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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의 풍경엽서_여든여섯번째 언젠가 어느 하늘 아래에서 기적 같은 첫눈이 그대의 어깨 위로 소담스레.. 소담스레.. 내릴 때면 첫눈을 함께 하자는 당신의 마지막 바람을 끝내 지켜주지 못해 늘 한없이 미안했던 내 오랜 마음이 전하는 선물이라 여기곤 먼 곳에서 그대.. 잠시 하늘 올려보고 서서 야윈 웃음으로 나를 그만 용서해 주기를 용서 _ 2005, 한계령
류철의 풍경엽서_여든다섯번째 웃는지도 또는 우는지도 모르는 이 시간의 숨죽인 고요 당신이 내 가슴에 걸어 두고 간 이 길고 긴 침묵의 소리 가을, 우포에서 _ 2011, 창녕
[가톨릭 영성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하) 무소유 실천 ‘유럽의 예수’ 빈자를 [가톨릭 영성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하) 무소유 실천 ‘유럽의 예수’ 빈자를 위해 다 버리다아시시(이탈리아) | 글·사진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성인 베네딕토가 6세기 초 수도공동체인 베네딕토 수도회를 창설하면서 유럽 수도원은 시작됐다. 이후 유럽에는 ‘수도원의 시대’가 만개했다. 수도원은 가톨릭 영성의 중심이었고, 중세의 지식과 예술의 산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도원 생활이 위축되었다. 수도원의 규모가 커지고 부가 쌓이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일부 수도원은 돈 많은 귀족과 영주들에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과 같은 분열과 파괴도 수도원을 피해가지 않았다. 적잖은 수도자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해적들의 수도원 약탈도 자행됐다. 수도원 쇄신운동이 시작된 것은..
[가톨릭 영성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중) 알프스 깊은 산 속에서 세상 떠받쳐온 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프랑스) / 글·사진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1084년 프랑스의 신학교수 성 브루노(1035~1101)는 6명의 동료와 함께 ‘유럽의 심장’ 알프스로 향했다. 대주교가 되어달라는 지역 신자들의 바람을 뿌리친 뒤의 행보였다. 브루노 일행은 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라는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에 정착했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시켰다. 노동과 기도, 묵상. 그들은 침묵 속에서 생을 마쳤다. 세계의 수도원 가운데 규율이 가장 엄격하다는 봉쇄 수도원 카르투지오의 시작이었다. 지난 17일 찾은 카르투지오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인 알프스 심산유곡에 자리해 있었다. 해발 1300m의 고지에 위치한 수도원 앞은 협곡이다. 뒤로는 ‘그랑 솜(Grand So..
[가톨릭 영성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수도원 성당 제대 아래 김대건 신부 유해 오틸리엔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의 성당 제대(祭臺) 아래에는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제대의 한쪽 귀퉁이에는 김대건의 전신상이 조각돼 있다. 오틸리엔 수도원이 김대건의 유해와 그의 전신상을 모신 것은 베네딕도 수도회와 한국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1909년 선교사 2명을 한국에 파견, 서울 혜화동에 베네딕도 수도원을 건립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수도원 운영이 어렵게 되자 1927년 북한의 함경도 덕원과 중국 연길로 수도원을 옮겨 선교활동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와중에서는 수도원을 경북 칠곡군 왜관으로 다시 옮겼다. 일제의 천주교탄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에 파견된 베네딕도회 수도사 ..
[가톨릭 영성의 뿌리, 유럽 수도원을 가다](상) 기도와 노동, 베네딕도회 수도원 뮌헨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ㆍ수도사가 소·돼지 치고 바느질하는 자급자족 공동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비워냈다. 가난은 일상이 되었다. 말 많은 세상에는 침묵으로 응대했다. 남들이 분노, 원망, 괴로움을 얘기할 때 그들은 희망과 평화를 갈구했다. 묵상과 기도, 노동. 삶은 단순했지만, 울림은 컸다. 수도승들의 영혼은 1500년 유럽 역사와 문화를 지켜낸 버팀목이 되었다. 그들의 삶터인 수도원은 마르지 않는 ‘영성의 샘’이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주관한 ‘가톨릭 영성 순례’(11월14~24일)를 따라가며 유럽 수도원의 심처로 들어간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수도사들이 지난 15일 성당에서 열린 저녁기도에서 성경 구절을 낭송하고 있..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6)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김개남 장군 추모비 전주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ㆍ갑오년 그리고 80년 5월, 그들의 혁명은 실패가 아니다 전주는 20년 수형 생활의 마지막 3년을 보내고 출소한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주는 내게 커다란 햇볕이다. 교도소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올 때 온몸에 쏟아지던 그 8월의 햇볕이다. 신문지만한 햇볕 한 장 무릎에 얹고 마냥 행복해하던 겨울 옥방의 그것에 비하면 8월의 뜨거운 햇볕은 환희였고 생명이었다. 그리고 전주교도소에는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노래 ‘떠나가는 배’가 그것이다. 출소 일주일 전쯤 우리는 신입자로부터 이 노래를 배우게 된다. 그러다가 석방 이틀 전 가족접견 때 은밀한 출소 소식을 듣는다. 우리 감방에서 내가 가장 오래 복역했지만 차마 출소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된다. “..
[고은과의 대화](13) 어머니 거울은 어린 내게 유일한 상상 공간의 첫걸음이었지 고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인간의 정신이 탄생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타자를 발견하고 세상의 형상을 얻으며 자아의 모험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 말입니다. 고은 = 정신의 탄생이란 그 기원은 안개 속인지 몰라. 정신분석학의 자아형성 단계론에 ‘거울 단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내가 서너 살 때 이런 학설이 생겨났다네. 인간이 자아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리스 신화 속의 나르시스처럼 물속의 제 미모를 처음부터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자신인 줄 모르다가 차츰 거울보기의 반복을 통해서 거울 속의 자아와 실제의 자아를 합치시키는 과정이 생겨난다네. 김형수 = 선생님의 그런 체험을 기억하실 수 있나요? 그림 | 임옥상 화백고은 = 나 역시 어머니나 그 밖의 가족에 의해서 나의 존재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