네일형 리스트형 [김남희의 남미 걷기](6)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빙하의 흰빛에 눈이 멀 듯 1.육체와 정신의 한계 마주하며 걷다 생애 첫 경험이다. 일주일치 식량을 지고 걷는 일. 고작 한 주의 목숨을 유지하기가 이토록 무거운 일이었다니. 인간이란 이렇게나 나약하고 가련한 존재였구나.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마주하며 걷는 길. 고도 387미터의 고개가 에베레스트보다 높았고, 마지막 남은 2.5킬로미터는 화성으로 가는 먼 길이었다. 겨우 4시간을 걷고 녹초가 된 몸으로 세론 야영장에 들어섰다. 칠레 파타고니아 남부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남미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이곳은 내게 어떤 풍경들을 보여줄까.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거센 바람으로 악명 높은 이곳에서 끝내 살아남자. 2.엽서 속 풍경 같이 서 있는 딕슨 산장 페리토 모레노 빙하 위.. [김남희의 남미 걷기](5)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엘찰텐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이런 풍경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타기 위해 머물렀던 엘볼손에서 다음 목적지인 엘찰텐까지는 버스로 26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을 달리던 버스가 손바닥만한 시골 마을에 우리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두 시간쯤 후에 초록색 버스로 갈아타라는 암호 같은 지령을 던져놓은 채.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사표 내고 1년간 아시아와 남미를 여행 중인 호주 토목공학자 제프, 홍콩에서 온 멘디와 케네스,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 중인 ‘염장 커플’ 캐서린과 밥, 젊고 귀여운 프랑스 청년 알렉스. 이들과 어울려 카드 게임을 하거나 마을 탐험을 하고 있자니 네 시간 만에 초록색 버스가 들어왔다. .. [김남희의 남미 걷기](4)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길을 잃어버린 이들의 안식처, 바람이 전해주는 느림과 비움 나는 낡은 기차간에 앉아 있다. 오래전 이 기차를 탔던 이들을 추억하며. 손에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한 권의 책을 든 채. 때로는 몇 줄의 글이 사람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몰고 가기도 하는 법이다. 책장을 넘기던 나는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본다. 짙푸른 하늘에 떠 있는 몇 점의 구름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흘러가고, 그 아래로는 키 낮은 가시덤불 너머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고 있다. 마침내 나는 오랫동안 꿈꾸어 온 그 땅에 와 있다. 지리적으로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 이남의 남위 39도 아래 지역. 서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너머 빙하와 산을 품고, 동쪽으로는 고원과 낮은 평원을.. [김남희의 남미 걷기](3)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 트레킹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흙 위에 파인 발자국마저 반갑다 해발고도 700m의 톤세크 호수와 프레이산장.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건너가는 날. 창밖으로는 가도 가도 끝없는 벌판이다. 지평선만 벌써 몇 시간째. 인적도 없는 광활한 초지 위로 풀을 뜯는 소들만 간간이 보인다. 너희는 이렇게 너른 들판에서 마음껏 풀을 먹으며 자라는구나. 구제역 따위는 걸릴 일도 없겠구나. 산 채로 생매장당하던 내 조국의 소들이 떠올랐다. ‘인구 일인당 소 두 마리’라는 아르헨티나의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는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거였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펼쳐지는 구릉과 옥빛 호수, 하늘에도 겹이 있다는 듯 층층이 드리운 구름. 지구는 이렇게 아름다운 별이었구나. 눈을 뗄 수가 없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들이닥쳤던 .. [김남희의 남미 걷기](2) 칠레 활화산 발치의 호숫가 마을 푸콘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외로운 영혼이 닿은 ‘짜릿한 지옥’ 활화산 빌라리카 등반은 푸콘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야외활동 No.1. 삶이 이렇게 평온하기만 해도 되는 걸까. 갈등도, 상처도, 흔들림도 없는 날들이 고요히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쳐서 독이 되곤 했던 외로움마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일상은 평화로웠다. 간이 안 된 국처럼 싱거운 인생이라니. 한 번뿐인 삶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 유일한 무기는 타인의 슬픔을 알아채던 예민한 감정선뿐이었는데, 나는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잡문에 불과한 여행기마저 써지지 않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외로움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음을. 외로움이 내가 가진 전 재산이었음을. 결국 이번 여행은 제 발로 뛰어든 .. [김남희의 남미 걷기 ‘올라, 아미고스’](1)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키스와 사랑이 나를 부르는 ‘천국의 계단’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에서 내려다본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멀리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바다, 진분홍·샛노랑·연보라의 파스텔톤 지붕들이 정겹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 김남희씨 촬영 남북 길이 4270㎞. 사막에서 극지방까지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으나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아옌데 대통령. 악명 높은 피노체트의 장기 군사독재로 비극의 현대사를 겪어야 했던 나라. 그리고 작년 가을, 지하 700m 갱도에서 광부 33인이 쓴 휴먼드라마로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다시 새긴 나라. 내게는 파블로 네루다와 이사벨 아옌데,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과 비올레..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