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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바르셀로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1-04 19:53:43ㅣ수정 : 2010-11-04 21:24:33 비밀이 담겨 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가령 밖에서 보면 3층인데 사실은 숨겨진 4층이 있는 건물 같은 것 말이지요. 비밀은 간직할 때 아름다울 테지만 솔직히 비밀을 캐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바르셀로나 구시가에 있는 작은 건물 하나가 슬쩍 말을 걸어옵니다. “사실 나는 과거가 있어.” 1층 카페에서 우유를 듬뿍 탄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는 고개를 듭니다. 낡은 건물에 전형적으로 모던하게 인테리어를 한 곳입니다. 문득 카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전 양식의 기둥과 아치가 다시 보입니다. 20세기 초에 지어졌을 평범한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재료가 대리석입니다.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4) ‘오이소’ 화개면민 체육대회 이원규 | 시인 입력 : 2010-11-02 21:32:11ㅣ수정 : 2010-11-03 00:55:23 ㆍ“여자가 씨름을 한다꼬… 어데 아무데서나 자빠지노” “말만 잘하면 공짜라카이. 어서 오이소~.” 사시사철 시끌벅적하던 화개장터가 왠지 조용하다. 장터뿐만이 아니라 연인과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화개십리 벚꽃길’(혼인길)도 썰렁하고, ‘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하동군 수류화개동천(水流花開洞天)의 9개 리 20여개 마을 전체도 텅 비었다. 단풍놀이 온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없는 11월 첫째주 월요일, 어른들은 모두 장터에서 가까운 섬진강변 남도대교 아래 체육공원에 모였다. 제11회 화개면민의 잔칫날이자 22회 체육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
[이철수의 돋을새김]미친 칼춤 이철수 | 판화가 입력 : 2010-10-28 21:41:44ㅣ수정 : 2010-10-28 21:41:46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서울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0-28 21:36:17ㅣ수정 : 2010-10-28 21:36:18 차가운 계절이 돌아옵니다. 광화문도 곧 겨울을 맞이할 겁니다. 광화문에는 딱히 갈 곳이 많지 않습니다. 만날 가던 곳을 또 가게 되지요. 그래도 지루함은 없습니다. 시간의 퇴적층이 희미하게나마 쌓인 거리는 그 자체로 즐거운 장소입니다. 잘 찾아보면 구석구석 이야깃거리가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끌벅적한 대형 커피집에서 가장 난방이 안되는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사실 그곳이 제일 조용합니다. 창밖의 풍경은 늘 비슷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생각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나는 한 해 동안 잘 머물러 있었구나’하고 위안을 하지요.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메기, 10월의 흔적 10월 기형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은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
메기, 10월의 흔적 2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The violets were scenting the woods, Maggie Their perfume was soft on the breeze 제비꽃 내음이 숲속에서 풍겨오고 그 향기가 산들바람에 실려 부드럽게 다가왔어요. 매기여../13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 했을 때, 매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05The chestnut bloomed green through the glades, Maggie A robin sang loud from a tree 숲 속의 빈 터에서 밤꽃이 푸르게 ..
[여적]표절 김태관 논설위원 입력 : 2010-10-25 21:49:53ㅣ수정 : 2010-10-25 21:49:53 몇 년 전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국어선생님이 시를 지어 오라는 숙제를 냈는데, 눈에 확 띄는 시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소문난 학생이 제출한 시였다. 선생님은 감동어린 목소리로 그 시를 낭송했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어머님이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선생님은 진지한데 학생들은 자지러졌다.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하는 대목에선 교실이 뒤집어졌다. 누구나 다 아는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인데, 고지식한 선생님만 몰랐던 것이다. 이런 표절은 장난기 가득한 학생만 저지르는 것이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3) ‘낙동강 소녀가수’ 강언나 이원규 | 시인 입력 : 2010-10-26 21:43:24ㅣ수정 : 2010-10-26 21:52:31 ㆍ낚시꾼도 올갱이도 모두 떠나고 없는 저 강이 정녕 강일까 지리산 정신의 사표로 경남 산청에 남명 조식 선생이 있다면 전남 구례에는 매천 황현 선생이 있다. 매천 선생은 100년 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絶命詩) 3수를 남기고 자결했으며, 남명 선생은 끝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은둔처사로서 신랄한 상소문을 올리며 후학을 양성하는 등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역주행의 난세’에 이분들의 기개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못해 자꾸 뒷골이 땅긴다. 참으로 고약한 시절에 뻣뻣해진 뒷골을 잠시나마 풀어준 가수가 있으니, 지난 23일 산청에서 열린 ‘제5회 지리산 문화제’의 마지막을 장식..