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898)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9)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그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갱은 이렇게 썼습니다. “태양처럼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아름다워 자꾸만 쳐다봅니다. 여인의 맨발을 보고, 나도 맨발이 됩니다. 햇빛을 머금은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맨발로 온 들을 거닐었습니다. 여인이 그립습니다.” 저 여인 같지요?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아도 저 여인의 눈빛은 지나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심이 있는 자의 차분한 눈빛, 자신을 보는 이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눈빛!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그 눈빛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고갱의 다른 그림의 제목을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그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타이티에서 고갱의 그림은 그 한 문장으로 수렴됩니다. 고갱은 왜 훌훌 털고 타이티로 들어갔을까요? 분명 고갱이 ..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8) 봉하마을 신영복 | 성공회대 석좌교수ㆍ작은 묘역에 울리는 커다란 함성 사람사는 세상 봉하로 가는 길은 멀었다. 봉하가 멀다는 것은 물론 거리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난 2일 서울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그야말로 고속으로 달려 오후 1시경에야 겨우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멀고 작은 시골 마을이 지금은 연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변방의 창조성을 이처럼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온 국민이 오열했던 비극의 현장, 작은 고인돌 하나로 남은 묘역이 그 변방의 고독을 떨치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변방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봉하 묘역에는 주중임에도 불구하고 참배객들이 끊임없이 당도하고 있었다. 나는 49재 이후 3년 만의 참배이다. 묘역은 ..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7) 서울특별시 시장실 신영복 | 성공회대 석좌교수 ㆍ‘서’는 권력의 산, ‘울’은 민초의 물처럼 더불어 가라는 뜻 1994년은 조선조 태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지 600년 되는 해였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는 서예전이 기획되었고 나는 주최 측으로부터 출품 요청을 받았다.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서예가가 아니고, 저명인사도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그랬음에도 나는 출품과 관계없이 나 혼자서 서울을 주제로 한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당시 서예전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동국 차장의 청탁이 간곡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수지리를 갖추고 있고 그 위에 600년 역사가 켜켜이 누적된 땅이다. 서울의 .. [고은과의 대화](17) 달밤, 마당 뛰쳐나와 춤추던 아버지… 난 그 신명을 물려받았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선생님의 시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읽은 기억이 없는데요. 소년기부터 무겁고 장중한 갑옷 같은 사회 틀, 또 제도 따위와 무수한 마찰음을 낳았던 정신, 그 놀라운 생명체의 태반을 지금은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지, 그것은 앞으로도 ‘미래의 고은’들을 낳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한 정신의 탄생과 부모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은: 부모란 세상의 모든 추상을 무력하게 만들지. 그래서 노장(老莊)한테는 부모의 의미가 없고 공맹(孔孟)한테나 그것이 자리잡고 있어. 플라톤 봐. 헤겔 봐. 그네들의 이데아나 관념에, 그 화려한 추상세계의 어디에 부모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 부모를 삼강오륜 따위의 틀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부모를 괜히 추상화하는 건지 몰라. 김형수: 그 많은 부모 .. [고은과의 대화](16) 말 없고 투박했던 어머니… 내 언어의 표현부족도 그 탓인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그간 선생님의 어린 시절 안에서 시간, 주체, 자의식, 대지 등 꽤 많은 이야기가 확장되어 나왔습니다.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고은 = 저 오래전의 인류 난혼(亂婚)시대와 모계사회는 어쩌면 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겹치는 동시 진행인지 모르겠어. 아비 모르는 새끼를 길러내는 일은 전적으로 어미의 몫이어서 그런 사실로부터 인류의 영원한 근원성인 모성이 이루어졌을 것이 틀림없어. 그 이래의 부권이라든가 가부장제 사회라는 것은 전쟁이라든가 힘을 발휘하는 노동이나 통치로서의 폭력이 생존의 필수품이 되면서 모계의 위상이 박탈당한 것이겠지. 남존여비는 이 점에서 힘의 산물이지. 김형수 = 가끔 문단 선배님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는 합니다. 어떤 분의 아버지가 .. [고은과의 대화](15) 농경시대 유산 ‘씨족 정서’ 그 친화의 공동체야말로 소설가·평론가 김형수=겨울이 깊어가느라 그러는지 찬바람 속에서 생명의 스산함이 느껴집니다. 군산 들판은 잘 있을까요? 지난번에 대지 이야기를 하실 때 궁금했는데, 그곳에 선생님의 풍경이 있었습니까? 단양팔경, 관동팔경 같은 것 말입니다. 고은=나는 풍경광(狂)이라네. 그런데 인간이 끝나는 데서 풍경이 시작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풍경을 통해서 인간 제백사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것과 아예 인간 혐오를 내비치는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풍경론은 풍경 속의 인간이나 인간의 삶이 결코 풍경 자체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네. 그러므로 내 어린 시절의 지워지기 쉬운 기억 밑창에 남겨진 고향 일대의 풍경이야말로 풍경 이상이기도 하지. 아니, 풍경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풍경들의 이전인지 몰라. 김형수=외부의 시선.. [고은과의 대화](14)고향 할미산서 본 장항제련소 굴뚝 연기는 열애의 대상이었어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가다 군산평야를 지날 때면 엄청난 크기의 어둠을 만나게 됩니다. 그 깊은 어둠의 틈바구니에서 ‘만인보’의 영혼이 눈을 떴다! 생각하면 벅찬 감회가 없지 않습니다. 고향이 갑오농민전쟁 전적지에서 가까운데 무슨 관계가 있지는 않습니까? 고은=내가 태어난 곳은 이를테면 정읍, 고창이나 순창, 김제, 부안, 완주 그리고 전주 일대의 외곽 지대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 병력의 근거지는 아니었네. 그 전쟁 후반에 이르러서야 지원세력으로 참여하거나 군량과 죽창 따위 무기 제작 따위의 병참 인력으로 동원되었지. 김형수=조선은 중원의 시(詩)·사(史)·철(哲)에 통달한 유교적 시인들이 500년 동안 운영해온 유서 깊은 나라였습니다. 일제가 들어왔을 때 토착세력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그.. 하늘 품은 사진 88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